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인사이드 아웃 (136)
몇 명이나 죽였지?
몇 마리나 죽였지?
“후욱…… 후욱…… 후욱!”
마스크를 잠시 벗을까도 생각했지만 여기 있는 놈들은 잡아 죽일 때마다 희미하게나마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기에, 결국 마스크만큼은 절대로 벗지 않았다.
얼마나 많이 놈들을 때려죽였는지 내 손에는 검은 얼룩 같은 것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액체 상태일 때 대부분 검은 연기로 기화했지만 얼룩이 남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쯧.”
꽤 많은 격전을 벌였지만 외골격 파츠는 아직 문제가 없다.
공구리파에 부탁해서 외골격 파츠를 처음부터 새로 만들었는지라 신소재 장갑판까지 더하니 내구도가 굉장히 향상되었다.
하지만 기계의 내구도는 향상될 수 있을지언정,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 정확히는 한계를 돌파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적다.
산악 행군부터 적지 침투까지 미친 듯이 육체 단련을 해 왔건만, 단독으로 수백 명의 추적을 따돌리며 틈틈이 덤벼드는 놈들을 처리하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내가 1인 군단이라고 자칭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점점 한계에 몰리고 있었다. 슬슬 몸을 빼지 않으면 위험한 타이밍이 올 것 같았다.
‘다행히 목표 지점까지 얼마 안 남았어.’
정신없이 싸우면서 컨테이너 박스의 식별 번호를 따라 움직이다 보니 목적지까지 코앞이었다.
이쯤 되면 적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터. 나라는 쥐새끼를 구석으로 몰아넣으면서 내가 움직이는 방향이 선박 도시가 아닌, 컨테이너 박스 보관 구역 안쪽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움직일 수 있지?’
전력으로 움직이면 20분 정도. 체력 분배를 잘해도 1시간 남짓. 그 이상은 죽었다 깨어나도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의 체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잘 아는 수색대 출신 특성상, 나는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아직 군 소속이었다면 수송 헬기나 잠수함이 나를 마중 나왔을 테지만, 이 지경이 된 세상에는 누구 하나 나를 마중 나오지 않는다. 침투부터 탈출까지 전부 내가 직접 해야 한다.
탈출 루트도 몇 개인가 예상해 두긴 했다. 현실성이 좀 부족한 것들이라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거지.
“화물을 찾아 버렸으니 고민은 포기해야겠구만.”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자 식별 번호가 딱 맞아떨어지는 컨테이너 박스와 마주했다.
외골격 파츠에 다소 무리가 갈 것을 알면서도 문짝을 잡고 반 강제로 비틀어 열었다. 끼긱, 끼기기긱, 하고 두꺼운 컨테이너 금속 문이 조금씩 열렸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 한 명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공간이 확보되자 내부에 야광봉을 몇 개 까서 던졌다.
‘부피가 그리 크지 않다더니 사실이었군.’
혼자선 짊어질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금속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건 그냥 ‘보관용’ 이었다. 케이스를 강제로 개방하고 내부에 있는 진짜 알맹이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군대에서나 사용할 법한 특수한 형태의 랩탑이었다. 여러 보안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추위나 열에 강하고, 총알도 막을 수 있을 만큼 방탄 성능을 충분히 갖춘 더럽게 비싼 물건.
내 후임 중 한 명이 작전 중에 이런 걸 사용했던 것 같다.
‘이런 건 배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직접 옮겼어야지. 대기업도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화물은 확보했으니 조심스럽게 배낭에 집어넣었다. 이걸로 목적의 반은 달성했다. 나머지 반은 돌아가서 합당한 보수를 받는 것으로 달성할 수 있으리라.
스스스스스스!
내게 열광하는 저 사생팬들만 없다면 좀 더 수월하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발버둥은 그만두고 투항해라.”
“선생님, 저는 ✕같은 새끼와 대화를 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상식을 배웠습니다.”
“……그렇게나 유능하다면 이미 네가 포위되었다는 사실도 눈치챘겠지. 사지가 잘려서 끌려가느니, 순순히 끌려가는 게 낫지 않겠나?”
나는 높이 쌓인 컨테이너 박스 위에 선 남자를 향해 말없이 중지를 내세웠다. 외골격 파츠의 금속 손가락이 아주 곧게 하늘로 치솟았다.
“필요하다면 더 말하십시오, 선생님.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반대쪽 손가락도 금세 펼칠 것처럼 달랑달랑 흔들어 보이자 급기야 상대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듯, 말없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그 신호를 기점으로 사방팔방에서 작살이나 총을 든 놈들이 튀어나왔다. 물론 그 시점에서 나는 이미 포위망이 가장 약해 보이는 곳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리고 있었지만.
타타타타타타타!
곳곳에서 탄환 세례가 빗발쳤으나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교묘하게 컨테이너 박스 틈새를 파고들며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니까. 가끔 지면이나 컨테이너 박스를 맞고 튕겨 나온 도비탄이 오히려 더 겁날 지경이었다.
“놈이 성지로 간다! 막아!”
“성지는 염병.”
나는 게이트로 침투했을 때부터 게이트로 다시 빠져나가는 건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가 뻔히 그곳에 병력을 배치하고 입구를 틀어막았을 텐데 뭐 하러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는가.
노림수가 있다면 현재의 환경과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었다.
한강과 해안가 인근이 얼어붙었으니 놈들은 쇄빙선이 없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저렇게나 온갖 배를 모아 둔 놈들이 쇄빙선을 모아 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얘기다.
날아드는 작살과 탄환을 어찌어찌 피하며 수많은 배들이 정박되어 있는 부두를 향해 내달렸다.
부산항 못지않게 규모가 큰 인천항답다고 할까, 셀 수도 없을 만큼 크고 작은 선박이 정박 중이거나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유독 특이한 외형을 가진 중형 크기의 선박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업이 극도로 발달한 대한민국 함유량 100%, 국산 쇄빙선 ‘돌파호’였다.
‘주기적으로 중소형 선박들을 위해 해안가의 빙판을 깨 줘야 하는 쇄빙선이 해안가에서 먼 곳에 있을 리가 없지!’
불행 중 다행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 쇄빙선은 점검을 위해 정박 중인 것 같았다. 그렇게나 자주 쇄빙선을 굴려 대면 당연히 이런 상황에도 점검을 할 수밖에 없겠지.
“놈이 승선했다! 막아!”
“쇄빙선에 피해가 가면 안 된다!”
“팔다리 하나쯤 날아가도 상관없으니 일단 막아!”
저 새끼들은 내 팔다리가 무슨 50% 특가 세일 하는 한우 특수 부위인 줄 아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배 안에서 점검을 하다말고 선원과 정비공들이 튀어나왔다. 놈들은 각종 공구나 소방 도끼, 작살 같은 것을 들고서 일반인을 가볍게 상회하는 움직임으로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강한 힘을 준다고 해서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지식과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숨을 걸 배짱도 없는 새끼들이.”
기껏해야 강자에게 기생충처럼 빌어 붙어먹으며 더러운 짓을 일삼는 것들이 잘 싸워 봤자 얼마나 잘 싸울까.
너무나도 정직하게 찔러 들어오는 작살의 창대를 잡아 팔 안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주먹으로 정비공의 안면을 갈겨 버렸다.
코뼈부터 이, 눈알까지 상큼하게 박살 나는 감촉이 외골격 파츠 너머로도 느껴질 만큼 생생했다. 다만 손맛의 희열을 느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기에 뺏어 든 작살로 소방 도끼를 막았다.
“이 믿음 없는 자가!”
“딱 봐도 교회에서 십일조 한 번 안 내 봤을 것 같은데 피차일반 아니냐?”
나는 그래도 군 시절 종교 활동은 성실하게 참석했다고.
소방 도끼의 날을 비스듬하게 아래로 빗겨 내리면서 작살의 날 끝으로 선원의 목덜미를 정확히 꿰뚫었다. 그 상태로 시신과 작살을 내동댕이치듯 던져서 뒤따라오던 놈들을 무너뜨렸다.
쇄빙선 선미(후방)로 향하니 빙판 위를 달리기 위해 준비된 탐사대원 전용 스노우모빌이 준비되어 있었다.
“난 이런 전개가 너무 좋더라.”
그럴듯한 개연성이 뒷받침되는 편의주의적 전개!
박씨 가문의 위대한 장남 박한성의 대를 여기서 끊을 수 없다는 조상님들의 억지력!
올해 제사상에선 탭댄스를 추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스노우모빌을 빙판 위에 내렸다.
“저 새끼 잡아!”
“스노우모빌을 타려고 한다!”
타타타타타! 타타!
쇄빙선의 금속 갑판을 후려갈기는 탄환 세례에 반쯤 떠밀리듯 스노우모빌을 지탱하고 있는 체인으로 몸을 던졌다.
‘제발 걸려라, 제발 걸려라, 제발 걸려라!’
스노우모빌의 시동 버튼을 누르고 스로틀을 미친 듯이 감으니 다행히 시동이 걸렸다. 빙판과 설원 위를 거침없이 내달리기 위해 반은 무한궤도, 반은 스키로 구성된 스노우모빌이 급가속을 시전했다.
설상에서 시속 100km 이상을 내달리게 해 주는 특수한 이동수단인 만큼 널찍한 등받이가 급가속에도 몸이 꺾이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바이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에 자연스럽게 불어닥치는 광풍도 어마어마했지만, 스마트글라스로 만든 전방 윈드실드 덕분에 어느 정도는 견딜 만했다.
중요한 건 내가 결국 놈들의 본거지를 미친 듯이 헤집고도 탈출에 성공했다는 거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파파파파! 파파파파팍!
“염병!”
군함에서 날아든 기관총 소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바짝 숙였다. 소총으로 닿지 않을 것 같으니 소음 문제 따윈 제쳐 두고 냅다 기관총을 갈기는 것이다.
기관총 탄환이 주변 빙판을 마구 깨부술 때는 순간적으로 헛숨을 들이킬 만큼 아찔했다. 쇄빙선이 아직 주변 정리를 하지 않아서 빙판이 두꺼웠던 것이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내가! 개새끼들아! 여길 다시 찾아오면! 그땐 진짜 다 뒤졌다!”
기관총 소사를 피해 어렵사리 스노우모빌을 조작하면서 청라도 해안을 따라 움직이면서, A 귀환 포인트로 지정해 두었던 아라빛섬 한강 빙판을 거슬러 올라갔다.
대형 선박이 자유롭게 오가기에는 다소 폭이 좁은 강이었지만 스노우모빌로 이동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런 길이라면 쇄빙선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날 쫓아올 수 없을 것이다.
‘놈들이 발끈해서 소규모 추격대를 보낸다고 해도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
여차하면 역으로 몰살시킬 수도 있고.
다행히 놈들은 그렇게까지 멍청하지 않은지 스노우모빌이나 차량을 이용해 추격대를 편성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배낭 속에 들어 있는 랩탑 하나를 얻기 위해 하루 종일 찬바람 맞으며 달리고 싸우고 도망치기를 반복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좀 미친 짓이긴 하다.
뒤늦게 스포츠 음료로 급하게 수분 보충을 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한강 빙판 위를 달렸다.
“쿨럭! 쿨럭! 후우……!”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페트병을 내던지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 완전히 안전해진 것은 아니다.
기관총을 비롯한 온갖 소음 때문에 도심 속의 나이트워커들이 크게 자극받았을 터.
아니나 다를까, 슬슬 렌즈를 교체해 줘야 할 것 같은 야투경 너머로 한강둑 주변을 살펴보니 무언가가 스멀스멀 움직이고 있었다.
개처럼 네발로 달리는 놈, 가느다란 사지를 마구 비틀면서 두 다리로 열심히 뛰는 3m 이상의 자벌레 같은 놈, 공벌레처럼 데굴데굴 굴러가는 놈까지. 서울 강북 방면에선 보지 못했던 놈들이었다.
개중에 신체가 기괴한 놈들은 나이트워치일 것이 뻔했기에 빠르게 시선을 거뒀다. 너무 거리가 멀어서 얼굴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것이 몇 안 되는 행운 중 하나였다.
여기까지 와서 잡힐 수는 없으니 스노우모빌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중간에 배터리와 연료가 바닥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서울과 가까워져야 한다.
“쓰읍.”
나는 홀스터에 고정된 권총을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