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02화 (102/211)
  • 기생체(3)

    물비린내로 가득한 휑한 공간에서 익사해 버릴 것만 같다.

    “……수색 중단하고 빠르게 올라간다.”

    알파 대원들을 다시 불러모은 나는 땀이 뻘뻘 흐르는 것도 잊고 힘차게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모 특수부대에선 엘리베이터를 연결하는 강철선에 자동 승강이 가능한 손잡이를 부착해서 편하게 타고 올라간다던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지상 60층을 향해 미친 듯이 다리를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물비린내는 조금씩 우리 뒤를 따라잡을 듯 말 듯 했다. 어쩌면 위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헉헉대는 남정네들의 기분 나쁜 숨소리, 그리고 코를 마비시킬 것 같은 소금기 섞인 땀내만이 가득했다. 그 사이를 아득바득 비집고 들어오는 물비린내에 나는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최상층을 목전에 둔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전망대의 외창 시스템을 관리하는 내부 기계실을 찾았다.

    63빌딩의 전망대는 예전만큼 못하다는 평가가 있지만(주로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그럼에도 여전히 서울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 중 하나였다.

    지금은 360도 전방위를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의 거대한 외창마저 금속 격벽에 의해 닫혀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런 초고층 빌딩일수록 특정 장소마다 별도의 관리 시스템과 기계실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2~3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라면 모를까, 지하 3층, 지상 60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이라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둔 여러 안전장치가 존재할 것이다.

    “역시.”

    굳게 잠겨 있는 기계실 문을 박살 내고 들어가자 내부에는 관리자를 위한 별도의 매뉴얼과 물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비상사태 발발 시 시스템 수동 제어를 위해 비상 발전기와 별도의 유류 보관고 그리고 비상식량이 적재되어 있는 관리실.

    먼지가 두텁게 쌓여 있는 관리자 매뉴얼을 펼쳐 본 나는 최우선 행동 강령을 쭈욱 읽어 나갔다.

    당연하지만 매뉴얼에 쓰여 있는 ‘비상사태’는 북한과의 전쟁 발발, 혹은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나 테러리스트에 의한 건물 점거 및 공작(폭발) 등을 의미했다.

    일반인들은 알아보지 못하도록 한층 더 개수작업을 거쳐 비밀스럽게 감춰진 이 기계실에서, 나는 알파 대원 한 명의 도움을 받아 비상 발전기를 가동시켰다.

    다행히 유류 보관고에 연료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발전기를 가동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건물에 전력을 공급해서 일시적이나마 불빛을 복구한다? 그런 멍청한 일에 아까운 전력을 쓸 생각은 없다.

    “발전기가 버틸 수 있는 시간만큼 예비 전력을 모두 서버실에 투입한다. 한 명은 남아서 발전기를 지켜, 나머지 넷은 서버룸을 수색해.”

    기상관측자료를 보관하는 별도의 서버룸은 아마도 최상층, 그러니까 옥상 바로 아래에 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기계실에서 서버룸으로 보내는 전력의 위치를 확인해 보니 내 예상이 맞았다.

    63빌딩 옥상에 GOP가 철수한 뒤부터 거기에 최신예 관측장치인지를 설치했다고 하니 당연히 서버도 가까운 곳에 보관했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보통 서버라는 건 취급에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과 기밀을 위해서라도 비밀스러운 장소에 보관하는 편인데, 63빌딩은 오지게 높아서 역으로 초고층일수록 안전한 장소에 해당했다.

    ‘9.11 테러처럼 미친놈이 비행기로 냅다 들이박지 않는 한 초고층 빌딩의 최상층을 넘볼 수 있는 놈은 없지.’

    설령 테러리스트가 63빌딩에 침투해도 엘리베이터만 가동 중지시켜 버리면 깔끔하게 포기할 거다. 60층 계단을 죽어라 오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박 병장님은 어쩌실 겁니까?”

    “난 잠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일 끝나는 대로 너희가 원하는 그 서버 데이터 챙겨서 내려와라. 덧붙여서 내 무전만 침묵을 유지한다.”

    침투 작전 중에 무전 침묵을 유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작전 중간까지 잘만 무전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침묵 상태로 전환하겠다는 건 조금 의미가 다르다.

    나는 대원들을 각자 위치로 보낸 뒤,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열었다.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여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지만, 외골격 파츠를 착용한 내게 거리낄 것은 없었다.

    끼긱, 끼기기긱 하고 강제로 개방된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진득한 어둠과 공허가 나를 반겨 주었다.

    슬쩍 문턱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왠지 12km 길이를 자랑하는 땅굴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복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진한 물비린내가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오랫동안 물이 고여 있다 못해 썩어 버린 연못을 여름철에 물만 싹 빼내면 이런 냄새가 날 것 같다.

    물비린내 [멈춰]!

    ‘역시 메인 통로는 이쪽이었군.’

    환풍구와 연결되어 있는 엘리베이터 통로 특성상 무언가가 드나들기 딱 좋은 장소다. 엘리베이터가 중간을 가로막고 있다고 한들 큰 장애물이 되지는 못하겠지.

    ‘진즉에 엘리베이터를 박살 내 버렸거나, 구멍을 뚫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거나.’

    어느 쪽이든 63빌딩 전체에 전력을 재공급한다고 해서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시험 삼아 야광봉을 꺾어서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수백 미터 높이의 길쭉한 통로를 하염없이 떨어져 나간 야광봉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내게 많은 것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엘리베이터 통로마다 자잘하게 붙어 있는 크고 작은 알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생선이 해초나 바위틈에 붙여 둔 알 덩어리처럼 보였다. 크기는 골프공보다 크고 야구공보다는 작은 정도였다.

    알파가 이걸 알고 있었을까, 하는 자문에 ‘아니오’라는 자답이 나왔다.

    알고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인원을 작전에 배치했거나, 반대로 63빌딩은 봉인된 지하 유적처럼 평생 건드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사람에게 있어서 감이란 건 절대로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한강 이남 지역에 반드시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듯, 최진석 역시 63빌딩에 뭔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를 보낸 것일 테니까.

    소총의 광학조준경으로 희미한 불빛이 비추는 지점까지 쭈욱 내려다 봤지만, 검은 알 덩어리 외에 특별히 다른 것은 없었다.

    한순간, 삼각산동 아파트에서 봤던 정체불명의 고치와 유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크나큰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나이트워커의 ‘근원’은 무엇인가?

    인간의 거죽을 빌려 쓰는 무형의 괴물인가?

    아니면 인간의 형상을 배껴 쓰는 유형의 괴물인가?

    인간과 별개의 종족인지 아닌지조차 불확실한 지금, 나는 저 알 덩어리들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지저 도시에 반입했던 검은 체액처럼.

    ‘하지만 검은 체액과는 달리 저 알까지 지저 도시에 가지고 들어갈 순 없겠어. 보관이 용이하지도 않고, 애초에 너무 위험해.’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직접 내 손으로 알을 뜯어서 내용물을 확인해 봐야겠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나이트워커의 근원에 대한 답을 모른다면, 적어도 나만은 그 답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 층과 가장 가까운 알 덩어리는…… 52층이군.’

    알파 대원들은 자신들의 일이 끝나면 알아서 1층까지 내려올 것이다. 먼저 움직여도 상관없겠지.

    기껏 열심히 올라왔건만, 다시 52층까지 뛰어 내려간 나는 그곳의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개방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통로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알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채취했다.

    대검으로 이상한 섬유조직을 툭 끊어 냈을 뿐인데 탱탱하고 말랑말랑한 촉감의 알 덩어리가 손에 들어왔다.

    그것을 복도 바닥에 내려 두고 전등 불빛을 최대한 가까이 비춰 봤지만, 짙은 검은색 때문에 알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게 알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만일에 대비해 공업용 마스크와 고글을 단단히 착용하고, 칼날 끝으로 천천히 알의 점막을 찢었다. 예상대로 육수를 가득 머금은 딤섬처럼 검은 체액이 찍 하고 튀었다.

    그리고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바닥에 흐르는 것은 그저 검은 체액뿐.

    좀 더 과감하게 점막을 찢어서 내부를 미친 듯이 헤집어 봤지만 아주 작은 살덩어리도 잡히지 않았다.

    아주 작은 태아의 형태, 그것도 아니라면 정체불명의 살덩어리, 신경조직이나 혈관, 뭐라도 좋으니까 생명체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단서’가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없었다.

    마치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검은 알에서 빠져나온 체액은 곧 연기로 기화해 버렸다. 낯익은 광경이었다.

    ‘이것도 그 검은 액체를 담고 있을 뿐인 주머니에 불과하다고?’

    그럴 리가.

    그렇다면 이 미칠 듯한 물비린내는 뭐란 말인가? 알을 고정하고 있던 기괴한 섬유조직은? 또 어째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장소에 이렇게나 많은 검은 체액을 보관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단서와 서로 형태가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 속에서 나는 홀린 듯이 다른 알을 꺼내 와 대검으로 찢고, 헤집기를 반복했다.

    대충 손이 닿는 알을 10개쯤 찢어발겼을 때, 검은 흔적으로 더럽혀진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묘한 현기증을 느꼈다.

    고기잡이배에 타서 비린내를 너무 많이 맡으면 코가 마비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멀미까지 느끼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래에서.

    뭔가가.

    분노하고.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다.

    거의 본능적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붙잡아 도로 닫아 버린 나는 즉시 소총을 뽑아 들었다. 배터리 따윈 생각하지도 않고 전등의 밝기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아, 그렇구나.

    내가 터뜨린 검은 알의 내용물은 무언가 다른 것이 섞인 검은 체액이었구나.

    이 특유의 비린내는 어쩌면…….

    “페로몬이군.”

    대표적으로 무리 생활을 하는 개미들이 정찰, 전투, 보고, 대화에 쓰는 실로 효율적인 냄새.

    우리가 63빌딩 입구를 폭파하는 기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언가’와 조우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추적 페로몬이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놈들에겐 처음부터 청각기관을 비롯한 몇몇 중요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마침 우연의 일치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내 몸에는 지금 소음이나 열기를 대체할 수 있는 페로몬으로 추정되는 것이 잔뜩 묻어 있다.

    내게로 이어지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는 페로몬이라면 초고층 빌딩의 어둠 속에서 고요히 숨어 지내던 놈들을 미쳐 날뛰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내가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 엘리베이터 통로와 중앙 계단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전신의 털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 통로를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다.’

    제 스스로 알 덩어리를 부수고 있다는 자각도 없는 건지, 무언가 거대한 것이 쿵쿵거리며 엘리베이터 통로를 뒤흔들고 있었다.

    거대한 주둥이와 수천 개의 날카로운 톱니 이빨이 엘리베이터 문을 뚫고 튀어나왔을 때, 나는 길쭉하게 뻗어 오는 지느러미 손길을 피해야 했다.

    옆 구르기로 진득한 검은 체액이 묻은 지느러미 손길을 회피한 나는 즉시 소총을 들어 반격했다.

    타타타타타타타!

    조정간 연발로 바꾼 내 소총이 미친 듯이 불을 뿜었으나, 퍼버버벅 하고 탄환이 박히는 선에서 그쳤다.

    상어로 추정되는 나이트워커 변종은 비록 주둥이까지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몸집이 굉장히 크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저놈에게 ‘나이트샤크’라는 멋진 단어 2개를 쓴 이름을 붙여 줄 여유는 없었다. 저건 그냥 변종이다.

    ‘눈이 가렵지 않은 걸 보면 나이트워치 계열은 아닌 것 같은…… 큭!’

    어둠 속에서 갑작스럽게 몸 색깔을 바꾸며 튀어나온 촉수가 내 팔목을 후려쳤다. 자연환경 위장이 탁월한 문어의 촉수였다. 어느 틈에 계단을 타고 올라와, 위장색으로 숨어 있다가 기습을 가한 것이다.

    저 거대한 상어와는 다르게 촉수로 뒤덮인 전신을 확인했음에도 가렵지는 않았다.

    인간형 나이트워치만 눈을 가렵게 하는 건지, 아니면 이놈들이 특별한 건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됐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나이트워커는 기껏해야 혀를 하나만 휘두르는 것에 비해, 저 문어 같은 놈은 가볍게 20개가 넘는 촉수를 휘두르고 있었다.

    보는 내 눈이 다 피곤해질 만큼 끊임없이 꿈틀대고, 길이나 굵기가 서로 다른 촉수는 휘둘러질 때마다 경로를 읽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홧김에 총을 쏴 갈겨도 금세 촉수로 전신을 둥글게 말아 탄환을 튕겨 내거나, 관통력을 반감시켰다. 촘촘한 거미줄에 비비탄 총을 쏘면 저런 느낌일 것 같았다.

    지금도 쉬지 않고 엘리베이터 통로를 박살 내며 기어이 복도로 빠져나오려는 거대한 상어와 걸어 다니는 문어, 거기에 벽이나 복도를 타고 하나둘씩 기어 올라오는 온갖 해양 생물들이 나를 노려보았다.

    개중에는 대못 크기의 가시를 발사하는 복어나, 지렁이처럼 길쭉한 머리를 직접 움직여서 나를 단숨에 씹어 삼키려는 칠성장어 같은 놈도 있었다.

    사무실 책상을 넘나들고, 기둥 뒤에 엄폐하고, 자잘한 놈들은 대검으로 직접 머리통을 찍어 확실하게 절명시키면서 조금씩 비상계단 쪽으로 물러났다.

    이놈들은 전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처리하지 않으면 63빌딩을 가질 수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물자를 가질 수도 없다.

    또한 이미 페로몬이 잔뜩 묻은 나에 대한 추적을 영원히 뿌리칠 수도 없겠지.

    나는 날듯이 비상계단 아래로 몸을 던졌다.

    놈들을 일망타진할 적절한 장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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