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76화 (76/211)
  • 망령(1)

    밤이 지나고 새로운 아침이 왔다.

    본래의 지상이었다면 지금쯤 눈부신 햇살이 무거운 눈꺼풀을 강제로 들어올리기 위해 열심히 쿡쿡 찔러대고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를 깨운 것은 타이머에 맞춰서 조심스럽게 몸을 흔드는 불침번들의 손길이었다.

    "아, 씨발. 지상은 진짜 살곳이 못 되는구나."

    버스터미널의 지하층, 그곳에서 우리는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서 단열재를 이불처럼 덮고 침낭 속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옛날에는 혹한기 훈련 할 때 외부에서 구닥다리 텐트 치고 침낭 속에 손난로 몇개 까넣어서 대충 잤다던데, 그것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잠자리인 것 같았다.

    추위, 피로, 그리고 통증.

    부상자들은 인근 약국에서 구해온 소독제와 붕대, 항생제와 진통제로 응급처치를 한 게 전부였기 때문에 특히 앓는 소리가 심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생길 만큼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다들 어디 하나 삐끗하거나 크게 까이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선 집중 치료와 요양이 필요한 자들 뿐이었다.

    "후우, 역시 지상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되네요."

    누구보다 먼저 일어난 정원석이 개인 운동으로 빠르게 몸을 풀면서 말했다.

    평균 기온 영하 25도. 눈이 내리지 않으면 지독한 강풍이 불고, 눈이 내리면 빠꾸없는 폭설로 무릎까지 잠긴다. 그런 주제에 빛도 거의 없어서 야투경이나 인공적인 불빛이 없으면 한치 앞을 보기도 힘들다.

    이런 지옥같은 환경 속에서도 꾸역꾸역 살아가려면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필수 생활 인프라인 전력, 가스, 수도는 당연하고 추위로부터 심신을 모두 지켜줄 수 있는 따뜻하고 배부른 음식, 거기에 몸을 보호할 방한용구와 무기까지. 지상에서 생활하려면 이것들은 필수다.

    당장 지저 도시조차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마당에,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은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을 터.

    나 역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풀었다. 뚜두둑 하면서 굳어있던 근육이 풀리고, 칼칼한 목은 수분을, 쪼그라든 위장은 어서 밥이나 달라며 꼬르륵 거렸다.

    몸이 불편한 잠자리였던 것과는 별개로 마음만큼은 편한 잠자리에서 눈을 떴다는 사실이 꽤 만족스러웠는지라, 나는 망설임없이 배낭에서 식수와 휴대용 식량을 꺼내 섭취했다.

    평상시라면 입맛이 없다면서 아침은 가볍게 끼니만 때웠겠지만, 어제 그런 일을 겪고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니 입맛이 확 당겼던 것이다.

    마치 자신이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다들 얼른 자리 정리하고 식사나 합시다. 오늘도 공치면 진짜 다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내 말에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한 사람들은 서둘러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 챙겨온 식수와 식량을 꺼내 먹었다.

    부상자들은 여전히 골골대고 있었지만, 그들또한 먹어야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픈 몸으로도 어찌어찌 식사를 끝마쳤다.

    먼저 식사를 끝낸 나와 정원석은 각자의 몸 상태와 장비를 점검했다.

    나는 무기 탄약을 거의 다 소모했지만 보조 도구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양팔에 장착하는 외골격 파츠도 큰 문제는 없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편하게 '수확'만 하면 되는 날이라 육체적 노동이 과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나갈 수 있는 운반조와 호위조는 장비 점검하고 탄약 보급해라!"

    터미널을 전초기지 삼은 도구봉파는 이미 대용량 탄약박스나 몇몇 총기의 예비 부품 같은 것들을 잔뜩 쌓아두고 있었는데, 외부에서 작전을 진행하다가 탄약이 떨어지면 이곳에서 급하게 보급을 땡겨쓰는 구조인 듯 했다.

    '기본적인 소총이나 권총 탄약은 경찰서와 파출소만 털어도 어느정도는 보급이 가능하고, 뭣하면 지저 도시에서 사들인 탄약을 지상으로 가지고 나올 수도 있지. 전초기지에 탄약이나 예비 부품을 쌓아두는 건 나도 배워야겠어.'

    사실 내가 전초기지로 세워둔 노원역은 이미 군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장소라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것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곳을 중개 무역 거점으로 성장시킬 생각이기 때문에, 거래할 의향과 상품을 가진 외부인을 적극적으로 들여서 물자를 쌓아두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굳이 내가 물자를 따로 조달해오지 않아도 노원역은 언젠가 물자로 가득한 지상의 상업구가 될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쪽 문제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준비를 끝마친 나는 이곳에 부상자와 최소 대기 인원을 남겨두고, 정원석이 이끄는 도구봉파와 함께 다시 밖으로 나섰다.

    눈보라는 어젯밤이나 새벽즈음에 그쳤는지, 지금은 더이상 눈이 내리지 않고 강풍 조금 불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무릎 높이까지 쌓여있던 눈이 발목 언저리까지 조금 내려와 있었다.

    '...이 기온에 눈이 녹았을리는 없고, 약하게 덮여있던 눈이 강풍에 휩쓸려서 날아간 건가?'

    나는 혹시나 싶어 불침번을 서고 있던 사람들에게 쌓여있던 눈이 급속하게 줄어드는 광경을 보았느냐고 물었으나, 그들 모두 모른다거나 자세히 보지 않았다는 대답만을 했다.

    하기야 터미널 안에서 제한적인 시야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밖을 주기적으로 살펴보기만 하던 불침번들에게 그런 세세한 것까지 기대하는 건 힘들겠지.

    야간 경계 근무를 설 때도 어두운 곳을, 특히 한 지점을 오래 보지 말라고 배우기 때문에 특정한 장소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거다.

    쌓인 눈의 높이가 낮아졌다는 사실은 다른 조직원들도 눈치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행군에 들이는 육체적 노동을 덜수 있어서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말자. 지상에선 항상 바람이 심하게 불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암흑 물질이 하늘을 뒤덮은 순간부터 기상 상태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도 없게 됐잖아.'

    한국 기상청은 어제의 날씨부터 내일의 날씨까지 모두 틀리기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상청의 분석조차 간절했다.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가 대기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영향을 끼칠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다못해 정상적으로 기상 관측이라도 된다면 좋았으련만.

    GPS가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을 끝으로, 나와 정원석은 조직원들을 이끌고 소수 정예로 남하했다.

    어젯밤 우리가 쏘아올린 작은 신호탄은 괘씸한 군 부대의 머리 위에서 터졌고, 이미 삼각산동에서 우리를 놓친 탓에 열이 머리 끝까지 뻗어있었을 나이트워커 무리가 그곳을 덮치는 건 당연했다.

    총성, 폭음, 비명, 그리고 순식간에 찾아온 침묵.

    어둠 속의 고요함에서 흘러나온 것은 진득한 피비린내도 아니었으며, 귓가에 남아 끝없이 메아리치는 누군가의 처절한 단말마도 아니었다.

    그저 싸늘한 냉기가 담긴 눈보라가 불어닥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지상의 모든 소음과 불빛을 집어삼켰다. 그것이 우리가 어젯밤에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짧막한 정보였다.

    "후우...지독하군!"

    처음 아파트 단지에 발을 들이자마자 정원석이 드물게도 한 손으로 코를 싸쥐고 인상을 찡그렸다.

    일반인에 비해 비위가 좋은 그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아파트 단지 내부가 엉망이긴 했다.

    나는 뭔가에 긁히거나 두들겨 맞아서 찌그러진 흔적이 잔뜩 남아있는 장갑차 인근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마지막까지 총을 들고 저항하려던 군인이 쓰러진 채 눈에 뒤덮여 있었다.

    그의 하반신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고, 그나마 남아있는 상반신도 미친듯이 두들겨 맞거나 할퀴어졌는지 멀쩡한 부위가 없었다. 얼어붙은 핏자국은 검게 변색되어 지독한 냄새를 흩뿌렸다. 나 역시 무심코 코를 틀어쥐고 싶을 정도였다.

    "두 명 정도 여기 남아서 장갑차 내부 살펴봐. 차체 손상이 좀 있긴 한데 내부 부품만 멀쩡하면 어떻게든 굴릴 수 있을 거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외부가 이정도인데 안쪽까지 들어가실 겁니까? 이정도면 안에도 뭐 남아있는 게 없겠는데요 형님."

    "새꺄. 나이트워커들이 사람을 조지지 물자를 조지더냐? 그랬으면 우리가 지상까지 기어나와서 밀수도 못 했지. 놈들은 사람 외에 관심이 없어."

    그 말에는 나도 동감한다.

    필요하다면 장애물이나 장비를 부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놈들이지만, 기본적으로 놈들이 노리는 건 사람이다. 203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인구가 근 6천만에 달하는데, 나같아도 사람만 집요하게 찾아다녔을 거다.

    "하나 더 확실한 게 있습니다. 이 놈들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네."

    나는 얼어붙은 시신을 뒤로 하고, 아파트 단지 중앙을 훑어보았다.

    눈더미 속에 대충 파묻혀있는 시체들의 수만 해도 가볍게 수십 구가 넘었다. 건물 내부나 지하까지 수색해본다면 시신이 배 이상은 더 나오겠지.

    그럼에도 나는 물자보다 쌓여있는 눈을 발로 슥슥 치워서 직접 시신들의 형상을 확인했다.

    도구봉파는 내 행동에 질린 듯 물자 수색에만 더욱 열을 올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시신을 남기지 않았던 나이트워커들이 이번에는 꽤 많은 시신을 남겨두고 떠났다. 우리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 놈들의 생태와 습성, 전투 방식을 좀 더 세세하게 공부할 수 있다면 무엇 하나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하반신과 상반신이 따로 노는 시체가 많은데. 나이트워커 중에서 인간의 몸뚱이를 통째로 절단할 수 있는 놈이 있었던가?'

    그렇게 자문했지만 그에 대한 자답은 NO였다.

    나이트워커는 대체적으로 멀쩡한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띄고 있다. 팔 다리가 조금 더 길고, 피부가 창백한 백색이며, 대체적으로 체모가 적은 편에 해당한다.

    인간을 습격할 때는 주로 촉수같은 긴 혀를 총알처럼 내뱉어서 단숨에 꿰뚫거나,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을 이용해 할퀴거나, 특유의 우월한 피지컬을 이용해 육탄전을 벌인다.

    사람의 몸뚱이를 양손으로 잡아 찢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절단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NO였다.

    그렇다면 하나같이 형상이 기괴하고 종잡을 수 없으며, 특히 나이트워커에 비해 촉수 공격이 훨씬 더 매서운 나이트워치라면 가능할까? 100% 확답까진 못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꽤 높다.

    당장 삼각산동에서 마주쳤던 거미같은 놈들만 해도 엑소스켈레톤으로 무장한 인간과 맞먹지 않았던가. 물론 전혀 다른 종류의 나이트워치였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나는 헤드캠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시신을 촬영하면서, 특히 검게 변색된 시신의 환부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검게 변색된 부위는 환부에서 검은 진물이 배어나온 흔적이 있었다.

    검은 얼룩으로만 흔적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얼어붙은 진물을 직접 확보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관통상에서만 그런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만한 관통상은 촉수 공격 뿐인데, 놈들의 촉수에 특수한 독이라도 발려져 있는 건가?'

    어쩌면 멀쩡한 사람을 놈들처럼 변화시키는 감염성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뜻 손을 갖다댈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나이트워커와 마주쳤을 때 나도 검은 액체에 노출되었는데, 그때 검은 액체가 기화하면서 옷에 검은 얼룩이 남았던 기억이 있다. 모두 소독제로 깨끗이 씻어내긴 했지만 한동안 찝찝한 기분으로 지냈었다.

    '놈들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중요한 단서일지도 모르니까 일단 킵.'

    이렇게 확보한 자료들은 모두 미래그룹에 제값 주고 넘겨서 연구 결과만 쏙 빼먹을 생각이다. 미래그룹 역시 지속적으로 정보를 확보하려면 꾸준히 지상으로 나가는 내 도움이 필요할테니, 결국 싫더라도 일정 부분 정보를 공유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창 시체를 살피면서 정보를 습득하고 있던 그때, 아파트 단지 지하를 살피러 들어갔던 도구봉파 조직원들이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우르르 뛰쳐나왔다.

    "으아아아악!!"

    "씨바아아알! 미친! 개씨발!!"

    "오에에에엑......!"

    깜짝 놀라 돌아보니, 지하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담벼락이나 얼어붙다못해 말라비틀어진 고목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가장 늦게 그들을 뒤따라나온 정원석 역시 못 볼 것을 봤다는 얼굴로 입가를 가린 채 내게 다가왔다.

    "다들 무슨 일입니까? 시체도 본 사람들이 이제와서 왜......"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데요. 나이트워커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신다면 아래의 상황을 보고 우리에게 설명좀 해줄래요? 내가 살다살다 저런 건 처음 보네 진짜."

    바깥에 흉측한 몰골로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는 시체와 육편, 공기중에 진동하는 피비린내를 맡고서도 인상만 찡그리던 이들이 지하에서 놀라 나자빠지며 달려나올 정도라니.

    대체 지하에 뭐가 있나 싶다가도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건 '본능'일까? 확실하지 않다.

    "그럼 제가 잠시 살피고 올테니 도구봉파는 지상에 있는 장비와 물자부터 우선적으로 수습해주십시오."

    "그럴게요. 쓰읍......"

    애써 쓴물을 마시는 정원석을 뒤로하고, 나는 아파트 단지의 공용 지하 구역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하나둘 밟고 내려갈 때마다 진득한 피비린내가 마스크 필터를 뚫고 들어와 코를 따끔거리게 했다.

    단순한 피비린내보다는 지독하게 썩어버린 시취(屍臭)에 가까웠다. 단순히 더럽고 냄새난다는 감정을 넘어서, 혐오스럽고 추악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만드는 악의적인 체취였다.

    이것이 어떻게 체취냐고 생각했느냐면, 지하 공용 구역에 들어섰을 때부터 검게 변색된 내장과 육편으로 버무려진 바닥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도 내 헤드램프의 불빛이 발견한 것은 전신의 가죽이 깔끔하게 벗겨진, 학교 과학실의 해부도 같은 모습을 한 인간들의 시체였다.

    그들은 매우 장난스럽게, 혹은 철저한 악의를 담아 박살나있거나 장식되어 있었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신발 밑창에 찌이익 하고 들러붙는 것은 그것들로부터 흘러나온 온갖 오물과 피, 그리고 괴사한 신체 조직의 찌꺼기일 것이다.

    시체들은 하나같이 가죽이 벗겨진 채 죽음 끝에서도 편해질 수 없다는 양 파괴되어 있었으나, 신기하게도 동그란 눈알이 부릅뜨고 있는 두개골만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개골들의 시선을 따라 가니 그곳에는 1 숙소 간판이 달려 있었다.

    "저기 '1 숙소' 라고 쓰여있는 복도 말입니다. 아까 누가 서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샌가 옆에 있던 녀석을 향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요즘 몸이 허해서 헛것이라도 보냐? 돌아가면 몸에 좋은 냉동이라도 좀 사줄까?"

    "저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그럼 나는 농담하는 것 같냐? 새끼가 빠져가지고는......"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나는 외골격 파츠가 장착되어있는 팔목의 디지털 시계를 확인했다. 분명 진입 전에 타이머를 맞춰둔 것 같은데 타이머가 작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 실수를 후임에게 알리는 것 만큼이나 수치스러운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뒤통수를 문지르고 있는 녀석에게 넌지시 작전 시간을 물었다.

    "야, 우리 여기 들어온지 얼마나 됐냐?"

    "이제...1시간 12분 됐지 말입니다."

    "타이머까지 안 맞춰놨으면 넌 여기서 나한테 진짜 영혼까지 개털리는 거였는데. 아깝다 그치?"

    "제게 마편이라는 치트기가 있다는 걸 잊지 마십쇼."

    "아서라. 마편은 마약성 진통제 같은 거야."

    "...무슨 뜻입니까?"

    "효과는 개쩌는데 그리 오래 안 간다고. 하지만 난 타이레놀 같은 선임이지. 존나 오래 가거든."

    나는 슬쩍 시계의 타이머를 1시간 12분으로 맞추면서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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