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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26화 (126/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34)

    콰앙!

    흙먼지와 콘크리트 돌가루 사이로 파고든 내가 주먹을 내지른 순간, 강철과도 같은 무언가가 외골격 파츠의 힘을 막아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기까진 예상하고 있었다!’

    순수 근력만으로 작살을 내던지고, 터미네이터처럼 건물 벽을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보이는 놈에게 고작 그 정도의 기세나 근성도 없을까. 오히려 주먹이 막히자마자 역으로 상대의 주먹을 붙잡아 고정축으로 삼았다.

    타다닷!

    빠르게 스텝을 밟아 상대의 단단한 무릎을 밟고 뛰어올라 단숨에 위로 치솟는 듯한 하이어퍼니킥을 박아 넣었다.

    기껏해야 제자리에서 점프를 하듯 쳐올리는 니킥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술이라, 제대로 적중하기만 한다면 상대의 턱뼈를 문자 그대로 믹서기처럼 갈아 버릴 수 있었다.

    콰드드득!

    무릎 보호대 너머로 느껴지는 강렬한 타격감에 나는 미약한 희열감을 느끼면서도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 중력에 몸을 맡긴 채 아래로 떨어질 차례인 내가 상대의 머리를 반대쪽 손으로 단단히 붙잡아 그대로 짓눌렀다. 내 몸무게와 근력 그리고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상태의 환상적인 콜라보가 이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강력한 니킥에 연이어 내 몸에 짓눌리듯 안면부터 바닥에 처박힌 상대.

    흙먼지가 걷히고 나서 확인해 보니 머리통이 완전히 으깨져서 곤죽이 돼 버렸다. 검붉은 핏물과 함께 흘러나온 희멀건 뇌수,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희미한 검은 연기.

    나는 더러운 피와 살점이 묻은 몸을 탁탁 털어 내면서 일어섰다. 외골격 파츠를 착용하고 있음에도 저릿한 팔이나 손목, 보호대가 아니었으면 역으로 금이 갔을 내 무릎.

    객관적으로 평가하든 주관적으로 평가하든 이번에는 전적으로 내가 운이 좋았다.

    ‘상대가 나를 일반인으로 생각하고 약자로 규정지었다는 점, 나 하나 잡는 데 동료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동료를 호출하지 않은 점. 그리고 마지막까지 방심한 점.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위험했겠어.’

    그래도 어떻게든 처리할 수는 있었겠지만 나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뻑적지근한 근육을 풀어 준 다음 머리부터 박살 난 상대의 몸을 뒤졌다.

    등에 달고 있는 커다란 골프채 가방 속에서는 골프채 대신 날카로운 단창 형태의 작살과 사각형의 정육도가 튀어나왔다. 짐승 사냥이 아닌, 인간 사냥을 업으로 삼고 있는 놈인 게 분명했다.

    ‘옷차림은 공항에서 봤던 놈들처럼 굉장히 단촐하군. 나이트워커 수준은 아니지만 일반인에 비하면 추위에 상당한 면역을 가진 게 분명해.’

    오직 편한 활동만을 추구한 옷차림이라 그런지 청바지에 면 셔츠 그리고 항공 점퍼 하나가 전부였다. 일반인이 영하 30도를 웃도는 이 맹추위에 이런 꼴로 돌아다니면 하루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괜히 꺼림칙해서 항공 점퍼 안쪽까지 뒤져 보고 싶진 않았지만, 단단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만져져서 결국 내용물을 확인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튀어나온 것이 군용 무전기 하나에 이상한 책 한 권이었다. 점퍼 안쪽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은 책은 기독교인들이 흔히 가지고 다니는 포켓 성경과 상당히 흡사해 보였다.

    다만 포켓 성경과는 달리 겉표지가 그저 짙은 검은색일 뿐이라 겉보기만으로는 책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혹시 몰라 내용을 살펴보니 나는 읽을 수 없는 오돌토돌한 점자투성이였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이 직접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문자를 느끼기 위한 점자가 왜 이런 책에 쓰여 있나 싶었다. 이놈은 어둠 속에서도 나를 정확하게 추격해 왔으니 맹인은 아닐 텐데.

    ‘지저 도시에 돌아가면 점자를 해석할 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봐야겠어.’

    맹인을 돕는 사회복지사나 언어학 전공자라면 점자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점자책을 품속에 갈무리한 나는 시신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둔 뒤 조용히 건물을 나섰다. 혹시 몰라 군용 무전기도 챙겨 나왔지만 섣불리 이쪽에서 먼저 신호를 보내지는 않았다.

    내가 타고 온 바이크가 망가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을 때, 내게 남은 선택지는 사실상 전무했다. 이대로 뼈 빠지게 걸어서 지저 도시로 복귀하느니, 차라리 인천항에 침투해서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건 그렇고, 인천에 왜 사람이 코빼기도 안 보이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네.’

    인천에 진입했을 때부터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상당히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인간사냥꾼을 상대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인천항에 집결했다던 거대한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모든 민간인이나 소규모 경찰, 군부대는 이런 놈들이 철저하게 말살했겠지. 거기에 한술 더 떠 나이트워커까지 인간 사냥을 감행했다면 인천이 유령 도시로 전락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유입된 수백만 피난민 중 상당수가 반 강제로 인천항에 소속되었거나, 철저하게 죽임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천항과 영종도의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수백만 인구를 감당할 수는 없겠지. 그럼 그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힘이 없고 인맥도 없는 민간인일수록 식량 확보라는 명목하에 고기잡이배에 전부 밀어 넣고 해산물 채취에 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아니면 물자 확보 및 운송을 위한 커다란 선박을 운용해서, 충청도와 전라도 해안가에 사람들을 내보낸 뒤 어촌이나 지방 도시를 털게끔 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려면 인프라보단 식량이 최우선 문제일 테니까.

    나는 최소한 인천항에 자리 잡은 정체불명의 단체가 식량 문제를 ‘동족상잔’으로 해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움직였다.

    인천 남구로 진입해서 인천항으로 숨어들겠다는 계획은 일단 접어 두고, 경로를 조금 바꿔서 동구로 진입한 다음 인천차이나타운을 거쳐 가기로 했다.

    남구에 비해 동구로 진입하면 아무래도 몸을 숨길 만한 건물이나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골목길이 많을 터. 그런 점에서 인천차이나타운을 거쳐 인천항으로 접근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광학 렌즈에 금이 간 야투경을 착용하고서 뜀걸음 수준의 속도로 행군을 시작하니 목적지에 금세 접근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인천과 서울의 경계 지역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나이트워커가 인천항과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몇몇 놈들이 얼어붙은 차량 위를 어슬렁거리다가 갑자기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개구리처럼 훌쩍 뛰어올라 어디론가 사라지는가 하면, 무리 지어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놈들도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인천의 지하철역은 대부분 놈들에게 점거된 것 같았다.

    ‘서울과 연결된 주요 지하철역 일부는 아예 막아 버려야겠군.’

    폭발물을 이용한다면 터널 한두 개쯤은 쉽게 붕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무장도, 도망칠 수단도 변변찮기 때문에 가능한 놈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은밀하게 움직였다.

    꽤 오랜 행군 끝에 나는 잠시 마스크를 벗고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바다 특유의 소금내와 비린내를 맡았다. 목적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한강은 대부분 얼어 버렸지만 한반도 주변 바다는 온갖 이물질, 염분 그리고 난류 영향으로 완전히 얼어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구의 하늘을 뒤덮은 게 무엇이든 햇빛을 ‘100%’ 차단한 것은 아니니까.

    지금도 여전히 지구는 태양계를 돌고 있으며, 태양열은 끊임없이 지구에 내리꽂히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뒤덮은 저 검은 연막 같은 것이 대부분 차단하고 있을 뿐.

    그러다 문득, 중국이라면 사람도 많고 어선도 많을 텐데 어째서 한국까지 넘어오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필시 아비규환이 됐을 중국보단 차라리 한국행을 택하는 게 더 나았을 것 아닌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거나, 아니면 그런 생각을 품기도 전에 전멸했거나.’

    갑갑한 콘크리트 정글을 빠져나온 나는 마침내 인천항을 꽉 메우고 있는 거대한 선박의 도시와 마주했다.

    커다란 화물선과 크루즈선, 심지어 시추선까지 모조리 끌어와서 중심부에 때려 박고, 그것을 두꺼운 체인으로 촘촘하게 묶어 서로를 연결한 모습이 보였다.

    그 주위로는 지금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소규모 어선이나 해양경찰선, 군함까지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 어떤 배도 최소한의 불빛을 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선박만 끌어모아서 바다 위에 작은 도시를 건설한 것치곤 기묘하리만치 불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이 불빛 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김포공항이라면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다. 사이비 종교쟁이일수도 있다는 의혹을 잠시 제쳐 두면 도심 속의 나이트워커들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불빛 없는 생활을 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인천항은 저래선 안 된다.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일지도 모르는 사람들 모두가 그 사이비 종교의 손에 들어갔다는 얘기니까.

    시원하게 느껴져야 할 바다 특유의 내음이 어째서인지 역하고 불쾌하게만 느껴졌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다. 요 2개월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천항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개인적인 정찰이었다면 여기서 물러나는 게 맞겠지만…… 일 잘하는 사람은 이래서 괴롭다니까.’

    보수가 결정된 임무를 포기하거나 실패하는 일 따윈 없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내 사전에 보수를 포기한다는 것은 없으니.

    ‘다행히 컨테이너 박스는 그대로 쌓아 둔 상태군.’

    어차피 인천항 관리 시설과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했다면 현재 어떤 화물이 인천항에 들어와 있는지는 파악이 다 끝났을 것이다.

    거기서 컨테이너 박스의 식별 번호만 찾아서 필요한 것만 쏙쏙 빼먹으면 그만이니, 불필요하게 컨테이너 박스를 옮기거나 치울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

    나는 미래테크의 본부장인 이진혁에게서 받아 든 컨테이너 박스 식별 번호를 기억하며, 인천항 인근까지 접근했다. 역시 인천항이 코앞이라 그런지 불빛 한 점 없이 돌아다니는 경비가 있었다.

    전부 총을 들고 있거나 커다란 작살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는데, 그다지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 영하 30도에도 덜덜 떠는 기색은 없었다.

    그들 중에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했거나, 어디 특별한 소속 출신이었던 것처럼 절도 있는 동작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인천 도심을 휘젓고 다니던 그 인간사냥꾼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정보가 부족한 적지 침투는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공작 요원이나 하는 미친 짓이지만, 나는 받은 것도 있고 또 받아야 할 것도 있는지라 그 미친 짓을 단독으로 실행하기로 했다.

    ‘불빛 없이 어둠 속을 훤히 꿰뚫어 보는 놈들이라면 어차피 어둠 속에서 움직여도 내가 불리하다. 그러니 전술적으로 접근해야 해.’

    중요한 것은 치고 빠지기다.

    소총 하단 레일의 휴대용 유탄발사기에 연막탄을 끼워 넣고, 조정간을 단발로 바꿨다.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쇼크 효과는 순식간에 일어나야 하며, 비교적 짧게 유지되는 쇼크 효과 내에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는 입구 근처에 임시로 세워 둔 바리케이드 너머에 서서 저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는 놈들을 목표로 삼았다.

    퉁!

    가벼운 소음과 함께 하늘 위로 높이 치솟은 40mm 연막탄이 정확히 입구 근처에 떨어졌다.

    물론 나는 연막탄이 그들 근처에 떨어지기 전부터 이미 전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연막탄이 곧 푸쉬이이이이 하고 짙은 연막을 내뿜는 순간, 치타처럼 전력 질주로 달려온 내가 연막 속에 파고들었다.

    나는 열화상 렌즈로 교체해서 보면 그만이지만, 이놈들은 연막까지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쿨럭쿨럭! 갑자기 무슨…… 커흑?!”

    가장 먼저 얼타고 있던 놈의 턱 아래에 묵직한 대검을 박아 올려서 뇌까지 단박에 꿰뚫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던 놈에게 대검을 집어 던져 정확히 미간을 꿰뚫었다. 근처에 있던 비상벨 버튼을 박살 내 버리고, 직접 바리케이드를 넘어서 인천항 내부로 침투했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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