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드드드드드!)
탐사대원 중 누군가가 등에 짊어지고 온 드론 하나를 꺼내서 기괴한 구조물 옆에 두고 작동시키자, 곧 채굴 드론이 드릴을 이용해 주변 땅을 제멋대로 파기 시작했다.
마치 묘목을 옮겨 심을 때 뿌리까지 깔끔한 상태로 캐내듯, 드론이 구조물의 뿌리부터 파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며 땅을 파내는 것처럼 보였다.
―좋아, 뿌리 부분까지 깔끔하게 나왔어.
―그렇게 무거워 보이진 않는데…… 성인 남성 두 명이 나란히 서서 어깨에 짊어지고 옮기면 되겠습니다.
―나 혼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할 수 있을 정도니까 괜찮을 것 같아.
―한 명만 뒤에서 받쳐 줘요. 들어 올리기 편하도록.
곧 말뚝 같은 구조물을 뿌리 부분까지 완전히 파낸 뒤, 탐사대원 두 명이 그것을 통나무처럼 어깨에 짊어지고 후방으로 돌아갔다.
―이 기둥 같은 건 한 팀당 하나씩만 가져오라고 했으니까 더 캐낼 필요는 없겠지.
―저 기괴한 유적의 각기 다른 입구로 한 팀씩 들어가서 탐사하는 게 진짜 목적이라고 했으니까.
―구조가 참 기괴한 데다 쓸데없이 크네. 입구가 도대체 몇 개야?
―벽 한복판에도 문짝이 달려 있는데? 먼 옛날에 이곳에서 살았다던 고대 지저인들의 건축공학 기술은 형편없었던 모양이야.
―그쪽은…… 뭐, 박사라도 됩니까?
―지질학 박사 이동춘이야. 젊은 친구들 덕 좀 보려고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지. 서로 잘해 보자고.
1인칭 시점 촬영 기기를 가진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을 지질학 박사 이동춘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남들보다 앞서 움직였다.
―그보다 이곳은 굉장히 흥미롭군. 공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온통 신기한 것투성이인 별천지처럼 느껴지겠지만, 지질학자인 나에게도 마찬가지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생각해 보게. 지하 12km에 존재하는 이 넓은 지저 세계가 대체 어떻게 단단한 지반을 형성하고 있는지, 또 이 기괴한 건축물에 사용된 다양한 원자재들은 대체 어떻게 구했는지. 굉장히 이상하지 않나?
―어……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좀 더 알기 쉽게 물어봄세. 자네 집은 무엇으로 지었을 것 같은가?
―콘크리트?
―정확히는 강화 콘크리트와 합금 철근, 소량의 목재와 플라스틱 등등이 사용되었겠지. 물론 전부 지상에서 가져온 원자재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 이제 이 건축물을 다시 한 번 보게. 대체 무엇으로 지어졌을 것 같은가?
이동춘 박사의 질문에 그제야 1인칭 시점의 남자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높이를 자랑하는 건축물을 올려다보았다.
홀로 고고하게, 굳건하게 마천루를 형성하고 있는 이 기괴한 건축물은 척 봐도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원자재들이 사용된 게 틀림없었다.
―참으로 기괴하지. 막말로 암석이나 시멘트쯤이야 이곳에서 구하지 못할 것도 없어. 광석도 캐내서 제련한다면 강철을 만들어 내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사용된 원자재의 범위가 너무 넓어.
시대적 배경, 환경적 요인, 문화와 종교의 흐름, 기타 등등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건축물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건축에 사용되는 원자재는 꽤 제한적이다. 우선 강화 콘크리트와 합금 철근은 절대로 빠지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들이 건축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지경이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기괴한 고대 건축물에 어째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원자재가 사용되었단 말인가.
―건축물이란 건 다양성이 극도로 제한되는 구조물일세. 여기엔 콘크리트, 여기엔 대나무, 여기엔 진흙, 여기엔 유리, 여기엔 구리, 무슨 마인크래프트도 아니고 이것저것 다 때려 박으면 금세 무너지기 마련이지.
―그런데 이 건축물은 그 법칙을 어기고도 여전히 멀쩡하니까 이상하다는 겁니까?
―바로 그걸세. 지반이 엄청나게 단단한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 건축물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계산에 의해 다양한 원자재로, 다양한 구조로 지어졌을 거야. ‘복합적’이라는 요소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
이동춘 박사는 드론이 채굴한 탓에 마구 흐트러진 흙의 샘플을 소량 채취하고는, 탐사 장비를 들고 가장 가까운 입구로 향했다.
그곳은 손잡이가 달려 있는 강철 문이었다. 이렇다 할 양식이랄 것도 없는 밋밋한 직사각형의 강철 문.
―이 강철 문은 언뜻 보면 양식이랄 게 전혀 보이지 않지만 손잡이를 보면 알 수 있지. 문고리를 잡아서 돌리는 게 아니라, 둥근 손잡이를 잡아당겨서 여는 형태이니 명백하게 옛날 방식이지.
그는 시험 삼아 손잡이를 잡아서 노크를 하듯 강철 문에 쾅쾅 두들겼다. 이렇게 커다란 금속 손잡이를 잡고 노크를 하면 안쪽에서 소리를 듣고 열어 주는 것이 옛 시대의 일반적인 문이었다.
하지만 안쪽에서 열어 줄 사람이 있을 리가 만무하기에, 이동춘은 탐사 장비 중 디그러쉬에서 제공받은 것으로 추측되는 금속절단기를 꺼내 들었다.
―후우, 젊은 시절에는 망치와 징, 곡괭이만 열심히 들고 다녔는데 이제는 신문물이 우리의 노력을 대신해 주는군.
―하하…….
―자네들은 잠시 물러서 있게. 괜히 불똥이 튀거나 하면 안 되니까.
탐사대원들이 조금 멀찍이 떨어지자 이동춘은 꽤 연세가 있음에도 금속 절단기를 들고 강철 문을 큼지막하게 잘라 내기 시작했다.
단순히 디그러쉬제 장비의 성능이 좋은 건지, 아니면 수십 년 간 몸으로 뛰며 각종 기술과 경험을 터득한 베테랑 지질학자의 힘이 대단한 건지, 강철 문은 금세 절단되었다.
―후우, 안쪽에서 오랫동안 고여 있던 가스나 먼지가 쏟아져나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여파가 없군.
―아, 지금부터는 저희가 앞서겠습니다.
―그러게. 나도 오랜만에 힘 좀 썼더니 삭신이 쑤시는구만.
몇몇 탐사대원, 그러니까 미래그룹에서 미리 심어 둔 첩자들이 이동춘보다 먼저 이동했다.
밝은 헤드라이트와 손전등 불빛, 중간중간 특정 공간을 밝혀 두기 위해 던지는 초록색 야광봉 덕분에 건축물 내부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처음 보는 형태의 문자군. 상형문자라기엔…… 좀 더 체계가 있으면서도 복잡해 보이는구만.
―지질학 전공이셨던 게 아닙니까?
―이 사람아, 지질학자는 뭐 맨날 흙만 퍼먹는 줄 아는가? 땅을 파다 보면 화석도 나오고 유적도 나오는 법인데, 이런 것도 모르면 어디 가서 박사 명함 내밀 수나 있겠나.
지질학자는 필연적으로 고대생물학, 역사학, 언어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간 특정 환경을 조사하다 보면 싫어도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과 얽히기 마련이니까.
백날 천날 정부 기관 소속 관제센터나 개인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이동춘 박사처럼 몸으로 뛰는 사람에겐 이곳의 모든 요소가 먹음직스러운 뷔페처럼 보였을 것이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박사 몇 명 더 데려오는 건데. 이 좁은 학계에서도 저들끼리 편을 갈라 먹으니…….
―그쪽에도 그런 문화가 있습니까?
―문화라니, 큰일 날 소리를! 그냥 악습일세. 이 바닥이 똑똑한 놈들끼리 끝없는 논문과 논쟁으로 침 튀기며 싸우는 전장인 건 맞지만, 인맥도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특히 연구비나 연구팀과 관련된 연줄은……어휴, 이런 걸 말해서 뭐 하겠나.
아무래도 이동춘은 다른 메이저한 연구팀에 비해 연줄도 없고 지원도 변변찮은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지질학 박사 한 명이 일반인으로 구성된 탐사팀에 들어오는 게 이상하긴 했다.
―내 따까리들…… 아니, 대학원생들이라도 지저 도시에 같이 들어왔으면 좀 편했으련만.
―자자, 기운 빠지는 소리는 그쯤 하시고 본격적으로 안쪽을 좀 둘러봅시다. 외부 구조도 기괴했지만 내부 구조는 미로처럼 더 복잡하고 기괴한 것 같으니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그래요. 지급받은 야광봉은 5분 간격으로 하나씩 포인트에 놔두죠. 우리가 총 4명이고, 한 사람당 10개씩 지급받았으니까 대략 3시간 20분의 거리만큼 탐사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먼저 놔둔 야광봉은 우리가 탐사하는 동안 빛이 사그라들 것 아닌가?
―그래도 야광봉을 놔둔 포인트는 그대로 남으니 상관없습니다. 손전등이나 헤드라이트의 예비 배터리도 충분히 있으니 안전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이동춘은 탐사대로 위장한 첩자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그들의 탐사 방식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럼 이제 움직입시다. 헤드캠으로 촬영할 수 있는 건 전부 담아 두고, 샘플 채취가 필요하면 정지 신호로 팀원들에게 알려 주십시오.
―그건 그렇고 내부 통로 구조도 굉장히 이상하네요. 걷다 보면 넓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좁아지고, 좁아지는 것 같다 싶으면 다시 넓어지고.
―벽이나 천장의 재질도 조금씩이지만 달라지고 있어. 이상한 문양인지 문자인지 모를 것들도 어느샌가 사라졌고.
―흠, 이런 경우 크게 두 가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겠군.
―걷는 길에 심심하지 않게 좀 들려주시겠습니까?
―그거야 어려울 거 없지. 마치 고의적으로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이 기괴한 통로 구조는 사실 침입자를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첫 번째 가설이고, 두 번째 가설은 그 반대일세.
―반대라고 하신다면……?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막는 용도일세.
그 말에 탐사대원들이 흠칫하며 몸을 떨자 이동춘은 피식 웃었다. 산소마스크 너머로 그의 눈가가 휘어지는 걸 보니 반쯤 팀원들을 놀려 먹으려 했던 것 같다.
―뭐,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네. 난 개인적으로 첫 번째 가설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으니. 애초에 이런 고대 유적 같은 곳에 생명체 따위가 살아 있을 리도 없거니와, 외부에 입구가 여럿 있던 것만 봐도 침입자들을 농락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으니까.
―하하, 그건…… 다행이군요.
―왜? 호러 SF 영화에서처럼 정체불명의 고대 괴물이 툭 튀어나와서 자네들을 습격할 거라고 생각했나?
―흉가 탐험 중에 불쑥 괴담을 꺼내면 누구라도 그런 불안감을 품지 않겠습니까?
―아, 분위기의 문제였다는거군. 내가 젊은 친구들을 배려해 주지 못해서 미안했네. 살아 있는 고대 괴물 따윈 존재할 수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였어. 영구동토층 아래에 묻혀 있던 고대 바이러스 같은 거라면 또 모를까.
‘애초에 여긴 영구동토층도 아닐뿐더러, 우린 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덧붙인 이동춘이 어깨를 으쓱이자 탐사대원들도 별 반응 없이 넘어갔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걸었을까. 1인칭 시점으로 내부 구조를 최대한 화면 속에 담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어둠 속 너머로 불빛을 비췄다.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습니까?
―아…… 형,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좀 전에 무서운 얘기 들었다고 그러는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몇 번 더 어둠 속을 비춰 보던 그는 성큼성큼 걸어서 문짝이 달려 있을 법한 통로 앞에 도달했다.
―여기 좀 부서진 것 같지 않습니까?
―원래 통로가 다 이런 느낌 아니었어요?
―하도 오래된 건축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낡아서 조금씩 망가졌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네.
―제가 보기에도 좀 부서진 느낌이긴 한데, 자연적으로 부서진 느낌이에요.
―그런가……?
몇 번째인지도 모를 야광봉을 바닥에 하나 떨군 그들은 그 통로를 지나쳐 내부로 좀 더 들어갔다. 탐사대원들이 걸음을 옮길수록 말소리보다 거친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아, 진짜.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고압축 산소통은 최대 10시간 정도 버틸 수 있다고 하니까 아직 시간은 넉넉하긴 해.
―장비도 무겁고, 길은 더 이상해지고, 저 병신 같은 문자인지 문양인지도 모를 건 자꾸 거슬리고.
―무슨 소리인가? 문자나 문양이 어디에 있다고?
―안 보이세요? 천장이며 벽이며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 없네?
―정신 차려, 인마. 그 문자인지 문양인지 이상한 것들은 입구 근처에만 있었잖아.
―그랬……죠.
또 하나, 야광봉이 그들 발밑에 툭 떨어졌다.
―그래서 지금 야광봉 몇 개나 썼지?
―저는 다 썼어요.
―나도 다 썼는데.
―나는 아직 6개 남아 있네.
―저도 4개 남아 있습니다.
―그럼 10개 남았으니…… 우린 벌써 4분의 3이나 탐사를 진행한 건가?
―계산하면 얼추 그렇게 될 겁니다.
―흠……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샘플은 채취하지 못했는데.
―중간중간 이것저것 챙기시는 것 같던데요.
―이 사람아, 그런 건 샘플 채취 축에도 못 껴. 진짜 샘플다운 걸 채취하려면 좀 더…….
―우선 이동합시다.
그들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녹화된 영상은 이제 막 5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