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77화 (77/211)
  • 망령(2)

    "역시 내부를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펴서 뭐할 건데. 숙소라고 쓰여있으니까 당연히 군 간부 아니면 노예 새끼들 먹고 자는 곳이겠지. 거기에 대단한 기밀 정보라도 있을 것 같아?"

    "사람이 뭔가 비밀스러운 것을 숨기는 장소는 보통 숙식하는 장소잖습니까. 침대 밑이나 책상 서랍 아래 같은 개인적인 공간에 뭔가를 숨기는 것은 심리적 안정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인권과 사상을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여긴 북한이야. 놈들이 숨길 거라곤 밀수로 몰래 들여온 아편이나 간식거리밖에 없어. 걸리면 빠꾸없이 총살이 자행되는 미친 괴뢰정권의 군인이 미쳤다고 기밀 정보를 자기 사적인 공간에 숨기겠냐?"

    내 주장이 아주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녀석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너만 인서울 출신이 아니야. 나도 인서울 출신이다 이 말이야!

    "그리고 심리적인 측면을 파고들면 저긴 더더욱 들어가면 안돼."

    "잘 못 들었습니다?"

    "너 방금 저기서 헛것 봤잖아."

    "헛것 아닙니다."

    "그래. 네가 헛것이 아니라고 믿는 게 사실 진짜든 가짜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저기서 뭔가를 봤다는 거지. 네가 그걸 신경쓰지 않고 순수하게 기밀 정보 수색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아니다에 내년부터 인상될 병장 월급 건다."

    "......"

    "넌 저기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신경쓰기 시작할 거야. 또 그게 나타나면 어떡하지? 그것의 정체는 뭐지? 그것이 내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지? 온갖 억측과 상상으로 스스로를 옥죄다가 결국 정신이 피폐해질 텐데, 그땐 네가 보기 싫어도 알아서 헛것이 보일 거다."

    "...이해했습니다."

    "이해했으면 움직여. 숙소 같은 것보단 통신실이나 제어실, 동력실 위주로 찾아봐. 좌관급(영관급) 이상 되는 장교의 개인실이면 더더욱 좋고."

    나는 자꾸 불편하게 조금씩 김이 서리는 고글을 툭툭 건드리면서 녀석을 구박했다.

    이놈의 병신같은 고글은 어떤 새끼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거하게 해쳐먹었을 거다. 생계형 방산비리인지 노후대비형 방산비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능이 좆같은 건 확실했다.

    내가 고글을 자꾸 만지작거리고 있으려니, 옆에 있던 녀석이 대뜸 기온 체크를 했다.

    "내부 기온 영하 27도입니다.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아오, 고글좀 제대로 만들지 병신새끼들......"

    "K-방산비리 맛이 어떠십니까 박뱀?"

    그때 다른 복도 문을 열고 막 나온 또 다른 후임중 하나가 나를 놀렸다. 이 새끼는 좋은 고글 뽑았던 모양이다.

    "대한민국 최고야. 국뽕클럽에 방산비리도 추가하고 싶어."

    "흐흐...지금쯤 거하게 해쳐먹은 새끼들은 룸빵에서 여자 끼고 똥별들 접대나 하고 있을 겁니다."

    "후우, 다 짬통에 처박아버리고 싶다."

    옆에서 킬킬대며 웃는 놈을 지나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적지 한복판에서 활동하는 중장갑수색대에게 지급하는 장비도 이 모양 이 꼴인데, 하물며 대한민국 군 장병들에게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장비는 또 얼마나 많은 비리가 엮여 있을까.

    북한군을 노예 새끼들이라고 놀리긴 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노예에 가까운 건 바로 우리가 아닐까? 심지어 북한군들과 달리 자신의 목에 걸린 족쇄를 자랑하기 좋아하는 A++ 특등 흑우 노예.

    마음 같아선 작전이고 지랄이고 그냥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 돌아가고 싶다. 대충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아무것도 못 찾았다' 고 보고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빛 한점 안 들어오는 땅굴이라 존나 춥지, 공기는 탁하지,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지, 후임 새끼들은 하나같이 나사가 빠졌지.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싶다."

    "박뱀은 옆 중대 소식 못 들으셨습니까?"

    "뭐 병신아."

    "알파 중대 말입니다. 거긴 진짜 개폐급 새끼들 천지랍니다."

    "아무렴 너희들만 할까?"

    내가 만약 총기 난사 문제를 일으킨다면 십중팔구 이 새끼들 때문이다. 작전 나가기 전에 의례적으로 작성하는 유서에도 그렇게 써놨으니까 다들 그러려니 하고 믿을 거다.

    대체 어디서 이런 폐기물 같은 놈들만 모아놨는지 모르겠다. 사실 군대야말로 진짜 인세의 지옥이자 똥통 아닐까?

    이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을 한데 갖다 처박아서 폐급과 에이스의 적절한 간격을 지키며, 수십만 군 장병에게 공평한 고통을 주는 건 대한민국 군대가 유일할 것이다.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리우는 미국조차 한 수 접어주겠지.

    "지하인데 시설 자체는 참 잘 만들었어. 이새끼들 조상이 사실 웅녀가 아니라 두더지녀였던 거 아니냐?"

    "이 새끼들 조상에 우리 조상도 포함되어 있지 말입니다......"

    "이 새끼들은 피까지 붉은 빨갱이들이잖아."

    "우리 피도 빨간색입니다 박 병장님......"

    "사실 검은색일 수도 있잖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왜 내 의견은 존중 안 해줘 이 새끼야. 여기가 북한이냐?"

    북한 맞...까지 꺼낸 놈은 곱게 입을 다물었다.

    나는 다시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길 아래쪽을 내려다 보았다. 시험삼아 야광봉을 구부려서 던져봤는데, 데굴데굴 굴러간 야광봉이 밑도끝도 없이 굴러내려가다가 제 스스로 코너를 돌아서 내려갔다.

    "염병 나선형 땅굴이네. 수직 땅굴보다 효율도 안 좋은 걸 이 거지 새끼들이 대체 어떻게 팠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여기에 꼬라박은 거 아닙니까?"

    "그럼 핵은 어떻게 만들었는데."

    "이거 안 들키려고 블러핑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잖습니까."

    "말은 되는데 현실성이 없어. 여기 시설 규모만 해도 어지간한 도시 하나랑 맞먹겠다."

    심지어 그 규모조차도 내 어림짐작에 의한 추측일 뿐이다. 물론 통로가 이만한 규모라면 아래로 내려갈 수록 더욱 많은 시설과 넓은 공간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통로를 이렇게까지 크고 웅장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마치 뭔가를 대량으로 옮기기 위해, 혹은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이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통로같지 않은가?

    만약 저 위에 있던 1 숙소도 지하 시설의 주요 통로를 막는 초병들만 머무르는 장소였다면? 진짜배기는 저 아래에 있다면?

    문득 나는 지저 도시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인류가 마의 지하 12km 벽을 뚫으면서 도달한 또 하나의 거대한 세계. 지저 세계에서 새로운 인류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지저 도시 프로젝트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건 디그러쉬라는 외국계 기업의 도움을 받은 국가들만 진행중인 국가급 프로젝트 아닌가?'

    시대를 앞선 미친 착굴 기술과 착굴 설비를 세상에 발표한 디그러쉬는 자신들과 계약을 맺은 국가들에게만 해당 기술과 설비, 그리고 인력을 지원해주었다.

    당연하지만 북한처럼 근본도 없고, 돈도 없고, 위험하기까지 한 괴뢰정권과 디그러쉬가 계약했을리는 만무하다.

    즉 북한은 처음부터 디그러쉬의 도움없이 자신들의 노하우가 담긴 기술로 이만한 규모의 땅굴을 파냈다는 거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거대한 시설, 혹은 도시를 짓고 있었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이번 땅굴이 제대로 적중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 안 되는 건 여전해. 우선 이 땅굴에 갖다 쓴 시멘트와 금속, 목재의 양만 해도 북한의 경제력으로는 도저히 마련할 수 없을 양이니까.'

    그것도 한창 지저 도시 프로젝트 붐이 일어서 모든 원자재값이 폭등한 지금, 북한이 자력으로 원자재를 확보했다?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일단 내려가보자. 기온 체크랑 가이거 계수기 체크 계속 하고, 손전등 불빛은 정중앙만 보지 마라. 저 병신처럼 헛것 본다."

    "헛것 안 봤습니다."

    "누가 보면 박뱀이 우리 어머니인줄 알겠습니다. 제가 냉동 사드리면 효도로 인정해주시는 겁니까?"

    "향 냄새만 맡게 해줘도 돼. 내 향 말고 네 향이면 더 좋고."

    저 새끼는 엑소스켈레톤 착용시킨 채 물에 던져놔도 주둥이만 둥둥 뜰 새끼다. 우리 중대 내에서도 요주의 인물이라 주기적으로 조인트를 까야 말을 좀 듣는다.

    내 위로는 아버지 복이 없고, 나 아래로는 후임 복이 없으니, 나는 필시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놈이었을 거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통로에 차량이 이동한 바퀴의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중간중간 무한궤도 흔적도 보이는데, 본격적으로 여기에 중장비와 차량을 투입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후임이 통로에 헤드램프를 가까이 대고 인디언처럼 지면을 면밀히 살피면서 그리 말했다.

    "당연히 이만한 규모의 통로를 만들었는데 저 아래에는 더 크고 아름다운 걸 만들었겠지. 그 뭐냐, 인민의 어버이랍시고 15m 높이 동상도 하나 만들어 놨겠네."

    "통로는 깔끔하게 만든 것 치고 천장이나 외벽은 상대적으로 좀 허술해보이지 않습니까? 군데군데 흙이나 암반이 그대로 드러난 곳이 많습니다."

    "자재가 부족했겠지. 아니면 그것까지 일일이 신경쓸 만큼 여유가 없었거나."

    우리도 핵 만들었소 하고 대외적으로 핵 보유국 선포를 하면서부터 북한은 본격적인 동아시아 압박 정책을 이어나갔다.

    물론 우리의 그레이트 아메리카는 전략적인 선제 타격 대신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돈줄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대북제재를 발동시켰고, 그 결과 북한은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되는 형태에 이르렀다.

    그런 북한이 어떻게 이런 지하 시설을 만들 수 있었는지, 미스터리에 미스터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물밑에서 지원해줬을 가능성은 당연히 있지. 하지만 그 중국과 러시아도 지저 도시 프로젝트 때문에 바빴을 텐데 돈도 안 되고 도움도 안 되는 북한에게 막대한 자재와 중장비를 지원해줬을리가 없어.'

    차라리 제 3 세력이 아무도 모르게 북한을 뒤에서 지원해줬을 가능성이 더 그럴싸한 추측 같다. 그런 병신같은 3 세력이 대체 어디 있겠느냐마는.

    완만한 경사의 나선형 통로를 타고 쭈욱 걸어내려온 우리는 점차 낮아지는 기온을 연신 체크하면서, 또 수십 미터를 내려왔다. 어쩌면 수백 미터일지도 모른다.

    통로 끝에는 새로운 공터와 도로, 그리고 건물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정말로 이곳에 지하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던 것인지, 제법 많은 자재와 노동력이 투입된 흔적이 보였다.

    "박뱀. 이것좀 보십쇼. 누가 벽에 이상한 점 같은 걸 찍어놨습니다."

    "그딴 거 볼 시간 없어. 우리 지금 얼마나 내려왔냐?"

    "361m 입니다."

    "미친 새끼들이 대체 땅밑에 뭘 만들어놓은 거야."

    "박 병장님 여기 진짜 뭔가 있습니다......"

    "헛소리 그만하고 계속 움직인다. 이거 다 둘러보려면 25시간도 부족해."

    그래. 25시간이 아니라 250시간이어도 부족할 것 같다.

    헤드램프와 손전등까지 총동원해서 주변을 비춰봤지만, 불빛에 드러난 것보다 어둠 속에 잠긴 것들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이렇게 공들여서 만든 건물이나 설비를 누군가가 사용한 흔적이 없다는 거다.

    엄밀하게 따지면 누군가가 드나든 흔적은 있었지만 생활감은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기껏 다 지어놓고 분양을 하나도 못해서 졸지에 망해버린 시골 구석의 아파트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부동산이 무적이고 비트코인이 신인 대한민국에선 물론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중요한 건 느낌이다.

    묘한 이질감. 혹은 괴리감.

    나는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옆에 선 후임들에게 물었다.

    "...지금 몇 도지?"

    "영하 31도입니다."

    "야. 너흰 영하 31도에 흙먼지 많고, 햇빛 한점 안 들어오는 지하에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냐?"

    "박뱀이 그렇게 명령했으면 바로 프래깅 했습니다. 긴장 타십쇼."

    그래. 영하 31도에 흙먼지가 많아서 공기도 탁하고, 햇빛 한점 들어오지 않아서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는 이런 지하 도시에서 대체 누가 살아갈 수 있지?

    대체 누구더러 이곳에서 살라고 이런 걸 만들었단 말인가.

    북한 인민들? 암만 위대한 영도자의 말씀에 죽고 못 사는 북한 인민들이라고 해도 이런 곳에서 살라고 하면 하루도 안 되서 쿠데타가 발발할 거다.

    여긴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임에도 마치 인간을 대상으로 만든 것 같은 기괴한 거주구역이다. 거기서 느껴지는 엄청난 괴리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북한의 위대한 영도자는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엄청난 규모의 땅굴을 파내서, 지하 도시를 건설한 거지?

    그만한 기술력과 돈, 자재는 대체 어디서 났으며, 정작 북한 인민들은 어째서 이곳에서 살고 있지 않은 거지?

    꼭 북한 인민들이 아니라고 해도 이곳을 지켜야 할 인민군은? 혹은 이곳에 자리잡고 비밀스러운 실험을 자행하고 있어야 할 사악한 과학자들은?

    "야, 느낌이 안 좋다."

    "또 그겁니까?"

    "내 '본능'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새꺄. 어렸을 때부터 얼른 집에서 탈출하라고 알려준 것도 내 본능인데. 아마 로또 번호도 본능대로 찍었으면 1등만 했을걸?"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마십쇼. 저희 중대가 단체로 또라이 집단이라고 욕 먹잖습니까."

    "내 기여도는 1푼도 안 돼 미친놈아."

    이 새끼들 다 합치면 우리 중대가 욕 먹는 이유의 기여도 9할 9푼은 될 거다.

    "쯧,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녹음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