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13화 (113/211)
  • 도지 코인(3)

    아, 도지. 완벽하게 앙증맞고 사랑스러우며 또한 주체할 수 없는 충동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이름.

    나는 다리를 삐딱하게 꼰 상태로 서서 가만히 내 앞에 선 도지-프로토타입을 내려다보았다.

    팀원들이 몇 시간에 걸쳐 이것저것 뜯어보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결과, 도지는 간신히 날뛰지 않고 내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봐야 소시지 몸통에 다리 넷 달린 기괴한 형태인 건 똑같았지만.

    “테스트는 간단합니다.”

    “전혀 간단해 보이지 않는데요.”

    “도지와 함께 걷거나 뛰어 보는 겁니다. 자율운행 AI에게 자율운행을 해야 하는 목적성을 명확히 인지시켜 주는 거죠.”

    “제가 여기 오기 전에도 잘 뛰고 들이박고 다녔던 것 같은데요?”

    “그건 움직인다는 행위에 불과했을 뿐, 무엇을 위해 움직인다는 목적성은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발작 같은 거였죠!”

    테스트를 진행해야 하는 사람 앞에서 ‘이 로봇견은 놀랍게도 발작을 일으킵니다!’ 같은 홍보 문구를 해맑게 말하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저보고 잠재적 발작 위험성이 있는 로봇견을 데리고 산책 풀코스를 조지라는 얘기네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런 건 단적으로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과 함께할수록 더욱 빨리 학습하는 녀석입니다. AI가 그런 알고리즘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제가 산책 도중에 특정 위치에서 뒷다리를 들고 영역 표시를 하라고 명령하면 그걸 학습한다는 건가요?”

    “반복적으로 학습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물론 주변 환경과 상황을 자체적으로 진단, 분석하여 불필요한 행동을 거르는 기능도 있지만…… 그런 행동은 가급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거면 본인들이 산책 담당을 맡든가.

    차마 그렇게 말할 순 없어서 일단 도지의 주변 사물 인식용 광학렌즈에 대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자신을 따라오라는 명령을 인식한 도지가 늠름한 발걸음으로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걸음걸이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동체가 워낙 기형적인 탓에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철컹철컹하고 기괴한 금속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원래 이런 건 개발자인 저들이 직접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저들은 데이터를 뽑아서 계산하고, 수정하고, 수정한 값을 다시 시뮬레이션해서 제대로 된 답을 얻고 싶어 하는 연구실 죽돌이다. 즉 밖에 나가는 걸 조기 퇴근 하는 것보다 더 싫어한다는 얘기다.

    도지와 함께 연구실을 나온 뒤, 플랫폼 내부를 뛰거나 걷거나 했다. 처음엔 스스로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던 도지가 어느덧 내 움직임이나 보폭을 보더니 거기에 맞추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인간의 평균 보행 속도가 시속 5km라면, 함께 걷는 인간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에 두고 그 속도에 맞추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멈추고 도지에게 특정 방향을 지시해서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자 예상대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 속도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교통사고라도 내면 도지가 100 대 0 과실로 폐기 처리 될 것이 확실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테스트는 일종의 행동 교정이나 다름없었다. 겉으로는 도지의 운용 테스트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옆에서 이것저것 가르치는 학습 보조였으니까.

    내가 아니라 AI 전문 조련사를 부르면 어떨까 싶다가, 문득 도지를 제대로 무장시킨다면 지상 작전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프로토타입이니까 저렇게 볼품없는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동체와 성능이 훨씬 향상된 AI 그리고 무기까지 갖추게 된다면 ‘사냥개’ 역할도 할 수 있겠는데?’

    지금까지 지상을 돌아다니는 나이트워커와 인간들의 대립 구도를 놓고 보면, 사실 인간들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구도가 많았다.

    서울역처럼 철저하게 방비를 갖추고 무장 병력이 많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인간의 힘으로 어둠과 추위를 무기 삼아 덤벼드는 나이트워커를 이기는 건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이트워커 변종이나 나이트워치라는 커다란 장벽도 존재한다. 장갑차나 전차, 중장갑보병이 대거 나서지 않는 한 인간이 나이트워커를 이길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최근까지 밀수 조직 대부분은 나이트워커와 적극적으로 교전하기보단 놈들을 피해 다니는 식으로 소극적인 작전을 펼쳐 왔으니까.’

    플랫폼 내부에 비치된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 캔을 뽑아 마시고, 빈 깡통을 던져서 도지에게 가져오게 하는 훈련을 진행하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장갑차와 전차는 화력과 방어력 모두 출중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우선 소음이 크고, 덩치와 기동성 때문에 진입할 수 있는 장소나 거리에 큰 제한이 걸린다.

    거기에 뒤따르는 연료 및 전력 보급 문제 또한 치명적인데, 처음 정류소나 충전소를 찾아서 해결하고자 했던 내 계획도 지금은 무산된 지 오래였다. 지상 인프라는 멀쩡한 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결국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밀수범들이 힘들게 돌아다니면서 싸우고, 물자를 회수해서 운반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그건 부담이 너무 심하다.

    그런 의미에서 깡통을 발로 굴려 어찌어찌 내 앞으로 가져온 도지라면 잠재적 가치가 꽤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인간처럼 추위에 떨지 않으며, 사족보행이라 기동성이 매우 뛰어나고, 금속 덩어리이기 때문에 체력이나 내구력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엑소스켈레톤과 같은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 주면 최대 반나절에서 하루 이상은 굴려 먹을 수 있겠지.

    ‘어쩌면 미래테크에서 더 대단한 배터리를 착용해 줄지도 모르니 작전 시간과 반경이 더욱 넓어질 수도 있어.’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인간과 달리 정신적인 피해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나이트워커를 똑바로 인지해도 문제없을 것이고, 패닉에 빠져서 공포에 떨다가 자멸해 버리는 일도 없을 터. 명령을 내리면 즉각 받아들이고 깔끔하게 수행하는 진짜배기 워머신(희망편)이 예상된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떡상할 것처럼 보여도 탑승하면 귀신같이 떡락할 위험도 있지.’

    맹추위에 의한 부품 고장! 나이트워커의 민첩한 공격에 허둥지둥하는 멍청한 인공지능! 아군을 오인 사격 하거나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K-무기 시스템! 금세 방전되거나 폭발하는 병신 배터리!

    상상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그래도 AI 시스템을 주도하는 미래그룹의 산하답게 미래테크의 AI 기술 자체는 나쁘지 않네.’

    애초에 그 정도 기술력도 없다면 무인 셔틀버스나 자기부상열차 운행은 불가능하겠지. 미래그룹도 그걸 아니까 드론 대신 로봇견을 만들라고 프로젝트 지시를 내린 것 아니겠나.

    다만 그들 역시 실전 데이터를 수집할 만한 방법과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밀이 유출될 위험까지 감수해 가며 외부자인 내게 로봇견 도지를 소개한 것이리라.

    놀랍게도 이 지저 도시에서 미래그룹이 특정 기술력의 실전 테스트를 믿고 맡길 사람은 내가 유일하니까.

    법의 감시에 걸릴 일이 없고,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능력도 출중하다. 기업 입장에서 나는 엄친아의 표본 같은 인물인 셈이다.

    “어쩌면 내심 내가 널 떡상시켜 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깡통을 앞발로 차면서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도지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면 센트리건도 내 덕분에 개발에 들어가서 성공적으로 실전에 투입되었고, 그렇게 수집한 실전 데이터 덕분에 훨씬 개량된 버전이 완성되었다.

    내가 이 불안해 보이는 로봇견을 학습시키고 쓸 만한 놈으로 만들어 낸다면 거기서 데이터만 쏙 뽑아 먹으면 그만이니까, 기업 입장에선 기밀이 유출될 위험만 감수한다면 누워서 떡 먹는 장사였다.

    ‘그리고 내가 미래그룹과 척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기밀 유출에 대한 위험성도 사실상 없는 셈 치고 있겠지. 배운 양반들이라서 그런지 참 영악하다니까.’

    이쯤 되면 대체 내게 떨어지는 콩고물이 무엇이냐는 또 다른 질문이 들어올 텐데, 거기에 대해서 나는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해 두고 있다.

    첫째, 향후 지저 도시에서 생산될 탄약 및 무기의 보급 루트 확보. 이건 미래그룹이 힘 좀 쓰면 슬쩍 생산 물량을 빼돌리거나, 아예 그들이 직접 연구용으로 구입해서 차도식파에 양도해 줄 수도 있다.

    둘째, 미래그룹이 나날이 급성장하고 있는 차도식파의 뒷배경이 되어 준다. 이미 밀수 조직이 지저 도시의 한 축을 차지했다는 걸 눈치챈 기업 측에선 어떻게든 연결 고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당연히 나를 통해서 차도식파와 교류하게 되겠지.

    마지막으로 셋째, 미래그룹이 주도하는 사업 일부를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서 날름 받아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저 도시가 본격적으로 안정화되고 물건과 돈이 돌기 시작하면 자잘한 유통업부터 일부 생산라인, 혹은 판매라인까지 수주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일들을 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니, 나도 차도식에게 최대한 빨리 ‘자력 개발’을 서두르라고 말했던 것이다. 떡고물도 받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온전히 다 받아먹는 거다.

    ‘칠칠맞게 흘려서 다른 놈들이랑 나눠 먹는 건 너무 아깝지.’

    디그러쉬의 드론처럼, 미래그룹의 도지 또한 지저 도시의 보안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게 된다면 상품적 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될 테니, 내게 개인적인 학습을 부탁하는 것도 아주 이상하진 않았다.

    ‘그럼 이참에 좀 더 전문적으로 가르쳐 봐?’

    경찰견이나 군견처럼 아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전문적인 훈련을 해 두는 것으로 학습 데이터가 쌓인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을 것 같다. 인간과 함께하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로봇견이 될 테니까.

    그러는 김에 시제품 센트리건처럼 몇 대 양도받을 수 있다면…… 다음 지상 작전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저들도 싫은 척하면서 은근슬쩍 내게 시제품 도지를 제공하고 싶어 하는 눈치인 것 같고. 따분하기 짝이 없는 지저 도시보단 역시 지상에서의 실전 데이터를 원할 것이다.

    오늘은 가볍게 산책 선에서 끝내겠지만, 당분간은 이곳을 들락날락하며 도지에게 전술적 상황에 따른 훈련도 시켜 봐야 할 것 같다.

    ‘좋아, 결심했다.’

    나는 도지코인에 탑승할 것이다.

    * * *

    “아, 과장님, 잠깐 이것 좀 보셔야 겠습니다.”

    “또 뭔데. 이번엔 스프링쿨러가 병신이 됐냐? 아님 식물에 벌레라도 꼬였어?”

    “그게…… 좀 이상합니다. 하우스 내부 감지 센서에 이상한 게 잡혔다는 기록(로그)이 남아 있어서요.”

    “보나 마나 날파리 아니면 쥐새끼겠지.’

    인류가 지저 도시에 숨어들면서 지상의 동물이나 곤충도 극히 일부지만 함께 따라 들어왔다. 주로 흙이나 곡물 포대, 장비, 혹은 상자 속에 숨어서.

    지저 도시 서부 지구의 대규모 식량 생산 단지를 운영하고 있는 직원들에겐 이제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지저 도시 내부는 비교적 서늘한 기온이 상시 유지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곡식 및 과일은 하우스 방식으로 키우고 있었다.

    하우스로 키울 수 없는 것들은 인공광을 밝혀 주는 것으로 조절을 했는데, 외부에 노출된 것들은 어느새 규모를 불린 벌레나 쥐들의 잦은 습격을 받았다.

    병신 같은 스프링쿨러는 툭하면 고장 나질 않나, 전등 식량 생산 단지가 너무 넓어서 사람이 돌아다닐 수 없는 곳은 드론과 CCTV로 24시간 감시까지 하고 있다.

    덕분에 서부 지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풍족한 생활을 보내고 있을지언정, 매일매일을 지루하고 힘든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후임이 건방지게 선임을 불렀으니, 김신우 과장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인공광 전등이 몇 개 나갔네?”

    “예. 그런데 해당 구역에 접근한 직원은 없고, 벌레나 쥐들이 인공광 전등을 몇 개나 고장 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도 오래 밝혀 놔서 내구도가 금세 다는 모양이지. 엔지니어 보내서 해결하라고 해.”

    “사람이 출입한 기록이 없는데 감지 센서에는 이상한 게 잡혔고, 인공광 전등이 몇 개 나갔는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침입자라도 있다 이거냐? 지저 도시에서 서부 지구는 성역이야, 성역. 여긴 대통령이 와도 털끝 하나 못 건드리는 장소야. 그런데 어떤 겁대가리 없는 놈이 여기에 침입해서 인공광 전등을 건드리겠어? 그냥 단순 고장인 게 당연하지.”

    “그럼 이 센서 기록은…….”

    “아, 그냥 오류겠지! 멀쩡한 사람도 여기서 정신병이 걸리는데 24시간 돌아가는 기계라고 오죽하겠냐? 신경 끄고 얼른 사람이나 보내! 또 이딴 걸로 부르면 그땐 진짜…… 어우.”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던 과장은 다시 선잠을 자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성역이 더럽혀질 것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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