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85화 (85/211)

Photosensitive Epilepsy(2)

종로구의 특징은 북한산과 가까울수록 심심하고 별 볼일 없으며, 중구와 가까울수록 번잡하고 화려하다는 특성이 있다.

사실 모든 인프라가 중심부로 집중되는 서울 특성상 안 그런 지역구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종로구는 유독 그런 경향이 심한 지역구중 하나였다.

우리와 함께 종로구에 파고들었던 A집단중 다른 밀수조직은 가볍게 평창동에서부터 물자나 생존자 그룹의 흔적을 뒤지며, 일주일만의 지상 작전에 적응부터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무작정 번화가로 밀고 내려온 차도식파는 정말로 무식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바로 군경들의 숙소나 일터에 들이닥쳐 미처 누군가가 챙기지 못했던 총화기와 탄약을 챙기는 것이었다.

정치적 VIP의 거주지나 근무지가 집중된 종로구 중심에는 안전을 위해 상당한 수의 군경이 배치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청와대 경비단부터 대테러 대응반, 특수경찰기동대 등등. 하나같이 힘 깨나 쓰는 양반들이 종로구의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그들은 훈련이나 요인 경호 임무 외에 실전처럼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겠지만, 그냥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대부분의 사건사고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범죄 멈춰!'를 외쳐줄 그들이 사라졌으니, 우리가 그들의 무기를 대신 챙겨서 종로구의 유지를 이어받기로 했다.

우지끈!

"...이쯤 했으면 충분한 것 같은데."

혹시 숙소 내부에 아직 나이트워커가 숨어있을 것을 우려해 일부러 숙소 문짝을 요란하게 박살내면서 소음을 일으켰지만, 놈들이 바퀴벌레처럼 네발로 기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이라고 할까, 내가 잠겨있던 문을 박살낸 방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바깥에서부터 무언가가 들어올 수 없도록 문 앞에 의자나 책상, 심하면 매트리스까지 쌓아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방은 예외없이 창문이 깨져 있었다.

아무래도 생존자가 방 안에서 숨어지내다가 창문을 깨고 탈주했던 것 같다. 왜 하필 창문을 깨고 탈주했는지, 또 어째서 창문이 아니라 문만 막아두고 농성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한성 형님. 잠깐 오셔서 이것좀 보셔야 겠습니다.

숙소를 수색하고 있던 나는 무기고에 내려보낸 한 조직원의 무전을 받고 급하게 자리를 옮겼다.

특수한 공간에 별도로 관리되고 있는 무기고까지 내려가보니, 조직원들이 모두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들 앞에는 이미 누군가가 절단기를 이용해 해체해버린 무기고 입구가 문자 그대로 허무함이라는 단어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본래는 전력만 공급되면 카드키나 지문 인증 같은 디지털 락 방식으로도 잠겨있을 터인 튼튼한 무기고 입구가, 지금은 잠금 장치만 정확하게 뜯겨나가서 문짝이 덜렁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무기고 내부가 어떤 상태일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먼지가 그렇게나 쌓여있길래 아무도 안 건드린 줄 알았더니만, 우리보다 훨씬 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고?"

일반인에게는 익숙하지도, 제대로 된 정보도 안 풀려있는 경비단 숙소에 침투해서 무기고를 털어가는 간큰 놈들이 우리말고 또 있을 거라곤 예상 못 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이 절단 부위를 보시면 절단기를 다룬 솜씨가 제법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여길 털었다는 겁니다."

"네가 봐도 프로의 솜씨 같아?"

"확실합니다. 절단기라는 게 꽤 시끄러운 물건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환경에선 어지간하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인데, 문을 열 수 있을 만큼 최소한의 잠금 장치만 정확히 절단해서 작업 시간을 대폭 단축시킨 흔적이 보입니다."

조직원의 말을 듣고보니 정말로 프로의 솜씨가 엿보이는 작업 흔적이었다.

나는 거기서 상대가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인지 대충이나마 짐작했다.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가 돌아다니는 위험천만한 지상에서 절단기를 사용해 무기고 입구를 뜯어낼 수있는 대범함, 필요한 물자는 남들보다 먼저 확보하는 철저함, 실제로 이런 작전을 진행할 수 있는 무력과 기획력, 기술력까지 두루 갖춘 집단.

"대테러대응반이 움직였구만."

깔끔하게 결론을 내린 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조직원들을 집결시켜서 경비단 숙소를 빠져나왔다.

대테러대응반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총칭일 뿐, 서울경찰청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이곳이라면 당연히 경찰특공대(SOU) 하나밖에 없다.

아무래도 그들은 수방사 소속 군인들과 달리 특수한 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저 도시 입주권을 받지 못 했는지, 대다수 경찰들과 함께 지상에 남겨진 모양이었다.

하기야 지저 도시에 입주할 수 있었던 군 부대도 수방사 소속이 아니라면 특수부대고 나발이고 모두 팽 당했는데, 그들이라고 오죽했을까.

공 쳤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기보단, 우리 못지 않게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생존자 그룹이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잘만하면 그들과 만나서 교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 과정에서 정보나 군수물자를 얻을 수도 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준비해야겠지만, 애초에 우린 장거리 이동을 하며 물자를 찾아나서는 하이애나 집단이니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쪽도 허탕쳤을 가능성이 높으니, 차라리 군수물자가 아니라 생존자 그룹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게 더 낫겠어."

"중구로 내려가려면 군수물자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까 더 생존자 그룹을 찾아봐야지. 이 근방에 있는 군수물자는 그 생존자 그룹이 다 털어갔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 거래를 하시려고......"

"그래. 가능하면 거래가 가능할 만큼 말이 통하는 상대면 좋겠......"

파직! 와장창!

허탕을 친 우리가 숙소를 막 벗어나려던 찰나, 파공성을 내지르며 날아든 무언가가 유리로 된 현관문을 두들겼다. 직후, 충격을 버티지 못한 현관문은 강화 유리였음에도 속절없이 박살나버렸다.

숙소 내부를 돌아다니며 가볍게 문짝을 박살내고 다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음이 우리를 강타했다.

순간적으로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이 터져나온 것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바람이 워낙 심해서 어지간한 소음 정도는 1~200m 구간을 넘지 못하고 상쇄될 테니까. 문제는 우리 또한 보거나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전조가 없었다.'

총성이었다면 이 강풍 속에서도 확실하게 들렸을 것이고, 당연하지만 어둠을 뚫고 총염 역시 보였을 터.

하지만 총염과 총성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저 무언가가 날아든 대략적인 방향만 짐작할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낮춘 나는 당황해하는 조직원들을 이끌고 재빨리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뿌연 안개처럼 밀려들어오는 눈 입자가 자꾸만 시야를 가렸지만, 길을 더듬어서 돌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소음기를 장착한 라이플로 저격을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우습게도 그건 말이 안 돼.'

난 이번 작전에서 일전에 노획한 K14 저격총을 가져오지 않았다. 지상 기후를 고려해보면 저격총 만큼 최악의 무기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 야투경을 착용하고 주변을 둘러봐도 시야가 희미한 느낌인데, 장거리 저격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자세 최대한 낮추고 눈보라 속에 몸을 숨겨!"

순간적으로 우리 또한 앞선 손님들처럼 숙소 안에 숨어서 농성이나 할까 생각했지만, 내 몸은 이미 숙소를 벗어난다는 길을 택한 상태였다.

피윳! 팡!

도로 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차량을 엄폐물 삼아 엉금엉금 움직이고 있던 그때, 내 앞에서 고작 두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 무언가가 박히며 눈더미를 마구 튀겼다.

'차량을 넘어서 내리꽂히듯 박혔다. 상당한 고지대에서 쏘고 있다는 건가?'

도로의 차량들 옆에 숨어 내려오고 있는 우리를 고지대에서 포착하고 저격할 수 있는 장소. 나는 경북궁역 인근에 위치한 모든 빌딩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각도와 거리를 계산했다.

내가 그쪽을 바라봐도 시계가 흐릿해서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지만, 그쪽에서 우리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최적의 저격 포인트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경북궁역 인근에 도착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서야 공격하지 시작한 거지?'

우리의 수와 무장 상태를 보고 쫄았나? 아니면 그보다도 좀 더 단순하게 반응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던 건가?

반격은 반격대로, 회피는 회피대로 못 하면서 어떻게든 장갑차를 지키고 있는 위치 사수팀과 합류하기 위해 우리는 행군 속도를 높였다.

나는 두꺼운 장갑판을 덧댄 외골격 파츠를 들어 머리를 가린 채 전진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언가가 장갑판을 두들겼다.

터엉! 하고 장갑판을 후벼파는 듯한 진동에 무심코 침음을 흘렸다. 미래테크에서 제공해준 장갑판으로 내구력을 향상시켰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방금 전 일격으로 외골격 파츠가 또 찌그러질 뻔 했다.

질량이 큰 공격으로 묵직한 타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그마한 무언가를 핀포인트로 때려박아서 팔이 부들부들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다.

엑소스켈레톤을 조직원들 역시 머리를 보호하거나, 그렇지 않은 조직원을 자신의 뒤에 세워 보호하는 형태로 움직였다. 대략 5초 간격으로 그들에게도 무언가가 텅텅 꽂히는 소음이 울려퍼졌다.

"모두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어찌어찌 빌딩 아래에 도달한 우리는 위치 사수팀이 대기중인 지하 주차장으로 달여들어갔다.

안쪽에서 불을 피우며 대기중이던 녀석들이 무슨 소란인가 싶어 우르르 몰려나왔고, 곧 그들은 소스라차게 비명을 내지르며 우리를 손가락질했다.

"야! 너 팔에 그거 뭐야!!"

"무슨 씨발......!"

"우리 방금 바깥에서 공격받았...이건 뭐야 미친!"

이상할 정도로 과하게 반응하는 조직원들의 태도가 이상해서 나도 호흡을 고르다 말고 장갑판을 두른 외골격 파츠를 살펴보았다.

"!"

외골격 파츠 장갑판에는 엄지 손가락만한 검은 물체가 반쯤 박혀있었다.

꿈틀거리면서.

"미친!!"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쳐서 탈탈 털어내자 지면에 우수수 떨어진 검은 물체는 잠시 버둥대는가 싶더니, 곧 바퀴벌레처럼 기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다못한 몇몇 조직원들이 군홧발로 마구 짓밟아 터뜨렸다.

"윽 씨발! 나도 좀 떼줘!"

"대체 어디서 이딴 걸 달고 온 거야!"

"이거 벌레...인가? 몸통은 밟으면 터지는데 머리는 단단해서 안 터져."

"야! 그냥 불로 지져서 떼버려!!"

한바탕 난리를 겪은 우리는 드럼통에 쌓아둔 불붙은 장작들을 가져와 엑소스켈레톤 장갑판에 박힌 기괴한 벌레들을 떼냈다.

바닥에 떨어진 놈들은 모두 철저하게 짓밟아서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 하게 했다. 정보를 중요시 여기는 나조차 이 기괴한 벌레의 샘플을 수집하는 것보다 짓밟아서 터뜨리는 것에 더 집중할 정도였다.

"후우, 후우...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한 번 더 몸수색 해. 아직 붙어있는 벌레가 더 있을 수도 있어."

"...이 씨부럴 것은 대체 뭡니까? 이런 날씨에도 벌레가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혹시 어디 하수구라도 뒹굴다 오셨습니까?"

"아냐. 갑자기 어디선가 총알처럼 날아든 놈들이야. 우리도 까딱 잘못하면 이 벌레 한 마리에 머리통이 터질 뻔 했다고."

몸뚱이 터져서 검은 체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벌레의 사체를 유심히 살펴보니, 정말로 군홧밟에 짓밟혔음에도 반구형 머리통만 멀쩡하게 남아있었다.

하기야 머리통이 이만큼 튼튼하지 않았다면 유리창을 깨부수는 것도, 엑소스켈레톤 장갑판에 박힐 일도 없었겠지.

반면 몸통은 굉장히 연하고 부드러운 감촉이었는데, 마치 푸들푸들한 젤리 같아서 굉장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아마 머리쪽에서 들어오는 충격을 상쇄하기 위한 몸통 구조가 아닐까 싶었다.

"...일단 무전 쳐서 저쪽 팀은 다른 길로 합류하게 해. 우리가 왔던 길로 오면 저쪽 팀도 위험해."

무전기를 쥔 조직원을 급하게 지하 주차장 입구로 내보내서 무전을 보내게 하고, 그 사이에 나는 이 바퀴벌레와 물방개를 합친 듯한 기괴한 벌레의 사진을 찍었다.

마음 같아선 샘플을 수집하고 싶었지만, 이것만큼은 지저 도시에 가지고 들어가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

"몸수색 끝났습니다!"

"부상자는?"

"전원 무사합니다. 가볍게 타박상을 입은 사람이 제법 있지만 작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 일단 휴식하면서 대기해. 이 벌레들은 싹 태워버리고."

꺼림칙한 벌레 사체들은 싹 긁어모아 불로 태워버리게 했다. 저게 만약 맨몸에 박혔다면, 저 꿈틀거리는 것들이 체내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오한이 들었다.

'군수물자 보급에도 실패한 마당에 계속 여기에 처박혀있으면 손해가 막심하다.'

나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드럼통 앞에 주저앉아, 후보지로 점찍어둔 빌딩을 일일이 올라가서 직접 수색할지, 아니면 김명호가 이끄는 나머지 조직원들과 합류해서 재빠르게 이 근방을 탈출할지 고민했다.

예상못한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씨에 전조도 없이 기습을 받는 것 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우리가 직접 끝내야 해.'

하지만 동시에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섣부른 행동을 자제시켰다.

적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 이 지역에 얼마나 도사리고 있는지, 어떤 생태와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 하나 모른다.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는 내가 직접 발로 뛰며 습득한 정보가 있지만, 저 정체불명의 적들은 총알 같은 검은 벌레를 쏘아낸다는 것 말곤 별 다른 정보가 없었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냥 후퇴하는 게 맞다.

'하지만 여기서 후퇴하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간다고 한들, 그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있나?'

당장 삼각산동에서 벌어진 일만 해도 그렇다.

그 거미처럼 생긴 변종 나이트워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삼각산동에 섣불리 진입해서 큰 낭패를 보지 않았던가.

정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의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피해를 입지 않고 정보만 습득할 방법이 필요하다.

이 어둠 속을 자신의 은신처이자 사냥터로 삼고있는 적들에겐 어떤 공격이 가장 효과적이지? 칼? 총? 폭탄?

아니. 좀 더 확실하고 근본적인 방법이 있었다.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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