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14화 (114/211)
  • 오염(1)

    지상과 지저 도시의 유일한 차이점은 잠자리가 푹신하냐 아니냐 뿐이다.

    또 한 번 지저 도시에서 눈을 뜬 나는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보다, 새로운 스케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머리를 쥐어 쌌다.

    “……진짜 죽은 듯이 잠만 자고 싶다.”

    휴식 겸 지저 도시 내부 상황을 주시하기 위해 당분간 지상 작전을 접어 두기로 결정한 지 어언 3일째.

    나는 침대에서 지렁이처럼 온몸을 비틀며 오늘만큼은 외출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 해야 할 일이 내일로 미뤄지는 일은 없겠지만.

    ‘이틀 연속 도지를 훈련시켰고, 개선된 센트리건도 받아 왔고, 공구리파에 들러서 엑소스켈레톤과 장갑차에 신소재 장갑판을 이용한 대규모 개수 작업을 의뢰했고, 또…….’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필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화장실 세면대 앞이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휴식에 찌들어 수염이 덥수룩하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나태한 백수가 아니었다.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푸석푸석한 피부, 덥수룩한 머리칼, 그리고 갈라진 입술. 명백하게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회인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추레해 보여도 씻고 나면 미남으로 변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니까.”

    그 말대로 정성껏 씻고 다듬으니 좀 봐 줄 만한 행색으로 변했다.

    여느 때처럼 아침을 빙자한 점심 식사는 혼자서 해결하고, 이번에도 내겐 영 어울리지 않는 정장에 사무 가방을 챙겨 들었다.

    난 취직해도 딱딱한 정장이나 입고 다니는 샐러리맨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설마 무직 밀수범인 내가 정장을 입고 돌아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똑같은 출근길, 똑같은 풍경, 달라진 인원 구성.’

    한시가 바쁜 직장인인 척 시간을 확인하면서 주상복합아파트를 빠져나와 정거장 앞에 섰다. 때마침 도착한 무인 셔틀버스를 타기 전, 주변에 배치된 이질적인 인간들을 시야에 담았다.

    내가 지저 도시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자 국정원이 결국 참다못해 요원들을 배치하고 밀착 감시에 들어간 것이다.

    기억에는 없지만 국정원 요원들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곁눈질만으로도 그들을 분간해 낼 수 있었다.

    ‘북부, 동부 지구에도 요원들을 배치하느라 정신없겠지.’

    안 그래도 부족한 인력을 나 한 명 때문에 더욱 열심히 쓰고 있을 터. 지금 국정원은 정보기관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고작 나라는 인물의 정보 한 방울을 얻기 위해 혀가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실정이었다.

    ‘내가 떠나는 모습을 보자마자 보고를 하는군. 아마추어 새끼들.’

    귀에 꽂은 이어셋이라도 잘 안 보이게 감추든가. 나 현장에서 일해 본 적 없어요 하고 티 내는 것도 아니고.

    감시자가 붙었건 말건 무인 셔틀버스는 가야 할 곳으로 간다.

    그러다 내가 미래테크에서 따로 발급받은 직원 전용 보안 카드를 인식기에 슬쩍 갖다 대자, 동부 지구로 향하던 버스의 노선이 서부 지구로 바뀌었다. 미래그룹 내부 시스템을 이용한 일종의 꼼수였다.

    버스를 점검하기 위해 직원 전용 보안 카드를 갖다 대서 버스를 임시 정차시키거나, 노선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도지를 훈련시키면서 서부 지구에 꼭 방문해야 할 일이 있다고 슬쩍 언질을 주었더니, 이용호 팀장이 직원 전용 보안 카드 하나를 내주었다.

    문자 그대로 보안 카드라서 사용 기한이 정해진 일회용 물건이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미래그룹의 이름을 빌려 서부 지구를 돌아다니기엔 충분했다.

    ―임의 목적지는 서부 지구 제1 생산 단지입니다.

    ‘민간인 신분으로 서부 지구에 들어올 수 있을 줄이야.’

    서부 지구가 아예 꽉 막힌 곳은 아니다. 당연히 일손이 부족하니까 단순 노동 및 잡무 목적으로 출근하는 일반인 노동자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정부, 혹은 기업 소속 사람들도 있다.

    그밖에도 유통업자와 운송 차량을 호위하는 군인, 매일매일 출근해서 생산 중인 곡식과 과일, 가축들에게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전문가들까지. 오히려 남부 지구보다 유동 인구가 더 많다.

    버스를 돌려보낸 나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보안 카드를 앞주머니에 꽂은 채 이동했다. 지저 도시에서 나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미천한 신분의 상징인 ID 카드는 일부러 보이지 않게끔 안쪽에 숨겼다.

    서부 지구는 중앙 지구와 마찬가지로 도로마다 게이트와 초소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군인들이 출입자의 신원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서부 지구 군인들은 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통과. 다음 분…… 처음 보시는 분인데?”

    출입자의 명부를 작성하고 있던 쏘가리가 나를 멈춰 세웠지만, 곧 앞주머니에 꽂혀 있는 미래그룹 보안 카드를 보더니 흠칫했다.

    “아, 흠흠! 실례했습니다. 명부만 작성하시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정부와 기업 소속 사람들의 공통점은 시간을 곧 금으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사소한 이유로 붙잡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불문율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는 내게 명부 작성용 태블릿 PC만 넘겨주고는 한 발짝 물러섰다.

    만약 아무것도 아닌 인간 박한성이 당당하게 미천한 직급을 자랑하는 ID 카드를 내밀었다면 그대로 쫓겨났거나, 반대로 수상하다며 체포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대한 티 안 나는 척, 입을 꾹 닫고 명부를 작성해서 태블릿 PC를 넘긴 나는 사무 가방을 들고 게이트를 넘어갔다.

    근본은 무직에 밀수범이지만, 적어도 남들이 보기엔 스마트하고 엘리트한 대기업 직장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외관이 정말 중요한 거다.

    아무리 마음씨가 착하고 머리가 좋으면 뭘 하나. 신분이 변변찮고 못생겼으면 다 부질없는 것이 이 냉혹한 사회인 것을.

    ‘침입 루트를 짜는 게 어렵진 않겠는데.’

    지저 도시 최대 규모의 식량 생산 단지답게 퇴비와 병충해 약을 뿌리는 드론, 감시용 드론이 사방천지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침입 루트를 짜는 게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생산 단지의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만 해도 거대한 개활지를 뒤덮은 옥수수밭에 사람이 들어가면 드론까지 총동원해도 쉽사리 찾지 못한다. 이곳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빽빽하게 심어진 옥수수나 사탕수수, 밀, 벼, 과일나무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가 숨어들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지저 도시가 완공된 상태였다면 모를까, 미완성인 상태로 일단 작물 재배부터 들어갔으니 경작지 외부 감시에 신경 쓸 겨를이 있나.’

    울타리도 기껏해야 철조망과 콘크리트를 대충 둘러 둔 게 전부였다. 원자재는 충분했지만 그걸 사용하는 사람과 자금이 부족해서 저런 꼴이 된 거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식량을 노리는 침입자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지저 도시에 그만큼 대범한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괜히 가서 총 맞아 죽느니, 그냥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밀수품이나 사자는 마인드가 대부분이라, 서부 지구와 비교적 밀접한 곳에 자리 잡은 북부 지구 주민들은 오히려 이곳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얼른 식량이나 생산해서 공짜로 뿌려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있을 뿐.

    ‘감시 드론은 배터리 충전 때문에 수가 줄어드는 타이밍이 있을 거고, CCTV는 사각지대만 찾으면 그만이지. 서부 지구에도 배치된 군 병력이 있지만 생산 단지 규모가 워낙 커서 그 인원으로 전부 커버하진 못해.’

    머지않은 시기에 생길 서북부 지구에서 아예 작정하고 이곳의 곡식 종자를 훔친 다음, 지저 도시 외부에서 별도 생산 체계를 갖추는 것도 고민해 봄 직하다. 물론 인프라를 끌어와야 하는 만큼 북부 지구 전체의 도움이 간절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지.’

    오늘 서부 지구에 방문한 건 다름이 아니라 향후 지저 도시에 얼마나 많은, 또 얼마나 다양한 식량이 공급될지 사전에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지상에 있던 시절에도 사탕수수는 인류가 가장 많이 재배하던 곡식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쌀과 밀 역시 주력 생산 후보군이었다. 거기에 옥수수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대부분 지저 도시에서 재배할 것을 염두에 두고 품종 개량을 거친 것들이니 재배하는 것 자체는 설비와 사람만 준비된다면 큰 문제 없겠지.’

    생산 단지 외부 인도를 따라 쭉 걸어 다니며 대충 훑어보다가, 제1 생산 단지 관리소로 향했다. 관리 직원과 만나서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할 생각이었다.

    겉으로만 봐도 규모를 짐작하기 힘든 이런 생산 단지가 무려 10개나 존재하는데, 당연히 내가 모르는 것들이 상당하겠지.

    지저 도시가 완공된다는 가정하에 최대 500만 인구의 식탁을 책임지기 위해 개척된 토지인 만큼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가장 많이 서린 곳이 바로 이곳 서부 지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생산 단지 관리소로 향하던 중, 나는 갑작스럽게 안쪽 차고에서 튀어나오는 차량을 보고 멈칫했다. 그 차량은 넓은 생산 단지를 효율적으로, 막힘없이 돌아다니기 위해 군용 험비를 개조한 물건이었다.

    내가 거기서 멈칫한 이유는 안쪽에서 튀어나온 차량이 한두 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량에 탑승한 생산 단지 관리 직원들은 저마다 장비를 챙겨 들고 있었다. 휴대용 드론 조작기나 금속 탐지봉 같은. 마치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급한 길을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인지라 괜히 찔린 나는 인도 한구석에 가만히 찌그러져 있었다. 정작 차량들은 그런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쏜살같이 지나쳐 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군대와 드론이 감시하고 있는 데다 정부가 엄중하게 관리하고 있는 서부 지구에 겁 없이 침입해서 서리(도둑질)를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만약 화재가 발생했다면 사람들이 튀어나가는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이렌이 울리면서 전 생산 단지에 비상이 걸렸을 테니 그 또한 아닐 것이다. 생산 단지의 곡식과 나무를 책임지는 설비 고장 역시 아니겠지.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인명 사고뿐이다.

    생산 단지 내부에서 일어난 인명 사고라면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이해가 된다.

    “거기! 선생님, 지금 뭐 하십니까?! 얼른 이리로 오세요!”

    바로 그때, 관리소 안쪽에서 뛰쳐나온 한 직원이 서둘러 나를 불러들였다. 멀리 점처럼 사라지는 차량들의 모습에서 시선을 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직원에게 다가갔다.

    “어휴, 회사 업무 때문에 방문했는데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네요.”

    “처음 보시는 얼굴인데…… 아, 미래그룹. 일단 안쪽으로 들어오십시오.”

    내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차고 안쪽으로 들어오자, 그는 서둘러 버튼을 눌러 차고 문을 닫아 버렸다. 차고 안쪽은 사람들이 한창 나설 채비를 하느라 바빴는지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차고 문을 닫은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게 물었다.

    “후우, 혹시 선생님 외에 다른 분도 근처에 없었습니까?”

    “예, 혼자 파견 나왔는지라…….”

    “다행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절대로 혼자 밖을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예?”

    “원래는 대외비라 알려 드리면 안 되지만 미래그룹에서 나오셨으니 협력 계약에 따라 어느 정도는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선…… 생산 단지 내부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사고이길래……?”

    “원인 불명의 인명 사고입니다. 어제 오후 근무 교대 시간에 확인된 사고인데, 인공광 전등을 점검하러 나갔던 직원이 복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또 다른 직원들을 보냈다가…….”

    “그 직원도 복귀하지 않았군요?”

    “그렇습니다.”

    직원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마른세수를 하며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관리만 잘하면 꿀 빨 수 있는 직장이라 편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사고가 터지니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저희 측에서도 디그러쉬의 드론 정찰 지원을 받아 최대한 바깥으로 새어 나가는 일 없게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중이지만, 생산 단지 내부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 중입니다.”

    “예를 들면 생산 단지 내부에 침투해서 사람을 습격하는 살인마 같은 것 말인가요?”

    “……지저 도시라는 환경 특성상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큰 압박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기 싫어 자살하거나, 반대로 호전성을 띠면서 주변 사람을 이유 없이 공격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는데…… 아마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울창한 숲 같은 거대한 생산 단지라면 사람 한두 명 숨어드는 건 일도 아니다. 그렇게 숨어든 사람이 우연찮게 살인 욕구가 치솟은 정신병자일 수도 있고.

    하지만 나는 우연을 믿지 않는다. 그저 필연을 예측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을 우연이라 치부하는 것뿐이다.

    ‘지저 세계에 뭔가 있군.’

    지저 도시 입주 첫날 발생한 정전 사태와 이상 현상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워낙 경황이 없었고 많은 이들이 준비되지 않은 시기였으니까.

    두 번째 정전이 일어났을 때는 내가 헛것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기억의 단절이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지금.

    나는 아직 인류가 알아내지 못한 지저 세계의 암흑 속에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나는 사무 가방 속에 숨겨 둔 개량형 센트리건과 접이식 기관단총을 떠올리며,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우선은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 없이 움직이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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