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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27화 (127/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35)

    땡땡땡땡땡!

    기껏해야 인천항 내부에서나 울려 퍼질 법한 아날로그 종소리가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자 수많은 ‘신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와중에 한 남자가 어두컴컴한 갑판 위를 빠르게 가로질러 곧장 함교로 뛰어 들어갔다.

    “보고드립니다!”

    “음.”

    “현재 인천항 내부에 침입자가 발생하였으며, 신원 불명의 침입자는 게이트 봉쇄용 비상 버튼을 부수고 컨테이너 보관 구역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함교 안쪽에서 점자로만 쓰여 있는 책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 가며 읽던 한 중년이 그 보고에 책을 탁 덮었다.

    “침입자의 규모는? 피해 현황은? 심판관의 출동 유무는?”

    “그것이…… 침입자는 단 한 명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피해 현황은 아직까지 신도 서넛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지금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으니 심판관들도 출동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단 한 명?”

    중년 사내는 어둠 속에서도 특유의 안광을 발하는 듯한 검은 눈으로 보고자를 노려보았다.

    “지금 단 한 명이 인천항 게이트를 뚫고 침투해서 컨테이너 보관 구역으로 향했다는 건가?”

    “그, 그것이…… 전방에서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콰앙!

    중년 사내가 책상을 가볍게 내려치자 책상이 우직 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인천 곳곳에는 지금도 심판관들이 돌아다니고 있고, 흑연의 주인들 역시 ‘정수’를 축적하기 위해 지하철 곳곳에 자리 잡은 상태다! 그걸 단 한 명의 침입자가 전부 뚫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인천항 내부에 침투까지 했다고?! 대체 경비를 얼마나 소흘히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하면 그에 걸맞은 성의를 보여서라도 죄를 갚아야지! 당장 심판관과 신도들 동원해서 그 쥐새끼 같은 놈을 잡아 와! 어떤 겁대가리 없는 놈이 단독으로 성지(聖地)에 침투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으니!”

    그의 호통에 보고자가 헐레벌떡 함교 밖으로 달려 나갔다.

    기껏해야 구축함의 함장을 맡고 있는 그는 흑연교 내부에서도 그리 높은 위치가 아닌지라 출세욕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건만, 아랫것들도 군기가 빠져서 제 상관에게 밉보일 짓만 골라서 하는 실정이다.

    이러니 천상의 흑연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빠진 머리털이 다시 나지 않을 수밖에.

    자신의 체내에 축적될수록 전능감에 도취하게 만드는 흑연도 빠진 머리만큼은 되살릴 수 없다는 사실보다, 그 전능감으로도 이 스트레스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사실이 더 화가 났다.

    ‘높은 자리에 올라간 놈들은 흑연의 정수를 직접 몸에 받아들인다던데, 나는 기껏해야 찌꺼기 같은 연기만 흡수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쯧, 하고 혀를 찬 함장은 함교 내에 비치된 상황 전파용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실제 상황이다. 현재 신원 불명의 침입자가 인천항 내부에 침투한 것으로 밝혀졌다. 침입자가 성역으로 들어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다들 경계를 소흘히 하지 말도록.”

    종이 울려 퍼졌으니 다들 신경이 곤두서있겠지마는, 함장은 구태여 함 내 방송을 하는 것으로 기강이 해이해진 부하들을 재차 닦달했다.

    *    *    *

    “거, 씨발 놈들이 좀 건드렸다고 히스테리 오지게 부리네.”

    컨테이너 보관 구역을 지키고 있던 경비를 위에서부터 덮쳐 단숨에 척추를 뭉갰을 즈음, 저 멀리서 종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내심 사이렌이라도 울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건만,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저런 구닥다리 경종을 울릴 줄이야. 아무래도 이 새끼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퇴보했던 모양이다.

    “그르륵…… 끄으……!”

    “이야, 척추를 뭉갰는데 안 죽네.”

    나는 발밑에 뻗어서 꿈틀꿈틀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경비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처음 도약해서 발로 찍어 내린 다음 주먹으로 척추를 개박살 냈는데 의외로 상대는 아직 살아 있었다. 쇼크사에 50% 면역 같은 패시브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놈을 계속 발밑에 두기 싫어 군홧발로 재차 목 뒤를 찍었다. 이번에야말로 경추가 부러지고 산소 공급이 차단되면서 확실하게 절명했다.

    나는 경비병이 들고 있던 묵직한 작살 하나를 집어 들고 죄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컨테이너 박스 밀림으로 숨어 들어갔다.

    틈틈이 컨테이너 박스의 식별 번호를 확인하면서 내가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쪽이다! 움직여!”

    “생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팔다리는 잘라도 죽이지는 마라!”

    “여기 형제 한 명이 또 당했다!”

    얼씨구.

    추위도 잘 느끼지 않고, 어둠도 꿰뚫어 볼 수 있으니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놈들은 컨테이너 박스 밀림 속에 숨어든 내게 대놓고 들으라는 양 동네방네 떠들어 대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기야, 저렇게나 많은 인원이 몰려들면 이쪽의 움직임이 제한되는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놈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나는 이곳을 공격하기 위해 침투한 공작 요원이 아니라, 물건 하나를 빼내기 위해 침투한 좀도둑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대한민국 군필자들이라 총기를 다루는 법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아서 움직임은 엉망이군.’

    하기야 개개인이 전능감에 도취되어 있을 텐데 협동 정신이고 나발이고 있을 리가 만무하지. 오히려 누구보다 빠르게 나를 생포해서 공을 세우겠다는 뻔한 욕망이 보인다.

    그 증거로 삼삼오오 모여 다녀야 할 놈들이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 밀림 속에서 뿔뿔이 흩어져 나를 찾기 시작했다.

    어차피 어둠 속이니까, 추위 속이니까, 자신들의 홈그라운드니까, 야투경이나 손전등 불빛이 없으면 제대로 앞도 보지 못하는 내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단세포 새끼들.”

    나는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타고 올라가서 몸을 바짝 낮추고 한 무리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중간에 샛길로 빠진 놈을 역으로 추적해 등을 노리고 작살을 집어던졌다.

    푸샷!

    “끄으으으으으?!”

    이 외골격 파츠 덕분에 바깥에서 만난 인간 사냥꾼 못지않은 위력으로 작살을 내던질 수 있었다. 덕분에 뭣 모르고 혼자 돌아다니던 놈은 등부터 배를 뚫고 나온 작살에 지면에 박혀 비스듬한 자세 그대로 인간 꼬치가 되었다.

    “여, 여기! 침입…… 꺼흐!”

    콰직!

    “여기가 안이지 밖이냐? 안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게 되어 있냐?”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놈의 턱주가리를 바로 날려 버리고, 덜렁거리는 턱과 놈의 정수리를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다음 180도로 돌려 버렸다.

    우드드드득 하는 불쾌한 소음과 함께 목이 완전히 꺾인 쓰레기 하나가 탄생했다. 사이비 종교쟁이나 쓰레기나 같은 말이니까 상관없겠지.

    군용 무전기를 틀어 놈들의 무전 내용을 잠시 도청하고, 다시 작살을 뽑아서 컨테이너 박스를 가로질렀다.

    ‘내가 찾고 있는 화물은 대기업이나 연구 기관에서 주로 이용하는 VIP용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되어 있다. 이런 일반적인 컨테이너 박스가 쌓여 있는 곳에선 찾을 수 없어.’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급히 고개를 숙이자 내 머리 위로 작살 하나가 파공성을 내지르며 날아갔다. 총이 아니라 작살을 내던진 걸 보니 저놈도 근력에는 꽤나 자신이 있는 것 같다.

    “이젠 별 ✕같은 새끼들이 다 시비를 거네.”

    내가 얼마나 ✕으로 보였으면!

    “군용 야투경을 착용하고 있는 걸 보니 우리 쪽 형제가 아니군. 빛을 갈구하는 자인가?”

    “✕같은 소리까지 하는 걸 보니 ✕같은 새끼가 맞구나.”

    죄송하지만 선생님, 우리는 그것을 ✕ 이라고 부르기로 이미 사회적 합의를 끝마쳤습니다.

    튼튼한 컨테이너 박스를 박차고 뛰어 들어가 상대가 다음 작살을 꺼내 들기 전에 접근전을 꾀했다.

    하지만 상대도 접근전에 아주 젬병은 아닌 듯, 골프채 가방에서 작살을 꺼내 드는 자세 그대로 몸을 반쯤 회전시켜서 내 작살 공격을 막았다. 구체적으로는 반쯤 끌려 나온 작살대 부분으로 막아 낸 것이다.

    기막힌 센스에 보통이라면 감탄이 나올 법도 하건만, 나는 오히려 하품도 아까웠다.

    “공격은 막는 게 아니라 피해야지. 병신 새끼야.”

    공방일체가 자유로워야 근접전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다? 그건 병신 새끼들이나 지껄이는 교과서적인 발언이다. 근접전의 정수이자 핵심은 나만 안 맞고 나만 때리기다.

    상대와 자신의 무기, 혹은 신체 부위가 접촉하는 순간 서로 강한 반탄력을 느끼면서 똑같이 반반씩 가져가는 싸움을 하게 된다. 굳이 반반씩 가져가는 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데, 거기서 하필 ‘방어’라는 입장을 가져간다면 멍청함의 극치를 달리는 것과 같다.

    방어 측은 다음 합에서 공세로 나갈지 한 번 더 방어할지 결정해야 하지만, 공격 측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미 공격적인 자세와 활로를 이용해 치고 들어왔기 때문에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연달아 공세를 취할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크흡!”

    “내가 언제 작살 하나만 쓴다고 했냐?”

    작살이 막히자마자 미련 없이 튕겨 나가는 작살을 내던지고 소매 아래에 숨겨 둔 대검을 뽑아 놈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근육을 빵빵하게 키운 격투기 선수들도 옆구리를 얻어맞으면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마당에 대검이 쑥 하고 박혀 들었으니 오죽할까.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검 자루 끝을 주먹으로 강하게 후려쳤다.

    “크흐으으…… 아아아아!”

    “엄살 피우지 마, 호로 새끼야. 딱 봐도 인간 사냥 좀 해 본 것 같은데 너 같은 새끼는 엄살 피울 자격도 없어.”

    강력한 주먹 한 방에 손잡이만 빠져나와 있던 대검이 완전히 놈의 체내에 박혀 들었다. 내부 장기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마도 충격과 함께 칼날이 척추 신경을 건드렸을 것이다.

    나는 작살을 뽑으려는 자세 그대로 굳어진 놈의 목젖을 팔꿈치로 후려쳐서 비명을 틀어막고, 소위 말하는 ‘와사바리’를 걸었다.

    하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타이밍에 와사바리가 걸린 상대는 허무하게 몸의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이제 와서 그만두면 관객들의 아쉬운 앵콜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힘차게 서전트 점프를 했다.

    그리고 안쪽으로 오므린 내 양 무릎 끝이 도달한 곳은 놈의 복부였다.

    안 그래도 대검이 박혀서 내장과 신경이 갈기갈기 찢어진 놈의 배 위에 성인 남성의 무게가 실린 혼신의 내려찍기가 꽂히면 어떻게 될까?

    퍼엉!

    엄청난 복압을 견디지 못한 복부의 상처가 단숨에 터지면서 피와 내장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놈에게서 나온 검붉은 피 역시 일부는 검은 연기로 변했다.

    마무리로 놈의 안면에 주먹을 때려 박아서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놓고, 충격으로 빠져나온 대검을 집어 들었다. 내 대검은 피와 내장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여전히 멋지고 날카로웠다.

    칼에 묻은 핏기름을 놈의 옷에 슥슥 문질러 닦아 내고, 작살이 가득 들어 있는 골프채 가방을 통째로 챙겨 들었다.

    때마침 놈의 비명 소리를 듣고 나타난 또 다른 무리를 향해 작살을 두 자루를 뽑아 힘차게 집어던지자, 내가 작살을 던질 거라곤 예상 못 했던 놈들이 가장 먼저 꿰뚫렸다.

    어찌어찌 감이 좋은 녀석들이 다급히 컨테이너 박스 뒤로 숨어들었지만, 오히려 그게 내가 원하는 바였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순식간에 컨테이너 박스와 박스 사이를 넘나들며 빠르게 추적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어둠을 훤히 꿰뚫어 보는 놈들은 이 지독한 어둠 속이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건 틀린 말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어둠 속에 익숙하고, 어둠 속을 기어 다니며 보수를 챙겼던 놈이니까. 어둠과 추위가 짙게 내리깔린 북한 땅굴은 내 집과도 같았으며, 그곳에서 벌어진 총격전이나 근접전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양식이 되었다.

    매끄러운 컨테이너 박스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면서 중간중간 나를 쫓아오는 놈들에게 작살을 집어던졌다.

    후웅!

    ‘톤’ 단위의 근력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외골격 파츠가 정확한 경로를 향해 작살을 집어던지면, 나를 쫓아오는 추적자들이 작살에 빨려 들어오듯 머리나 가슴, 복부를 내주었다.

    “후욱! 후욱! 후욱!”

    급격한 움직임이 지속된 탓에 근육과 폐는 연신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익숙하다는 듯 내 뇌는 딱히 위험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처럼 더욱더 내 몸을 채찍질했다.

    컨테이너 박스를 뛰어넘고, 작살을 내던지고, 중간중간 블러핑으로 추적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그 짧은 순간에도 컨테이너 박스의 식별 번호를 확인해 가며 이동 경로를 조정해 나갔다.

    마치 다시 한 번 북한 땅굴로 기어 들어간 것처럼 내 몸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아아.”

    어째서인지 오른손이 시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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