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19화 (119/211)
  • 인프라 복구 작전 (1)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지저 도시에서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서부 곡창지대에서 벌어진 대사건이 조용히 묻혔다는 사실에 더 놀라게 된 일주일이었다.

    “준비됐어, 동생?”

    “저야 항상 준비됐죠.”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내게 다가온 차도식이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서부 곡창지대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진 이후, 정부와 군은 아예 서부 곡창지대를 원천 봉쇄해 버렸다. 대기업 소속 파견 직원들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보안에 얼마나 힘쓰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 반동이라고 해야 할까, 당초 예정되어 있었던 식량 배급 일정이 조금 더 미뤄졌다는 루머가 지저 도시 전체에 퍼졌다.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누구에 의해 전파된 루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루머는 일종의 전염병과 같아서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가짜 뉴스고 나발이고 주변에서 온통 그 얘기만 떠들어대는데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루머는 그냥 루머일 뿐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어 버리면 의미가 없다.

    덕분에 우리같은 밀수조직도 상황이 조금 난처해졌다.

    서북부 지구 개발을 위해 자재와 장비 그리고 사람까지 끌어다 쓰고 있는지라, 필연적으로 ‘임금 체불’이라는 크나큰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근 시일 내에 수확이 끝난 각종 곡식과 열매, 그리고 도축된 고기가 가공을 거쳐 전 지구에 배포되면 그것으로 퉁 치려 했었다. 그 계획이 어그러진 탓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세상일 참 모른다니까. 설마 서부 곡창지대에 그런 사건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어? 동생은 알고 있었어?”

    “저도 몰랐어요. 예상은 했지만.”

    “어떻게 예상했는데?”

    “두 번의 대규모 정전을 통해서 지저 도시를 노리는 무언가 혹은 어떤 세력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서부 곡창지대를 한 번 둘러볼 겸 방문했던 건데, 제가 방문한 당일에 그런 일이 터진 거죠.”

    “동생의 선구안 덕분에 자칫 재앙이 될 뻔한 것을 막았으니 대단한 일이라고 보는데.”

    “너무 띄워 주지 마세요. 반쯤은 그냥 감이었으니까요. 그보다 서북부 지구 공사 현장을 책임져야 하시는 분이 이른 새벽부터 여기까지 왜 나오셨어요?”

    “조직의 가장 큰형님이 동생들 챙기는 데 이유가 필요하냐? 자식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 같은 거 몰라?”

    “전 몰라요.”

    진짜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어른이 되자마자 집을 뛰쳐나왔을 때도, 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군에 입대할 때도 언제나 혼자였으니까.

    그런 나의 짤막한 대답에 차도식은 흠칫하더니, 곧 킬킬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가끔은 여유 좀 가지고 살아. 동생이 능력 있고 대단한 사람이란 건 이미 다들 알고 있어. 다만 인간미가 쪼오오오끔 부족할 뿐이지. 그것만 보충하면 여자들이 줄을 설 거라니까?”

    “아니, 전 대학에서도 여자들이 줄을 섰다고요!”

    “진도는 빼 봤고?”

    “…….”

    나는 배낭에 장비를 쑤셔 박고 새로 마련한 외골격 파츠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차도식을 날려 버리면 내가 차도식파를 꿀꺽할 수 있지 않을까?

    “흐흐. 뭣하면 내가 소개팅이라도 알아봐 줄까? 차도식파 에이스가 나온다고 하면 진짜 여자들이 줄을 설 것 같은데.”

    “아오…….”

    만약 나도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과거로 회귀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여자친구부터 만들어야겠다. 서러워서 진짜.

    “뭐, 농담이니까 너무 깊이 받아들이지는 말고. 이번에도 애들 좀 잘 챙겨 줘.”

    “……지난번에는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어요.”

    “나도 알아. 죽은 애들은 우리 조직이 책임지고 유가족들 챙겨 주기로 했어.”

    “…….”

    롯데호텔에서 벌어진 총격전은 우리 조직원들의 목숨을 몇 명이나 앗아 갔다.

    사실 조직원들을 그런 일에 휘말리게 한 것 자체가 내 과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찝찝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차도식파에선 그들의 유가족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책임져야 할 유가족들이 더 늘어난다면 어떨까.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죽고, 네 명이 죽고, 여덟 명이 죽고, 죽고 죽고 또 죽다 보면 그들도 언젠가는 이런 생각을 품지 않을까.

    ‘아, 죽은 사람은 그냥 조용히 잊혀져야 하는구나. 어쨌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나는 그렇게 조용히 잊혀진 사람들을 알고 있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게 나뿐이라는 것도.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는 한편, 나 역시 윗대가리들처럼 이미 죽어 버린 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기고 있었다.

    내가 그들처럼 괴물이 되어 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인간이란 족속은 원래 다 이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최소한 지금까지 내가 겪어 왔던 인간 사회는 다 그런 형태였으니까.

    “탑승 준비!”

    저 멀리서 엘리베이터 관리병이 크게 외치자 밀수범들이 뻑적지근한 몸을 풀면서 하나둘씩 서슬 퍼런 안광을 밝혔다.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이권! 더 많은 정보!

    이곳의 인간들은 무엇이든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참을 수 없는 충동과 무한한 탐욕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수백 명에 달하는 밀수범들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상으로 나가는 이들을 배웅하는 차도식과 몇몇 조직의 장들을 한 번 돌아보곤, 엘리베이터의 지정석에 앉았다.

    다른 조직과 달리 차도식파는 서북부 개발 사업에 몰두하면서도 비교적 물자부족난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노원역과 꾸준히 거래를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서울역에서 내가 맡아 둔 자원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주기적으로 소수 정예 인원을 보내 필요한 만큼 자원을 가져오게 했기 때문에 의약품이나 식료품 공급에는 큰 차질이 없었다. 다만 공사를 계속하기 위한 임금 및 대금 지불에 필요한 양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또 밖으로 나가는 거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맹렬한 추위와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이 기다리고 있는 지상으로.

    “도착했습니다!”

    엘리베이터 관리병의 외침에 밀수범들은 인력사무소에 나온 노동자들처럼 우르르 몰려 나갔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린 인력사무소에 나오는 노동자들과 꽤 닮은 점이 많다.

    위험한 일에 목숨을 걸고, 노동에 걸맞은 대가를 받으며, 이른 새벽부터 일을 하러 나선다는 점 등등.

    ‘그리고 짬밥이 맛이 없다는 것도 똑같지.’

    이놈의 전투식량은 대체 언제까지 달고 다녀야 하는지.

    수백에 달하는 밀수범들이 군대처럼 각을 잡고 격벽 앞에 도열하자, 남부 격벽을 담당하고 있는 대위가 익숙하게 확성기를 들고 안내사항을 전파했다.

    문을 열고 닫는 횟수와 시간대, 그리고 위험 요소를 격벽 근처까지 끌고 오지 말라는 주의사항, 마지막으로 무사 복귀를 바란다는 헛소리까지.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안내사항 전파가 끝나자, 마침내 격벽이 개방되었다.

    근 2주 만에 다시 나서는 지상.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기상 진정한 겨울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맹추위였다.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격벽의 틈새에서부터 요란법석을 떨고 있는 강풍이 온기에 익숙해져 있던 밀수범들의 살갗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스쳐 지나갔다.

    웅웅 하고 울려 퍼지는 바람은 밀수범들의 무거운 어깨에 걸터앉아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너흰 이제 좆됐다고.

    “체감 기온은 벌써부터 영하 30도네.”

    “섬유 공장에서 먼저 방한 용품을 팍팍 찍어 내고 있기 때문에 방한 대책은 완벽합니다.”

    내 혼잣말에 김명호가 두툼한 바람막이를 내보이며 말했다.

    지저 도시의 평균 기온은 살짝 싸늘하거나 선선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동을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섬유 공장이었다.

    덕분에 풍족한 물자를 투자해서 방한 용품을 구입한 밀수범들은 추위 앞에서도 벌벌 떠는 대신, 주먹을 꽉 쥐었다.

    “전원 고글 및 방한모 착용 확인!!”

    “확인!”

    밖으로 나서기 전, 밀수범들이 서로의 고글과 방한모에 문제가 없는지, 예비용은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최종 작업에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절차가 끝나면 남을 사람은 남고, 나갈 사람은 나간다.

    지상 작전 초기에는 남을 사람들이 제법 남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격벽 안에 남지 않았다. 지상의 물자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선 더 많은 일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자!”

    “가즈아아아아!”

    “자! 드가자!”

    여기저기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조직의 행동대장들이 외치자 개미 같은 조직원들도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대부분의 조직들은 물자가 풍부한 은평구로 향했지만, 차도식파는 볼일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지난번처럼 곧장 남하했다.

    현재 우리가 확보한 전초 기지는 총 4개다. 노원역, 롯데호텔, 서울역 그리고 63빌딩.

    63빌딩은 주인 없이 그냥 방치되고 있는 곳이지만, 내부 정리는 내가 해 두었으니 입구에 바리케이드만 잘 세워 두면 완벽한 전초 기지였다.

    이중에서 우리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소는 노원역과 롯데호텔 그리고 63빌딩이다. 서울역은 전 알파 중대원들이 중장갑보병들을 긁어모아서 점거했으니 우리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해서, 나는 서울에서 단순히 물자를 수집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서울 일부 지역을 완전히 탈환해서 직접 관리하고, 세력 확장을 꾀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일전에 여단장이 언급했던 한강 인근의 발전소와 정수 처리 시설 복구였다.

    본래 지저 도시에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물과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되었다가, 막상 효율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서울 중심부에 물과 전력을 추가 공급하는 용도로 전락한 시설들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자동 안전 시스템에 의해 정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단 복구만 하면 한정된 지역이나마 물과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어떻게 그런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느냐면, 여단장이 내게 남긴 디그러쉬제 녹음기의 내용을 살피다가 알게 되었다.

    그는 여단장답게 민간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군의 보안 시설 위치나 유사시 보급을 위한 물자 은닉처에 대한 정보를 녹음기에 빠짐없이 녹음해 두었다.

    수도권 인근 부대는 대부분 급하게 인천으로 갔다고 하니, 군의 보안 시설이나 물자 은닉처는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건 잠시 뒤로 제쳐 두고, 우선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부터 복구해야겠지.’

    지저 도시뿐만이 아니라 지상에서도 차도식파, 정확히는 내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

    서울역처럼 정보와 물자 그리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일종의 허브(Hub)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서울역으로 가서 제가 아는 사람들과 미팅을 좀 하고, 그쪽 도움을 받아서 동작대교를 건널 생각이에요. 이번에는 조금 장거리 행군이 될 테니까 조직원들에게 체력 분배 잘하라고 해 주세요.”

    내 말에 김명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서울역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퍽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런 시대인데 지상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겁니까?”

    “정확히는 군 시절 후배들인데, 그놈들이 간 크게도 간부와 장교들을 싹 다 프래깅해 버리고 군인들 긁어모아서 서울역을 점거해 버렸더라고요.”

    “미쳤군요. 평시였다면 즉각 진압당했을 겁니다.”

    “평시가 아니라서 미친 짓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실제로 성공했고.

    그렇게 우리는 장갑차 2대와 화물 수송 차량 5대, 그리고 엑소스켈레톤 착용자 20명과 미착용자 50명을 이끌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좋든 싫든 서울역에 있는 놈들도 내 계획에 협조해 줄 수밖에 없을 거다.

    내가 63빌딩 침투 계획에 협조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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