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22화 (122/211)
  • 인프라 복구 작전 (4)

    “푸후, 악취가 좀…….”

    나를 뒤따르던 중장갑보병 한 명이 역하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마스크와 머플러로 입가를 꽁꽁 싸맨 우리와는 달리 서울역 출신 중장갑보병들은 딱히 입과 눈을 가리지 않았다.

    성능이 확실한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믿기 때문에 그런 객기를 부리는 것이겠지만, 지저 도시 출신 입장에서 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광경이다.

    “야, 서울역 애들한테 예비용 마스크 몇 개 챙겨 줘라.”

    “예, 형님.”

    조직원 중 한 명에게 명령해서 예비용 마스크 몇 개를 그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들은 왜 굳이 이런 지하에서 호흡이 답답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얼굴이었으나, 내가 서둘러 착용하라는 눈치를 보내자 고분고분 따랐다.

    “지금까지는 그냥 머플러나 헝겊으로 대충 입가를 가리고 다녔겠지만, 영하 30도를 웃도는 기온에 호흡기 망가지기 싫으면 얌전히 마스크 써.”

    사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진짜 목적은 호흡기 보호가 아니었지만 일부러 동요를 유발할 만한 말은 하지 않았다.

    나이트워커에게서 나오는 검은 연기를 들이마시면 어떤 식으로든 몸에 악영향을 준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멀쩡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해 봤자 분위기만 망칠 테니까.

    엘리베이터는 가동 중지 상태였기 때문에 깊은 지하층까지 내려가려면 계단을 끝도 없이 타고 내려가야 했다. 적어도 10층 이상 깊이의 지하에 발전실이 있다 보니 공기가 점점 탁해졌다.

    평소라면 공기 순환 장치가 상시 가동되며 탁한 공기를 깨끗한 공기로 바꿔 주고, 청소용 안드로이드가 알아서 시설의 더러움을 세척하고 있었을 텐데.

    최소 2개월은 문명의 이기가 작동하지 않은 최신예 시설의 더러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마스크 너머로도 느껴지는 이 악취는 단순한 곰팡내가 아닌 것 같은데.’

    지하 깊은 곳에 매장된 시설이다 보니 어디선가 누수가 발생했을 수도 있고, 혹은…….

    지하 발전실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저것처럼 지독한 놈들이 이 시설에 침입했거나.

    ―정지.

    내가 재빨리 주먹을 쥔 손을 들어 올려 정지 수신호를 보내자 계단을 내려오던 모든 인원이 일시에 멈췄다. 내가 이런 쪽으로는 조직원들을 확실히 훈련시켰기 때문에 움직임은 질서정연했다.

    중장갑보병들 역시 알파 소속이었거나, 그들로부터 따로 훈련을 받았는지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전방에 괴생명체 확인.

    여기서 내가 말하는 괴생명체는 보통 나이트워커를 의미하기에 조직원들은 대부분 알아듣고 총기의 세이프티를 해제했다.

    딸칵, 딸칵 하고 여기저기서 세이프티가 조용히 해제되는 소리를 듣고서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웅크려 있지만 체격을 보아하니 평균적인 성인 남성보다 조금 더 크다.’

    밝기를 극도로 줄인 희미한 손전등 불빛으로 이리저리 비춰 보니, 잘 단련된 농구선수가 웅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피부는 온통 검은색에 흉물스러운 피딱지가 앉은 것 같았고, 마치 충격에 대비하듯 양손이 머리를 감싼 형태로 웅크려 있었으니 꼭 사람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내가 이것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가슴이 들썩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런 공간에서 알몸 상태로 이렇게 웅크려 있는 것이 사람일 리도 없겠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혹은 내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가사 상태(휴면)인지 확인해야 한다.’

    내가 아직 알아내지 못한 나이트워커들의 생태는 크게 셋 정도 있다.

    무리 생활을 하는가? 한다면 어떤 형태의 무리 생활을 하는가?

    인간을 음식처럼 섭취하는가? 섭취하지 않는다면 사로잡은 인간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가?

    소총을 들어 올려 놈의 뒤통수에 총구를 갖다 댄 뒤, 조심스럽게 발로 등을 짓눌렀다. 만약 정말로 휴면 상태라면 자극을 받는 즉시 깨어날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조금 강하게 짓눌러 봤지만 피딱지 같은 피부가 퍼석하고 바스러지기만 할 뿐, 웅크려 있는 괴생명체는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후방에 있는 인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낸 뒤, 이번에는 아예 싸커킥을 후려갈겼다.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바닥과 연결되어 있던 것이 강력한 싸커킥 한 방에 쩌적 하고 떨어져 나가더니, 발전실 복도에 처박혔다.

    그제야 나는 그것이 살아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이번에는 손전등 불빛의 밝기를 최대로 올려서 비춰 봤지만, 역시나 무반응이었다.

    ‘사태가 벌어진 당일에 피난을 가지 못하고 이곳에 갇힌 불쌍한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어찌어찌 이곳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지 못한 나이트워커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골격을 제외하면 이게 인간인지 다른 무언가인지도 알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바로 그 순간.

    쩌저저적.

    철컥!

    피딱지처럼 단단한 외피가 바삭한 과자처럼 쪼개지는 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총구를 겨눴다. 혹시 저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는 건가 싶어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외피가 바스러진 건 그냥 내가 충격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문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었지만.

    “……!”

    63빌딩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알 덩어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마치 인간의 장기와 근육, 뼈를 모두 집어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내용물을 꽉꽉 채운 상태였다. 삼계탕의 닭도 저렇게나 완벽하게 내용물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는 없을 만큼.

    ‘나이트워커가 아니라 인간인 건 확실해졌군.’

    무언가가 이 시설에 남아 있던 인간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기괴한 짓을 저지른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 형태의 피부 껍데기’만 남겨 두고 내용물을 모조리 알 덩어리로 채워 넣을 리는 없으니까.

    최소한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가 동료를 공격하거나 적대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기에, 나는 이것이 생전 인간이었음을 확신했다.

    수신호로 조직원 몇 명을 불러서 샘플 보관 용기를 가져오게 했다. 일전에는 63빌딩을 급하게 빠져나오느라 확보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임무의 특성상 샘플을 확보해야 한다.

    미래그룹이 내게 ‘사소한’ 부탁을 했던 내용 중에 바로 이런 샘플 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내가 넘겨주었던 검은 체액만으로는 연구 샘플이 부족하다나 어쨌다나.

    “으웩…… 대체 이게 뭡니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바깥에 돌아다니고 있는 놈들과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해. 샘플 채취해서 특수 보관 용기에 옮겨.”

    “샘플 채취가 끝나면 어떻게 합니까?”

    “태워. 이것들은 바깥에 나가면 안 돼.”

    마치 지난번에도 이런 대사를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소각 지시를 내렸다.

    그래, 이 흉측한 것들을 불필요하게 지상으로 내보낼 이유는 없지. 생각해 보면 63빌딩에서 나 대신 알 덩어리를 모조리 파괴해 준 상어 변종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조직원들에게 샘플 채취 및 소각 명령을 내리고, 굳게 닫혀 있는 발전실 문을 강제로 잡아 뜯었다.

    최신예 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시설도 경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꽤 무식한 방법으로 침투가 가능하다.

    다행히 발전실 내부는 다른 무언가가 침입한 흔적이나 손상된 장비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텁텁한 공기와 한가득 쌓인 먼지가 나를 반겨 주었을 뿐.

    녹음기에 기록된 비상 전력 가동 매뉴얼에 따라 비상 발전기의 패널을 먼저 점검했다. 퓨즈를 확인하고, 순차적으로 레버를 당기고, 버튼을 누르고, 전력 우선 공급 위치를 지정하면 끝.

    마지막으로 비상 발전기의 전원 버튼을 힘차게 누르자 ‘드드드드드드!’ 하는 진동과 함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인이 눈을 떴다.

    “오오오! 불빛이다!”

    전력이 공급되기가 무섭게 가장 먼저 복도 전등이 환한 빛으로 내부를 밝혔다.

    샘플 채취 작업을 하고 있던 조직원들은 끔찍한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게 되었기 때문에 쓴소리를 내뱉었지만, 일행 대다수는 그저 이 순수하게 밝기만 한 빛을 좋아라 했다.

    빛은 인류에게 있어서 희망과 생존의 상징이다. 이는 먼 옛날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불변의 진리였기 때문에, 인간이 빛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우리보다 훨씬 더 고대에 살았다던 지저인들도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빛이 존재하지 않는 지저 세계로 들어간 것이겠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소형모듈원전의 핵심 시설이 훤히 내다보이는 복도 창문으로 다가섰다. 지금보다 2층 정도 더 아래에 위치한 넓은 대공동에는 또 한 명의 거인이 잠들어 있었다.

    “샘플 채취 끝났냐?”

    “예!”

    “어우, 이거 독하네요. 살짝만 건드렸는데 악취가 무슨…….”

    “나도 처음 봤을 땐 그랬어.”

    “어, 이미 본 적 있으십니까?”

    “메갈로돈 크기의 상어한테 쫓기느라 챙겨 오진 못했지만 본 적은 있지.”

    샘플 채취가 끝난 특수 용기를 받아서 내 배낭에 넣고,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소각하게끔 했다. 이런 건 뒤끝이 남지 않게 확실히 해야 하는 법이니까.

    화아아아아아악!

    화재 감지기가 없는 비상계단 구석에서 시신을 말끔하게 태워 버리고, 진득한 알 덩어리가 터지면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는 것까지 관찰했다.

    저것이 단순한 매연인지, 아니면 나이트워커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그것과 같은 성분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가동이 중지된 소형모듈원전 관리층까지 내려오자, 전력을 공급받은 안드로이드가 부산히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선 일어나자마자 청소해야 하는 먼지투성이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겠지.

    바쁘게 돌아다니며 먼지를 털고 닦아 내는 안드로이드를 지나쳐, 관리자용 패널에 툴(TOOL)을 연결했다.

    미래그룹에서 따로 제공해 준 물건이라 정확한 용도는 모르지만, 아마도 관리자용 패널에 직접 연결 시 일부 보안 절차를 생략시켜 주는 해킹툴이 아닐까 싶다.

    예상대로 복잡한 본인 인증 절차나 시설 가동에 필요한 상급 관리자의 허가 확인 절차 등은 빠르게 생략되고, 최종적으로 시설을 재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보안 코드 입력창만이 남았다.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터치 패드에 보안 코드를 입력했다.

    ―1q2w3e4r

    다행히 시설 가동 중지 전에 보안 코드가 변경되지는 않았는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관리자 접속 확인.

    ―모든 보안 절차 승인 완료.

    ―전력수도복합 발전시설 통칭 ‘미르 1호기’ 재가동 절차 시작.

    ―시스템 자체 점검 중…….

    ―물리적 오류 3개 검출.

    ―물리적 오류 자동 우회 중…….

    ―예비용 전선 및 인트라넷 우회 연결 완료.

    ―모든 작업 인원은 시설 재가동 전까지 관리실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넓은 관리실 안에 들어와 있던 우리는 곧 방사능 차폐 격벽이 자동적으로 닫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여기서부터는 인간이 아니라 시설 자동 관리용 AI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남는 시간 동안 잠깐 쉬기로 했다.

    애초에 이 시설은 긴급 상황에 대비한 전문 관리자 몇 명과 정비공 몇 명만 있으면 두고두고 돌릴 수 있는 혜자 시설이었다.

    그것조차도 대부분은 관리용 AI와 부속품으로 딸려 있는 안드로이드가 해결하게끔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은 시설 보호 목적이 아니면 인간은 굳이 배치할 필요도 없다.

    시설 재가동 작업이 끝난다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내가 원하는 지역에 한해 전력과 수도를 재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남들보다 한층 더 우위에 설 수 있는 또 하나의 발판이 마련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에 전력과 수도가 공급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다시 모인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내가 규합하고, 여단장의 녹음기에 기록된 군수물자 은닉처를 모조리 털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대를 만들 수 있어.’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나는 산을 넘는 것이라면 이골이 난 중장갑수색대 출신이다.

    예전에도 그래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러지 못하리란 법은 없지.

    문득 두꺼운 차폐 격벽 너머로 들려오는 웅웅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명상에 잠겨 들 때 이런 의문을 품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는데, 어째서 나는 이렇게나 초조해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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