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10화 (110/211)
  • 질서와 필요악(6)

    “지금 하는 얘기랑은 좀 다른 얘기인데요. 최근 주변이 수상하다는 느낌 같은 거 받은 적 없어요?”

    그래도 조직도에서 최고위직에 자리 잡은 두 사람인 만큼 국정원의 개입이나 감시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챈 게 있지 않을까 해서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둘 다 ‘그런 건 못 느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밀수 조직을 귀찮게 하던 놈들이 하나둘씩 잠잠해지면서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는 모양이다.

    그런 놈들이 잠잠해진 건 내 작품이니 당연히 나 또한 알고 있었다. 다만 국정원에 대해선 두 사람도 전혀 모르는 눈치라 조금 아쉬웠다.

    최근 일이 잘 풀리고 있어서 경각심이 옅어진 것인지, 아니면 너무 승승장구에 취해 있는지, 윗사람들이 보여선 안 될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들도 그런 문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면 모를까, 아예 모르는 것은 곤란했기 때문에 나는 국정원이 밀수 조직의 뒤를 캐고 있다는 얘기를 건넸다.

    특히 내가 어제 겪었던 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자 두 사람은 벙찐 얼굴을 하다가도 금세 내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설마 지저 도시에도 국정원 요원들이 돌아다닐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건 그래. 지상이 멀쩡하던 시절에도 일반인이, 그것도 우리 같은 물장사 전문 조폭들이 국정원 요원과 접촉할 일이 있기나 했겠어? 난 지저 도시에 국정원 요원이 들어왔을 거라는 상상도 못 했다.”

    이해한다. 상식적으로 그런 사태가 벌어진 당일에 너도나도 지저 도시로 도망쳐 들어오느라 정신이 없었을 테니까.

    세상 어떤 미친놈이 지저 도시에 국정원 요원도 들어왔을 거라며 괜히 겁에 질리고 벌벌 떨겠는가? 나조차도 어제 직접적으로 접촉하기 전까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위험 요소를 재빠르게 눈치채고 대책을 강구하는 능력의 유무는 향후 어떤 식으로든 결과에 영향을 준다.

    나는 두 사람에게도 그런 능력을 강조하고, 발현시키고 싶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항상 똑같은 일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소한 변화라면 눈치채지 못하는 게 당연해요. 애초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소한 변화에 마음 졸이며 살아갈 필요도 없죠. 하지만 도식 형님과 명호 씨는 본인들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객관적으로 봐도 아니지.”

    “그건 그렇습니다. 이미 법을 몇 개나 어겼는지도 모르겠고, 우리가 벌이고 있는 일의 스케일도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

    “그런 부류일수록 자신의 삶이 예상했던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잔잔하게 흘러간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시잖아요? 범죄를 저지르면 응보를 받게 될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죠.”

    정말 아무런 문제 없이, 그 어떤 사태에도 휘말리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일반인에겐 일절 관계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처럼 지저 도시의 일부 구역을 장악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거나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떠한 식으로든, 외부든 내부든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가정하고 매 순간을 살아야 한다.

    의료인들이 유독 방문 환자가 적은 날이라고 해서 입원 중인 환자 관리를 게을리하고 긴장을 풀어 놓던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어떤 세력과 척을 지고 있는지, 또 어떤 세력과 함께하고 있는지 알고 있잖아요? 그만한 규모의 세력 관계도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상, 그에 따른 돌발 상황을 상정해 두는 게 당연한 거예요.”

    내 지적에 차도식은 팔짱을 낀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상에서 물장사를 하던 시절, 여러 조폭들과 좋은 관계나 나쁜 관계를 맺어 본 그였기에 내 말을 어려움 없이 이해한 것이다.

    “확실히 지금까지 일이 너무 잘 풀리다 보니 우리가 부주의한 감이 없잖아 있는 편이었어. 이래저래 동생 도움을 받아 일 처리를 하다 보니 실패를 잊고 살았던 거야. 사실 문제가 터지려 한다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거였는데.”

    “저도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대부분은 좋은 쪽으로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무신경했던 것 같습니다.”

    김명호도 동의하자 얘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결론은 뭐야? 조직 애들한테 주의시키고, 정예만 따로 뽑아서 국정원 놈들을 경계하자고?”

    “지저 도시에 입주한 국정원은 지상에 있었던 시절보다 장비나 인력 그리고 경험 모두 부족해요. 놈들은 갑작스럽게 군대 못지않은 몸집을 가지게 된 우리를 굉장히 경계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놈들이 잘하는 건 주로 뒷공작이나 요인 납치, 암살, 스파이 행위니까 아예 그런 것들을 원천 봉쇄 해야겠죠. 향후 우리가 하려는 일마다 훼방을 놓으면 거슬리잖아요?”

    정확히는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놈들이 건드릴 수 있는 박한성은 박한화의 아들이 아니라, 밀수 조직의 박한성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우리 가족이나 VIP 이웃들을 건드릴 수 없는 국정원 입장에선 당연히 밀수 조직의 외부에서부터 서서히 침투하거나 신경을 긁어 대겠지.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국정원이 밀수 조직에 직접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밀수 조직의 내부 인원을 회유해서 작당모의 하여 정보를 빼내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우리가 아무리 주의해도 정보의 유출을 막기 힘들다.

    ‘지저 도시에선 돈도, 음식도, 생필품도 정보보단 중요하지 않다.’

    이곳에선 정보가 곧 돈이고 음식이자 생필품이다.

    물론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보 유출이 확인되는 순간 조직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진다. 서로가 의심암귀에 사로잡혀 일도 제대로 못 하고, 팀워크도 엉망이 되는 것이다.

    “국정원 요원, 혹은 놈들의 끄나풀이 발견되는 순간 본보기로 고문하고 죽이는 게 가장 합리적이에요.”

    “……우리도 지상에서 조폭 생활 하면서 손에 피 한 번 안 묻혀 본 건 아니지만, 여기서도 그런 일을 하면 조금 문제가 되지 않을까?”

    “예전의 볼품없는 차도식파였다면 문제가 됐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사고가 터져도 자체적으로 은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조직력을 갖추고 있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건 그냥 국정원 상대로 영역 전쟁을 벌이자는 것 아니냐고.”

    “맞아요.”

    전쟁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형식만 따지고 보면 전쟁이 맞다.

    “국정원은 정부와 직속으로 이어져 있어. 군대와 다르게 회유가 불가능해. 게다가 워낙 비밀스러운 집단이라 전체적인 규모나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기도 힘들어. 그런 조직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고? 하필 이런 시기에?”

    “오히려 이런 시기니까 철저하게 울타리를 쳐야죠. 우리가 어수선하고 바쁜 시기에 놈들이 스리슬쩍 우리 주변에 숨어들면, 그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범인을 색출하겠답시고 모든 조직을 벌집처럼 쑤시고 다닐 거예요?”

    “그건…….”

    “조직 간의 협력 관계가 깨지고, 신뢰도가 바닥까지 떨어지고, 모두의 꿈과 미래가 얽힌 사업 계획이 엎어지고 나면 그땐 누굴 탓해야 할까요?”

    예고도 없이 우리들 사이에 숨어들어 정보를 캐 가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든 국정원?

    아니면 미리 조심하지 않은 우리?

    “쉽게 생각하세요. 지금 우리가 하려는 건 다소 부담을 짊어지더라도 미래가 안전해지는 백신을 맞는 행위라고.”

    치료제도 없는데 병에 걸리고 나서 ‘그때 백신 맞을걸’ 하고 후회해 봤자 늦는다는 얘기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각 조직의 장들과 논의해 봐야겠지?”

    “당연히 정보는 공유하는 게 좋죠. 다만 다른 조직들이 함께하길 거부한다면 우리 조직만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점은 잊지 마시고요.”

    “그래. 동생 말이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마당이니 당연히 믿어야겠지. 나는 각 조직의 장들과 따로 모여서 사업 얘기를 하는 김에 그 주제도 논할 테니까…… 조직 경계 태세 관리는 명호 네가 맡아라.”

    “맡겨만 주십쇼, 형님.”

    그래. 나와 차도식파는 딱 이 정도의 관계가 좋다.

    차도식파 내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실권은 그다지 없고, 그런 주제에 가져가는 이득은 또 가장 많다.

    자발적으로 조직의 고문(조언자) 역할을 맡으면서 내가 제안한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엄청난 계산을 해야 하고, 또 계획이 실패했을 것에 대비한 후폭풍도 계획 제안자인 내가 감당해야 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타입.

    이러니까 국정원도 내가 정확히 뭘 하는 놈인지, 어째서 밀수 조직들 사이에서 중요해 보이는 인물인지 감을 못 잡고 있었던 거다.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어 가며 확보한 나만의 독보적인 위치다.

    누군가에게 견제당하고 주목받을 수 있을지언정, 가장 또렷한 표적이 되기는 힘든 자리.

    “그럼 얘기는 대충 진행된 것 같으니 전 먼저 일어나 볼게요. 이래저래 알아봐야 할 것도 있고,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장 확인도 해 봐야 할 것 같으니까요.”

    “그래, 몸조심하고 동생.”

    “애들 관리는 제가 잘 해 두겠습니다.”

    나는 아지트를 떠나기 전, 김명호에게 국정원 요원이나 끄나풀들의 ‘특성’에 대해 알려 주었다.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국정원 요원들과 자주 만난 탓에 그들에 대한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무슨 기기괴괴한 기분이람.

    ‘젊어도 치매가 오긴 온다던데, 내 뇌도 슬슬 치매 걱정을 할 때인가?’

    아버지처럼 사악한 생각이 멈추질 않는 걸 보면 내 뇌는 아직 쌩쌩한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차도식파를 어떻게 이용하면 미래에 다른 조직을 집어삼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으니까.

    ‘대학 시절의 난 좀 더 프리티 하고 순수한 대한민국 청년인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 전역의 모든 정신병자와 은거 기인, 생활의 달인이 집합하는 군대에 다녀온 뒤부터 좀 이상해진 것 같다.

    ‘혹시 군 생활 내내 먹은 공화춘에 뇌 기능을 떨어뜨리는 유해 성분이라도 들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신성한 슈넬 치킨과 비비고 만두가 영원한 빛으로 나를 지켜 주었을 것이다.

    가볍게 담화나 나누러 방문했다가 꽤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나온 탓에 목이 뻐근했다.

    가볍게 팔이나 목을 돌리면서 공사 현장 시찰을 먼저 갈지, 아니면 예의 ‘지저 도시 외부 탐사’에 대해 조사해 볼지 조금 고민해 보았다.

    ‘중요도로 따지면 공사 현장 쪽이 조금 더 높지만, 디그러쉬 쪽도 마냥 무시할 순 없지.’

    베일에 싸여 있는 글로벌 대기업. 아니, 글로벌 대기업을 넘어서 공룡 기업이라는 말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초법적 단체. 그들이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는 정보나 묘한 분위기의 정체가 궁금하다.

    “차라리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여자친구도 두 명이나 사귈 수 있을 테니까.

    정장 넥타이를 다시 고친 나는 결국 공사 현장 대신 동부 지구로 향하는 셔틀 버스에 올라탔다.

    어느 기업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면 같은 기업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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