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37화 (137/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44)

    부산행

    무언가가 ‘트리거’가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카운트다운이 종료되었던 것뿐일까.

    나는 방수 처리된 판초 우의를 뒤집어쓴 채 서울역의 굳게 잠긴 게이트를 쾅쾅 두들겼다. 안쪽에서 사람이냐 아니냐를 구분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에 대답해 줬더니 게이트가 열렸다.

    “빌어먹을. 한겨울에 눈도 아니고 비가 쏟아질 줄이야.”

    신경질적으로 판초 우의를 바닥에 집어 던지자 중장갑보병들이 검은 체액이 잔뜩 묻은 판초 우의에 소화기를 분사했다.

    소화기 분말에 의해 굳어 버린 점액은 흘러내리지도, 기화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갇혀서 크고 작은 눈덩어리가 되었다. 알파 대원들이 이끄는 거점답게 벌써 이런 쪽으로 대비책을 마련해 둔 모양이다.

    “네 부하들은?”

    “롯데호텔.”

    안에서 걸어 나온 최진석의 물음에 나는 그렇게 답했다.

    롯데호텔은 이제 막 전력과 수도가 공급되기 시작해서 사람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는 반면, 외세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힘이 부족한 집단이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건 둘째치고, 지키지 못하면 내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조직원들을 롯데호텔에 두고 왔다. 이런 상황에서 단체로 우르르 몰려다녀 봐야 좋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보다 여긴 좀 어때? 게이트를 죄다 봉쇄한 걸 보니 너희도 뭔가 낌새를 느낀 게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간밤에 몇 차례나 습격이 있었다. 인간인 것 같으면서도 인간이 아닌, 지성체인 것 같으면서도 지성체가 아닌 것들이 이곳의 사람들을 노리더군.”

    “일반적인 총격은 먹히지 않았을 테니 조금 전처럼 소화기 분말을 뿌려서 굳힌 다음 박살 낸 모양이지?”

    “그 말대로다. 넌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일반적인 총격이 먹히지 않는다면 더 강한 총격을 쓰면 되지.”

    나는 등 뒤에 차고 있는 커다란 탄약 박스와 경기관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미 탄약이 동났기 때문에 더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강한 화력으로 몰아붙이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물풍선처럼 펑 터지더라고. 권총탄이나 소총탄 정도로는 힘들어. 적어도 샷건이나 박격포, 경기관총, 기관포 정도는 돼야 가능할 거다.”

    “쯧…… 그 괴물들은 머리를 맞추기만 하면 권총탄으로도 제압할 수 있었는데, 이것들은 대체 뭔지…….”

    “이제 그냥 나이트워커라고 불러. 너도 어감 좋은 거 인정하잖아?”

    “괴물은 괴물이다. 사람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하여간 똥고집하고는.

    나는 한 중장갑보병이 건네준 생수를 단숨에 들이켜며 적당한 좌석에 주저앉았다.

    검은 빗줄기는 처음 폭풍우처럼 격하게 내리던 것에 비하면 조금씩 기세가 잦아들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벼운 소나기나 부슬비 정도라고 봐야겠지.

    바꿔 말하면 지구의 하늘을 뒤덮고 있던 암흑 물질 중 지상에 떨어진 놈들이 제법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느낌이었다.

    “크리스마스라서 잔뜩 기대했는데 선물은 없고 엿만 먹인다라……. 사람을 노예 취급하는 군대에서도 크리스마스만큼은 잘 챙겨 줬다고.”

    하늘에서 내심 흰 똥덩어리가 아니라 초코파이라도 떨어졌으면 하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감상하고 있을 때, 기름 같은 검은 비가 우수수 쏟아져 내릴 때의 그 기분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걸로 확실해졌어.”

    “……?”

    “저 하늘을 뒤덮은 암흑 물질이나, 바닥에 떨어진 검은 존재들이나 지상에 있는 인간들을 살려 둘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거.”

    지저 도시에 있을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나는 미래그룹을 통해 진실의 편린을 확인했고, 자신이 지금까지 무의식 속에 가라앉혀 두었던 기억들의 일부를 되살려 내는 데 성공하면서 퍼즐을 완성시켰으니까.

    저것들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했던 고대인들을 벌하기 위한 무언가였으며, 고대인들은 비록 자신들이 멸종당할지언정 순순히 당해 줄 수는 없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저것들을 지저 세계에 봉인했다.

    그리고 아득히 오랜 시간이 흘러 이 땅에 새로운 인류가 다시 자리를 잡았을 때, 우리가 지저 도시 프로젝트라는 미명하에 지저 세계를 개방하고 저것들을 일깨웠을 때, 우리는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고대인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기존의 고대인들은 죄다 뒈져 버렸지만, 고대인과 흡사한 우리가 놈들에게 고대인 취급을 받으면서 제2의 지구 멸망 프로젝트가 가동된 것이다.

    인간이면서 저것들을 추종하는 흑연교, 고대인도 아니면서 고대인 흉내를 내는 디그러쉬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 사이에 끼어 있다는 죄로 이리저리 얻어맞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

    이 세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된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내 목표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진정한 자유를 원한다. 누구도 내게 간섭할 수 없으며, 나를 종속시킬 수도 없고, 감히 내 위에 설 수도 없는 완벽한 자유를.

    ‘지금도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는 저것들은 내 자유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저런 것들을 신체에 직접 받아들이고, 위대한 신이라도 되는 양 경건하게 숭배하는 흑연교도 걸림돌이다.

    그저 고대인의 엄청난 기술력에 심취해 자신들이 직접 신이 되고자 선을 넘는 디그러쉬도 걸림돌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 뭉치지 않고 끊임없이 반목하는 멍청한 인간들도 걸림돌이다.

    세상천지에 온통 걸림돌투성이다. 이 정도면 불도저로 싹 다 밀어 달라고 시위를 하는 수준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조금 지친다.

    육체적 피로는 지저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충분히 해소되었지만 심적 피로는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힘든 작전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면 언제나 내 팔뚝에 꽂혔던 그 주사기 속 약물을 또 한 번 맞고 싶은 기분이다.

    ‘내가 무슨 마약중독자도 아니고…….’

    한숨을 푹 쉬고서 굳어 있던 근육을 다시 풀어 주었다. 바깥의 검은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제 형태를 갖춘 놈들이 아직 살아 있는 지상의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할 터.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했던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 혹은 변종 놈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어. 바로 처리하는 순간 체내에서 빠져나온 검은 체액이 기화해서 하늘로 되돌아갔다는 거야.”

    “그건 우리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지. 너희도 정신이 없어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지금 지상에서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돌아다니는 놈들을 처리하면 검은 연기로 기화하지 않아.”

    “……그 말은?”

    “지금까지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 변종들은 놈들이 작은 수신 장치(검은 체액)를 심어 두고 원격 조종을 했던 거라고. 이번에 지상으로 내려온 게 놈들의 본체야. 본체는 한 번 죽으면 완전히 죽는 거지.”

    고대인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적수가 될 존재가 지구상에 없었으니 전투력보다 과학 기술 발전에 좀 더 투자를 했던 것 같은데, 그 탓에 저것들의 침공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멸망해 버린 것 같았다.

    이와 유사한 문명이 우리 인류에게도 하나 존재하는데, 바로 고대 이집트다.

    고대 이집트는 당시 눈부신 문명 발전과 나일강을 기반으로 풍족한 식량 사정을 갖추고 있었으며, 또한 자신들과 맞먹거나 그보다 위인 강대한 외세가 없었다.

    그 탓에 몇천 년이라는 평화로운 시간을 피라미드나 뚝딱뚝딱 지으면서 허송세월을 보냈고, 결국 어느샌가 성장해 버린 타국에 의해 뚝배기가 깨져 버리고 만다. 진실을 아는 인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선례가 있었던 셈이다.

    “놈들이 아무리 강대하다고 해도 무한 컨티뉴가 가능한 건 아니야. 우리 인간처럼 놈들도 죽으면 완전히 죽어.”

    “그럼 어째서 강대국들은 하늘을 향해 핵미사일 같은 걸 쏘지 않은 거지?”

    언젠가는 그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다. 나 역시 그런 궁금증을 품고 있었으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류가 후폭풍을 두려워했다는 점 그리고 지구의 모든 하늘을 뒤덮은 암흑 물질이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은 상태라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막말로 모든 인류가 지저 도시에 숨어든 게 아니지 않은가. 나라마다 선택받은 수십만, 수백만 명의 인간들만 겨우 지저 도시에 숨어들었을 텐데 지상에 남은 절대다수의 머리 위에 핵폭탄 수십, 수백 발을 터뜨릴 배짱이 없었던 거다.

    모든 보안 절차를 끝마치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심플한 방식이지만, 동시에 수십억 인류를 자신들의 손으로 학살해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강대국 수장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애초에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않고 그저 연기처럼,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은 저것들을 핵폭탄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고.

    때문에 강대국 수장들은 맞서 싸우거나 사태를 해결하기보단, 일단 안전한 곳에서 숨어 지내며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한 것이다.

    핵폭탄으로도 안 될 것이라면 일반적인 미사일이나 포탄은 말할 것도 없으니 굳이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라고 추측한다.

    내 생각을 정리해서 설명해 주자 최진석은 납득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최소한 시도라도 해 봐야 했던 것 아닌가?”

    “시도라는 말은 그렇게 쉽게 내뱉으면 안 되는 거야. 전자파를 차단하거나 왜곡하는 저 암흑 물질을 향해 핵미사일이나 유도 미사일을 대충 쏴서 날려 보낸다 치자. 폭발할 가능성은? 폭발한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폭발한 뒤에 지구 전역에 흩뿌려질 방사능 낙진과 지상에 아직 남아 있는 인간들은? 막말로 진짜 핵미사일을 수십, 수백 발을 쐈다면 너흰 지금 여기 있지도 못했어.”

    심지어 인류가 보유한 핵미사일은 놀랍게도 수백 발 규모가 아니라 최소 수천 발 규모다. 미국과 러시아는 핵 감축을 통해 그 규모를 줄였다고는 하나, 숨겨 둔 비장의 수 같은 것을 고려해 보면 못해도 1만 발 이상은 보유하고 있을 터.

    핵미사일은 애초에 쏘려고 만든 게 아니다. 그저 나도 칼 있으니까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의 위협용 액세서리일 뿐.

    2차 세계대전 당시 선을 씨게 넘었던 일본을 제외하면 핵미사일이 인류를 향해 사용된 적은 없다. 그건 상대가 운석이든 외계인이든 괴물이든 똑같을 것이다.

    핵이란 결국 다 함께 공멸하는 무시무시한 도구이기에, 다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지구 멸망 대비용이랍시고 사 두었다가 때가 되면 폐기하는 비상용 통조림에 불과하다.

    따라서 핵은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더 많은 병력과 무기가 필요해. 놈들이 본체로 지상에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지상의 인구가 충분히 줄었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야. 그 허황된 자신감을 역으로 찔러야지.”

    물론 여전히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 그리고 변종들도 돌아다니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꽤 많은 놈들과 마주쳤으니까.

    지금은 알 수 있다. 놈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나이트워커들이 가진 묘한 ‘지능적인 행동’들도 사실은 본체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나이트워커처럼 검은 체액을 체내에 받아들인 인간들 역시 놈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사태 초기부터 마스크를 써서 연기의 흡입을 막은 보람이 있었군.’

    흑연교는 이미 틀렸다. 인천항에 모여든 놈들은 체내에 많든 적든 놈들의 일부를 받아들인 상태이며, 나이트워커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한 점 없이 상대를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추위를 덜 느끼며, 강대한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저것들은 이미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무언가로 전락했다.

    그러니 아직 깨끗한 인간들을 찾아야 한다. 지저든 지상이든 놈들에게 먹히지 않은 인간 무리를 최대한 찾아내서 규합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전력과 수도는 이미 확보했어. 지저 도시에서 DNA를 조작해 개발한 개량 품종 곡식을 수경 재배 한다면 지상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어. 문제는 그걸 자체적으로 지킬 수 있는 단체의 힘이다.’

    부끄럽게도 차도식파는 일개 조직에 불과하며, 서울역과 롯데호텔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중이떠중이 무리에 불과하다. 전문적인 전투 인원과 장비가 지켜야 하는 영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규합해야 한다.

    아직 멀쩡한 인간을 찾아내고, 군대가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가 버린 무기를 확보하고, 멈춘 공장을 재가동시키고, 불이 꺼져 버린 지상에 다시금 불을 지펴야 한다.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지저 도시에 두더지처럼 박혀 있는다고 해서 사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겠지. 한술 더 떠서 지상을 완전히 점령한 놈들이 지저 도시까지 침공한다면 인류의 완전한 멸망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야, 최진석.”

    “음?”

    “내가 서울역에 전력과 수도를 공급하기로 했을 때부터 사실은 준비 중이었지? 이미 망해 버린 인천이 아니라 아직 멀쩡할 가능성이 높은 부산과 서울을 잇는 방법을.”

    “역시 브라보 원이야. 눈치가 빠르군.”

    아무렴 내가 그런 생각도 못 했을까. 서울역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데.

    “맞아, 우린 최신예 KTX 전철을 이용해 부산까지 내려갈 준비를 끝마친 상태다.”

    “전고체 배터리 충전과 전철 동력실 내부의 예비 발전기에도 연료를 가득 채워 둔 상태겠지. 운행 목적은 대량의 군수물자, 혹은 군인의 운송일 테고.”

    최진석은 내 추리에 일절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도 최진석과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 결국 사람 생각은 거기서 거기라는 가설이 또 한 번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아직 출발하지 않은 이유는 라디오 타워를 점령한 내게서 부산의 상황을 전해 듣고 확신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겠지?”

    내 물음에 몇몇 알파 대원들이 휘유,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라니까, 새끼들아.

    “아직도 무지성 감탄이 더 필요한가?”

    이젠 다들 원숭이처럼 ‘우효오오오오옷! 박한성 군, 왜 그렇게 유능한 거냐구!’ 하고 외칠 기세라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네 생각대로 부산에 대한 상황은 이미 파악해 뒀으니까. 다행히도 그쪽에선 일본과 러시아, 미국과 교류해서 그런지 인천과는 달리 움직임이 꽤 활발하더라고.”

    부산은 서울의 3분의 1 정도 되는 대인구를 보유하고 있을 만큼 규모가 큰 광역시다. 인천 못지않은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임과 동시에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한 제2의 수도.

    또한 남부 지방이라 비교적 따듯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한파에도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을 터. 자연스럽게 생존자들은 부산으로 모여들었을 것이고, 후방의 군부대까지 규합해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영역을 잘 지키고 있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다.

    ‘현재 부산은 심각한 물자난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물자는 부족해도 상관없다. 진짜 부족한 건 어마어마한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본, 러시아, 미국 등과 배를 통해 교류하고는 있다지만 그것만으로 수백만 인구를 먹여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가을에 수확해 둔 남부 곡창지대의 곡식 덕분에 지금까지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을 뿐, 내년이 되면 문자 그대로 보릿고개를 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수백만 인구가 아사를 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아직 출발하지 않은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그건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지저 도시 출신인 내가 식량난을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그걸로 딜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좋아. 어차피 나도 같은 생각이었으니 같이 가자고.”

    지상에는 없는 지저 도시 전용 개량된 슈퍼 곡식. 고작 2개월 만에 수확할 수 있는 이것을 이용해 딜을 한다면 굶어 죽기 직전인 부산도 협상 테이블에 나설 것이다.

    나는 위험천만한 부산행에 합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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