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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03화 (103/211)
  • 기생체(4)

    추성호는 대원 세 명과 함께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문구가 쓰여 있는 한 철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바깥에서 보면 내부 공간이 그렇게 넓지 않을 것 같은데, 정작 내부는 교묘하게 아래층 공간까지 쓰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넓었다.

    이렇게 넓은 공간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것은 깔끔하게 정리된 배선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대용량 서버 기기였다. 전력이 재공급되기 시작하자 서버룸 역시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신호야.”

    “일병 최신호.”

    “분대장님이 찾고 계시는 자료, 빼낼 수 있겠어?”

    “외부에서 해킹으로 서버룸 데이터를 빼내는 건 어지간한 해커들도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서버룸에 물리적으로 접근한 이상 못 빼낼 데이터는 없습니다.”

    군용 랩탑과 전용 케이블을 꺼내 든 최신호 일병이 서버룸에 붙어 작업하기 시작했다.

    알파와 브라보는 기본적으로 하는 일이 다르다.

    알파는 주로 강력한 화력을 이용해 일격에 적들을 쓸어버린 다음 필요한 물건을 찾아오는 부대였고, 브라보는 알파가 작전 지역에 진입하기 전에 사전 조사를 하는 선행 정찰 부대였다.

    당연히 위험도는 높지만 특별한 재능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브라보는 ‘고기방패’들이 주를 이루었고, 반면 엘리트답게 전문적인 훈련과 교육을 받은 알파는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재능을 보였다.

    그런 인물들만 알파에 모아 두었기에, 부대를 설립한 지 약 7년까지는 브라보의 취급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취급을 바꿔 버린 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지금 추성호 일행과 함께하고 있는 박한성, 통칭 브라보 원이었다.

    가정 형편이나 가족 구성, 학력, 신체 능력, 비상한 머리와 말재주, 뛰어난 적응력과 학습 능력, 모든 점에서 알파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지만 그는 부대 배치 전에 브라보에 자원했다고 한다.

    추성호는 앞 기수에 해당하는 선배, 그러니까 브라보 원의 동기 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대체 왜 그만한 인물이 브라보에 갔는지.

    그때 돌아온 대답은 황당할 따름이었다.

    ―자긴 우리 같은 상류층 집안 자식이나 엘리트층이 싫다는데?

    그렇게 말하는 본인도 상류층 집안 자식에 엘리트층이었으면서 정작 그런 사람들이 싫다니. 이 무슨 모순!

    추성호 상병은 열심히 랩탑을 두들기며 군용 해킹툴로 서버를 건드리고 있는 최신호 일병에게서 눈을 돌렸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정말 어렵지 않았다.

    딱히 적과 마주치지도 않았고, 그렇게나 큰 소란을 일으켰음에도 지금까지 주변이 잠잠하다.

    어쩌면 그가 지휘를 잘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갑자기 서버룸 전체에 ‘드드드드드!’ 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워낙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라 진동이라기보단 미세한 흔들림에 가까웠지만, 곧 저 아래에서 희미한 총성까지 들렸다.

    “전원 경계 태세. 신호 너는 작업 계속해.”

    “예. 그런데 방금 그거 뭡니까?”

    “몰라. 진동 같은 게 느껴진 걸 보면 폭탄이라도 터진 건가? 총성도 들린 것 같은데.”

    “저도 들었습니다.”

    “나도 들었다.”

    후임이나 동기도 들었다고 하니 환청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박 병장님이 따로 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아, 김 상병, 혹시 박 병장님한테 툴팩(TOOL PACK) 줬냐?”

    “어, 박 병장님이 63빌딩 입구 뚫으신다고 할 때부터 그냥 맡겼지. 그쪽 분야를 잘 아시는 것 같았으니까. 실제로 문도 금방 뚫었고.”

    툴팩은 각종 폭약과 용접기, 절단기, 기타 공구들이 들어 있는 종합 공병 세트였다. 63빌딩에 갈 때 필요할 거라며 최진석이 따로 챙겨 준 물건이었다.

    팀 내에서 공병 업무를 맡고 있는 김 상병이 당연히 툴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박한성에게 준 뒤로 지금까지 회수하지 않았던 것이다.

    “야, 거기에 들어 있는 폭약이 얼만데 그걸 아직도 회수 안 하면……!”

    드드드드드드!

    또 한 번 들려오는 진동에 서버룸에 모인 네 사람은 바짝 긴장해서 얼어붙었다.

    저게 정말로 폭탄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라면, 그러다 이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최상층에 가까운 자신들은 그대로 건물 잔해와 함께 수백 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것 아닌가?

    “무, 무전 쳐 봐! 빨리!”

    “그게…… 박 병장님께서 아까 자기만 무전 침묵 유지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신호 보내도 안 받을 겁니다.”

    “미친.”

    “뭐야, 진짜 63빌딩을 통째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는 거야?”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좀 이상하긴 해. 갑자기 자기만 작전에서 쏙 빠진 것도 그렇고, 무전 침묵 유지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럴 인물은 아니다’라는 것이 브라보 원에 대한 알파 대원들의 평가였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최대한 빨리 데이터 빼서 우리도 빠져나가자. 여차하면 비상 완강기를 사용해서 더 빨리 내려갈 수도 있어.”

    이런 초고층 빌딩일수록 화재나 지진에 취약하기 때문에 소방법상 의무적으로 설치된 비상 완강기나 별도의 탈출용 루트가 존재한다.

    특히 탈출자의 추락사를 막기 위해 굉장히 튼튼하게 제작하는 비상 완강기 특성상, 그들의 육중한 무게도 버텨 줄 것이다.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아! 찾았습니다! 흑야 사태 발발 1일 전부터 흑야 사태 이후 전력이 끊어지기 전까지 자동으로 촬영된 기상 관측 자료!”

    “전부 빼내!”

    “용량이 워낙 커서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얼마나?”

    “10분 정도…….”

    “쯧. 일단 기계실에 있는 애도 불러와. 데이터 확보 끝나는 대로 탈출한다. 애초에 작업 끝나자마자 알아서 나오라고 했던 것도 박 병장님이었으니까.”

    * * *

    “개새끼들아! 인간적으로 듀얼로 승부 보자!”

    우리 집에 엑조디아 카드 다섯 장 세트로 있다고!

    콰득! 콰드드득!

    하지만 나의 헛소리를 맹렬하게 씹어 삼키며 돌진해 오는 거대 상어는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비상계단부터 복도 벽과 천장, 때로는 금속 문까지 닥치는 대로 박살 냈다. 그놈뿐이라면 차라리 이리저리 빙빙 돌리면서 추적 루트를 좀 꼬아 봤으련만,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다른 방식으로 나를 쫓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튼튼한 촉수 다리로 육상 선수처럼 뛰어오는 문어, 통통 튕기듯이 쫓아오는 농구공 같은 가시복어, 환풍구부터 수도관, 때로는 천장 배선이 깔려 있는 합판부터 전등까지 구멍이란 구멍은 닥치는 대로 사용하는 칠성장어.

    이 미친 해양 생물 기반의 변종 나이트워커들은 당장이라도 나를 갈기갈기 찢어 주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놈들이 어찌나 거칠게 날뛰었는지, 딱히 폭약을 쓴 것도 아닌데 건물 전체가 드드드드드 진동할 정도였다. 뭐, 그 요인의 9할은 저 코끼리만 한 미친 상어겠지만.

    나는 도주하는 와중에도 놈들을 면밀하게 관찰했는데, 우선 해양 생물 기반인 놈들이라 인간다운 모습은 찾아 보기 힘들었으나, 인간다운 사냥 방식이나 특성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저 문어는 틈틈이 건물 잔해나 장식물 같은 것을 집어 들어 내게 던지거나, 출구를 파괴해서 도주를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검은 체액이 질질 흐르고, 신체의 특정 부위가 기괴하게 변한 것으로 끝이 아니었던 셈이다.

    ‘일반적인 동물은 저렇게까지 생각 못 하지. 그렇다고 그 검은 체액이 동물의 지능을 급격하게 끌어올렸을 것 같지는 않아.’

    그랬다면 그날 노원역에서 마주친, 자신들의 몸에 나이트워커의 검은 체액을 넣고 다니는 사이비 놈들은 이미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초천재가 되지 않았겠는가.

    분명 그 검은 체액에 뭔가 있는데, 그 아주 작은 ‘뭔가’를 찾지 못해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중요한 단서를 찾지 못해 답답한 건 답답한 거고, 살기 위해선 일단 63빌딩을 빠져나가야 했다. 이 건물은 내게 너무나도 불리한 환경이었다.

    비록 내가 좁고 어둡고 복잡한 환경에서 열여섯 번이나 적들과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다고 해도.

    “드디어!”

    무려 50층을 넘게 뛰어 내려온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접수 데스크로 적당히 막아 둔 입구 앞에 도달했다.

    데스크를 대충 밀어내고, 폐까지 얼어붙을 듯한 상쾌한 바깥 공기와 재결합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싹 날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실은 그냥 한 바가지나 흘린 땀이 차갑게 식혀져서 아랫도리가 흥분한 것뿐이지만.

    게다가 주변은 63빌딩 바깥이라고 해서 딱히 안전하지는 않았다. 처음 입구를 열기 위해 폭약을 썼을 때 폭음을 듣고 몰려든 놈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폭약의 화약 냄새 때문에 우리의 체취가 지워져서 갈팡질팡하고 있던 놈들이, 체취를 가득 흩뿌리는 내가 등장하자마자 시선을 집중했다.

    놈들 입장에서 나는 식탁 한복판에 제 발로 당당하게 강림한 치킨처럼 보이지 않을까?

    ‘머뭇거릴 틈이 없다!’

    안쪽에선 금속 격벽을 기어이 뚫고 나온 변종 나이트워커들이, 바깥에선 사냥감을 놓쳐 화가 잔뜩 나 있던 나이트워커들이 일시에 내게 달려들었다.

    탄막 슈팅 게임을 1인칭 시점으로 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었는데,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채찍 같은 혀와 촉수, 가시들을 피해 달아나다 보니 그런 궁금증은 싹 달아났다.

    장담하는데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펼친 연합군이 맞이한 포화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아슬아슬하게 양팔을 들어 막은 공격들이 인정사정없이 외골격 파츠를 박살 냈다.

    비록 시제품이긴 해도 신소재 장갑판까지 덧대서 내구도 증강을 꾀했다고 생각했는데, 놈들의 공격이 상상 이상으로 거셌던 모양이다.

    “씨발!”

    완전히 망가져 버린 외골격 파츠를 즉시 분리해서 내던졌다. 양팔을 감싸고 있던 3kg짜리 고철 덩어리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자 달리기가 훨씬 더 수월해졌다.

    다행히 팔뼈가 부러진 건 아니었지만, 처음 나이트워치의 공격을 방어했을 때와 비슷하게 얼얼한 느낌이 팔목을 타고 올라왔다.

    아마 한두 방쯤 더 허용했다면 뼈에 금 정도는 갔을 것 같다.

    수십 마리는 가볍게 넘는 나이트워커 무리를 달고 다시 한 번 내달리기 시작한 나는 금세 한강 변에 도달했다. 63빌딩에서 한강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진짜 이 짓만은 하기 싫었는데.’

    ‘본능’적으로 얼어붙은 한강 위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번만큼은 ‘본능’을 무시하고 거친 빙판 위를 달렸다.

    빙판이라서 무작정 미끄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표면이 거칠고 수분이 없어서 달리기 쉬웠다.

    온통 검은 한강 빙판 위를 대략 10분 정도 내달렸을까. 나이트워커들 역시 나를 포기하지 않고 모두 한강 빙판 한복판으로 몰려들었다.

    “너로 정했다, 센트리건!”

    배낭 뒤에 매달아 두기만 하고 한동안 꺼내지 않았던 센트리건을 꺼내 빙판 위로 밀어 보냈다.

    널찍한 007 가방이 빙판 위를 썰매처럼 미끄러져 나가는가 싶더니, 곧 가방이 활짝 펼쳐지면서 프로토타입 센트리건이 빠르게 자동 조립 되었다.

    9mm 탄환 300발이 들어 있는 컴팩트한 탄약 박스에, 한 번 펼치면 다시 분해해서 재조립하는 게 굉장히 힘들어서 지금까지 사용하는 걸 자제하고 있던 놈이었다.

    삐빅!

    자동 조립이 끝난 센트리건이 전방의 적들을 인식하고 탄환을 퍼붓기 시작했다. 비록 300발뿐이긴 하지만 9mm 탄환을 잠깐의 딜레이도 없이 쏟아 내는 건 엄청난 화력을 자랑한다.

    그사이 나는 알파 대원으로부터 받아 두었던 툴팩에서 폭탄을 꺼내 신관을 연결하고 이리저리 던졌다.

    마지막으로 격발기를 꺼내 들었을 때, 제 역할을 끝낸 센트리건이 침묵했다.

    운 나쁘게 탄환이 머리를 관통한 몇몇 나이트워커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덤벼들었다.

    격발기를 꺼내 든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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