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17화 (117/211)

오염 (4)

“지독하군.”

꽤 높게 자란 밀을 밀어젖히자 그 안에서 사지가 비틀린 채 싸늘하게 식어 있는 시신이 나왔다. 나와 같은 군용 헬멧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진압 작전을 나온 군인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나중에 조사단이 이 시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고인의 총을 집어 거꾸로 박아서 장대처럼 세워 두고 그 위에 헬멧을 얹어 주었다. 예비 탄창과 수류탄은 내가 사용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빼냈다.

물론 탄약과 수류탄을 빼내면서도 시신의 훼손 정도나 직접적인 사인을 명확히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끔찍할 정도로 사지가 뒤틀려 있긴 했지만, 이 이름 모를 군인의 사인은 가슴팍에 머리통만 한 크기의 구멍이 뚫린 심장 파열에 의한 즉사임이 확실했다.

인간에게 아무리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준다고 한들 의외로 쉽게 죽지는 않는데, 고통에 의한 쇼크로 사망하기 전에 기절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짜 쇼크사는 기절조차도 먹히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이어지는 고통, 혹은 극히 짧은 시간에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을 한 번에 받았을 때나 발생한다.

‘표정근이 완전히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니 곱게 죽진 않았어. 사지가 먼저 뒤틀린 다음 죽기 전에 흉부를 꿰뚫린 거야.’

평범하게 죽었다면 일반적으로는 눈을 멍하게 뜬 채, 혹은 잠들 듯이 눈을 감은 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로 사망한다. 반대로 경악한 표정, 뒤틀린 표정이라면 사망 직전까지 끔찍한 고통을 받았음을 의미했다.

그야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사지가 뒤틀리면 이렇게 되겠지.

시신에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었기에 차마 고인의 부릅뜬 눈을 감겨 주지는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회수한 예비 탄약과 수류탄을 챙기고서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조용히 사고 지점을 벗어났다.

사실 검시관처럼 시신을 마구 헤집지 못한 진짜 이유는 달리 있었는데, 머리 위를 정신없이 날아다니던 드론 떼 중 하나가 이탈해서 내게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마치 이 사건의 원흉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것을 돕겠다는 양, 나보다 조금 앞서 나가면서 스마트글라스를 이용해 예상 이동 경로를 알려 주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날 감시하는 용도도 있을 텐데…… 지금은 임시이긴 해도 군 소속이니 나도 찔릴 건 없어.’

이전에도 말했듯이 디그러쉬제 드론은 정부에서 지정한 ‘기밀’에 해당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서 접근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거나, 아예 촬영 및 녹화가 불가능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지금 같은 경우도 아군 인식 씰을 붙인 나를 ‘군인’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 내가 어디 소속의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내 얼굴도 자동 모자이크 처리된 상태로 촬영 중일 터.

그런데도 굳이 드론이 들러붙어서 나를 밀착 감시 하는 이유는, 정장을 입은 이름 모를 임시 군인 한 명이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건지 궁금해서 그런 것이리라.

솔직히 나 같아도 궁금해서 감시 드론 하나 붙여 둘 것 같다.

일단 드론이 알려 주는 방향대로 열심히 움직이자, 곧 땅이 단단한 밭을 넘어서 질척질척한 논이 나왔다.

꽤 열심히 걸었다고 생각했더니 밀밭을 넘어 벼를 심어 둔 논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벼는 밀보다 키가 작은 데다 수확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전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렇게 물든 황금벌판 너머에서 나는 이쪽을 향해 죽어라 달려오고 있는 군인 몇 명을 발견했다. 그들은 어디서 넘어지기라도 한 듯, 전신에 더러운 진흙과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상태였다.

나는 구태여 그들을 붙잡지 않고 말없이 그들을 지나쳤다. 그들 역시 나를 붙잡고 정신병자처럼 횡설수설 떠들어 대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내가 저들을 붙잡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군인에게 있어서 생명 줄이나 다름없는 총도 어딘가에 내던진 채 죽어라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실성한 사람을 붙잡고 대체 무슨 일이냐, 저기서 뭘 보기라도 했냐고 물어 봤자 정상적인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저들이 먼저 도망쳐서 상층부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한층 더 지원군을 끌고 와 주길 바랄 뿐이다.

‘그보다 일반 보병만이 아니라 중장갑보병들도 함께 갔을 텐데, 보통 중장갑보병 선에서 다 해결되지 않나?’

농담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군용 엑소스켈레톤 하나라면 지상에선 코끼리 빼고 다 씹어 먹을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이다.

그런 든든한 아군과 함께 나선 군인들도 혼비백산해서 저 꼴로 도망칠 정도라면, 일이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 트인 하늘을 살피자 저 너머에서 뭉쳐 다니던 드론 떼가 다시 산개해서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놓쳤군.’

그게 무엇이든, 추적 중에 놓쳤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한층 더 서둘렀다.

갑작스러운 지저 도시 입주와 함께 최대 효율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곡창 지대를 형성했는데, 이 빽빽한 인공 밀림 속에 작정하고 숨어들면 사람이고 기계고 찾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무엇보다 곡창지대 특성상 땅이 무른 곳이 많기 때문에 숨어들기 편하다. 굳이 물을 채운 논이 아니어도 정기적으로 기계가 물을 뿌려 주는 밭이라면 땅굴을 파헤치는 건 껌도 아니었다.

그 근거로 나는 조금 전 진흙이나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 도망친 군인들을 떠올렸다.

당황해서 넘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논밭 한복판에서 성대하게 넘어진다고 해도 저런 꼴이 되지는 않는다. 군 시절에 대민지원을 해 봤기 때문에 안다.

그렇다면 답은 군인이 성대하게 넘어지고 진흙과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쓸 만한 환경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인간이 예상치 못한 땅굴 함정이라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걸 뒷받침하는 두 번째 근거가 바로 중장갑보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반 보병이 중장갑보병을 두고 도망칠 상황이라면, 반대로 중장갑보병 역시 도망쳐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쓰읍.”

예상은 했지만 군인들이 도망쳐 나온 장소로 향해 보니, 사람 키만 한 높이의 구덩이 속에 중장갑보병 두 명이 파묻혀 있었다.

장갑이 너무 무거운 데다 지형은 물러 터져서 쉽게 올라오지 못했고, 결국 무방비한 상태로 무언가에게 당한 게 분명했다. 앞 전에 본 시체와 달리 그들은 머리가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엑소스켈레톤은 고장 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진흙이 잔뜩 묻은 탓에 혼자 힘으로 벗겨 내는 것도, 다시 입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이미 감시 드론 중 하나가 그들 위에 부유한 상태로 붉은 비상등을 점멸하고 있었으니 시신과 엑소스켈레톤 회수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멧돼지처럼 열심히 논밭이나 헤치고 다니는 놈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텐데.’

나는 땅굴 너머로 또 다른 굴이 존재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감시 드론이 제아무리 하늘에서 각종 광학장비로 목표물을 찾아내려 한들, 이렇게 땅 밑으로 숨어 버리면 절대로 찾을 수 없다. 감시 드론 할애비가 와도 안 될 거다.

‘땅굴을 파서 함정을 만들고, 드론의 감시를 피하고, 강력하게 무장한 인간의 특정 부위를 파괴해서 일격에 죽일 만큼 영악하고, 그러면서도 약한 인간은 즐기듯이 괴롭히다가 죽여 버리는 잔악함까지 갖추고 있다.’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살의를 품고 달려드는 단순무식한 나이트워커보단, 좀 더 영악한 나이트워치의 특성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진짜 나이트워치가 이곳에 숨어든 것일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반반이라고 답하겠다.

조금 전에 도망친 군인들 역시 ‘그것’을 봤기 때문에 지레 겁먹고 도망쳤을 텐데, 나이트워치를 봤다면 가려움증을 이기지 못해 벌써 스스로 눈알을 파내고 있었을 것이다.

운 좋게 나이트워치를 보지 않고 중장갑보병들이 당하는 소리만 듣고 겁에 질려서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런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따지기엔 내가 서 있는 장소가 안전하지도, 내 상황이 여유롭지도 않았다.

드론들이 목표물을 놓친 이상 드론을 따라가 봤자 헛수고였기에, 여기서부터는 자신의 감을 믿고 움직이기로 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도 뭣하지만, 수색대의 감이란 걸 믿고 싶었다.

‘최소한 군대가 곡창지대를 폭격으로 조지는 일은 없게 해야 한다.’

내가 왜 서북부지대 개발 투자에 찬성했는데? 서부 곡창지대의 미래를 보고 과감하게 찬성한 거다.

그런데 여기가 망하면 우리의 피 같은 투자금도, 우리를 믿고 투자한 양반들도 다 같이 망할 것 아닌가.

북부 지구를 장악한 밀수 조직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건 둘째치고, 조직 자체가 공중분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내 자유에 대한 꿈도 다시 나락까지 떨어지게 된다.

좋든 싫든 서부 곡창지대는 번영해야 한다. 윗대가리들이 독식 좀 하더라도 낙수효과로 아랫놈들이 충분히 먹고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지는 것이다.

나는 체취를 숨기기 위해 진흙을 퍼서 얼굴이나 팔, 다리에 펴 발랐다.

군인들은 분명 큰 소음을 내며 움직였을 테니, 반대로 나는 목표물을 추적하기 위해 포복해서 거북이처럼 움직였다.

체취와 소음을 최소화하며 조용히 움직이다 보니, 바람이 불지 않았음에도 어디선가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음은 커지기도 했다가 작아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했다가 멀어지기도 했다.

마치 이곳에 겁 없이 혼자 들어온 인간을 찾기 위해 주기적으로 특정 위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물기와 진흙 덕분에 온도로 날 감지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 결국엔 밖으로 나와야 할 거다.’

잠시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소음이 울려 퍼지는 위치와 주기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며 규칙성이 있는지 확인했다.

‘땅굴에 다시 파고들었다가 튀어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추 10초 내외다. 게다가 소음의 진원지를 특정해 보면 10초 안팎으로 적어도 수십 미터는 이동한다는 건데, 땅굴을 굉장히 잘 팔 수 있는 외형과 크기를 가지고 있겠군.’

그제야 나는 이곳의 관리 직원들이 어떻게 흔적도 없이 행방불명 되었는지 이해했다. 저렇게나 민첩하고 음험한 놈이라면 생산 단지 한복판에서 홀로 작업하는 인간 한 명쯤은 순식간에 낚아챌 수 있을 테니까.

여기서 나는 결정적으로 마지막 추리를 완성했다.

놈이 먹이를 원하는 게 아니라 사냥이라는 행위 그 자체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소리 소문 없이 작업 인원을 살해, 그다음엔 출동한 군인을 고통스럽게 사지를 비틀어 고문하고, 최후에는 한 방에 가슴을 뚫어서 살해. 한술 더 떠서 위협적인 중장갑보병들을 함정에 빠뜨려 깔끔하게 살해,

먹이 확보가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시체를 외부에 남겨 두지 않았을 것이다. 두더지처럼 땅굴 속에 무력화한 지렁이나 벌레를 박아 두고 도시락처럼 까먹었겠지.

무엇보다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감시 드론이나 서부 지구 관리 직원, 군인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있다.

자신이 사냥당하는 입장이면서도 사냥을 포기하지 않는 과감한 호승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놈은 자신이 사냥당하는 입장임을 이해하고, 그걸 받아들였음에도 자신의 사냥을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사냥꾼이었다.

‘놈은 이미 수차례 사냥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자신감이 바짝 오른 상태겠지.’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인간이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한 번 삐끗해서 나락으로 가는 일이 왕왕 있듯, 그놈 역시 실패를 맛보지 못했기에 저렇게나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실패를 모르고 성공에만 취해 살아가는 인간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류가 어떤 것에 취약한지도.

나는 조용히 배낭 속에서 사무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군용 대검으로 팔목에 피를 내서 단축형 무거운 배낭에 마구 펴 발랐다.

마지막으로 겉옷을 벗어서 배낭에 입히듯이 걸친 뒤, 센트리건과 함께 저 멀리 던졌다.

꽤 묵직한 중량을 가진, 인간의 체취가 묻은, 인간의 옷을 걸친 무언가가 지면에 ‘철퍽!’ 하고 떨어진 순간.

그 앞에서 센트리건이 전개되며 ‘그럴듯한’ 소음을 만들었다. 놈이 군인들로부터 인식한 ‘기계음’을 센트리건 전개로 대체한 것이다.

그러자 저 멀리서 들리고 있던 소음이 귀신같이 멎었다. 10초가 지나고, 20초가 지나고, 30초가 지나도 희미한 소음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센트리건이 자동적으로 총구를 돌리면서 희미한 기계음을 흘리고 있었고, 내 체취가 잔뜩 묻은 배낭은 겉옷과 함께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저것이 인간이 맞는지 아닌지 직접 확인하려면 바로 지척에서 튀어나와야 하는데, 튀어나오는 순간 센트리건에 포착되어 탄환 세례를 맞이할 것이다.

반대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발밑에서 습격해도 상관없다.

그땐 저 배낭을 시야에 두고 있는 내가 직접 놈을 쏴 죽일 테니까.

‘넌 어느 쪽일까?’

연이은 승리만 믿고 또 한 번 쉬운 승리를 취하고자 하는 병신이냐?

아니면 다음 승리를 위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성실한 승부사냐?

바로 그때.

부글부글.

나는 코앞의 물웅덩이에서 작은 공기 방울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쯧. 생각보다 더 똑똑한 새끼였네.”

내 앞에서 진흙을 흩뿌리며 튀어 오른 거대한 형상이 엎드려쏴 자세로 누워 있던 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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