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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35화 (135/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42)

    나는 뭐든 실전이 중요하다는 말에 적극 동감하는 부류다.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지 못하면 인싸의 삶을 이해할 수 없고, 부모님 외에 잘 생겼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면 미남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일단 실전으로 겪어 봐야 자신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남매는 지난 2개월간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사회생활 압축 실전 경험을 쌓았다. 결과는 둘 다 좋았으니 이제 실적을 올릴 차례.

    “여기가 조폭 아지트야?”

    “일단 조폭인 건 맞는데 사람들 앞에선 조폭이라고 하지 말고 밀수 조직이라고 해. 더 이상 여기서 폭력으로 뭔가를 해결하는 일은 없으니까.”

    “조폭 패거리가 그렇게나 많은데?”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알고 있거든. 실제로 제일 먼저 협조를 거부했거나 배신 행위를 하려는 놈들은 깔끔하게 처리해서 회색분자는 거의 없어.”

    근본이 양아치 조폭일지언정, 그들 역시 지난 2개월 동안 사회인으로서의 마인드를 배웠다.

    일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먼저 논의를 거치고, 주변 조직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반대로 도움을 주는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손익을 따졌으니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건 당연했다.

    조직원의 9할이 땀내 나는 사내놈들뿐이지만, 여동생은 1할의 여성 조직원들이 딱히 도와주지 않아도 될 만큼 유능하다.

    조직 내에서 할 일과 교통정리는 모두 내가 해 줄 것이고, 아울러 나라는 뒷배경을 세우는 것으로 누구도 여동생을 건드리지 못하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면 된다.

    “엇, 한성이 형님 오셨습니까.”

    “차 사장님 안에 계시지?”

    “예, 지금 명호 형님께 서북부 지구 개발 진척 상황을 보고받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쪽의 미인분은……?”

    “이 못생긴 애는 내 동생이야.”

    “……굉장한 미인이신데요?”

    “못생겼다니까?”

    아지트 입구를 지키고 있던 조직원은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더니 곧 어색한 표정으로 내 말에 동조했다.

    “생각해 보니 그저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예쁘긴 해.”

    “…….”

    “농담이고. 동생한테 사업장 구경도 시켜 줄 겸 일거리 만들어 주려고 왔으니까 너무 긴장하진 마. 물론 얘가 내 동생이라고 너한테 갑질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야. 만약 갑질하면 나한테 신고해.”

    “내가 너냐? 멀쩡한 사람한테 갑질을 왜 해?”

    “매일 내 방에서 과자 마음대로 꺼내 먹잖아, 돼지야!”

    조직원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남매 싸움에 더는 엮이기 싫었는지 재빨리 게이트를 개방해서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철문이 덜컹 하고 열리자 내부에는 운동장과 훈련 시설을 포함한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조직원들이 사격부터 근접 전투, 엑소스켈레톤 운용을 단련할 수 있게끔 마련한 시설이었다.

    차도식파는 인재라면 남녀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그래도 힘쓰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남성 조직원이 9할을 차지할 만큼 성비가 극단적이었다.

    해서, 여성 조직원들은 주로 날렵하고 유연한 신체적 특성을 활용한 잠입이나 정찰, 정보 수집을 맡고 있다. 특히 미인계도 하나의 전술이었기 때문에 여성 조직원들이 수집해 오는 알짜배기 정보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방음 처리가 된 훈련 시설을 여동생에게 구경시켜 주며 남자든 여자든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여동생은 사무 업무가 뛰어난 한편, 현장에서 뛰어 본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런 광경을 먼저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를 돕는 게 더 빨랐다.

    여성 조직원이 남성 조직원을 상대로 민첩하게 움직이며 훈련용 대검을 찌르거나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여동생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나도 맛대가리 없는 닭가슴살만 먹으면서 운동해야 돼?”

    “그건 풍선 근육 키울 때나 하는 방법이고. 실전 근육은 좀 더 단순무식하게 키울 거야. 물론 너한테 그렇게까지 하드한 스케줄을 잡아 줄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 그냥 최소한의 자기방어와 비상사태에 자력으로 생존이 가능한 수준까지만 단련하면 충분하거든.”

    “그럼 다행이네. 몸 쓰는 건 나랑 영 안 맞을 것 같거든.”

    이렇게 말하는 여동생도 중학생 시절에는 육상으로 제법 이름을 날렸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명문대에 반드시 입학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학업으로 눈을 돌렸을 뿐.

    나의 비상한 머리를 닮은 탓에 공부에도 재능이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내 비상한 머리를 닮지 못했더라면 여동생은 재수에 삼수까지 했을 것이다.

    “지금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아닌데.”

    “구라 치지 마. 날 보는 시선이 엄청 띠꺼웠거든?”

    “이보세요, 박하나 씨, 여긴 안이지 밖이 아니에요. 오늘부터 저를 형님이라고 부르십시오.”

    부들거리는 여동생의 머리를 붙잡고 조직원들을 위해 조성된 각종 시설들을 구경시켜 주다가, 마지막이 되어서야 차도식파 조직원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지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여동생도 나름대로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했는데, 우선 조직원들의 시설 이용 빈도나 유지 비용 등을 따지며 효율 개선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얼마를 더 아낄 수 있는지, 아낀 비용을 어디에 더 투자할 수 있는지 등을 논의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우리 남매는 자신의 가치를 남들에게 가장 먼저 입증하는 것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었다.

    “내가 자산 관리를 맡게 되면 뜯어고쳐야 할 점이 꽤 많을 것 같아.”

    “정확히는 조직에서 내가 가진 비율 만큼의 자산만 관리하게 될 거야. 차도식이나 김명호 같은 기존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몫을 함부로 남에게 맡기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오빠가 가진 몫은 얼마나 되는데?”

    “50%.”

    모두가 알다시피 차도식파에서 지상 작전 후 가장 많은 물자를 보수로 받는 것도 나였고, 그런 물자를 창고에 한가득 쌓아 둔 채 좀처럼 풀지 않아서 여윳돈이 넘치는 것도 나였다.

    남부 지구에서 주기적으로 풀었던 물자는 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자산 비율만 따지면 내가 차도식파의 절반을 차지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네가 이 거대한 조직이 가진 자산의 50%를 운용하게 되는 거야. 내 이름을 빌려서, 네 이름으로 일을 진행하는 거지.”

    “어리다고 무시당하면? 아니면 오빠의 위세를 빌린다고 음해나 훼방을 받기라도 하면?”

    “그런 사소한 문제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디그러쉬 인턴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일들.”

    남매간의 대화를 끝마치고 차도식의 집무실 문을 가볍게 노크하자 안쪽에서 먼저 문이 열렸다.

    문 옆에 서 있던 조직원이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자 한창 서류 더미를 사이에 두고 대화 중이던 두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 동생! 밖에서 고생 좀 하고 들어왔다길래 한동안 쉬는 줄 알았더니 바로 출근 도장 찍네?”

    “논의할 일이 좀 있어서요. 겸사겸사 인재도 한 명도 데려왔고요.”

    “그쪽 분은?”

    김명호의 물음에 나는 여동생을 소개해 주었다.

    “제 여동생 박하나입니다. 올해 수능 볼 예정이었던 고딩인데 얘가 아버지 때문에 직장을 잘못 골랐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에 취직시키려고 데려왔습니다.”

    “동생의 동생? 이야, 20대 모델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너무 비행기 태워 주지 마세요. 애 버릇 나빠집니다.”

    차도식의 과한 칭찬에 콧대를 세우는 여동생의 머리를 조용히 짓눌렀다. 이 하늘 같은 오빠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찌 여동생이 하늘로 오르려 하는가.

    “그런데 취직이라니, 도식이 형님이 업종도 바꾸고 애들 관리도 빡세게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자애가 일을 하기에는 조금……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건 이미 여기 구경시켜 주면서 다 얘기했습니다. 생긴 건 이래도 일은 잘하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동생 같은 유능한 인재가 차도식파에 들어온다면 우리야 좋지. 우리가 딱히 여성 조직원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 뭐냐…… 다양성을 존중하는 직장이니까!”

    옛날의 차도식파는 조직원들 간의 끈끈한 의리로 뭉쳐 있었다면, 지금의 차도식파는 내 영향으로 철저한 능력주의와 경쟁 심리가 팽배한 집단으로 바뀌었다.

    능력과 충성심만 있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조직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직장인 것은 맞다. 오직 무능과 불충만이 죄로 취급되는 곳이다.

    “그래서 동생의 동생한테 어떤 일을 맡기려고? 미리 말해 두지만 아무리 동생의 동생이라고 해도 갑자기 조직의 중대 사안을 맡길 수는 없다는 거 알지?”

    “잘 알죠. 그래서 제 몫의 자산 관리를 맡기려고요. 그러다 일에 숙달되면 한 번 더 내부 논의를 거쳐서 시설과 인력 관리도 맡길 생각이에요.”

    지금껏 쌓아 두고 있었던 나의 막대한 보물 창고를 여동생에게 맡긴다는 것이 꽤 놀라웠던 것일까, 차도식과 김명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어, 그거…… 우리한테 투자하려고 꿍쳐 둔 거 아니었어?”

    “아닌데요.”

    “도식이 형님, 조직원의 개인 몫 사용처는 존중해 줘야 합니다.”

    “아, 그렇지! 당연히 존중해 줘야지!”

    2인자 김명호의 은근한 압박에 차도식은 화들짝 놀라며 오해의 소지를 불식시켰다.

    “그리고 일단 조직 내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예의 그리고 자기방어가 가능한 정도의 훈련은 전적으로 제가 담당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다만 제가 없는 동안에는 믿을 만한 경호원 두 명 정도만 붙여 주세요.”

    “그거야 안 될 거 없지. 그런데 그 많은 자산을 전부 동생의 동생한테 맡겨도 괜찮겠어?”

    “전 바빠서 자산을 굴릴 만한 시간이 없잖아요. 저보다 살짝 모자라긴 해도 얘한테 맡겨 두면 알아서 잘 관리하겠죠.”

    “유부남들이 아내한테 경제권 맡긴다는 얘기는 숱하게 들어 봤어도 오빠가 여동생한테 경제권 맡긴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구만. 일단 알았으니 우리 조직원으로 등록시켜. 나중에 애들한테도 말해 놓을 테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쭈뼛쭈뼛 앞으로 나온 여동생이 배꼽 인사를 하자 삼촌뻘인 차도식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는 좀 실없는 소리 했지만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진 마. 동생의 동생이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혹시 불편한 점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편하게 얘기해. 이 삼촌이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어!”

    악에 받친 아마조네스 같은 여성 조직원들과는 달리 조금 여리고 순수해 보이는 여동생의 태도는 삼촌뻘인 그에게 꽤 잘 먹힌 것 같았다. 여동생이 고개를 숙인 채 히죽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럼 여동생 취직 얘기는 얼추 끝난 것 같으니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어? 이게 본론 아니었어?”

    “당연히 아니죠. 제가 아지트에 찾아올 때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는 거 아시잖아요?”

    나와 여동생이 나란히 소파의 빈자리에 앉자 김명호와 차도식은 들고 있던 서류를 잠시 내려놓았다. 서북부 지구 개발에 대해 한창 떠들고 있던 그들도 곧 내 입에서 나올 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업무 모드로 바뀐 우리는 사뭇 진지한 어조로 대화를 시작했다.

    “우선 논의할 안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지상에서도 차도식파의 생활 터전을 가꿀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영역과 인프라를 확보했다는 겁니다.”

    “……그거라면 보고로 듣긴 했어. 지상의 전력수도복합발전소를 확보했다지? 소형모듈원전이라서 기름이나 천연가스 없이 전력 생산 및 수도 정화 시설 가동이 가능하다고.”

    “예, 지리적으로도 방어 및 관리에 용이할뿐더러,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비롯한 지하철역과 온갖 물자 수급처가 다수 존재합니다. 현재는 관리 인력이 조금 부족한 상황이라 외부 인력을 끌어다 쓰고 있지만, 일단 우리 주도하에 생존자 집단이 형성되면 그 지역을 통째로 장악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물론 발전소 하나만으로도 영향력은 충분하지만요.”

    “나쁘지 않아. 우리가 목숨 줄인 발전소를 꽉 쥐고 있다면 생존자 집단은 필연적으로 우리 아래에 들어오게 될 테고, 물과 전기는 풍족하니까 수경 재배인지 뭔지 하는 걸로 식량을 확보하면 지상에서도 안정적인 생활 거점을 마련할 수 있어.”

    “그러니까 차도식파는 이쯤에서 서북부 지구 개발에서 인력을 조금 빼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른 조직의 반발이 클 텐데?”

    “대신 인력을 빼는 만큼 물자와 장비를 추가로 제공하면 됩니다. 결과적으로 다른 조직에선 인력만 더 제공하는 것으로 공짜 물자와 장비를 얻을 수 있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부족한 물자는 어떻게 채우려고?”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정부에서 본격적인 물자 배급에 나설 겁니다. 거기에 더해서 저는 미래그룹에게 물자와 장비 지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그걸로 채우면 됩니다.”

    “역시 동생은 빈틈이 없구만.”

    이미 사용이 끝난 서류 하나의 빈 페이지에 볼펜으로 계획의 마인드맵을 착착 그려 나갔다.

    “우리가 서북부 지구를 개발하고 나면 서부 지구처럼 식량 재배 및 거래와 유통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될 텐데, 자금 세탁을 하기에도 유용할 겁니다. 그러면 더 많은 기업과 높으신 분들이 서북부 지구를 암묵적으로 허용하면서 많이들 이용하겠죠.”

    “더러운 일 대신 해 주고 추가 혜택과 보수를 받자? 나쁘진 않아. 어차피 그런 목적으로 개발하는 곳이니까.”

    “설령 일이 틀어져서 서북부 지구를 못 쓰게 된다고 해도 문제없습니다. 이유는 아실 겁니다.”

    “지상에 또 다른 거점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차도식이 지상의 발전소와 아파트단지를 동그라미 치며 대답했다.

    A가 안되면 B, B가 안 되면 C가 준비되어 있는 형태라 이 계획에 흠잡을 곳은 없었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범죄자로 낙인찍혀서 지상으로 쫓겨나게 된다고 해도 새롭게 살아갈 터전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군. 이런 게 꽝이 없는 보험인가?”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않게끔 잘 조율하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또 모르니 말입니다. 어쨌든 일이 잘못될 리는 없겠지만, 만약 잘못된다고 해도 딱히 큰 문제는 없으니까 차도식파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리 딴 주머니 차 두자는 겁니다.”

    나는 차도식파와 연결된 다른 세력들을 동그라미 치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우리 세력이 가장 크기 때문에 항상 전면에 나서서 행동했지만, 이제는 조직 규모가 규모인 만큼 조금 사려야 할 때입니다. 궂은일은 하청 주고, 중간에서 좀 떼먹고,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책임을 덜 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우리 행동에 다른 세력이 불만을 품을 것 같다 싶으면 적당히 어르고 달래 주면서?”

    “예. 풍족한 물자와 인력, 노하우, 그리고 깊이 쌓여 있는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우린 평소처럼 행동하고 있는 건데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오랫동안 쌓아 온 신뢰를 바탕으로 몰래 딴 주머니를 차는 방법은 참 악랄하면서도 굉장히 잘 먹히는 방법이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야, 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같은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을 방패 삼아 작업을 치는 거다.

    들키면 막을 수 없는 역풍을 맞겠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최고의 효율로 극한의 이익을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박한성이라는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차도식과 김명호를 상대로.

    “좋아, 동생 말대로 해서 손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 우리도 슬슬 조직 규모에 따라 방침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확실히 지금까지 저희 조직이 짊어지는 부담이 좀 크긴 했습니다. 한성 씨 말대로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별말씀을요.”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자 차도식파의 차후 행동 방침이 어떻게 바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걸 옆에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묵묵히 듣고 있는 여동생 역시 내 의도를 파악하고서, 내 자산을 앞으로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 중이겠지.

    “그럼 이제 다음 사안인데…… 조만간 지저 도시 내에서 뭔가 터질 겁니다.”

    “조만간이라면 언제쯤?”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고, 한 달 뒤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뭔가가 터진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근거는?”

    “디그러쉬가 이 지저 도시에 들여선 안 될 것을 들여왔습니다.”

    나는 USB 하나를 꺼내서 차도식의 업무용 노트북에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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