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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18화 (118/211)
  • 오염 (5)

    나는 어디 중2병이나 걸린 놈들처럼 ‘느려’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상대는 더럽게 빨랐으니까.

    내가 코앞에서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것을 눈치채고서 순간적으로 온몸을 비틀듯 옆구르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 역시 또 한 명의 비참한 희생자로 전락했을 것이다.

    콰아아아앙!

    중장비가 건물을 후려치기라도 한 것처럼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진동이 주변 일대를 강타했다. 지면에 바짝 엎드린 상태였던 나도 대지가 요동치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솟구치는 물보라와 진흙 틈새로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안타깝게도 탄환은 그 무엇도 꿰뚫지 못한 채 허공을 가로질렀다.

    놈이 첫 습격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즉시 몸을 숨긴 것은 새삼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감시 드론이 이쪽의 소란을 눈치챘으니까.

    지저 도시 내에서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는 범죄자를 긴급하게 제압하기 위해 마취총, 혹은 테이저건을 탑재한 모델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테이저건을 충전한 채 재빨리 다가왔지만, 적은 이미 땅굴 속으로 몸을 숨긴 지 오래였다. 드론이 멍청한 건지 내가 멍청한 건지는 제쳐 두고, 적이 멍청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페이크를 간단하게 간파한 것도 모자라 역으로 나를 습격하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지능이야.’

    물론 나이트워치 중에서도 영악한 놈들이 제법 있긴 했지만,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적은 그런 놈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 마치 같은 인간을 상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푸흡…… 퉤!”

    입가에 묻은 진흙을 대충 훑어 내고, 여전히 멍청하게 돌아가고 있는 센트리건을 살폈다.

    아마 대량의 진흙과 물보라가 솟구친 탓에 센트리건이 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 결과 주인이 습격받는 와중에도 그냥 돌아가기만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미래테크에 또 한 번 방문하게 되면 AI 성능을 좀 더 개선해 달라고 쪼아야겠다. 최소한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깨우치는 도지 정도는 돼야지.

    ‘첫 습격이 실패했으니 이제 간을 보겠지.’

    이대로 무른 땅에 있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놈이 자유자재로 땅굴을 파헤치고 다닌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무른 땅은 이미 놈의 홈그라운드였던 셈이다.

    천천히 배낭과 센트리건을 회수해서 물러서려던 나는, 문득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는 벼들의 높낮이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수확 철이 다가오면 벼는 대부분 고개를 푹 숙이기 때문에 바람이라도 불지 않는 한, 높낮이에 큰 차이는 없다. 똑같은 품종을 똑같은 환경에, 똑같은 방식으로 키워 냈으니까.

    그런데 유독 움푹 파여서 키가 낮아진 놈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땅이 융기한 것처럼 키가 커진 벼도 있었다.

    나는 문득, 놈이 주기적으로 땅 밖에 모습을 드러냈던 이유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기 방울…… 그래, 숨을 쉬는군.’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는 숨을 쉬지 않는다. 놈들이 우리처럼 평범하게 숨을 쉬고 신진대사를 하는 생물이었다면 지금쯤 지상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놈들과 몸을 부대끼며 코앞까지 접근해 본 경험상, 놈들의 숨소리를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답이 나왔다.

    “지금 모든 드론을 총동원해서 이 일대에 농약을 뿌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숨도 못 쉬게끔!”

    내가 그리 외치자 하늘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드론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멈췄다.

    무른 땅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놈이라고 해도 호흡을 해야 한다면, 호흡을 할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어 주면 된다.

    땅굴에 숨었다가 튀어나오는 것을 반복하며 이곳을 자신의 홈그라운드라고 여기는 놈의 착각을 산산조각 내 줄 작정이었다.

    곧 내 말귀를 알아들은 드론 너머의 ‘누군가’가 드론을 원격조작 해서 내부 탱크에 보관된 농약을 살포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방독면을 착용하고, 논의 중심부에 위치한 스프링쿨러를 향해 뛰었다.

    본래 논에 물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 배관을 통해 지하수를 끌어오는 이 대형 스프링쿨러는 평소라면 원격 조작으로만 물을 공급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언제나 기계 고장 및 정비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물건들이라 수동으로 조작할 방법도 있었다.

    최소한 이 논의 벼는 올해 수확할 수 없게 되겠지만, 군부대가 이곳을 폭격으로 싹 태워 버리거나 더 많은 희생자를 낳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남는 장사였다.

    밸브를 수동으로 개방하고 마지막으로 호스 개폐 장치까지 수동으로 열어젖힌 순간, 막대한 양의 물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논의 규모가 큰 만큼 물을 빠르게 채우기 위해 수압을 높인 듯했다.

    나로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깨끗하게 정수된 지하수로 셀프 세탁을 하면서, 나는 소총을 든 채 논을 면밀하게 살폈다. 방독면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겉옷을 머리 위에 덮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아무리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중장비가 아닌 이상에야 단단한 땅을 두더지처럼 파고 다닐 수는 없을 터. 그렇다고 무른 땅에 계속 숨어 있자니 점점 차오르는 물과 독한 농약에 버티기 힘들 것이다.

    결국 물과 농약이 논두렁에서 넘쳐흘러 다른 밭으로 넘어가는 지경에 이른 순간, 저 멀리서 벼를 한 무더기나 파헤치며 튀어나온 상대를 포착했다.

    그것은 굉장히 기괴한 구조의 팔을 가지고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인간의 형태를 희미하게 남긴 ‘무언가’였다.

    내가 어째서 인간의 형태를 언급했는가 하면,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에게선 찾기 힘든 인간미가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털이 남아 있는 두개골, 검은 체액을 줄줄 흘리고 있는 두 눈, 비대하게 부풀어 올라서 심장의 맥동과 함께 들썩이고 있는 흉부. 그리고 검은 뼈가 마구 돌출되어 기괴한 갈퀴처럼 변해 버린 양팔.

    나는 저것이 명백하게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으면서, 동시에 인간이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생명공학에 대해 그리 해박하진 않지만, 저것에 대해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린아이가 신이 나서 찰흙처럼 엉망진창으로 빚은 DNA 덩어리’라고 말하겠다.

    무엇보다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는, 우선 검은 체액을 줄줄 흘리고 있을지언정 눈이 멀쩡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똑바로 마주 보았음에도 눈이 가렵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는 농약과 물 때문에 고통스러운 듯 전신을 마구 비틀었다. 나는 농약이 쏟아지지 않는 스프링쿨러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놈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낚시꾼에 의해 물 밖으로 나오게 된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는 놈의 꼴을 보고 있자니, 역시 내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더 망설일 것도 없이 이번에야말로 놈을 끝장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 타타타!

    숙련된 사수의 3점사 사격에 놈의 짓물러 터진 피부가 퍼벅 하고 꿰뚫리며 검은 체액을 흩뿌리고, 박살 난 육편과 뼛조각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놈은 필사적으로 숨을 쉬기 위해 반쯤 뭉개진 얼굴로 꺼억꺼억 입을 벌렸다.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 한다는 행위에서 인간 특유의 생존 본능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저런 것으로 전락해 버린 인간에게 인간미니 인간성이니 하는 잣대를 가져와 봤자 하등 쓸모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17번 땅굴에서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했던 그 북한 과학자처럼. 우리를 습격했던 북한군들처럼.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서도 그저 조용히 추레한 마을에서 멸망을 기다릴 뿐이었던 북한 사람들처럼.

    인간이길 포기한 시점에서 그것이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고 한들,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올곧게 인간이어야만 한다.

    자의든 타의든.

    타타타! 타타타타타타타!

    조정간을 연발로 바꾼 나는 땅과 벼를 마구 파헤치며 달려오기 시작한 놈을 향해 미친 듯이 탄환을 퍼부었다. 드디어 적을 포착한 드론들도 마취총을 잇달아 발포했다.

    놈의 기괴하게 뒤틀린 신체에 수많은 탄환과 마취탄이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관심사는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내가 멀쩡히 서 있는 곳은 깨끗한 물과 함께 호흡이 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일까. 땅굴을 파기 적합한 팔로 땅을 내려찍으며 조금씩 전진해 왔다.

    그리고 놈과 나의 거리가 대략 10m 안팎으로 좁혀졌을 즈음, 나는 ‘본능’적으로 사격을 중지하고 몸을 옆으로 굴렸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꿰뚫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음이 짤막하게 울려 퍼졌을 때,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들어 옆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나이트워커가 내뱉는 특유의 길쭉한 혓바닥 형태의 촉수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영악한 새끼네.”

    자신이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가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굳게 믿도록 일부러 흉측하게 뒤틀린 모습을 보여 주면서 사정거리까지 접근했다가, 최후의 한 방으로 놈들과 같은 촉수 공격을 자행할 줄이야.

    내가 가슴팍이 꿰뚫린 채 사망한 군인을 보지 못했더라면 무조건 당했을 기가 막힌 페이크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또 한 번 정보가 가진 힘의 우위를 보여 주었다.

    사소한 정보 하나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수색과 분석을 했던 나의 한 끗 차이 승리였다.

    뻣뻣하게 굳듯이 선 채로 죽어 버린 놈을 바라보면서 나는 드론을 향해 농약 살포 중지를 요구했다. 그러자 모든 드론이 일시에 농약 살포를 중지하고 최소한의 감시 드론만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진이 빠질 대로 빠진 나는 농약 범벅이 된 논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을까 하다가,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서 서둘러 논을 빠져나갔다.

    마음 같아선 저것의 샘플이라도 채취해서 또 한 번 미래그룹에 교섭거리로 써먹고 싶었지만, 주변 상황과 내 신분상 그럴 수는 없었다.

    서부 곡창지대에서 대사건이 터졌다는 건 이미 군대와 기업 그리고 정부의 귀까지 흘러 들어갔을 터.

    특히나 이 모든 상황을 감시하고 있던 디그러쉬가 나의 수상쩍은 행위를 용납할 리가 만무했다.

    해서, 나는 조용히 이곳을 이탈해 관리 사무소에서 전신을 깨끗하게 세척한 뒤, 임시 군인 신분을 반납했다.

    현장 지휘관은 내게 표창은 물론이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어떻게든 나를 붙들려 했지만, 나는 그저 긴급 상황에서 병역의 의무를 행한 대가로 조용히 이곳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윗대가리가 직접 손을 써서 없앤 브라보 중대의 전역자가 그 윗대가리와 직접 만나 표창과 훈장을 받는 건 도가 지나친 코미디였다.

    ‘내 정보가 밝혀지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내가 어떤 목적으로, 또 어떻게 서부 지구를 방문했는지는 들키지 않겠지.’

    서부 곡창지대를 지켰다. 미래의 서북부 지구가 번영할 수 있는 기회를 지켰다.

    지금은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 * *

    “우리의 대의를 방해하는 떨거지들이 이 나라에 있다더니만, 결국 이 지저 도시까지 침투하고 말았는가.”

    “송구스럽습니다.”

    “아니, 자네가 송구할 것이 뭐가 있겠나. 오히려 자네 아들이 자칫 대사건으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을 미연에 방지했으니 상을 받아도 모자랄 판국인데.”

    이름과 신분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명’이라 불리우는 노신사는 자신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는 중년 사내, 박한화에게 그리 말했다.

    두 사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마트글라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감시 드론들이 촬영하고 있던 서부 곡창지대의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감시 드론에는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 되었지만, 음성 분석 결과와 서부 지구 게이트 통과 명단을 통해 자네 아들임이 확인되었지. 변변찮은 장비도 없이 저 흉측한 것을 처리했으니 퍽 대단한 아들일세.”

    “많이 부족하고 철도 들지 않은 녀석입니다. 자신이 바깥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지요.”

    “그조차도 바깥에서 우리의 대의를 방해하고 있는 ‘흑연교’에게 타격을 주는 행동 아닌가. 적의 적은 우리의 아군이라고도 할 수 있지.”

    비서가 가져다준 새로운 찻잔을 집어 든 노신사는 샘플 채취 겸 운송용 대형 드론이 파견된 현장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저 흉측하고 기괴한 생물은 틀림없이 살아생전 평범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이 지저 도시에 숨어든 쥐새끼들이 더러운 수단으로 무고한 인간의 몸을 주무른 결과, 저 용서받지 못할 존재가 탄생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야 ‘바이러스’를 우상숭배하는 흑연교나, 치료제 같은 아들이나 아무래도 상관없네. 그저 우리가 위대한 고대 선조들의 길을 뒤따라 걷는 것에 방해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고대 선조들의 터를 발견한 건가?”

    “추측되는 장소가 몇 군데인가 있습니다. 일본과 대한민국 지저 도시 사이, 그러니까 동해 아래에 위치한 지점에서 굉장히 높은 기온이 감지되었다고 합니다.”

    “아아, 이 싸늘하고 어두컴컴했던 지저 세계에서 우리의 위대한 고대 선조들이 태양 없이도 열기와 빛을 만들어 냈던 그 성유물. 10년 전 최초로 이 세계에 도달했던 탐사대는 그것을 손에 넣지 못했었지.”

    “최초 탐사대가 발견했던 그 장소를 사고로 인해 미국이 폐쇄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10년은 더 빠르게 계획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끌끌…… 멍청한 짓이었지.”

    노신사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 감미로운 차의 향을 음미하며 눈을 감았다.

    위대한 고대 선조들이 지저 세계로 파고들었듯, 그들의 후손인 자신들 또한 기꺼이 이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제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지식, 문화, 역사, 생태, 선구안을 손에 넣기까지 자신들은 끝없이 땅을 파고 지저 세계를 누빌 것이다.

    그것이 디그러쉬(Dig Rush)의 존재 의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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