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01화 (101/211)
  • 기생체(2)

    폭탄이 터질 때의 폭음과 화약의 진하고 비릿한 냄새, 시야를 가리는 메케한 연기는 내게 언제나 익숙했다.

    다행히 급조폭발물이 아니라 군대에서 사용하는 폭약을 사용한 덕분에 63빌딩 입구를 뚫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폭약의 양을 조절했기 때문에 딱 성인 남성 한 명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지만.

    덧붙여서 내가 말하는 성인 남성 한 명 크기는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성인 남성 한 명을 기준으로 말하는 거다. 매번 폭약으로 막힌 입구를 뚫을 때면 언제나 그런 ‘기준’을 잡고 뚫었으니까.

    나는 손으로 휘휘 저어서 폭연을 대충 걷어 낸 다음, 손전등 불빛으로 건물 내부를 비췄다.

    63빌딩 역시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답게 2020~2030년대 사이에 개수 공사를 제법 크게 거쳤다고 들었는데, 건물 외창과 주요 입구를 막은 격벽 또한 그 결과물 중 하나였다.

    아마 서울 지저 도시가 완공되면 외국인 관광객들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을 테니, 서울역처럼 63빌딩 역시 좀 더 세련되고 근미래적인 느낌이 드는 랜드마크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은 애초에 지저 도시를 피난용이 아니라 제2의 서울, 제2의 관광지로 만들고 싶어 했다고 들었다. 63빌딩 역시 그 흐름에 편승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내부 공기는…… 생각만큼 탁하진 않은데. 격벽이 완전히 내부와 외부를 격리한 건 아니었나?’

    생각보다 큰 폭음에 당황한 알파 대원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사주경계를 하건 말건, 나는 먼지가 가라앉은 입구 앞에 서서 공기의 질을 확인했다.

    한 달이 넘도록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던 만큼 63빌딩 내부는 엄청난 먼지와 탁한 공기로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만도 않았다.

    분명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탓에 먼지는 많았지만, 공기의 질은 지저 도시 특유의 텁텁한 공기와 비슷한 정도였다.

    무엇보다 외부 공기가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산소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었다.

    “순차적으로 진입한다. 어차피 몰려들 놈들은 몰려드니까 바깥에서 죽치고 있을 필요 없어.”

    “놈들이 우리를 따라서 건물 내부로 들어오면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못 들어오게 막아야지.”

    뭘 당연한 걸 묻고 있냐는 식으로 대답해 주니 알파 대원중 한 명이 멍청한 얼굴로 얼을 탔다.

    생각해 보니 브라보의 공식적인 작전은 내 기수에서 끝나 버렸기 때문에, 내 동기 알파까지만 함께 실전을 치렀다. 즉 이놈들은 명색만 알파일 뿐, 실전을 치러 본 경험은 없다는 얘기다.

    그래도 각종 지식과 훈련을 주입받은 덕분에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힘으로 찍어 누르는 전술을 사용해 왔던 것 같지만, 이렇게 대담하면서 은밀한 침투 작전을 해본 적이 없는 건 확실했다.

    “일단 들어와서 입구나 막아. 여차하면 싸울 때 싸우더라도 안에서 방어하는 게 더 나으니까.”

    나는 벌써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에 얼른 대원들을 안으로 들였다.

    역시나 한강 이남 지역에도 나이트워커들이 득시글대고 있었다.

    ‘나이트워커들은 환경에 따라 미묘하게 개체 차이가 있는 것 같던데, 이곳 나이트워커는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네.’

    내 헤드캠은 알파 대원들과 만났을 때부터 줄곧 녹화를 하고 있었다. 서울역에 대한 정보, 알파 중대에 대한 정보, 63빌딩에 대한 정보 그리고 한강 이남 지역에 대한 정보.

    정보란 정보는 죄다 긁어모아서 정부 측 인사든 기업 측 인사든 최대한 높은 값에 팔아먹을 생각이다.

    “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그런 대사를 해 버리면 갑자기 어디선가 접시가 깨지고 전신이 시퍼런 괴물이 튀어나오잖아, 눈치 없는 새끼야.

    차마 그런 이유로 갈구지는 못하고, 우선 안내 데스크를 들어서 입구를 막게끔 했다.

    그러고 나서 1층을 쭉 둘러보니, 역시나 63빌딩 주인은 외국인 관광객 코인을 노리고 있었는지 각종 프랜차이즈 매장과 음식점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금은 주인도, 손님도 없는 텅 빈 유령 상가에 불과했지만, 아직 저 안에는 쓸 만한 물자가 잔뜩 남아 있다. 특히 지하 1층에는 시식 코너를 겸한 마트가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하지만 63빌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물자를 확보하는 것도, 전망대에 올라가서 어두컴컴한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너희가 뭘 찾고 있다고?”

    “기상관측자료가 보관된 서버입니다.”

    “브리핑 중에 들었을 때도 이해가 안 됐는데, 대체 아무것도 안 보이는 하늘을 관측한 자료를 왜 구하려는 건데?”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분대장(알파 원)님이 필요하시다고 하는데 별수 있습니까?”

    알파와 브라보는 모두 병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직급도 최대 분대장까지 존재한다. 내가 맡아 봐서 안다.

    차치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기상관측자료를 구한다는 말에 나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전력이 끊어지기 전까지 63빌딩 옥상에 있는 관측기기가 자동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걸 서버에 보관하긴 했을 텐데, 일단 큰 기대는 하지 마라. 데이터가 소실되었을 수도 있고, 설령 너희가 찾던 기록을 손에 넣어도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저희가 기대하는 게 아닙니다. 분대장님이 기대하시는 거죠.”

    자기들이야 그냥 일 적당히 하고 서울역에서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지내면 그만이라는 뉘앙스였다.

    나도 지저 도시가 완벽했더라면 밀수범 따위 되지 않고 저런 마인드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1층을 대충 훑어본 나는 탁한 공기 중에 미약한 물비린내가 남아 있는 것을 눈치챘다.

    ‘물비린내? 추위 때문에 수도관이 파열해서 누수가 일어났던 건가?’

    천장부터 바닥, 벽까지 이리저리 손전등 불빛을 비춰 봤지만 어디선가 물이 샌 흔적은 없었다. 바닥도 깔끔한 대리석 재질이라 물기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탁한 공기와 폭약 특유의 비릿한 화약 냄새 때문에 착각한 것이라 생각한 나는 곧 손전등 불빛을 거둬들였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뚝뚝 떨어지는 물자들을 지나친 우리는 때아닌 63빌딩 계단 오르기 대회를 개최했다.

    실제로 소방관들이 압도적인 기록을 내는 이 대회는 별도의 보조장비 없이 순수하게 두 다리로만 63빌딩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산을 진득하게 타 본 경험이 있는 나는 계단 오르기에 자신이 있었다.

    무릎이 끔찍할 정도로 혹사당하겠지만, 남자는 간지에 죽고 간지에 살기 때문에 약한 척을 할 수는 없었다.

    알파 대원들은 애초에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했기 때문에 숨 쉬듯 자연스럽게 계단을 올랐고.

    개수 작업이 끝난 63빌딩 내부는 꽤나 화려했다.

    롯데호텔처럼 고급스러운 화려함이 아니라, 언뜻 딱딱해 보일 수 있는 빌딩 내부에 현대 예술을 적당히 가미해서 눈을 즐겁게 하는 구조였다.

    특이한 모양의 예술품이라든가, 큰마음 먹고 벽을 헐어서 공간을 낸 개방형 사무실이라든가, 긴 복도 전체를 이용해서 파노라마 기법처럼 굉장히 큰 그림을 그려 놨다든가.

    아마 빌딩 소유주인 모 그룹 회장님은 ‘이젠 정말로 해외 관광객 유입뿐이야!’라는 마음가짐으로 돈지랄을 아끼지 않은 것 같았다.

    겸사겸사 혹시 모를 서울 불바다에 대비해 자신 전용 피난 쉘터를 만들어 둔 것은 덤이고.

    “이왕 63빌딩을 통째로 개수할 거라면 아예 계단을 밀어 버리고 에스컬레이터로 싹 바꾸던가…….”

    “어? 혹시 힘드십니까?”

    “내 말은 왜 굳이 계단보다 턱이 높은 에스컬레이터로 안 바꿔 놨냐는 의미였지. 전력 공급이 안 되면 계단보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게 더 힘들잖아? 그래야 더 운동이 되지.”

    “역시 박 병장님이십니다!”

    그런 칭찬은 하나도 안 고맙다.

    사실 모 그룹 회장님도 내심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놈의 빌딩은 너무 지랄 맞게 높아서 엘리베이터를 50개쯤 설치하지 않으면 관광객이고 나발이고 눈곱만큼도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증설을 꾀하지 않은 것은 옛날 사람 특유의 꽉 막힌 사고방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 증축은 불가능했던 걸까.

    어느 쪽이든 내가 지금 죽어라 계단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띠껍다.

    육상 선수처럼 맨몸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각종 장비가 들어 있는 배낭에 방한 대비용 옷, 그리고 무거운 소총과 외골격 파츠까지.

    사실상 완전군장이나 다름없는 꼴로 지옥의 계단을 오르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선 내가 소방관들보다 더 하드한 코스를 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억…… 허억…… 으음?”

    대략 30층쯤에 도달했을까. 나는 조금 전부터 입에서 나는 단내와 비 오듯 쏟아지는 땀 때문에 후각의 이상을 느꼈다.

    분명 한 달 넘게 폐쇄된 고층 빌딩에서 풍길 리가 없는 물비린내를 맡았기 때문이다.

    1층에서 물비린내를 맡은 건 이해할 수 있다. 상층에서 누수가 발생했다면 자연스럽게 물이 아래로 향하니까.

    하지만 층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희미한 물비린내가 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의 대량 누수가 발생했더라면 물이 엄청나게 흐른 흔적이 남아 있었겠지.

    심지어 누가 청소도 하지 않아서 먼지가 잔뜩 끼어 있는 마당에, 물까지 흘렀다면 당연히 더러운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

    “정지.”

    호흡 곤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벗어 두었던 공업용 마스크를 다시 착용한 나는 36층 복도에서 대원들을 정지시켰다.

    잠시 쉬면서 들쭉날쭉한 호흡을 빠르게 정리한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희 셋은 남녀 화장실 수색해. 너랑 너는 나 따라오고. 화장실 수색조는 수도관이 파열되었는지, 혹은 누수 흔적이 있는지 살펴 봐.”

    세 명은 이 층에 위치한 화장실로 먼저 보내고, 나와 추성호 상병 그리고 김일학 상병이 층 전체 수색을 맡기로 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너흰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나보다 덜 힘들었으니까 주변 소음이나 냄새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잖아.”

    “아, 역시 힘드셨습니까?”

    “잡담은 집어치우고. 진짜 이상한 거 못 느꼈냐고.”

    “일단 특별한 소음도 없었고, 이상한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계단만 죽어라 올랐는데 그런 걸 어떻게 캐치하겠습니까?”

    “코는 뒀다가 국 끓여 먹었냐?”

    “남자들 땀 냄새를 집중해서 맡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하기야 내가 가장 선두에 서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으니 물비린내를 맡은 거지, 뒤따라오던 사람들은 죄다 앞사람과 뒷사람의 땀 냄새만 맡으면서 올라왔을 것이다.

    나 같아도 그런 냄새는 집중해서 맡지 않을 것이다.

    “층마다 미묘하게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물비린내가 나.”

    “텁텁한 곰팡내나 먼지 냄새가 아니라 물비린내…… 말씀이십니까?”

    “그래, 물비린내.”

    누군가가 일하다 급하게 자리를 치고 나온 흔적이 있는 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물비린내가 조금 옅어졌다. 역시 복도 쪽 냄새가 진했다.

    사무실은 정말 별것 없었다. 여느 회사처럼 평범하게 책상과 PC, 그리고 알아볼 수 없는 온갖 서류와 도구들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아마 건물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급하게 내보내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소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무전기로부터 화장실 수색조의 보고가 들어왔다.

    ―화장실을 수색해 본 결과 수도관 파열을 확인했습니다만, 누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통 이렇게 추운 날은 동파에 의한 수도관 파열이 대표적인데, 저희가 살펴본 결과 동파에 의한 수도관 파열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물이 흐른 흔적도 없고, 주변에 물이 얼어붙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단수(斷水) 상태에서 이유도 없이 수도관이 파열되었다?”

    ―저희도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수도관 안쪽에서 뭔가가 수도관을 찢고 나온 흔적이 있습니다. 튼튼한 수도관 금속을 무언가가 찢고 나왔다는 게 참 이상하게 느껴지실 텐데, 정말로 안에서 폭탄을 터뜨린 것처럼 크게 찢겨져 있는 형태입니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빌딩의 방호 시스템이 작동하고, 가스, 전기, 수도 같은 주요 인프라가 차단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물비린내가 난다.

    심지어 수도관이 동파에 의한 파열이 아닌, 무언가에 의한 파열로 판명되었다.

    그러한 보고에 나는 63빌딩 구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뭔가가 있을 거다. 퍼즐을 맞춰 보자.

    관광객 유입을 위한 2020~2030년 사이에 이루어진 63빌딩 대규모 개수 작업, 사람 한 명 없는 텅 빈 건물, 생각만큼 공기의 질이 나쁘지 않았던 내부, 층마다 미묘하게 느껴지는 물비린내, 무언가가 찢고 나온 듯한 수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는 누수 흔적.

    나는 자연스럽게 63빌딩 꼭대기에서부터 가장 최하층인 지하까지 도달했다.

    “아.”

    63빌딩 지하에는 아쿠아리움이 있다. 그것도 관광객 유치를 위해 규모를 좀 더 확장한 대규모 지하 아쿠아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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