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12화 (112/211)
  • 도지 코인(2)

    “도지?”

    “예, 도지.”

    “로봇견 이름이 어떻게 도지일 수가 있죠?”

    “도지 말고 달리 어울리는 이름을 못 찾았거든요.”

    나는 불안하게 기우뚱거리고 있는 로봇견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로봇견이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생김새는 조금도 개와 닮지 않았다.

    무게는 20kg 안팎 추정, 크기는 중형견, 통짜 몸뚱어리에 이런저런 모형 부품을 달아 둔 기괴한 사족보행 로봇이었다. 머리 역할을 하는 파츠도 없어서 도지라는 이름을 듣지 못했다면 소시지 로봇쯤으로 생각했을 거다.

    이용호 팀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지를 붙잡아서 후방(엉덩이)에 위치한 스위치를 꾹 눌렀다. 그러자 부들부들 떨고 있던 도지-프로토타입이 움직임을 뚝 멈췄다. 마치 급상승하고 있던 주식이 갑작스러운 하락장을 예고하듯.

    “인류는 우주 탐사에 동물을 제법 썼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우주 탐사에 성공한 동물 중 하나가 바로 개죠. 라이카라는 유명한 개가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아뇨. 역사와 항공 우주 수업에는 관심이 없어서요. 전공이 아니기도 했고.”

    “우주 탐사에 최초로 성공한 개가 있다면, 화성 탐사에 최초로 성공하는 개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죠. 그리고 그게 꼭 살아 있는 개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거고요. 요즘은 성별부터 국적, 종교, 문화까지 만물평등주의가 만연한 시대 아닙니까?”

    “그러니까 화성 탐사에 최초로 로봇견을 이용해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다가 도지라는 이름을 지으셨다는 거네요.”

    “예. 원래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무언가 번쩍 떠오른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써먹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수상한 외계 신호를 수신했다고 즉석에서 ‘WOW!’라고 써 넣어서 와우 신호라는 이름을 붙이게 만든 제리 R. 이만(Jerry R. Ehman)처럼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던 사실이다. 그닥 흥미롭지도 않았고.

    하지만 나는 이 도지(Doge)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견에 지대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에 이용호의 잡설을 들어 주는 척하며, 그와 함께 연구실로 들어갔다.

    어제는 800원이었다가 내일은 100원이고, 모레는 500원일 것 같은 이 애증의 이름을 가진 로봇견은 힘이 꽤 장사인 듯했다. 그 증거로 두꺼운 유리창을 깨고 나왔음에도 동체에 흠집 하나 나지 않았으니까.

    “이것들아! 기껏 손님이 오셨는데 시제품 관리 하나를 못해서 이 지경을 만들어 놔? 야근하기 싫어?!”

    쿵!

    테이블 위에 힘이 쭉 빠진 도지를 올려놓은 이용호가 팀원들에게 윽박질렀다. 마지막 한 마디가 이상했던 것 같지만 굳이 태클 걸지 않기로 했다.

    “이게 메커니즘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니까요, 팀장님? AI의 실시간 주변 환경 스캔 및 효율적인 명령어 도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정작 AI가 동체의 구성 요소를 똑바로 인식하지 못해서 자기 제어를 못 해요.”

    “그러니까 나는 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발이었다, 이런 느낌으로 부품 인식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거 아냐? 그럼 그냥 호환성 문제 아니냐?”

    “호환성 문제라기보단 인식 장애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AI 프로그램이 적응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할 수도 있고…….”

    “모르면 뭘 어째. 일단 뜯어 봐야지.”

    “어우, 지겹다, 지겨워!”

    “그래서 안 할 거야?”

    “해야죠, 합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탓에 비뚤어진 안경을 다시 고쳐 쓴 팀원들이 도지를 조심스럽게 분해하기 시작했다.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소프트웨어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하드웨어적인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뜯어 보는 게 정답이긴 하다.

    하드웨어에 이상이 없다면 소프트웨어를, 소프트웨어에도 이상이 없다면 호환성 문제를, 호환성 문제도 아니라면 좀 더 근본적인 설계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까지 올라가는 게 기계공학이다.

    ‘맨정신으론 저 짓거리 못 하지.’

    나야 엑소스켈레톤을 워낙 자주 만지다 보니 기계에 딱히 거부감은 없지만, 문과 출신들은 기계에 닿기만 해도 발작을 일으킨다고 한다. 수학, 공학, 의학은 문과에게 매우 치명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다는 모양이다.

    그들이 ‘떡락’할지 ‘떡상’할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같은 도지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나는 이용호에게 본래 방문 목적이었던 센트리건에 대해 물었다.

    “센트리건은 어떻게, 개량이 좀 됐나요?”

    “일단 휴대성을 좀 더 높였습니다. 화력은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한층 더 컴팩트한 모델로 만들었는데, 이 기회에 한번 시제품 테스트를 참관해 보시는 건……?”

    “저야 좋죠.”

    도지는 아직 자잘한 문제가 많아서 실전 투입은 어려운 상황이라 팀원들이 직접 손보는 중이지만, 실전 투입이 꽤 빨랐던 센트리건은 최근에 한 번 더 개량을 거친 듯했다.

    “우선 007 가방 사이즈를 핸드백 사이즈까지 줄였습니다. 탄약 적재량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품의 내구도 향상 및 소형화를 통해 격발 시스템을 축소시킨 겁니다.”

    “자동 조립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부품이 들어갈 텐데요. 아, 그리고 이번 작전에서 지급받은 센트리건은 잃어버렸습니다.”

    “자동 조립 프로세스도 최소화해서 완제품에 가까운 격발 시스템을 착용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짜린데…….”

    “나이트워커들이 생각보다 많이 몰려들어서 회수할 각이 안 나오더라고요.”

    센트리건을 잃어버리고 왔지만 유체이탈 화법으로 대충 넘긴 나는 두꺼운 방탄유리 앞에 섰다.

    방탄유리 너머에 위치한 테스트룸에는 이용호가 말했던 핸드백 크기의 센트리건이 배치되어 있었다. 반대편에는 표적판으로 사용하기 위한 젤라틴 인간 모형이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실제로 무기 성능 테스트는 철판, 방탄유리 그리고 젤라틴 인간 모형 등을 많이 사용한다. 결국 무기의 실제 사용처가 ‘그런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개량형 센트리건의 제58회 무기 성능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용호가 원격조작 패널을 이용해 조작하자 테스트룸의 센트리건에 전원이 들어왔다.

    AI가 즉시 전방의 표적을 확인하고 거리 및 풍향, 온도를 자동으로 계산, 획득한 값을 이용해 적절한 취약점을 찾아서 총구를 겨누고 발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초 남짓이었다.

    트타타타타타타!

    폭풍처럼 쏟아진 9mm 탄환 세례에 젤라틴 모형의 머리가 화끈하게 찢어발겨졌다.

    기존의 센트리건은 일단 전방에 마구잡이식 화력을 쏟아 내는 것으로 적들의 접근을 저지하는 느낌이었다면, 개량형 센트리건은 적의 취약점을 직접 공략한다는 큰 특성이 생겼다.

    “화끈하네요. 성능도 훨씬 개선된 것 같고요.”

    “기존의 센트리건은 자동 조립에 몇 초 정도 소요되지만 개량형은 기껏해야 2초밖에 안 걸립니다. 발포까지 약 3~4초가 걸리는 셈이지요.”

    “여기가 미국이었다면 9mm 탄약을 물 쓰듯이 펑펑 써도 괜찮았을 텐데, 한국인 게 좀 아쉽네요.”

    9mm 탄약 수급에 대한 은근한 불평을 토로하자 이용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공장이 하나둘씩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저 세계 특성상 광물을 비롯한 원자재를 얻기는 굉장히 쉽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덕분에 전력 공급도 서서히 안정되어 가고 있으니…… 조만간 제식탄약도 대량 생산에 들어갈 겁니다.”

    “가장 먼저 생산되는 건 5.56mm NATO 탄이겠네요.”

    “아무래도 국군이 가장 많이 쓰는 탄종이다 보니 그 부분은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리볼버 권총탄과 9mm 탄환 역시 꾸준히 생산될 테니, 그쪽으로 루트가 뚫린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겁니다.”

    “혹시 미래테크에서 그 루트를 뚫는 데 도움을 주실 수는 없나요?”

    필요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작정으로 되물었으나, 의외로 이용호는 어렵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테크에선 박한성 씨를 일종의 파트너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저희가 개발하는 상품의 시제품을 실전에서 사용하면서 데이터를 수집해 주시고 개선점이나 유의미한 방향성도 제시해 주시니까요. 그 정도라면 못 해 드릴 것도 없습니다.”

    이렇다 할 만한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는 그에게 살짝 놀랐지만, 필요하다면 내가 나중에 직접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다. 기업을 상대로 빚지는 건 역시 조금 껄끄러웠으니까.

    “그런데 저 워머신 프로젝트라는 건 뭔가요? 뜬금없이 도지라는 로봇견을 개발한다고 하니 조금 의아해 보여서요.”

    “지저 도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력난이죠.”

    “예. 일반인이라면 식량난이라고 대답했겠지만 박한성 씨는 문제의 본질을 잘 꿰고 있으신 것 같군요. 아시다시피 지저 도시는 완공 시 한 번에 최대 500만에 가까운 대 인구를 감당할 수 있게끔 설계되었습니다.”

    완공만 된다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로 생각보다 적은 인구가 입주했고, 지저 도시를 정상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필수 인구에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지금만 해도 군인들이 경찰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단순 경계, 정찰, 수색 임무라면 굳이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 해결하자는 얘기가 나왔군요.”

    “예. 인력은 좀 더 적재적소에 활용되어야 합니다. 당장 엑소스켈레톤이 넘치지만, 일반인 중에 엑소스켈레톤 면허 보유자가 적어서 대부분의 기체를 창고에 썩히고 있는 디그러쉬처럼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디그러쉬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는 물 흐르는 듯 가볍게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아아, 그래서 그 디그러쉬가 최근 지저 도시 외부 탐사 프로젝트를 위해 일반인 신청자를 받고 있는 거였군요. 당장 썩어 가고 있는 엑소스켈레톤을 사용해서 뭐라도 뽑아 먹어야 하니까.”

    “어, 그것도 알고 계시네요? 그럼 대화하는 게 한층 더 편하겠습니다. 저희가 도지를 개발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과 연관이 있거든요.”

    “그거 대외비 아닌가요?”

    “박한성 씨도 이미 어느 정도 사정을 알고 계시는 것 같고, 또 앞서 말했다시피 저희는 파트너십 관계니까요. 실제로 보안 접근 권한을 상향 조정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죠.”

    “그럼 큰 문제 없을 겁니다. 애초에 이런 얘기도 못 할 딱딱한 관계였다면 박한성 씨는 이 연구소에 들어오지도 못하셨을 겁니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런 것 같다. 오히려 상대가 호의적일 때 스무스하게 넘긴다면 앞으로도 태클 걸릴 일이 없을 테니 더 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그러쉬만 그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 기업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각기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지요. 당장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도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향후 실전 및 안전 테스트를 통과해 성공적으로 양산되기만 한다면 군인과 경찰을 완전히 대체하는 치안 시스템이 될 겁니다.”

    하긴. AI 기술도 나름 확립되었고, 무인 시스템을 운용하는 건 미래그룹에게 있어서 아주 손쉬운 일이다. 디그러쉬의 위광에 가려져서 그렇지 미래그룹도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기업인 것이다.

    “건설기업 중에선 아예 지저 도시를 감싸는 장벽을 좀 더 두껍게, 첨단화하려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효율적인 원자재 운송을 위해 지저 도시 외부에도 포장도로를 깔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돈과 사람을 투자해야 살아남는 건 기업이든 국가든 똑같네요.”

    “예, 다만 디그러쉬의 경우에는 조금…… 이상하더군요.”

    자신과 내 몫의 커피를 끓여서 머그컵을 내민 그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커피가 생각보다 썼던 모양이다.

    남자들은 원래 담배와 커피를 주고받으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레모네이드를 좋아하는 나도 이런 경우에는 얌전히 커피를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쓰읍. 이상하다니요?”

    나 역시 에스프레소와 맞먹는 블랙커피의 쓴맛에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시기가 참 미묘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지저 도시를 완공하고 내부를 안정화하는 게 우선인데, 갑자기 지저 도시 외부 탐색에 귀중한 인력과 자본을 투자하고 있으니 명백히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까는 지저 도시 외부에 도로를 깔려는 건설기업도 있다면서요?”

    “그들은 목적이 명확합니다. 지저 도시를 운용하기 위해서, 아직 미완성된 지역을 완공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투자이지요. 그런데 디그러쉬의 지저 도시 외부 탐사 프로젝트는 명확한 목적이 없습니다. 그냥 문자 그대로 탐사인 거죠.”

    곰곰이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긴 했다.

    대체 뭘 찾으려고 탐사하는 거지? 왜 하필 지금이지? 왜 디그러쉬 소속 직원이 아니라 민간인 지원자를 받는 거지?

    그렇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마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드론 사업은 디그러쉬가 독점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저희 측에서 드론을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지저 도시 내부에선 허가받지 않은 드론은 운용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더 이상한 겁니다.”

    “……드론을 마음껏 운용할 수 있는 디그러쉬가 굳이 드론을 이용한 탐색이 아닌, 사람을 이용한 탐색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예, 바로 그겁니다. 드론의 원격 신호를 증폭시키기 위한 중계기가 필요하다면 중계기가 탑재된 차량만 운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굳이 대규모 민간인 지원 신청을 받고, 그들을 지저 도시 외부로 내보낸다? 허, 참!”

    “정부의 허가로 드론 시장을 독점한 디그러쉬의 태클을 피하기 위해 미래테크가 로봇견을 만들고 있다는 거네요.”

    “이해가 빠르셔서 다행입니다.”

    다들 지저 도시 외부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도 이해타산을 따지면서, 타이밍을 봐 가면서 해야지. 지금의 디그러쉬는 좀 막 나가는 감이 있어. 어떤 의미에선 현 정부의 정책과도 반하는 움직임이야.’

    밀수범인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마는, 디그러쉬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하는 것치곤 너무 부주의하고 허술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박한성 씨가 저희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도지의 성능 개선을 위해 실전 데이터 수집이 필요합니다.”

    “저더러 도지 코인에 탑승하라는 겁니까?”

    “화성에는 가 보셔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 못해도 화성은 가 봐야지.

    나는 이용호의 손을 맞잡고 악수하며 도지의 성능 개선에 필요한 실전 데이터 수집을 돕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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