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 코인(1)
국정원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에도 시선이 갔다.
나와 연이 없음에도 다른 장소에서 최소 2회 이상 동선이 겹치는 사람, 그중에서도 명확한 목적 없이 그저 떠돌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소일거리를 하고 있는 사람 위주로 인상착의를 기억해 둔다.
지저 도시에선 생존이 최우선 사항이 되었기 때문에 남부 지구를 제외하면 ‘소일거리’를 길거리 한복판에서 하는 사람이 없다.
장사꾼은 장사를 하고, 영업맨은 영업을 뛴다. 카페는 쉬는 곳이 아니라 직장인들의 야외 회의실이나 간단한 끼니를 때우기 위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자연공원? 그 누구도 산책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국정원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내 추측은 틀리지 않은 것 같네.’
최소한 내 시야에는 ‘우연찮게’ 동선이 2회 이상 겹치는 인물은 없었다.
미래테크에 찾아가는 것뿐인데 동선을 배배 꼬듯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거름망 효과는 확실했다.
문제는 처리할 정보량이 많으면 그만큼 뇌가 힘들어 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당분을 섭취해 주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가까운 카페에서 레모네이드 한 잔을 산 다음 지저 도시의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걸었다. 12km 아래의 지저 세계는 지열이 예상했던 것보다 대단찮았다.
과학자들의 발표에 의하면 이곳은 사시사철 서늘한 초가을 날씨를 유지하고 있으며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지저 세계에도 비구름이 될 수 있는 거대한 호수나 강이 존재한다지만, 지상과 달리 대류가 격하지 않아 날씨 변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애초에 이곳엔 태양이 없다.
조금 서늘한 기온 속에서도 그다지 춥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모두가 땀이 나도록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신 시간을 확인하고 있는 직장인이나, 스마트폰을 귀에 갖다 댄 채 래퍼처럼 떠들고 있는 직장인, 중요한 자료를 인편으로 직접 전달하는 직장인 등등. 모두가 뜨거운 스팀을 내뿜고 있는 기계 장치 같았다.
그들 사이를 걷고 있다 보면 땀내 섞인 열기가 미약한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무심코 나 또한 저들처럼 열정적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게 흠이지만.
내가 만약 아버지 입장에서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다면 나도 이곳에서 디그러쉬 직급 카드를 달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겠지.
‘동부 지구는 그새 유통업이 성장했군. 역시 기업과 공장, 연구단지가 집중된 곳이라 그런가?’
도로를 통제하는 교통경찰도 없어서 미친 듯이 액셀을 밟아 대는 트럭들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나면 인도 위로 희뿌연 흙먼지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일단은 최신식을 표방하고 설계된 지저 도시답게 이곳에서 운용되는 모든 차량은 전부 전기차였지만, 매연을 내뿜지 않는 전기차라고 해서 우리의 기관지를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있는 건지 천연 미세먼지를 마시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지저 세계는 흙먼지투성이다. 물청소 차량이 매번 지저 도시를 휘젓고 다녀도 금세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도로를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해도 금세 흙먼지가 쌓인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인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겠지만, 옆 나라 일본의 지저 도시에선 기관지 환자들이 병원 앞에 줄을 섰을 거다.
‘일본인이 4.5 지진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고 자랑하는 꼴이랑 뭐가 다른 거지.’
빈 레모네이드 컵을 공용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뒤, 당당하게 미래테크 본사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에게 ID 카드를 제시했다.
이 회사에 소속된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동부 지구 거주민도 아닌 나는 놀랍게도 정중히 맞이해야 하는 손님 대우를 받았다.
“오늘은 무슨 목적으로 본사에 방문하셨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계약 문제로 차세대 장비개발부서 측 사람과 논의할 게 있습니다. 이용호 1팀장님이라고…….”
“아, 차세대 장비 개발부서는 현재 규모 확장으로 근무지를 이전한 상태입니다. 안내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평소처럼 얼굴마담 겸 손님 응대를 하는 여직원이 만점짜리 미소를 띠며 나를 어디론가 안내해 주었다.
이번에는 일전에 방문했던 연구소가 아닌, 본사 건물 지하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그곳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하철……?”
“미래그룹이 독자적으로 설계, 건설, 운용까지 총괄하고 있는 수송 플랫폼입니다.”
“지상에서 12km나 떨어진 지저 도시의 지하철역이라…… 확실히 이건 예상 못 했습니다.”
“본래 이 최신예 수송 플랫폼은 지저 도시 전역에 자리 잡을 예정이었으나, 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지저 도시가 완공되기 전에 사태가 터져서 서울 시민 일부가 급하게 입주한 상황입니다. 지저 도시에는 이렇게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지하 수송 플랫폼이나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지하 시설이 존재합니다.”
그 말인즉슨 미래그룹 역시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지하 시설을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스케일은 달라도 뭐가 다르구나 싶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 지하철은 본래 동부 지구 전역을 순회하는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을 예정이었겠으나, 미래그룹이 모종의 이유로 자신들만 이용할 수 있게끔 개조한 것 같았다.
자신들만의 사람, 화물 운송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확실히 편하긴 하지. 다른 기업보다 언제나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무인 셔틀버스를 지저 도시에 공급한 것도 미래그룹이었지.’
디그러쉬가 지저 도시 그 자체를 디자인했다면, 미래그룹은 지저 도시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을 디자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과 대기업의 승부에서 나름대로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그런데 일개 손님인 제가 이런 걸 알아도 괜찮겠습니까? 여기까지 따라온 제가 이런 말 하기도 뭣하지만, 여긴 미래그룹 입장에서도 꽤 중요해 보이는 요충지 같습니다만.”
“미래테크 본부장님께서 최근 손님의 접근 권한을 상향 조정 하셨습니다. 보안 절차상으로도 문제는 없습니다.”
일순 그 귀공자 같은 전형적인 재벌 3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야욕이 들끓는 눈빛으로 게걸스럽게 정보와 이득을 탐하던 인물이 나 같은 사람의 접근 권한을 상향 조정 해 주었다?
‘앞뒤가 아주 안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살짝 걸리는데?’
내가 건네준 정보나 샘플의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서 나를 중요 인물로 판단했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 처리다.
그래도 상대가 갑자기 호의적으로 나오면 괜히 찝찝한 법이기에, 나는 삭막하기 짝이 없는 플랫폼 내부를 살피면서 자기부상열차 앞에 섰다.
왜 이런 곳에 경비원이 없나 싶었는데, CCTV가 촘촘하게 내부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곳을 숨 막히게 하는 건 비단 CCTV뿐만이 아니겠지.
‘갑자기 벽면에서 무인 포탑이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미래테크는 이미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케 할 기술력이 있다. 실제로 내가 사용했던 휴대용 센트리건도 미래테크에서 개발한 것인데 말해 무엇하랴.
“승차 시 ID 카드를 인식기에 갖다 대시고 목적지에 해당하는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무인으로 운용되는 전철인 만큼 별도의 안전 요원이나 안내 요원이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혹시 제가 갈 수 없는 목적지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곳의 보안 요원분들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실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거라 생각했건만, 철저한 고객 응대 서비스에 매진한 베테랑 직원의 포커페이스는 역시 대단했다.
그녀의 흐트러짐 없는 미소를 받으며 홀로 전철에 탑승한 나는 차세대 장비개발부서를 목적지로 지정했다.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고 있는 자기부상열차는 지하철 특유의 시끄러운 소음이나 흔들림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미래그룹이 이 정도씩이나 되는 것을 감추고 있는데, 하물며 디그러쉬는 얼마나 대단한 것을 감추고 있을까.
아버지라면 제아무리 비밀스러운 것이라도 속속들이 알고 있겠지만, 나는 추하게 아버지를 통해서 그쪽 정보를 알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내가 목숨을 한 번 더 걸면 걸었지.
부드럽고 빠르게 움직이는 자기부상열차가 어느덧 짧은 여정을 끝마치고 나를 한 플랫폼에 내려 주었다.
지상(지저 도시)에 위치한 연구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지하 시설이 웅장한 위엄을 드러냈다. 특히 개방감이 돋보이는 모던풍 건물의 현관이 아니라, 굳게 닫혀 있는 금속 격벽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외부의 침입을 저지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내부에서의 탈출을 막기 위해 제작된 것처럼 보였으니까.
‘뜻하지 않게 이런 비밀에 한 발짝 다가서는 맛이 있지.’
외부 출입 관리 기기에 ID 카드를 갖다 대자 접근이 승인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격벽이 좌우, 상하로 쩌억 벌어지듯 열렸다.
일전에 방문했던 지상의 연구소는 좀 더 개방적이고 화사한 느낌의, 마치 대학병원 같은 느낌의 연구소였다면 이곳은 정반대였다.
인류의 진보는 어느 천재들의 퀴퀴한 곰팡내로 가득한 다락방이나 잡동사니가 가득 쌓인 차고에서부터 시작됐다고들 한다.
하지만 인류의 진보와 함께 시대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었다.
과거에는 천재가 자신만의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여러 악조건을 감내하면서 주어진 환경에 만족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가진 자들이 천재들을 위해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는 시대다.
그러니 이곳 역시 철저하게 그들만을 위한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이곳은 기술이 살아 숨 쉬는 장소다.
“어이쿠! 이거, 손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제가 미리 마중을 나갔어야 했는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안쪽에서 급하게 달려 나온 인물은 이용호 팀장이었다.
회사에서 만났을 때와 다르게 흰 가운과 보안경을 착용한 그는 조금 더 수척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그저 막연하게 행복해 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원 없이 할 수 있게 해 주는 환경이 이토록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도박 중독자에게 칩을 무한정 제공해 준다면 이런 느낌일까.
“저희가 얼마 만에 만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지하 연구 시설에 들어온 뒤로 시간 개념이 확 사라진 기분이라니까요?”
“밥 제때 가져다주고, 휴식 시간이랑 취침 시간 따로 알려 주는 직원들이 없었다면 끔찍했겠네요.”
내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이런 곳에 틀어박혀서 온종일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그런 직원이 무조건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나 같은 무지성 일반인은 감히 이해할 수도 없는 각종 수식이나 설계도면이 잔뜩 쓰여 있는 아크릴판, 온갖 기계 장치나 실시간 계산 수치로 나오고 있는 스크린으로 뒤덮인 ‘펑크한’ 복도를 그와 함께 걸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의 제어 없이 저 혼자 움직이는 기계 부품이나, 새로운 시뮬레이션을 시작하고 있는 스크린이 상당했다.
화장실 가면서도 연구하고, 밥 먹으면서도 연구하고, 자기 전에도 연구하고.
이곳이 연구라는 행위에 중독된 사람들을 위한 발할라인 것은 확실했다. 과로사 해도 되살아나서 연구할 수 있을 것 같은 장소였으니까.
그때 안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어, 어어어! 오작동 멈춰!”
“오작동 멈춰!”
“아니, 따라 하지 말고 기계를 멈추게 하라고, 병신아! 네가 멈추라고 외치면 기계가 저절로 멈추냐?!”
무슨 일인가 싶어 이용호 팀장과 함께 1팀 연구실을 방문하려던 순간, 연구실 유리창을 박살 내며 튀어나온 무언가가 우리 앞에 섰다. 아주 당당하게. 사족보행으로.
설마 자신이 관리하는 1팀 연구실에서 이런 추태를 보일 거라곤 예상치 못했던 것일까, 이용호의 안색이 급격하게 굳었다가 다시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무리수를 던졌다.
“어흠흠! 소개하겠습니다. 현재 미래테크 측에서 진행 중인 워머신 프로젝트의 시제품인 도지(Doge)-프로토타입입니다.
그것은 다리 넷에 통통한 소시지 같은 체형을 가지고, 등에 모형 총과 동작 감지기를 달고 있는 유사 강아지 로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