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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40화 (140/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47)

    자고로 사람은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

    주제를 모르고 살면 없는 형편에 사채 끌어다 비싼 외제차 구입해서 단번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노후 대비 저축은 한 푼도 하지 않으면서 꼬박꼬박 해외여행과 명품 수집에 열을 올리게 된다.

    아니면 중장갑보병 2개 소대가 탑승한 위장 보급대를 섣불리 노리고 덤벼들었다가 몰살당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꺼, 꺼흐…… 으으으으……!”

    포화에 찢겨 나갔으나 운 나쁘게도 급소를 피한 탓에 목숨이 붙어 있던 놈이 나를 올려다보며 신음을 흘렸다.

    대한민국 상위 0.1% 명의들과 최신예 의료 기기를 갖다 놓으면 어찌어찌 살려 놓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검고 불쾌한 세상에서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역사 안쪽에 남아 있을 잔당을 우려해 중장갑보병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야투경과 소총이 휙 하고 허공을 가로질러 왔다.

    능숙하게 소총과 야투경을 받아 들어 장착하고, 여전히 신음을 흘리고 있는 놈의 목덜미를 가볍게 사커킥으로 후려갈겼다. 목뼈가 우두둑 하고 꺾이면서 기분 나쁜 신음성이 완전히 멎었다.

    중장갑보병들은 나를 따라나서지 않고 전철 주변 정리 및 바리케이드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총성이 제법 요란했기 때문에 인근 지역의 나이트워커들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여차하면 전철을 급하게 출발시켜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바리케이드 해체를 최우선으로 삼는 한편, 나는 단독으로 잔당 소탕에 나섰다.

    제법 후미진 곳에 위치한 시골의 역이라 역사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2030년의 첨단화 열풍을 타긴 했는지 곳곳에 디지털의 흔적이 엿보였다.

    다만 규모가 제법 되는 지방 도시, 수도권 수준의 역사에 비하면 역시 초라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증거로 이곳에 머물고 있던 놈들은 예비 발전기도 없었는지 드럼통과 장작을 가득 쌓아 둔 상태였다.

    더 이상 손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역사 내부에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소주병이나 전투 식량 쓰레기, 통조림 깡통 따위가 굴러다녔다. 특히 위생은 개나 줬는지 꿉꿉하면서도 하수구를 연상케 하는 썩은 내가 진동했다.

    짐승들처럼 용변을 대충 본 데다, 물도 부족해서 다들 제대로 씻지 않았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런 곳이 제대로 된 군인들이 주둔하는 방위 거점이었을 리는 만무하고, 군대에서 떨어져 나온 비주류 양아치들의 아지트였던 모양이군.’

    물론 놈들 말마따나 정말로 경상도와 타 지역 접경지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부대일 수도 있다. 무장 수준이나 행동거지만 놓고 봐도 단순한 민간인 폭도는 아니었으니까.

    ‘안전지대를 차지한 군대 내부에서 정치 싸움에 지고 외부로 밀려난 2군들일 수도 있겠군.’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 하나도 밟지 않도록 섬세한 보폭으로 움직이면서 내부를 빠르게 훑었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안이든 밖이든 정치질이 얼마나 골치 아픈지는 잘 알고 있다. 놀랍게도 인간이란 동물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정치판에 뛰어드는 어엿한 선수들이니까.

    그리고 언제나처럼 정치질을 정면으로 깨부수거나, 뒷공작으로 음습하게 처리해 왔던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정치 싸움에서 밀려난 놈들에겐 특징적인 공통점이 있다.

    ‘중간을 모른다는 거지.’

    사회생활을 잘하는 방법은 중간을 유지하는 거다. 고수하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거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뭐든 중간이 최고라고.

    그 중간을 유지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데, 우선 성격이 극단적이면 안 된다. 또한 성향도 극단적이면 곤란하고, 그러면서 철저하게 자신이 입게 될 손익을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

    똑똑하고, 눈치 빠르고, 언제나 냉정하고, 필요하다면 가면 서너 개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쓸 줄 아는 희대의 광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사회에서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중간을 유지할 수 있다.

    정치 싸움에 실패하는 놈들은 대부분 그런 소양이 부족해서 결국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비주류로 밀려나는 거다.

    플랫폼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서 도망치지 않는 저 머저리들처럼.

    ‘역시 우리가 내부 수색을 위해 우르르 역사 안으로 몰려들면 기습을 가할 속셈이었군.’

    먼저 몰살당한 제 동료들은 안중에도 없고, 역으로 그것을 이용해 자신들만 이득을 취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종자들의 속셈은 너무나도 뻔하다.

    나는 역사의 커다란 콘크리트 기둥 뒤에 몸을 숨긴 뒤,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섬광탄을 꺼내 들어 안전핀을 뽑았다.

    티잉!

    어둠 속에 숨어서 기분 나쁜 공기를 조용히 들이마시고 있는 짐승들이 똑똑히 들을 수 있을 만큼 맑고 청아한 소리였다.

    타타타타타타타!

    섬광탄을 쥔 손을 지지대 삼아 소총의 총신을 거치하고, 그 상태로 고개만 빼꼼 내밀어 기습 사격을 가했다.

    내가 수류탄이든 뭐든 그걸 던지기 위해 몸을 크게 내보이는 순간 사격을 가할 생각이었던 몇몇 놈들은 그대로 상반신과 미간이 꿰뚫렸다.

    퍼퍽! 퍼버버벅!

    튀어 오르는 핏물과 살점, 갑작스럽게 시작된 총격으로 패닉에 빠진 상대측도 뒤늦게 응전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재빨리 소총을 회수하면서 손목 스냅을 이용해 가볍게 섬광탄을 내던지고 다시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총기 반동만 잡을 수 있었다면 섬광탄을 던질 필요도 없이 전부 사격으로 잡았겠지만, 그건 나 역시 오랫동안 몸을 노출시켜야 했기 때문에 리스크가 컸다.

    아주 작은 리스크만 감수하면서 상대측이 내게 응전하게끔 유도한 결과. 놈들은 가볍게 내던진 섬광탄에 완전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뻐어어어엉!

    전자레인지에 돌린 인스턴트 팝콘이 터지는 소리를 대충 수십 배쯤 증폭시킨 듯한 폭음과 함께 강렬한 섬광이 역사 내부를 훑었다.

    어둠 속에서 맞닥뜨린 파멸적인 폭음과 섬광에 어떠한 보호 장구도 없이 그대로 노출된 상대측은 제멋대로 픽픽 쓰러졌다.

    “으아아아아아! 눈! 눈이이이이……!”

    “그르르르…… 그르르륵!”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씨발!”

    뇌진탕이 와서 그대로 경련을 일으키는 놈부터, 눈과 귀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구는 놈들까지.

    안내 데스크나 화장실 벽 뒤쪽에 숨어 있던 놈들을 하나씩 찾아내서 정확히 미간에 총알을 박아 주었다.

    원래 어두컴컴한 땅굴 속에 숨어 있던 북한군과 교전할 때 많이 써먹었던 기만전술인데, 이걸 같은 나라 군필자들에게도 써먹게 될 줄이야. 이것이 동족상잔의 비극인가?

    탕! 탕! 탕!

    섬광으로 눈이 멀고 귀가 먹먹해진 놈들부터 우선적으로 가슴팍을 짓밟아 못 움직이게 한 뒤, 미간에 구멍을 차례차례 뚫어 주는 지루한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대략 10명쯤 처리했을까.

    나는 유독 살이 통통하게 오른 중년 한 명을 발견하고서 냅다 발목부터 짓밟아 부러뜨렸다.

    빠각!

    “으아아아아아아!”

    “눈은 여전히 보이지 않겠지만 이명은 생각보다 오래 안 갈 거야. 그러니 엄살 부리지 마.”

    돼지의 뒷덜미를 잡아서 강제로 역사 내부 역무원 전용 사무실 소파에 내던진 다음, 놈의 품속을 뒤져서 무기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냈다.

    그러자 안에서 나온 것은 지령서 비스무리한 무언가와 무전기 하나, 그리고 경찰용 권총인 리볼버가 나왔다.

    이 망해 버린 세상에서 무려 2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통통한 체형과 기름이 번들거리는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굉장히 수상했다.

    여전히 꽥꽥 울부짖는 놈의 통통한 복부에 주먹을 때려 박으니 숨을 꺽꺽대면서 조금 조용해졌다. 머리채를 잡아 올려 뺨을 몇 대 갈겨 주니 놈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사정사정하기 시작했다.

    “제,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필요한 게 있으면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물론 너희가 가지고 있는 총기나 탄약은 챙겨 갈 생각이야.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거든. 너희 뭐 하는 놈들이야?”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 끄아아아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모른다’와 ‘말할 수 없다’는 대답이 나올 때마다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하나씩 부러지는 거야.”

    눈이 보이지 않으니 어느 부위가 부러질지 모르기 때문에 심리적 압박감은 굉장할 터. 놈은 완전히 꺾인 자신의 왼손 약지의 통증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박상호……입니다.”

    “나이.”

    “36세입니다.”

    “소속.”

    “본래 대구 서부경찰서 이현지구대 소속 경사(警査)였습니다…….”

    “그럼 지금은 뭔데?”

    “후방 지역 군부대가 대부분 경상도로 몰려들면서 경찰들이나 일부 예비역 민간인들이 짬처리를 당했습니다.”

    “군부대가 노른자 땅 다 먹고 너희 같은 쓸모없는 양아치들은 적당히 외부 경계로 뺑뺑이 돌린다는 거네?”

    “…….”

    이건 맞는 말이라 그런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쪽팔려서 그런지 놈은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경상도 내부로 이어지는 간선을 고의로 막아 둔 이유는?”

    “상층부에서 더 이상 외부 피난민의 수용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혹시 수도권이 수복되었을 경우, 수도권에서 내려오는 소식통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이야, 그냥 개새끼들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레이트 개새끼들이었네.”

    전자는 이해할 수 있다. 남부 지방이 수확 철에 얻은 곡식 덕분에 풍족하다고는 하나, 그만큼 수많은 피난민과 군대가 몰려들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을 테니까.

    식량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데 먹을 입이 늘어나는 건 누구도 원치 않겠지. 내가 지도자였다고 해도 조직 전체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아니라면 피난민 수용을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마치 공산권 사회주의 국가처럼 철저하게 쇄국정책을 펼쳐 외부 소식을 원천 봉쇄해서 자신들의 독재를 이어 나가겠다는 것 아닌가?

    수도권이 수복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남부 지방까지 퍼지면 기껏 지역 전체를 장악한 의미가 없어지니까, 사전에 비둘기를 잡아 족쳐서 민중들을 세뇌시킬 속셈이었던 거다.

    물론 실제로 수도권이 완전히 수복된 것도, 수백, 수천만 인간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 터전이 마련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근본부터 글러 처먹은 말종들이나 떠올릴 법한 발상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다는 걸 상층부에 보고했나?”

    “아, 아직…….”

    “그럼 이 주변에 너희 같은 놈들이 얼마나 더 있지?”

    “이 근방은 저희뿐입니다…….”

    “좋아, 마지막 질문이다. 이것만 잘 대답하면 내가 관용을 베풀어서 널 살려 줄 수도 있어. 그러니 신중하게 답해야 할 거야.”

    “예, 예……!”

    “경상도 일대를 장악한 우두머리나 그에 준하는 고위층의 이름과 소재지를 아는 대로 말해.”

    나는 디그러쉬제 녹음기를 놈의 입가에 들이댄 채 잠시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놈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녹음기에 기록한 뒤,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자신이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고통 없이 죽었으니 결과적으로 영혼은 ‘살았다’고 느끼면서 저승으로 가지 않았을까?

    나는 이런 악독한 놈들에게도 해피 엔딩을 선물해 줄 수 있을 만큼 스윗한 남자였다.

    “요인 암살은 내 주특기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마 적지 침투를 자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다. 고마워요, 대한민국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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