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73화 (73/211)
  • 폭풍의 눈(3)

    "야, 저거 뭐냐?"

    장갑차 안에서 따뜻한 물에 믹스 커피를 타 마시고 있던 김학수 대위가 관측장비 너머로 보이는 발광체를 포착하고 물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발광체는 어느 순간 퍼엉, 하고 터지며 강렬한 빛을 흩뿌렸다. 장갑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나 간부들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서둘러 무전기를 뽑아든 김학수 대위는 바깥에서 가장 넓게 시야를 쓰고 있을 하설준 중사에게 무전을 쳤다.

    "야! 하 중사! 방금 뭐야?! 왜 보고 안해 씨발!!"

    하지만 무전기 너머로 다급한 기색이 담긴 보고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저 무의미한 잡음만이 이어질 뿐.

    만약 날이 정말 추워서 소변이 급해졌다고 해도 상급자의 무전을 씹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중사라는 놈이 미쳐서 병사에게 무전기를 맡겼을리도 없고. 만에 하나 잠시 병사에게 맡겼다고 해도 대답이 돌아와야 정상 아닌가?

    "하 중사! 대답해 이 새끼야!!"

    묵묵부답.

    비도기닉을 따로 명령한 것도 아니고, 대대의 에이스 중 하나인 저격반 저격수가 이런 상황에서 침묵을 유지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굳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다.

    김학수 대위는 즉시 무전 채널을 돌려 인근에 배치된 다른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야! 지금 옥상에 배치한 하 중사랑 최 병장 응답이 없으니까 가까운 곳에 있는 놈들 몇 명이 가서 확인해봐!"

    혹시 건물 외부에 해당하는 옥상에 배치한 탓에 저체온증으로 쓰러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잠깐 스쳐갔지만,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애써 무시했다.

    무엇보다 지금 문제는 하 중사의 침묵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정확히는 마경이라 불리우는 삼각산동 한복판에서 신호탄이 터졌다.

    범인은?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신들이 삼각산동에 밀어넣은 그 수상쩍은 집단일 테니까.

    "씨발! 병신새끼들이 죽을 거면 곱게 죽지 꼭 지랄발광을 한다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대장님?"

    "어쩌긴 뭘 어째! 그 새끼들이 신호탄을 쐈다는 건 진짜 절체절명의 위기라서 동료들에게 알릴 목적으로 쐈다는 거 아니겠어? 어차피 동료라고 해봤자 눈보라가 심해서 오지도 못할 텐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우리가 그 새끼들 장비 싹 벗겨갈 수 있어!"

    결국 이곳에서 게속 대기한다는 쪽으로 얘기가 흘러갔기에, 장갑차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도 다시 사주 경계에만 집중했다.

    행여나 그 수상쩍은 집단이 지옥같은 삼각산동을 빠져나온다면 즉각 요격해서 장비를 벗겨낸다음 버스에 싣고 도로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숭고한 희생 정신으로 앞장서서 괴물을 죽이거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방아쇠를 당길 필요가 없다. 그저 같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기만 한다면 훨씬 더 쉽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런 세상으로 전락해버렸다.

    바로 그때.

    콰아아아앙!

    거센 눈보라를 뚫고 들려오는 폭음에 모든 인원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어느 지점을 바라보았다.

    관측장비로 확인해보니 정확히 하 중사와 최 병장이 배치된 건물의 옥상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옥상 난간이 일부 파괴된 것으로 보아 폭발물이 터진 게 확실했다.

    "무슨......!"

    -쿨럭! 쿨럭! 아악! 내 다리......!

    -옥상 입구에 부비트랩이 있었...치지직!

    무전기 너머로 들려온 단 두마디로 알 수 있는 정보. 그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비트랩에 의한 사고로 부상자 속출이었다.

    "하 중사 이 새끼가 우릴 배신했다고?!"

    "중대장님 진정하셔야 합니다. 일단 다친 애들부터......"

    "씨발! 씨발! 오늘 왜 이래! 뭐 되는 일이 없어! 아니면 이 주변에 죄다 마가 껴서 그런 건가?!"

    안 그래도 좁은 장갑차 내부에서 발작을 일으킨 김학수 대위는 부하들이 뜯어말리는 와중에도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그것과는 별개로 휘하 소대장이 다른 병사들에게 지시해 부상자들을 수습하게끔 했다.

    하 중사와 최 병장이 배신을 했든, 대위라는 새끼가 현장에서 지랄발광을 하고 있든, 중요한 것은 부대원들의 동요를 막는 것이었으니까.

    안 그래도 일전의 사태 때문에 사기가 크게 저하되어 있는데, 이번 일로 사기가 더 떨어지면 정말 바닥에도 바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꼴이 된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라 탈주병들이 속출하지는 않겠지만, 점점 병사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은 불보듯 뻔했다.

    하지만 김학수 대위가 이끄는 1개 중대가 맞이한 불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상자들을 수습하기 위해 급하게 제 위치에서 이탈한 병사들이 또다른 보고를 날린 것이다.

    -주, 중대장님 솔샘로 쪽에서 뭔가 오고 있습니다!

    보고 체계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은 무전이었지만, 그만큼 다급하다는 뉘앙스가 담긴 보고였다.

    병사를 갈구기보다 우선 무엇을 포착했는지부터 알아내기 위해 소대장이 대신 무전기를 잡은 순간, 총성이 먼저 울려퍼졌다.

    "뭐야 씨발! 누가 멋대로 사격했어! 아직 교전 명령 내린 적 없어 미친 새끼들아!!"

    -한둘이 아닙니다 씨발! 저기도 온다! 막아!!

    -뭐야! 뭔데! 왜 저렇게 많은 건데!!

    -여기 지원좀...억?!

    트타타타타타! 탕! 탕! 탕!

    갑작스럽게 시작된 교전. 지휘차량에 탑승해 이들은 벙찐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죽하면 김학수 대위 역시 발작을 멈추고 식은땀을 흘리며 관측장비를 재차 살폈을까.

    관측장비를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던 김학수 대위는 이내 홀린 것 같은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야, 조종수. 밟아."

    "잘 못 들었습니다?"

    "밟으라고 이 새끼야! 빨리 밟아! 지금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해!!"

    뭔가 잘못됐다.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다.

    왜 건물 외벽이나 옥상에서 저 기괴한 괴물 새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지, 제대로 포지션을 잡지 못한 중대원들은 왜 놈들에게 허무하리만치 각개격파를 당하고 있는지, 놈들의 숫자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리고 인간은 미지라는 공포와 마주치면 대부분 제자리에 주저앉아 포기하거나, 필사의 도주만을 생각한다.

    "밟아! 더 빨리 밟아!!"

    "누, 눈이 많이 쌓여서 급속기동은 힘듭니다!"

    "이거 궤도 차량이잖아 씨발!"

    중대장이 탑승한 차량은 장갑차든 전차든 선임차량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별한 명령이 없는한 선임차량이 움직이면 다른 차량도 그 뒤를 따른다.

    김학수 대위가 '교전하라'고 명령을 하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장갑차 역시 선임차량을 따라 도로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이미 쓰나미처럼 몰려온 괴물들과 교전중인 병사들을 태울 여지도 없었다.

    무전 너머로 자신들을 두고 가지 말라는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김학수 대위는 애써 무시하듯 무전기를 꺼버렸다.

    선임차량을 뒤따라오는 다른 차량의 사수가 K6 기관총을 쏘며 후퇴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무지막지한 K6 기관총이 50구경 탄을 흩뿌리고 있음에도 물밀듯이 밀려오는 괴물들이 기세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들끼리 알아서 교전하고 있던 병사들도 어느순간 물량에 완전히 집어삼켜졌는지, 다른 총성이 거의 들려오지 않았다. 간혹 산발적인 폭음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으로 수류탄을 사용한 병사들이 많은 것 같았다.

    "...하, 하하."

    그 신호탄 때문일까? 그렇다고 해도 김학수 대위는 억울한 감이 없지않았다.

    만약 신호탄이 터지자마자 불길함을 감지하고 후퇴 명령을 내렸다고 한들, 복귀하는 길에 저것들과 딱 마주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히려 병사들을 가득 태운 차량이 통째로 포위되어서 그대로 전멸했겠지.

    놈들이 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차량들부터 반대 방향으로 서둘러 빼낸 덕분에 자신들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그런 거라고 믿고 싶었다.

    문제는 자신의 상급자이자 필요에 의해서라면 살인도, 고문도, 협박도 서슴치 않는 대대장이었다.

    김학수 대위의 배치는 완벽했고, 통상적인 대응에도 문제가 없었지만, 하필 신호탄이 머리 위에서 터지는 바람에 괴물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병사의 태반을 잃었다고 변명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변명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항상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으면 집단은 뭉칠 수 없고, 조직력은 나날이 약해진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너를 용서하지만 조직 구성원들은 너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희생시킬 것이 뻔했다.

    '차라리 이대로 탈주할까?'

    장갑차에 탑승한 인원들만 데리고 간다면 어디라도 어떻게든 정착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서울이니까 아직 멀쩡한 주유소나 군용 유류보관고는 어떻게든 찾아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김학수 대위라는 인물을 믿고 따라와줄까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올시다 였다.

    부하들 사이에서 인망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탈주하자고 해도 부하들이 자신을 배신하면 배신했지 말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차라리......'

    김학수 대위는 자신이 차고있는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조종수를 제외한 나머지를 죄다 쏴죽인다음, 조종수만 협박해서 이 장갑차를 끌고 탈주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타 부대와 합류한다면...최소한 장갑차 하나를 가지고 온 공적을 인정받아 꼽사리는 낄 수 있지 않을까?

    선택의 시간은 늦든 빠르든 착실하게 김학수 대위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

    "이런 개새끼가! 떨어져!!"

    탕! 탕!

    엑소스켈레톤이 없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나이트워커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건 놈들이 헤드샷에 의해서만 죽는다는 지랄맞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보통 날렵하게 움직이는 대상의 머리를 정확하게 쏴맞추는 건 쉽지 않다.

    아무리 잘 훈련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의 미간을 정확히 조준해서 쏠 틈이 없다. 그래서 대다수는 적당히 탄을 흩뿌리고 대검을 뽑아 목을 썰거나, 엑소스켈레톤 착용자의 도움을 받아 처리하는 형국이었다.

    다만 나처럼 산탄총을 가진 몇몇 이들은 특유의 기동성을 살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기동성만 믿고 움직이다가 놈들에게 포위당할 위험이 높았다.

    "이이익......!"

    탕! 탕! 철컥 철컥!

    일일이 탄을 장전해야 하는 산탄총의 번거로움을 동료들에게 커버받아야 하는데, 하필 본인들이 기동성을 살리며 소방관 역할을 하느라 바빠 동료들의 사정권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런 이들을 보조하면서 미친듯이 학교 내부를 헤집고 다녔다.

    투캉! 투캉!

    어설픈 자세로 산탄총을 장전하고 있던 밀수범에게 바짝 붙어 엄호하면서, 최소한 2인 1조로 움직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상황이 급박한 만큼 몸도 마음도 급하다는 건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허무하게 각개격파를 당해버리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기도 전에 동료들이 전멸할 것이다.

    "곧 탈출할 거니까 몇 명이랑 같이 옥상으로 올라가서 애들 데리고 내려와!"

    "진짭니까?! 씨발 드디어!!"

    산탄총 장전을 완료한 조직원은 그대로 다른 조직원과 합류해 계단을 튀어 올라갔다. 나는 천장 합판을 뚫고 내려온 놈의 멱살을 붙잡아 교실 유리창에 박아넣었다.

    쨍그랑!

    유리창이 박살나면서 유리조각이 비산하고, 나는 날카로운 유리조각 위로 놈의 목덜미와 안면을 마구 문질러댔다. 머리가 약점이라 그런지 꽤 괴로워하는 눈치였다.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유리조각 하나를 떼내서 놈의 뒷목에 박아넣어 목의 반 정도를 썰어내고, 다리를 붙잡아 저 멀리 던졌다. 목이 너덜너덜해진 탓에 벽과 충돌하자마자 머리통이 뚝 떨어지면서 놈의 목숨줄도 뚝 끊겼다.

    '산탄 쉘은 다 썼고...총은 버리기 아까우니까 챙겨 가자.'

    어차피 담은 물자도 없는 빈털털이 배낭이라 이미 소총과 저격총도 고이 보관해둔 참이다.

    나는 권총과 대검을 역수로 쥐고 한층 더 날렵하게 움직였다.

    검은 체액이 잠깐 묻었던 탓에 검은 얼룩이 덕지덕지 남아있는 대검은 여전히 날이 날카로웠다. 아직 모가지 몇 개는 더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면에서 사족보행으로 무식하게 치고들어오는 놈을 외골격 파츠를 착용한 양팔을 X자로 교차시켜서 역으로 들이박았다. 이윽고 놈이 내게서 튕겨나갈 때 머리통이 훤히 드러나길래 권총을 쏴갈겨주었다.

    탕! 탕! 탕!

    미간에 한 발, 눈구멍에 두 발.

    하지만 놈을 처리했음에도 또다른 녀석이 내 앞을 가로막거나, 뒤를 노리거나, 위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아래에서 촉수를 내뻗어 오는 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급격하게 몸을 회전시켜 1층 중앙 홀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상자들이 적극적으로 화망을 펼쳐서 내 뒤를 쫓던 놈들을 격퇴했다.

    "곧 탈출할 겁니다! 부상자들은 남은 탄약 확인하고, 엑소스켈레톤 착용자들은 1층 중앙 홀로 집합!!"

    옥상으로는 이미 사람을 올려보냈으니 곧 내려올 거다. 정원석 역시 부하들의 무전을 받고 곧장 합류하겠지.

    모든 인원이 동시에 세제를 뿌리고 움직일 수는 없었기에, 나는 중앙에 있는 자들부터 순서대로 세제를 뿌리게끔 했다. 나머지 인원이 합류하면 그들을 엄호하면서 세제를 뿌리게 하면 된다.

    "전원 탈출 준비!!"

    저 멀리서 타이밍 좋게 달려나온 정원석도 그리 외쳤다.

    나는 미리 계획해둔대로 한 부상자에게서 유탄발사기를 받아들었다. 이걸로 현관 바리게이트를 허물고 단숨에 돌파할 예정이다.

    거대한 폭풍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폭풍의 눈이 되어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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