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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29화 (129/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37)

    최신예 모델이라 그런지 스노우모빌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훨씬 더 오래 움직였다.

    마침내 진짜 한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빙판 위에 도달하자마자 곧장 방화대교를 거쳐 남하했다. 사실 서울 중심부로 들어가기까지 혹사시킨 엔진이 버텨 줄까 의문이었는데 일단 걱정은 한숨 덜었다.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가 계속 따라붙으면 어쩌나 했는데, 속도로 제쳐서 다행이야.’

    처음에는 인천에서부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를 따라오다가, 결국 빙판 위를 자유 질주하는 스노우모빌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나가떨어졌다.

    놈들에게 바닥나지 않는 체력이 존재한다고 한들, 시속 100km 이상으로 미친 듯이 밟다 보니 어느샌가 모두 제칠 수 있었다.

    나이트워커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려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만큼 충분히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정석적인 방법이 또 한 번 먹힌 것이다.

    예전에 나이트워커 무리의 추격을 받으며 산기슭을 따라 미친 듯이 도망치다가, 결국 온몸에 탈취제까지 뿌리며 가까스로 도망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꼴사나운 기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이트워커의 습성을 알게 된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공기 중에 진한 인간의 체취를 남기면 안 된다는 것, 나이트워커들의 체력은 사실상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는 점, 마지막으로 놈들의 추적 기술은 일반적인 사냥꾼을 능가한다는 점.

    지금이야 그 부분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 뒀으니 피식 웃고 넘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놈들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씩 알아 갈수록 또 다른 걱정거리와 은연중의 공포가 늘어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놈들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데, 놈들은 수많은 인간을 사냥하며 대다수의 인간이 보여 주는 행동 패턴과 사고방식을 습득했을 것 아닌가?

    나 같은 인간은 그 ‘대다수’에 포함되지 않겠지만, 반대로 나 같은 인간이 한 명이라도 나이트워커에게 당한다면 그 정보 또한 놈들에게 업로드될 것이다.

    지금껏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가 인간을 어떻게 사냥하는지 지켜봐 온 내 입장에선 솔직히 부담스럽다.

    우리는 아직까지 놈들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놈들은 벌써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사냥할지 입맛 따라 재미 따라 골라 먹는 실정이라니.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다.

    지난 2개월 동안 주기적으로 지상과 지저 도시를 오가면서 많은 전투 경험을 쌓고, 전투 데이터를 습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사냥당하는 쪽이고 놈들이 사냥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 증거로 대한민국의 최대 규모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서울과 인천의 인구가 대부분 증발하지 않았는가.

    분명 다들 안전하게 피난 갔을 것이라고? 인천으로 피난 간 자들은 대부분 희생당하거나 사이비 종교쟁이가 되었다.

    자력으로 수도권을 벗어나 충청도, 강원도, 혹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상도까지 내려간 사람들도 100%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부산이겠지.’

    6.25 전쟁 당시에도 최후의 보루였던 만큼 부산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진 도시이다.

    우선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 비율이 높은 경상도의 최대 규모 도시이기도 하고, 인천항 못지않게 커다란 부산항이 있으며, 좁은 서해와 달리 넓은 동해를 가진 덕분에 타국과 선박을 통해 교류하기가 쉽다.

    무엇보다 남부지방이라 ‘비교적’ 따뜻할 것이기 때문에 지독한 한파에 시달리고 있는 수도권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을 터. 오히려 인천보다 안전할 것이다.

    덜컹! 덜컹! 푸쉬이이이……!

    “이 정도면 오래 버텼네.”

    단 한 번의 엔진 냉각도 없이 풀 스로틀로 인천에서 서울 중심부까지 빙판을 내달렸는데 퍼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

    나는 기어이 덜컹덜컹 불길한 소리를 내다가 희끄무레한 연기를 내며 퍼져 버린 스노우모빌에서 내렸다. 마침 강변이 가까웠기 때문에 질질 끌어서 육지로 옮겨 두었다.

    주변 표지판과 건물 이름을 토대로 지도 어플에서 검색해 보니 현재 위치가 마포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 GPS로 실시간 위치를 알 수 없으니 이렇게 무식한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마포구라…… 조금 아이러니하네.”

    흑야 사태가 발발했을 당시에, 내가 ‘지저도시입구컷’을 당하지 않기 위해 스쿠터를 타고 가장 먼저 탈출했던 지역이었다.

    서대문구와 은평구 아래에 짓눌리듯이 자리 잡은 이 비좁은 마포구는 의외로 사람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었는데, 지역구가 좁은 만큼 인프라 역시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좁은 구역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주 구역과 상가 구역이 겹쳤고, 그로 인한 시너지가 지역구의 발전을 야기했다.

    근처에는 그 유명한 연세대학병원도 있고, 언제든지 자본주의적인 한강 뷰를 감상할 수 있고, 넓은 공원 덕분에 스포츠도 즐길 수 있어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착실하게 챙길 수 있는 지역구였다.

    사실 군을 전역한 내가 마포구의 한 원룸촌에 거주하게 된 이유도 적당히 워라밸을 챙기면서 살자는 마인드 때문이었다. 거주지가 지저 도시로 바뀐 뒤부터 워라밸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지만.

    매몰차게 내버린 거주지에 다시금 발을 들이자 감회가 새롭다고 할까, 살짝 어색하다고 할까.

    현재 밀수 조직들은 은평구와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 용산구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포구는 아직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구나 용산구처럼 따로 이유가 있어서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점령하자니 뭔가 애매하고, 풍부한 물자는 은평구에서 쓸어 담는 것도 바쁘기 때문에 굳이 마포구를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마포구는 다른 지역구에게 짓눌리듯이 찌그러진 모양새만큼이나 밀수 조직에게도 애매하기 짝이 없는 계륵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언젠가는 마포구를 방문해야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최대한 방문 일정을 뒤로 미루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불쌍한 마포구.

    나는 처음 마포구를 탈출했을 때 사용했던 최단 거리 루트를 다시 한 번 이용해 복귀하기로 했다.

    익숙한 원룸촌을 거쳐, 익숙한 거리를 지나고, 지금은 텅 비어 버린 바이크 정비센터에 들러 멀쩡히 작동하는 놈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개중 안쪽 정비창에 박혀 있던 물건 하나를 꺼내서 예비 연료를 채워 넣었다.

    철문이 굳게 닫힌 정비창 안쪽에 박혀 있던 놈이라 그런지 눈이나 바람을 맞지 않아 상태가 굉장히 양호했다.

    시간상으로는 2개월 전쯤에 했던 짓을 반복하고 있으니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부릉부릉!

    “먼지 좀 쌓여 있던 것 빼면 멀쩡하네. 이 정비센터 직원이 실력깨나 있었던 모양인데. 감사히 쓰고 언젠가는 제자리에 돌려놓겠습니다.”

    또 한 번 있지도 않은 죄책감이 담긴 인사말을 허공에 내뱉고, 정비센터를 부드럽게 빠져나왔다.

    지난번에는 스쿠터를 타고 조심스럽게 인도를 이용하다가 종말을 외치는 어느 종교쟁이와 그의 말을 광신하는 신도들과 만나 진땀을 뺐었지.

    다시금 그 자리에 가 보니 종교쟁이나 광신도들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사람들이 열심히 가져다 모은 양초나 향을 피워서 꽂아 두는 향로 같은 것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탈출한 뒤에도, 정확히는 나이트워커가 이곳까지 휩쓸기 전에도 그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신의 이름을 부르짖고 자신들의 죄를 낱낱이 고해했던 것 같다.

    신이라니.

    한 유명한 서양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의 논리를 잠시 인용하자면 ‘신’이라고 자칭하는, 혹은 타인에 의해 그렇게 불리는 존재만큼 우스운 존재도 없다.

    신이 전지하지 않다면 신은 악을 없앨 의지와 능력이 있으나 악이 있는 걸 알지 못한다.

    신이 지선하지 않다면 신은 악을 없앨 능력이 있지만 선하지 않거나 사악해서 악을 인지하고도 일부러 방치한다.

    신이 전능하지 않다면 신은 악을 없앨 의지도 있고 악의 존재도 알고 있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관여하지 못한다.

    그런 존재를 우리가 과연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신으로 대접해 줘도 되는가?

    만약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둠과 추위에 잠식된 이 망가져 버린 세계 한복판에 그를 데려다 놓고 질문할 것이다.

    이제 네가 그토록 부르짖는 신의 존재를 한번 찾아보라고.

    수십억이 넘는 인간들의 열정적인 신앙을 받으면서도 그들 대다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박살 내고, 나아가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자그마한 세상마저 박살 나도록 방치한 그런 존재를 진정 신이라고 부르겠다면 딱히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런 놈도 결국 나이트워커의 습격 앞에선 신을 부르짖지 못할 테니까.

    종교는 일종의 사회적 신경안정제에 불과하다. 다들 종교를 통해 심신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 암묵적인 합의하에 신경안정제의 성분표시나 제조 공정을 침해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하나님이라는 신경안정제를, 누군가는 알라신이라는 신경안정제를, 누군가는 부처라는 신경안정제를 맞으면서 험난한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까지는.

    웬 미친 여자에게 손전등 하나를 쥐여 주었던 어두컴컴한 터널을 가로질러,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싱크홀을 지나서 다시 북한산국립공원 남부 격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포구를 벗어나 격벽 앞까지 오는 동안 나는 그 어떤 인간도, 나이트워커도 만나지 못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를 사회적 합의로 배려해 주려는 그들의 상냥한 마음씨 덕분일까? 아니면 이 세상이 박살 나는 것조차 막지 못한 ‘신’이라는 존재의 희미한 가호 덕분일까?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지치고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격벽 앞에 도달했다.

    격벽이 상시 개방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밀수 조직들이 격벽 앞에 미리 가져다 둔 예비 물자와 쉼터를 이용했다.

    미처 제시간에 격벽 앞에 도달하지 못한 낙오자들을 위해 밀수 조직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각종 물자로 이렇게 낙오자 구제 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다.

    격벽 옆에 두꺼운 철판과 콘크리트 그리고 단열재로 지은 자그마한 숙소, 내부에는 상시 연료가 채워져 있는 소형 비상 발전기와 전기난로 그리고 각종 비상식량과 침낭까지.

    불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철판으로 된 문을 확실히 닫은 나는 따뜻한 전기난로 옆에서 침낭을 깔고 누웠다.

    “생각해 보니 곧 크리스마스네.”

    흑야 현상이 대한민국 기준 10월 20일에 발발했으니 곧 크리스마스다.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전 세계의 인류가 올해는 어떤 소원을 빌지 안 봐도 뻔하다.

    다들 필사적으로 엉성하게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공통된 소원 하나를 빌겠지. 그 소원이 산타클로스가 이루어 줄 수 없는 유형의 소원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소원을 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소한 산타클로스는 신과 다르게 아빠나 엄마의 형태로 존재하기라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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