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21화 (121/211)
  • 인프라 복구 작전 (3)

    전력을 관리하는 구획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정수 처리 시설 구획으로 들어선 김명호 일행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쿨럭! 무슨 냄새가……!”

    “이건 정수 처리 시설이 아니라 하수종말처리장이라고 불러야겠는데.”

    잠긴 문을 강제로 개방해서 정수처리시설 구획으로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안에서 그들을 반긴 것은 지독한 악취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물 덩어리였다.

    아무리 대형 파이프 라인이 한강과 직통으로 이어져 있다고 하지만, 보통은 정수 처리 작업 중이 아니라면 한강 물이 역류하지 않게끔 조정되어 있을 터. 그럼에도 내부 꼴은 말이 아니었다.

    “시설 가동이 갑작스럽게 중지되면서 역류 방지 절차를 거치지 못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역류한 건지 모르겠군.”

    “어느 쪽이든 이거 다 치우려면 고생 깨나 하겠는데. 그러고 보니 이런 건물이라면 청소용 드론이 있을 법한데…….”

    김명호보다 조금 앞서 나간 서울역 출신 중장갑보병이 손전등 불빛을 휘휘 비추며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날아든 무언가가 그의 엑소스켈레톤 장갑판을 후려쳤다.

    카아아아앙!

    “우읏?!”

    “적습이다!”

    “나이트워커인가!”

    “여기에도 놈들이 있다고?!”

    혼란도 잠시, 나이트워커 사냥에 익숙해져 있는 조직원과 중장갑보병들은 넓은 장소를 적극 활용 해 방진을 짰다.

    두꺼운 장갑판을 장착한 엑소스켈레톤 착용자가 선두에 서서 방어하고, 화력에 좀 더 투자한 사람이 그 뒤에 서서 앞사람의 어깨에 총을 거치해 보조하는 팔랑크스 형태였다.

    총성이 귀에 큰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군용 귀마개와 소음기 장착을 철저하게 해야만 실현할 수 있는 전술이기도 했다.

    카앙! 카아앙!

    “쓰읍, 앞에서 뭐가 자꾸 날아오는데…… 불빛 좀 세게 비춰 봐!”

    “우린 나이트워커들을 자극하지 않게끔 일부러 약한 조명만 들고 다닙니다!”

    그렇게 답한 김명호는 조금 전부터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날아들고 있는 방향을 향해 총을 쐈다. 건물의 깊은 내부인 만큼 외부에 총성이 새어 나갈 걱정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타타타타타!

    탄환이 어둠을 가로지르고, 운 나쁘게 이리저리 튕긴 탄환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전방을 잠깐이나마 비춰 주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김명호는 예리한 시선으로 자신의 탄환에 맞은 무언가가 있음을 포착했다. 그것은 인간이라고 보기엔 형태가 기괴했고, 크기도 미묘했다.

    “조명 집중시켜 봐. 전방에 뭐가 있는 건 확실한…….”

    조직원들이 약한 조명을 한곳에 집중시킨 순간, 김명호는 저도 모르게 할 말을 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등에 가시뼈가 잔뜩 올라온, 최대한 닮은 동물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생선’이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무언가가 바글거리고 있었다.

    어린아이 정도의 몸체를 자랑하는 그것들은 조명이 집중되자 ‘끼이이이이이이!’ 하는 비명과 함께 몸을 크게 부풀렸다. 마치 자극받은 복어가 축구공처럼 빵빵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때문인지 놈들의 등에 튀어나온 가시뼈가 살에 파묻히며 압축되기 시작했다.

    “이런, 씹! 쏴!”

    타타타타타타!

    무언가 잘못되기 전에 이것들을 싹 쓸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 김명호가 신호를 내리자, 수십 개의 총구에서 일제히 발포된 탄환 세례가 기괴한 생물들을 휩쓸었다.

    허리케인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저 끔찍하기 짝이 없는 생물들의 몸이 펑펑 터지거나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그 과정에서 검은 액체가 새어 나와 즉시 연기로 기화했다.

    다만 이곳은 밀폐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기화한 검은 연기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천장과 벽을 따라 움직였다.

    “마스크랑 고글 절대로 벗지 마라!”

    일전에 박한성이 검은 연기는 절대로 마시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조직원들은 바싹 긴장했지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중장갑보병들은 의아함을 느낄 뿐이었다.

    살아남은 몇몇 생물이 기어코 압축된 가시뼈를 쏘아 내긴 했으나, 엑소스켈레톤의 두터운 장갑을 뚫지는 못하고 튕겨 나갔다. 잔당 역시 총질 몇 번에 깔끔하게 쓸려 나갔지만, 문제는 검은 연기였다.

    갈 곳을 잃은 검은 연기는 전등과 합판, 파이프라인으로 덮인 천장을 완전히 뒤덮어 검게 물들이더니, 곧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 번 위로 올라간 연기가 다시 아래로 내려온다고?!’

    가방끈이 고등학교에서 그친 김명호도 그것이 매우 기이한 현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보통 연기는 하늘 위로 쭈욱 올라가거나, 반대로 발밑에 깔리듯이 확 퍼져 나갔으니까. 물론 가스를 퍼뜨리면 지상이든 하늘이든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지긴 한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 있는 생물인 양 위로 올라갔다가 제멋대로 아래로 내려오는 연기를, 그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광경이 꼭 먹이를 찾는 짐승처럼 느껴져서, 김명호는 저도 모르게 마스크를 손으로 꽉 눌렀다. 자신의 호흡기에 저 역겨운 검은 연기가 조금도 들어오지 않게끔.

    문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중장갑보병들이었다. 그들은 기껏해야 방한 대책으로 머플러를 두르고 있을 뿐이었는데, 검은 연기가 내려오자 대충 손으로 휘휘 젓는 모습을 보였다.

    “예비 마스크 꺼내서 착용시켜! 검은 연기 못 마시게 해!”

    결국 보다 못한 김명호가 조직원들에게 예비 마스크를 꺼내게 해서 그들에게 반강제로 착용시켰다.

    그들도 처음에는 당황한 눈치였지만, 조직원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서 검은 연기가 몸에 좋지 않은 무언가라고 인식한 듯했다.

    결국 사람들에게도 완전히 흡수되지 못한 검은 연기는 그들이 들어왔던 통로를 향해 스멀스멀 빠져나갔다.

    손전등 불빛으로 검은 연기의 움직임을 확인한 일행은 숨죽인 채 마지막까지 그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이윽고 검은 연기가 모두 빠져나갔을 때, 하나둘씩 막힌 숨을 털어놓듯 ‘푸하아앗!’ 하고 격하게 호흡했다.

    사태가 얼추 정리되자 김명호는 살짝 신경질이 난 어조로 중장갑보병들을 향해 말했다.

    “당신들은 지상에서 2개월이나 머무르면서 저 검은 연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겁니까?!”

    “아니, 우리야 그냥 보이는 족족 처리했을 뿐이라 그런 것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지.”

    “저 흉측한 것들의 몸에서 나온 건데 당연히 조심을 했어야지요! 저게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면 절대로 그런 짓은 못 할 겁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들어나 봅시다. 대체 어떻게 작용을 하길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역으로 들어온 질문에 김명호는 잠시 당황했지만, 박한성에게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답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도 놈들처럼 됩니다.”

    “……!”

    “빛을 싫어하게 되고, 어둠 속에서도 밝은 눈을 가지게 되고, 점차 추위라는 감각에 무뎌지고, 붉은 피가 아닌 검은 피를 가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인간성을 잃게 되는 점이 가장 큽니다.”

    차도식파는 이미 그런 놈들과 롯데호텔에서 싸워 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차도식파 소속인 박한성이 노원역에서부터 그런 놈들과 부딪쳐 왔다.

    어둠 속에서도 손전등 하나 들지 않고 정확하게 사격을 가해 오던 기괴한 무리들. 틀림없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들이었지만, 도저히 같은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자들.

    김명호는 아직도 그들과 사투를 벌였던 그날 밤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곤 했다.

    만약 박한성이 기지를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파상공세에 밀려 롯데호텔과 함께 차도식파는 몰락했을 테니까.

    김명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중장갑보병중 하나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싶더니, 갑자기 앞으로 확 다가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그런 놈들이 빛을 싫어한다고? 빛을 싫어한다는 게 사실이야?!”

    “예, 적어도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너희가 오기 전, 그러니까 대략 일주일 전쯤에 인천에서 쇄빙선을 몰고 한강까지 들어온 놈들이 있었어. 그놈들이 말하길 서울에 남아 있는 잔존 부대가 인천으로 합류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군대라면 보통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아.”

    김명호도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그래. 인천에 있던 놈들이 서울역에 거점을 마련한 우리를 정확히 특정해서 접선을 꾀한 거야. 서로 거리가 있어서 정보도 제대로 닿지 않을 텐데, 정확히 우리가 있는 곳을 특정해서 찾아왔었다고.”

    서울역이 사람과 정보가 모이는 곳은 맞지만, 그것도 서울 내부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차량도 이용할 수 없는 일반인이 굳이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정보를 흩뿌렸을 리도 없거니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서울에 남아 있던 잔존 부대가 인천에 피신하면서 서울역에 대한 정보를 넘겼을 텐데, 굳이 서울역에 남아 있는 군인들을 확보하려고 쇄빙선까지 보내서 접선한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았다.

    최소한의 인원만 보내서 서울역에 뜻을 전달하든가, 아니면 연락망을 어떻게든 복구해서 인명 피해 없이 접선을 꾀할 수도 있었겠지. 거창하게 쇄빙선까지 끌고 들어올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쇄빙선에서 나온 놈들은 서울역의 밝은 불빛을 싫어하는 눈치였어. 일부러 멀찍이 떨어진 공터에서 대화를 나누길 원하더라고. 최진석 병장님은 안전한 장소에서 대화하길 원했으니 당연히 거절했지.”

    “그 뒤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한동안 외부에서 우릴 감시하는 듯하더니 곧장 떠났어. 신기한 건 그놈들은 이 어둠 속에서도 손전등 하나, 열상장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거야. 그리고 복장도 우리보다 훨씬 편해 보였고.”

    추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단촐한 복장, 빛을 싫어하는 기이한 특성, 어둠 속에서도 정확히 사물을 꿰뚫어 보는 괴물 같은 시력.

    김명호는 인천에서 무슨 변고가 터졌음을 직감했다.

    ‘이건 나중에 박한성 씨에게 따로 알려 줘야겠군. 우선은 시설 복구 작업에 집중하자.’

    정수 처리 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여지가 있는지 살펴보고, 손상된 부분이 있다면 추후에 정비공을 대동해서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번쩍하고 밝은 빛이 삽시간에 어둠을 지워 나갔다.

    “쓰읍…… 전력이 복구된 것 같은데?”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시야에 갑자기 밝은 빛이 내리쬐자 다들 눈을 찡그리다가, 곧 전등 불빛 아래로 보이는 참상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주변이 훨씬 더 더러웠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오물을 닦아 내고 정비를 끝마친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정수 처리 설비를 가동시키려면 넉넉잡아 며칠은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우선은 한강 물이 역류한 지점, 정확히는 저 흉물스러운 존재들이 기어들어 온 장소부터 메꾸는 작업이 1순위였다.

    * * *

    복합 발전소 재가동 절차를 진행하기에 앞서 비상 전력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30명은 곧장 시설 지하로 향했다.

    일단 비상 발전기로 전력을 공급한 다음 시설을 재가동시키기만 하면 전력은 어떻게든 확보할 수 있다. 안전성은 기존의 원전보다 훨씬 높고 효율도 나쁘지 않은 소형모듈원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처음엔 서울 한복판에 소형모듈원전이 들어선다고 했을 땐 땅값이니 안전이니 하면서 반발이 심했지만, 디그러쉬의 기술력으로 핵심 시설을 깊은 땅속에 파묻고, 미래그룹이 안전설계에 참여한 것으로 반발을 억눌렀다.

    게다가 완전 자동화라 시설 가동, 혹은 가동 중지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최신예 기술력의 특혜를 톡톡히 본 시설다운 스펙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서울 땅부자들은 다들 지저 도시 환상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서울보다 더 쩌는 지저 도시에서 살아갈 생각을 품고 있었다.

    지저 도시 덕분에 가진 자들, 가지지 못한 자들의 반발이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으니 서울 한복판에 이런 시설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당시에 전 세계 인류가 디그러쉬의 대단한 기술력과 지저 도시 프로젝트에 미쳐 있었으니, 안전성이 확실하게 검증된 소형모듈원전이 들어서는 것쯤은 큰 논란도 아니었겠지.’

    애초에 지저 도시 한복판에도 원자력발전소가 떡하니 들어선 상태다. 그 안전 설계를 대체 누가 했을 것 같은가? 당연히 미래그룹과 디그러쉬의 합작이다.

    지저 도시에도 짓는 것을 서울 한복판에 못 지을 게 뭐야, 같은 느낌으로 먼저 자리 잡은 게 바로 이 최신예 전력수도복합발전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수많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기술자와 관리자 몇 명 구해서 이곳에 박아 두기만 한다면, 최종적으로 이곳을 확보한 우리가 서울을 확실하게 집어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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