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필요악(3)
국정원 요원들과 짧은 담소를 즐긴 뒤, 곧장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찾아가 걱정을 덜어 드렸다.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말렴.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잘해 왔던 우리 집 장남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엄마는 조금 걱정이 되는구나.”
“부모 걱정 이기는 자식 없죠. 걱정 마세요. 항상 몸조심할게요. 이번에는…… 그냥 일이 조금 많았던 것뿐이에요.”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집에 얼굴 자주 비추렴. 네가 아버지와 감정의 골이 깊은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얼굴 정도는 자주 봐야 하지 않겠니.”
“노력할게요.”
어머니가 내주신 따뜻한 매실차를 후르릅 마시면서 적당히 대답했다.
어머니도 구태여 내게 아버지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이렇게나 인자하시고 사람 좋으신 분도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또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런 못난 자식이라도 언제나 보듬어 주고 달래야 할 어린아이처럼 봐 주시는 게 내심 감사하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가정의 안주인으로서 본분을 잊지 않으시고 가족 모두의 평온과 안녕을 기원하시는데, 반면 집안의 장남이라는 놈은 허구한 날 바깥으로만 돌고 있으니 양심이 찔릴 수밖에.
물론 나도 아버지처럼 일이 워낙 많다 보니 바깥으로만 돌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변명을 조금 하자면 아버지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커리어에 욕심이 있으셔서 회사에 매달리는 것이고, 나는 가족 모두의 미래를 위해 일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도 변명일지도 모르지. 사실은 나도 아버지와 똑같은 게 아닐까?’
아버지도 사실은 가족들을 위해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 오고, 우리 가족이 상류층 집안으로서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유지하고 계시니까.
내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박한화라는 사내는 가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일을 좀 쉬려고요. 바깥에서 고생 좀 하다 보니 역시 집이 나은 것 같네요.”
“그러니? 집 나가면 고생한다는 걸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구나. 그러고 보니 하나도 요즘 회사에서 맡는 일이 늘면서 그런지 집이 천국 같다고 말하지 뭐니, 후훗.”
그러고 보니 내 여동생에게 시켜 둔 일도 있었지. 원래 그 녀석은 디그러쉬에 딱히 흥미가 없었는데, 내가 부탁한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업무에 시달려야 했던 모양이다.
인턴이 빠르게 인정받아서 정규직이 되려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아니면 정치질을 잘해서 줄을 타든가.
아무래도 19세 인턴 여고생(졸업 못 함)은 전자를 택한 모양이다.
“제가 어디 가서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우리 남매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특정 분야에서 조금 과하게 우직한 면이 있다는 거예요.”
“특정 분야에서 타협할 줄 모르고 정석적으로 무식하게 돌파하려는 막무가내 성격을 말하는 거니?”
“……음,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건가?”
“무슨 소릴, 딱 봐도 네 아버지 성격이잖니.”
바로 그런 점이라고요, 어머니.
이미 부녀회에서 부녀회장조차 압도하는 거대 파벌을 형성했다는 소식도 여동생에게 들었다고요. 바로 그런 성격 때문에.
뭐, 그 부분은 남부 지구의 물주인 나 때문에 어머니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커지게끔 해서 반쯤 의도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게 바깥에서 뺨 맞고 돌아온 스트레스를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티타임을 가지며 풀어 나가던 중, 저녁 시간 즈음에 여동생이 먼저 귀가했다.
절대로 여고생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트렌치코트에 검은색 정장 그리고 사무용 가방은 기괴할 정도로 여동생과 잘 어울렸다. 저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나이 30 먹은 베테랑 회사원처럼 보인다.
만약 밤늦게 술에 취해서 돌아왔다면 현실 고증 200%였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저 왔…… 뭐야, 오빠도 와 있었네?”
“여기 원래 우리 집이거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으면서 무슨…….”
트렌치코트를 대충 벗어 소파 등받이에 널어 둔 여동생은 내 옆에 앉아 매실차를 마셨다.
지친 몸에 따스하면서 달달한 매실차가 들어가니 썩 기분이 좋은 듯,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게 보였다. 확실히 여고생이 보일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많이 힘든가 봐?”
“힘들지. 어차피 디그러쉬에서 계속 일할 마음은 없어서 대충대충 일하면서 시간이나 때웠는데, 누구 때문에 갑자기 일을 열심히 하게 되니까 주변에서 날 피곤하게 하더라. 일부러 업무 얹어 주는 상사는 기본이고, 주변 직원들은 갑자기 정치질에 날 포함시키기 시작했어. 덕분에 아주 죽을 맛이야.”
“그런데도 오후 7시에 퇴근이라…… 역시 박한성 Mk II라서 그런지 유능하군.”
“네가 박하나 Mk II겠지. 솔직히 수능 시험을 한 달 남짓 남겨 두고 있던 내가 지저 도시에 입주하자마자 대기업에 입사해서 적응한 게 더 대단하지 않아?”
“응, 아니야. 지저 도시의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내가 더 대단해―.”
“야, 너랑 나는 밥그릇 차이가 나는데 그 정도는 감안해 줘야지!”
“꼬우면 먼저 태어나셨어야죠.”
서로 매실차를 한 손에 든 채 내가 더 잘났느니, 네가 더 못났느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을 무렵, 어머니는 우리를 보고 혀를 끌끌 차셨다.
“너흰 대체 누굴 닮아서 성격이 그렇게 드센 거니?”
“일단 아버지는 아닌 것 같아요.”
“그건 나도 그래.”
“어머, 그럼 지금 엄마 성격이 드세다고 말하는 거니?”
남매 싸움에 어머니까지 참전하자 한동안 우리는 가족들의 성격 유형에 대해 심리학자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토론을 나눴다.
그 결과, 만장일치로 ‘우리 모두 잘났으며 우리 성격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긴 내가 좀 잘나고 스윗하지.
오랜만에 화목한 분위기로 티타임에서 저녁 식사까지 자연스럽게 끝마친 우리는 만족스러운 개인 여가를 맞이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 내 방에서 보내는 개인 여가. 근 일주일만이라 그런지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해도 눈이 스르륵 감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보다 못난 여동생이 하늘 같은 오라버니의 허가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크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격에도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연스럽게 내 옷장을 열어 숨겨진 공간에 있는 화물 박스에서 과자를 꺼낸 여동생은 의자에 앉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 만행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손이며 입가며 부스러기와 양념 가루를 죄다 묻히면서 게걸스럽게 과자를 탐하는 저 여동생이 나를 뛰어넘을 날이 올까? 그럴 리가.
“왜?”
“밥을 먹고 과자가 배에 들어가냐?”
“으, 연애 못 해 본 모쏠 티 나죠? 여자들은 원래 밥 배 따로 간식 배 따로 있는 거 몰라? 그러니까 여자 친구가 안 생기지.”
“네가 뭘 모르나 본데, 내가 군 입대 하기 전까지만 해도 새내기든 동기든 선배든 내 번호 따 가려는 여자들 진짜 많았거든?”
“근데 왜 네 연락처에 저장된 여자 번호는 나랑 엄마뿐인데?”
“난 내 번호 따 간 여자들 번호를 따로 저장해 두지 않아. 저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면 내가 받아 주는 거지.”
“네, 다음 모쏠―.”
“아니, 근데 시발, 진짜…….”
할 말을 잃은 나는 무어라 말하려다 결국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기로 했다. 이것은 토론과 논쟁이라는 것이 인류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용하게 쓰인 하나의 전술이었다.
“근데 넌 왜 허락도 없이 오빠 방에 들어와서 돼지처럼 과자를 먹고 있냐? 그러다 살찐다. 스트레스성 폭식이 가장 무서운 거 알지?”
“난 살 안 찌는 체질이거든?”
“응, 아니쥬? 지금도 실시간으로 지방이 축적되고 있쥬? 밥 먹고 과자도 먹으면 지방 축적 2배 보너스 이벤트쥬? 혜자 이벤트가 따로 없네.”
“아, 씨! 너 때문에 입맛 사라졌잖아!”
“이이이이잉, 원래 내 과자라서 네 입맛은 내 알 바 아니쥬―?”
“박한성 존나 짜증 나!”
저 밑에서 어머니가 ‘오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하고 소리치는 게 들리자 우리는 다시 임시 휴전에 돌입했다.
“그래그래, 사실 넌 살 안 찌는 체질이고 오늘 실컷 먹어도 내일 얼굴 붓는 일 없을 거야. 이제 허락 없이 오빠 방에 들어온 네 대죄에 대한 변명이나 해 봐.”
“대죄는 지랄. 어차피 나도 너랑 같이 일하는데 네 방 좀 쓰면 어때서? 그리고 너 일주일 동안 집에 안 들어와서 중간보고 못 했잖아. 네가 나한테 일 맡겨 놓고 정작 네가 집에 안 들어오면 어쩌라는 거야?”
나는 요 일주일 사이에 여동생이 ‘중간보고’를 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럼 지금 해 봐.”
로마의 온갖 사치와 향락을 누린 네로 황제처럼 지엄하고 나른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운 내가 턱짓을 하자, 여동생은 과자 봉지를 하나 더 뜯으면서 말했다.
“디그러쉬에서 최근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는 사실 알아?”
“아니.”
“모집하는 사람은 주로 ‘지저 도시 외부 탐사’ 인원이야. 그 계획에 대한 개요까지는 인턴인 내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인원 모집 공고 파일은 볼 수 있었거든. 아마 지저 도시 외부에 새로운 개척지를 만들거나 특정 지역을 조사하려는 목적인 것 같아.”
“인원 모집 공고는 언제부터 풀렸는데?”
“어제부터. 지저 도시 외부 탐사에 대한 세부 내용은 당연히 모집 공고에 쓰여 있지 않았지만, 그냥 보수가 두둑한 데다 디그러쉬에서 각종 물자와 장비까지 제공해 주겠다고 하니 신청자가 제법 많았어. 난 오늘 그 신청자 프로필 일일이 분류하고 정리해서 보고서 올리느라 바빴던 거고.”
“신청자가 몇 명이었는데?”
“못해도 1천 명은 가볍게 넘었어. 그걸 전부 검토하고 분류해서 유형별로 정리를 끝낸 파일을 1차적으로 상사에게 올리고, 상사가 OK 하면 팀장에게 다시 올리고, 팀장이 OK 하면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최종 결재가 올라가는 방식이었는데, 평소라면 정시 퇴근이었는데 결재가 늦어서 7시 즈음에 퇴근했어.”
“너도 참 어지간하다.”
저만한 양의 업무를 악착같이 해내서 기어코 야근을 피한 여동생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여동생의 악바리 근성을 보고 야근을 시키지 않은 상사를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수능 공부보단 쉽더라고.”
“내가 했으면 점심 먹기 전에 끝내고 퇴근했을 것 같다.”
“지랄. 백수는 발언권 없는 거 알지?”
“응, 국가 공인 밀수범이야―.”
아무튼.
그렇게 다시 분위기를 잡은 여동생이 스마트폰 블루투스로 내게 파일 하나를 전송해 주었다. 회사 내부 자료가 아닌, 자신이 직접 타이핑해서 만든 자료인 듯했다.
“지저 도시 외부 탐사 프로젝트에 신청한 사람들 프로필이야.”
“그걸 전부 기억하고 있었어?”
“말했잖아. 수능 공부보단 쉬웠다고. 단순히 외우기만 하는 거라면 반나절 안에 충분히 다 외울 수 있어.”
거르고 걸렀다고 해도 수백 명 정도의 간략화된 프로필을 몽땅 외워서 스마트폰에 따로 기록했다는 건 조금 대단했다. 수능 ‘1트’로 서울대 문짝 박살 내 보겠다는 게 아주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여동생에게서 받은 명단 중에 눈여겨봐야 할 사람을 찾았다. 주로 어느 지구에 거주하고 있느냐로 판별했다.
‘신청자의 절대다수는 북부 지구 거주민이지만, 동부 지구와 서부 지구 거주민도 섞여 있군. 동부 지구와 서부 지구 신청자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을 토대로 외부 탐사에 숟가락을 얹어 보려는 심산인 것 같은데.’
북부 지구 거주민은 그냥 돈과 물자, 장비를 원하는 것 같지만, 동부 지구와 서부 지구 거주민은 확실히 무언가 달랐다.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려면 시간이 좀 남았어. 그사이에 네가 잘하는 조사인지 수색인지 해 봐.”
“그건 내 전문이지. 이제 내 방에서 썩 나가, 이 괴물!”
“어. 과자 하나만 더 가져간다.”
과자 3개를 제물 삼아 정보 하나를 얻고, 여동생을 성공적으로 쫓아낸 나는 내일을 기약하며 눈을 감았다.
어머니께는 당분간 쉴 예정이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계속 바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