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00화 (100/211)
  • 기생체(1)

    서울역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주민들이 하나둘씩 작업에 들어갈 무렵, 우리는 비교적 한산한 장소에 모여 브리핑을 진행했다.

    최진석은 자신이 가져온 커다란 스마트글라스를 펼쳐서 서울의 주요 도로나 일반인들에게 알려져있지 않은 군사 거점이 표시된 지도를 보여주었다. 아마 여러 부대를 털고다니면서 중요한 전술 지도중 하나를 털어온 모양이다.

    최진석이 진행하는 브리핑은 의외로 심플했다. 그래도 알파 소속이라 좀 더 심도있는 전황 분석과 작전 개요 설명을 할 것이라 예상했건만, 녀석은 그냥 지휘봉으로 특정 포인트를 툭툭 건드리기만 할 뿐이었다.

    "공구시(오전 9시)에 서울역에서 출발해 청파로를 따라 쭉 남하한다. 이 근방은 이미 우리가 정리해뒀으니 다른 세력이나 괴물들의 위협을 크게 걱정할 필요없어. 그저 신속하게 움직여서 원효대교로 향하는 것만 생각하면 돼."

    "나이트워커라고 불러. 요즘은 그게 유행이야."

    "...하지만 그 괴물들은 대체 어디서 생기는 건지, 또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는 건지 알 수 없으니 행군길이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최근까지도 중장갑보병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놈들을 처리하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계속 흘러들어오더라고."

    "그야 빛과 소음, 그리고 열기와 냄새에 민감한 놈들이니까."

    내 말에 알파 대원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특히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던 최진석은 다소 심각해보이는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놈들이 열기와 냄새에 민감하다고?

    "그건 모르고 있었나보네. 너희가 나이트워커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봐. 빛도, 온기도, 소음도 사라진 적막한 세상에서 유독 맛좋은 냄새를 풍기고 시끌벅적한 장소가 딱 하나 있어. 심지어 규모도 크고 먹잇감도 많아. 그럼 어떻게 될까? 당연히 입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들이 끊이질 않게 되겠지?"

    나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서울역을 보란듯이 양 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도 마침 그 조건에 완전히 부합하네? 사람 많고, 시끌벅적하고, 빛과 열기로 넘쳐나고, 수많은 사람과 음식, 기계들이 내뿜는 냄새는 말할 것도 없지. 완전 나이트워커 종합선물세트잖아. 그런데도 지금까지 몰랐다고?"

    "놈들이 빛과 소음에 민감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설마 그런 신체 구조로 열기나 냄새까지 감지할 거라곤 예상 못 했거든. 확실히 맹점이긴 했네. 쓰읍......"

    최진석이 뼈 아픈 실책을 느꼈는지 앓는 소리를 냈다.

    "중장갑보병들이 자주 나가서 소탕 작전을 벌인다는 건 역으로 그만큼 주위의 이목을 끈다는 거야. 소탕 작전보다는 차라리 물자 및 거점 확보 작전 위주로 움직여. 나이트워커는 소탕하기보다 막아내고 회피하는 게 더 이득이야."

    만약 놈들을 소탕해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우리도 처음부터 야광봉을 휙휙 던져가며 놈들을 피하지도 않았겠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나이트워커는 정말 많다. 신호탄 한 번 터뜨렸을 때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놈들의 군세를 생각해보면 이 도시야말로 놈들의 홈 그라운드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열기와 냄새라...중장갑보병은 확실히 이목을 끌기 쉽겠네."

    "그렇지. 엑소스켈레톤의 열기나 오일, 금속 냄새는 물론이고 기동시 소음도 장난아니니까."

    그래서 밀수조직도 엑소스켈레톤을 운용할 때는 아예 처음부터 나이트워커들의 기습을 염두에 둔다.

    설령 운 좋게 기습을 받지 않아도 엑소스켈레톤은 대부분 조직원들의 호위나 물자 운반 시에만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실질적인 물자 수색과 거점 확보는 나처럼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도맡는다.

    "그러니까 너희도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한강 아래쪽 까지 내려가고 싶다면 선택을 해. 화력과 장시간 작전 강행 능력을 일부 포기하고 안전을 택할지, 아니면 화력과 장시간 작전 강행 능력을 전부 챙기고 위험을 택할지."

    내가 왜 외골격 파츠만 고집하는 것 같은가?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면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는 감각 때문이지만, 그 이전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엑소스켈레톤은 안전을 위해서 착용하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면 안전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모순을 견뎌야 진정한 밀수범이 될 수 있다.

    "사실 브리핑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어. 63빌딩에 침투할 수 있는 수단, 그리고 63빌딩에서 정확히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기만 하면 되거든. 나머지는 너희가 어떻게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달렸지."

    나는 양팔에 착용하고 있는 외골격 파츠를 보란 듯이 그들에게 내보였다.

    나처럼 극한의 효율만 추구할 테냐, 아니면 그 잘난 엘리트 알파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어거지로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할 테냐.

    선택을 강요하는 내 질문에 알파 대원들은 깊게 고민하는 듯 했다.

    서울역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작전에 참가하지는 않지만 최진석 역시 동기들의 안전을 위해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면 그냥 쓸만한 '말'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

    "브라보 원, 네 말대로 정말 괴물들이......"

    "나이트워커."

    "괴물들이. 정말로 냄새와 열기를 감지한다면...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지?"

    "맨입으로 남의 노하우를 알려달라?"

    "생존에 있어서 중요한 정보인 건 맞지. 네 조직도 이 서울역을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해주겠어."

    나만 서울역을 들락날락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설마 이런식으로 우리 조직이 이곳에 간섭할 여지를 줄 것이라곤 예상 못 했다. 당연히 받아야지.

    "눈이 내리는 날은 눈으로 신체를 덮어서 열기를 감췄고, 냄새는 주방세제와 비눗물을 섞은 것을 사용하거나, 알콜 소독제나 탈취제로 지웠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맨몸으로 흙밭을 뒹굴러도 돼."

    "흙밭을 뒹구르면 체취가 사라지고 자연적인 냄새만 남게 되지. 야생동물과 비슷한 방법이군. 덧붙여서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은 어떻게 하지?"

    "엑소스켈레톤 착용자에게 방수포를 씌웠지. 방수포가 없다면 군용 판초우의나 군용 텐트를 잘라낸 천 같은 것도 괜찮아."

    의외로 간단한 방법들이었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내용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는 반응들이었다.

    무슨 보이스카웃도 아니고, 고작 이런 걸로 좋아라하는 놈들은 또 처음 본다.

    "그래서 결정은? 엑소스켈레톤 착용할 거야 말 거야."

    "착용한다. 대원들의 안전과 생환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어."

    지나가듯이 툭 던진 마지막 질문이었지만, 나는 이 마지막 질문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존중하기로 했다. 이곳의 대장은 내가 아니고, 프라이드로 똘똘 뭉친 저 엘리트 집단이 자신들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엑소스켈레톤을 포기할 리도 없으니까.

    결국 나를 제외한 작전 참가 인원 모두가 엑소스켈레톤을 그대로 착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마지막으로 63빌딩 침투 수단, 그리고 63빌딩에서 해야 할 일을 대략적으로 전해들은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어설픈 브리핑을 다 듣고난 뒤의 내 별점은 10점 만점에 3점 정도였다.

    재수강 의사 없음, 서비스 품질 낮음, 왠지 띠꺼움 등등 악플을 남기고 싶은 브리핑이었다.

    대원들보다 한발 앞서서 서울역을 빠져나온 나는 서늘한 아침 공기가 꽉 막혀있는 폐를 뻥 뚫어주는 감각을 만끽했다.

    아침이든 밤이든 하늘은 항상 어둡고 별 한점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빛이 대지를 향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구는 진즉에 얼음별이 됐을 테니까.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게 무엇이든, 태양 빛을 9할 정도 차단하는 건 맞지만 열기까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 하는 게 확실해졌어.'

    지난 한달간 지상 작전을 나오면서 꾸준히 기온 변화를 체크했다. 평균 기온은 영하 25도. 조금 더 추우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지만 평균치를 벗어나는 일은 드물었다.

    그냥 겨울 한파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하늘을 뒤덮은 암흑물질의 농도가 더욱 짙어지거나, 혹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얼어죽거나 굶어죽으면 게임 끝.

    이 급격한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인류는 끝내 지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지저 도시에서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며 비참한 삶을 연명하겠지.

    "준비 다 됐으면 출발하자. 내가 선배니까 말은 놓는다. 그리고 박뱀이라고 부르지 마라."

    뒤늦게 장비를 챙겨서 나온 알파 대원들을, 한때 브라보 소속이었던 내가 이끌었다.

    확실히 최진석의 말마따나 원효대교까지 가는 길은 순탄하기 짝이 없었다. 엑소스켈레톤 착용자가 다섯 명이나 되면 기동음만으로도 소음이 꽤 큰데, 나이트워커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밀수조직들이 움직일 때 습격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에 비하면 정말 편한 행군이었다.

    '한강은...역시 얼어붙었군. 저 위에서 썰매를 타도 되겠어.'

    원효대교 위에서 바라본 한강은 칠흑같이 어두운 거대한 빙판이었다.

    먼 옛날에는 겨울철에 한강이 얼어붙으면 꼬마도 어른이고 할것없이 구닥다리 썰매나 포대자루를 가지고 나와 열심히 놀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저 위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들지 않는다. 저 빙판 위에 올라서는 순간 얼음 아래의 어둠 속에 집어삼켜질 것 같아서.

    "사태 당일에 피난 가는 사람과 피난 오던 사람들이 완전히 얽혔나본데."

    "지저 도시 입구가 폐쇄되고 잠시동안 긴급 재난 방송은 계속 이어졌는데, 그때 저희가 들은 내용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수백만 명이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사람이 워낙 급격하게 빠져나간 탓에 서울에 아직 물자가 넉넉하게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그렇게 빠져나간 양반들은 죄다 어디로 갔는데?"

    "인천과 부산에 가장 많이 몰렸다던데요. 박 병...형님은 소식 못 들으셨습니까?"

    "그냥 박 병장이라고 불러. 박뱀이라고만 부르지마. 그리고 나도 먹고 살기 바빠서 다른 소식은 못 들어봤어. 당장 너희가 서울역에 자리잡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냈었는데 말 다 했지."

    내 뒤에 바싹 붙어 걷고 있던 추성호 상병이 내가 접하지 못했던 지상 이야기에 대해 간결하게 얘기해주었다.

    박살난 차량, 꽉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차량들이 거미줄에 걸린 파리들마냥 뒤섞여있는 원효대교를 건너는 데 훌륭한 킬링타임이 되었다.

    "인천은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지상의 군 부대가 결집해서 대규모 피난 센터를 만들었고, 부산도 김해국제공항과 부산항을 중심으로 비슷한 구도를 형성했다고 합니다."

    "인천과 부산, 대한민국의 해외 교역 중심지이긴 하지만 최소 수백만이 넘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닐 텐데."

    "인천항과 부산항에 군함부터 어선, 화물선까지 죄다 모여들어서 서로 엮어 한몸처럼 지낸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었습니다. 바다는 얼지 않았으니 식량은 해산물로 감당하고, 모자란 것은 배를 직접 끌고 나가서 해안선을 따라 물자를 수집한다던데요."

    나는 잠시 온갖 배들이 쇠사슬이나 로프로 서로를 묶고 하나의 작은 해상도시를 만든 광경을 떠올렸다.

    즉 지금의 대한민국은 서울과 인천, 그리고 부산을 제외하면 특별히 사람들이 모여서 안락하게 지낼 수 있을만한 지역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서울처럼 어지간히 크고 물자가 가득 쌓여있는 대도시가 아니고서야, 저기 지방의 중소규모 도시에서 사람들이 버티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날씨 탓에 농사는 다 망쳤고, 지상에 남아있는 물자를 다 소진하고 나면 먹을 것은 바다에서만 수집해야 하는 신세가 되는 거다.

    물론 지상에 남아있는 물자를 소진하는 것 만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흑야 사태가 얼마나 오래 갈지가 관건이다.

    "......"

    자연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직접 끝내야 한다.

    '혹은 일부러 이 상황을 이용해서 큰 이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진 않고."

    나약해진 인간들 위에 군림하는 것 만큼 쉬운 일도 없으니까.

    나는 마침내 알파 대원들을 이끌고 무사히 원효대교를 건너 63빌딩 앞에 도착했다.

    알파 대원들에게 주변 경계를 맡겨둔 나는 63빌딩 입구와 창문이 달려있는 외벽을 쭈욱 훑었다.

    척봐도 튼튼해보일 것 같은 강철 격벽이 모두 내려와있는 상태였는데, 내부에 일시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서 보안 시스템을 해제하는 게 아닌 이상 모든 격벽을 여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확실히 서울 한복판에 핵이 떨어져도 이 건물 안에 숨어있으면 어찌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구조다.

    "절단기랑 테르밋 폭약 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17번 중에 이런 일만 얼추 10번은 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것인양 자연스럽게 장비를 받아든 나는 빌딩 입구 앞에 쪼그려 앉아 격벽의 정확한 재질과 두께를 파악했다. 격벽의 대략적인 두께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꽝!

    "오, 좀 단단하네."

    외골격파츠를 장착한 주먹으로 격벽을 힘껏 때려봤는데 겉에 아주 조금 흠집이 생긴 것을 빼면 큰 변화는 없었다. 최소 50mm 이상이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깜짝 놀란 알파 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한 다음, 절단기로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크기의 흠집만 냈다.

    그리고 손가락 끝이 들어갈듯 말듯한 흠집 틈새에 테르밋 폭약을 꽉꽉 채워넣고 연결한 신관을 작동시켰다.

    직후, 두꺼운 강철 격벽 전체를 강타하는 아찔한 소음이 확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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