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16화 (116/211)
  • 오염 (3)

    그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진실(총성)이었다.

    휴게실 창가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거나 마른침을 꿀꺽 삼켜 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장바닥처럼 어수선했는데, 지금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입을 열지 못한다고 봐야겠지.

    탕! 타앙! 타타타! 탕!

    불행스럽게도 총성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최초의 한 발에서 모든 일이 끝났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으련만, 대체 언제쯤 최후의 한 발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됐네.”

    주변 사람들이 듣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무심코 중얼거렸다.

    하지만 누구도 내 감상을 부정하거나 의문을 품진 않았다. 문자 그대로 ✕된 상황이었으니까.

    총성이 울려 퍼졌다는 건 총을 쏴야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고, 총성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건 총성이 여러 번 울려 퍼져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일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아니나 다를까. 총성이 울려 퍼진 지 10초 정도 흐른 뒤에야 서부 지구 전역에서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이곳 관리 직원들은 가급적 사고에 대해 감추고 싶었겠지만, 총성을 접한 군인들이 빠꾸 없이 비상벨부터 눌러 버린 것이다.

    슬쩍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사광을 반짝이고 있는 디그러쉬 드론 떼가 붉은 빛을 점멸하며 집결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무엇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결전을 앞두고 힘을 모으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보였다.

    관리 직원, 군인 그리고 기업. 서로 비상사태에 따른 매뉴얼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것도 정보는 정보니까.

    하지만 그 일에 내가 휘말리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탈출해? 아냐, 너무 늦었어.’

    비상사태를 선포한 군인들이 할 일이 뭘까? 가장 먼저 주요 입구인 게이트를 봉쇄하고 각 군부대에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이다.

    또한 상층부에 보고하는 한편, 현장 지휘관의 판단하에 군인들을 소집하고 전투태세를 갖추게 하여, 언제든지 군사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매뉴얼이다.

    군인들의 육안으로도 확인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 펼쳐졌다면 즉각 개입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 일단 정확히 어떤 사고가 벌어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군인들이 당장 나서진 않을 것이다.

    대뜸 총성이 울려 퍼졌으니까 일단 비상사태부터 선포하고 명령이 내려오면 그때 움직이겠다는 거다.

    덕분에 지금 빠져나가려고 움직이다 걸리면 거동수상자 취급 받아 즉각 체포당할 것이고, 반대로 너무 늦게 움직여도 사방천지에 깔리게 될 군인들의 눈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미친 척하고 생산 단지(논밭)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서 몸을 숨기는 방법도 있지만, 내 힘으로 거대한 천연 미로를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니까 난 좋든 싫든 여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됐다는 얘기다.

    ―이야, 기업 소속도 아니신 분이 어떻게 미래그룹 보안 카드를 달고 들어오셨대?

    ―이 새끼 이거, 가방에 총도 있고 이상한 무기도 있는데? 캬! 요즘 테러리스트 위장 참 잘해요!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자격이 없고 묵비권을 행사할 경우 존나게 불리해질 것을 통보한다.

    군인들의 수색 작업에 걸려서 테러리스트로 지목되고 철컹철컹 엔딩 확정!

    날 감시하고 있는 국정원 요원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호신용 무기를 들고 다니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변명해도 믿어 줄 사람은 없겠지.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곳에서 가장 수상한 건 다름 아닌 나니까.

    그렇게 체포당한 나를 하나하나 파헤치던 정부는 결국 밀수 조직과 북부 지구의 비밀도 알게 되고, 내 자유를 향한 갈망과 꿈은 사법심판에 의해 개박살이 날 것이다.

    장담한다. 나는 정치범 수용소든 테러리스트 수용소든 어딘가에 갇혀 일평생 끔찍한 고통 속에 시달리다가 말년에 늙어서 노환으로 죽을 거다. 아니면 그 전에 혀 깨물고 죽든가.

    ‘그렇게는 안 되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내 계획이 성공하면 나는 진정한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통제당하지 않으며, 감시조차 허용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자유를.

    힘이 곧 평화를 만들듯, 지위가 곧 자유를 만든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어중간한 No.2가 아니라, 확고부동한 No.1이 되어야만 한다. 영원한 No.2로 만족하는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는 걸 증명할 것이다.

    “잠깐 지나가겠습니다. 길 좀 터 주세요.”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온 나는 직원의 당부도 무시하고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휴게실을 빠져나오려면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다들 통제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박한성 병장, 17번 땅굴로 가 줘야겠습니다.

    ―거부하겠다고요? 하하,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주사기가 보이지 않습니까? 이거 한 방이면 당신은 좋든 싫든 해야 할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인권…… 인권이라. 최근 들어 그런 것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늘었죠. 시대가 시대인지라 다양한 가치관이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덕분일까요?

    ―그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브라보가 아니라 알파로 갔어야 했다고. 그렇다면 이 주사를 15번이나 넘게 맞는 일도 없었을 테고, 비교적 편하게 일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을 텐데요.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통제받는 것을 즐길 리가 없지. 그렇고말고.

    그대로 휴게실을 빠져나온 나는 도로 1층 차고로 내려가 봤지만, 이미 비상사태 선포에 의해 차고 문이 자동으로 잠긴 것을 확인했다.

    관리 직원, 그중에서도 권한이 꽤 높은 사람이 직접 해제하지 않는다면 보안 문이 열릴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내부로 돌아온 나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문구가 쓰인 수많은 문을 지나쳐, 계단을 타고 올라가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곳은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용도로 쓰이는 곳인지 문을 열어 둔 상태였다.

    옥상으로 나서자 건물 내부에선 느낄 수 없었던 압박감이 전신을 옥죄듯 덮쳐들었다.

    이제는 귓가에 대못처럼 확실하게 박히고 있는 총성, 여전히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 사이렌. 그리고 저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하나둘씩 집결하는 군용 차량들.

    서부 지구 내부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건물 높이는 끽해야 4층 높이였기 때문에 배관을 잡고 내려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때마침 감시 드론 역시 총성이 울려 퍼진 곳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날 포착할 수 없었다.

    이 인근은 군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을 테니 빠져나가려 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역으로 파고든다!’

    건물 주변에 적당히 심어 둔 관상용 나무나 꽃밭을 지나쳐 도로 한복판에 정차한 군용 차량에 접근했다.

    이미 빠르게 하차한 군인들은 각자 장비를 챙긴 채 사고 지점으로 달려 나간 지 오래였다. 그새 진압 명령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휘 차량에는 지휘관과 부사관 그리고 병사 몇 명이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곳으로 향했다. 곧 관측 장비로 나를 확인한 병사 한 명이 튀어나와서 정지 신호를 보냈다.

    “정지! 정지! 현재 이곳은 민간통제구역으로 선포된 상태입니다! 신원을 밝혀 주십시오!”

    나는 미래그룹 보안 카드와 꼭꼭 숨겨 두었던 ID 카드를 꺼내 높이 치켜들었다.

    “미래그룹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박한성입니다! 그쪽 지휘관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곧 부사관 한 명이 더 나와서 내게 다가오더니, 보안 카드와 ID 카드를 모두 확인했다. 실제로 등록된 카드들이 맞는지 조회하기 위해 군용 태블릿으로 신원 조회까지 했다.

    나는 이미 합법적으로 서부 지구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명단을 작성했기 때문에 군의 전산망에 출입 보고가 올라온 상태였다.

    “이름 박한성 씨, 직급은 05, 그런데 진짜배기 미래그룹 보안 카드를 가지고 계신 걸 보니 정규직은 아니지만 계약직으로 일하시는 건 맞는 것 같고…… 일단 신원은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중대장님과는 무슨 용무로?”

    “사고가 터지지 않았습니까. 여기가 앞으로 우리 밥줄이 될 곳인데 뭐가 잘못되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임시로 징집해 주십사 해서 찾아왔습니다.”

    징집은 보통 국가가 전시체제에 돌입했을 때, 즉 계엄령과 함께 징집령이 떨어졌을 때나 할 수 있는 지휘관 계급의 권한 중 하나였다.

    국방의 의무를 가진 남성은 모두 법적으로 징집에 응할 의무가 있기에, 이걸 역으로 이용하고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아니, 선생님, 걱정도 참 많으십니다. 이미 저희 부대가 나서서 사태 진압 중인데 뭣 하러 의미도 없고 힘든 병사 노릇을 하시려고…….”

    부사관은 짜증 반 걱정 반이 섞인 얼굴로 나를 만류했지만,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저 멀리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누군가의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비명도.

    “아직 저 예비군 기간 안 끝났습니다. 그리고 전직 중장갑수색대 출신입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애초에 조회해 보면 제 전역 신고 날짜랑 부대명까지 다 뜨지 않습니까? 진짜, 계약직은 이런 거라도 해서 기업 이미지에 도움이 되는 실적을 쌓아야 정규직이 될 수 있단 말입니다!”

    “미래그룹 같은 대기업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마는, 그래도 진짜 이건 아닙니다, 선생님…….”

    “어차피 저 같은 계약직 나부랭이들은 하루 벌어 먹고사느라 여기저기서 치여 삽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지옥이에요! 우리 가족이 쫄쫄 굶고 있는데 청년 가장인 제가 이번에 정규직 못 달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러니까 진짜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제가 뭐라도 하게 해 주십시오!”

    하사는 내 ID 카드에 새겨진 미천한 신분의 상징인 직급 코드, 그리고 미래그룹 소속 계열사의 계약직 나부랭이로 추정되는 옷차림과 보안 카드에 망설이는 듯하더니, 결국 나를 지휘 차량으로 안내했다.

    “중대장님, 민간인 한 명이 임시로 자원입대 요청을 해 왔…….”

    “남는 하이바랑 아군 식별 씰 있으면 빨리 씌워 줘! 총이랑 무전기도 하나씩 챙겨 주고!”

    차량 안쪽에서 무전을 받고 있던 장교가 대뜸 고함을 빽 지르자 하사는 기겁을 하면서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멀리서 총성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전기 너머로는 총성과 함께 섞여서 흘러 들어오는 누군가의 비명이 지휘 차량 내부에서 메아리쳤다.

    “뭐 하고 있어?! 전직 중장갑수색대 출신이라며! 내가 책임질 테니까 일단 장비 챙겨 주고 투입시키라고!”

    그의 호통에 하사는 재빨리 내게 남는 장비를 챙겨 주었다. 군복이나 군화까지 남지는 않았지만, 헬멧이나 총, 군용 배낭 정도는 여분이 남아 있었다.

    아군 식별 씰까지 부착한 나는 총과 무전기를 하나씩 받아 들고 곧장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일반적인 병사라면 반드시 부사관이나 장교의 지휘를 받아야겠지만, 전직 중장갑수색대 출신이라는 점이 제대로 먹힌 듯했다.

    사무 가방을 대충 군용 배낭에 쑤셔 넣고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는 생산 단지를 향해 죽어라 뛰었다. 아군 식별 씰을 부착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테러리스트로 오해받을 일은 없었다.

    ‘내가 설마 자원입대를 하려고 군인 바짓가랑이를 잡는 날이 올 줄이야.’

    박한성 일생일대 최고의 수치 플레이였지만 이번만큼은 참기로 했다.

    지금은 그것보다 사태의 원흉으로 오해받는 것을 피하고, 정보를 캐내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메케한 화약연이 자욱하게 깔린 밀밭을 뚫고 들어간 나는 곧 운석이라도 충돌한 것처럼 파여 있는 거대한 크레이터와 마주했다.

    이곳이 본래 사고 지점이었던 것은 확실하겠지만 지금은 사고의 원흉도, 그걸 제압하기 위해 나선 관리 직원과 군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총성과 사람의 비명은 이 미로 같은 생산 단지에서 매우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쓰읍.”

    이제 사고 원흉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기의 발견이라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나는 지급받은 K-2C 소총을 들고 난장판이 된 밀밭으로 다시 움직였다. 다행히 곡식에 불이 옮겨붙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게 더 위험했다.

    ‘수류탄이나 유탄에 의한 폭발이 아니라면, 대체 조금 전에 들렸던 그 폭발음은 뭐였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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