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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70화 (70/211)
  • 화이트아웃(6)

    ⠟⠇

    "개씨발새끼가!!!"

    타타타타타타타!

    등 뒤에 메고 있던 소총을 재빨리 뽑아 들어 베란다 창문을 향해 마구 쏴갈겼다. 총성이 울려퍼지고, 내 위치가 발각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냉기 서린 희고 가늘고 날카롭고 긴 손가락이 내 눈을 도려내지 못 하도록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저주받을 씹새끼!"

    퍼퍼퍽!

    소총탄이 무언가를 파고드는 묵직한 피격음과 함께 고막을 작은 쇠갈고리로 살살 긁는 듯한 불쾌한 비명이 뒤따랐다.

    창가에서 내게 손을 내뻗으려 했던 그것이 9층 아래로 추락해 지면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쿵! 하는 소음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눈의 따끔거림이 잦아들고 눈물이 펑펑 쏟아져나온 눈가를 소매로 열심히 문지를 수 있게 된 후에야 나는 그것을 '처리'했다고 생각했다.

    탄창 하나를 순식간에 거덜낸 나는 아직 흐릿한 시야로 손을 더듬어 다른 탄창을 집었다. 묵직한 탄환이 30발이나 들어있는 탄창으로 갈아끼우자 단순한 몽둥이에 불과했던 호신용 무기가 총이라는 이름의 살상 무기로 거듭났다.

    나는 눈을 감기 직전에 보았던 극히 짧은 순간의 기억을 뇌내에서 재생시켰다. 몇 프레임이나 될런지 알 수 없을 만큼 찰나였기에, 기억을 더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나마 뚜렷하게 연상되는 것은 거미의 다리처럼 매우 긴 팔과 다리였다. 희고, 가늘고, 매끄럽고, 날카롭고, 주변에 있는 것 만으로도 냉기에 잠식될 것 같은 기괴한 사지(四肢).

    얼굴인지, 아니면 얼굴같은 무언가인지도 모를 것을 인식하자마자 눈에 통증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내가 인식했던 나이트워치는 가려움증부터 시작해서 통증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는데, 베란다 창가에 매달려있던 놈은 그 단계를 바로 뛰어넘은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 아파트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10층 이상부터 복도 외부 창문이 열려있었던 이유를 알겠군.'

    놈은 이 거대한 아파트를 자신의 둥지, 혹은 사냥터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유의 긴 팔과 다리를 이용해 외벽을 타고 다니면서 복도 창문을 열고, 특정 집의 현관문 손잡이를 부숴서 열고 닫은 것이다.

    내가 복도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굳이 다른 층의 집 문을 열고 닫은 것이냐고 하면, 그건 아마도......

    '자신이 숨겨둔 먹이가 혹시라도 탈출하지 않았나 싶어서 확인한 것이겠지.'

    이전에 탈출을 시도했을 터인 먹이가 다른 집으로 급하게 숨는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문 손잡이를 부숴서 강제로 개방한다음 내부를 살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귀찮은 방식보다 더 확실한 게 바로 조금전처럼 베란다 창문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었고.

    "거미줄에 제 발로 기어들어온 꼴이네."

    도구봉파의 뒤를 노리고 있던 군대가 어째서 삼각산동에 직접 침투하지 않고 외부에서 매복만 했는지 이해가 된다.

    저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겪어봤기 때문에 삼각산동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막 내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던 놈들의 심기를 거스른 참이다.'

    아니나다를까, 조금 먼 아파트 단지에서 선명한 총성이 휘몰아치는 눈바람을 뚫고 날아들었다. 그 사이에는 희미한 비명도 섞여있었다.

    "......"

    나 때문에 기다림의 묘미를 아는 사냥꾼들의 흥이 다 식어버렸으니, 이제 남은 것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일방적인 학살뿐이다.

    토끼떼를 구석진 곳으로 몰아넣은 사냥꾼들이 기관총을 갈겨버리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삼각산동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도구봉파 역시 놈들에게 유린당하고 있을 터.

    나도 모르게 쯧, 하고 혀를 찼다.

    대검을 뽑아 현관문 앞에 연결해둔 낚싯줄을 죄다 끊어버리고, 임시방편으로 세워둔 부실한 바리게이트도 모두 치웠다.

    서둘러 10층 위로 뛰어올라간 나는 외부 창문이 열려있으며, 복도에 소복하게 쌓인 눈 위에 손자국과 발자국이 찍혀있는 문을 찾았다.

    굳게 닫혀있는 문은 예상대로 손잡이가 파괴되어 있었기에, 조금만 힘을 주면 쉽게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무언가가 문을 강하게 고정시켜두고 있는 것 같아서 문지방을 확인해보니, 검은 실같은 것이 촘촘하게 엮여 있었다. 검은 물감으로 칠한 거미줄 같았다.

    정말로 거미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대검으로 질척거리는 검은 실을 잘라내고 집 안에 들어섰다.

    이곳은 18층의 어느 집. 나름대로 부유한 가정이 삶의 터전을 일구었을 터인 이곳은 더이상 가족들의 웃음꽃이 만개하는 일따위는 없었다.

    간신히 성인 남성이 한 명 드나들 수 있을 만큼 구멍이 뚫려있는 베란다 창문 주변에는 온통 검은 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곳이 '그것'에게는 둥지 입구였던 것이곘지.

    안방과 아이 방은 굳이 문을 열 필요도 없었다. 이미 무언가에 의해 문짝이 통째로 뜯겨져나간 뒤였으니까. 대신 조금 더 안쪽에 손전등 불빛을 비췄을 때, 나는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을 참을 수 없었다.

    "구우우우욱......!"

    그대로 토할 수는 없었기에 마스크와 목도리를 급하게 벗고 바닥에 쓴물을 토해냈다.

    아늑한 방 안에 있는 것은 대여섯 개의 검은 고치였다. 지금 이순간에도 불빛이나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듯 꿈틀대고 있는 기괴한 고치.

    얼추 성인 남성 한 명이 웅크려 앉아있는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고치는 검은 실에 의해 바닥이나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주변에는 인간의 것으로 추측되는 뼈와 살점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훼손된 군복이나 무기 등을 찾을 수 있었는데, 직감적으로 이들이 먼저 이곳에 방문했다가 당한 군인들이었음을 눈치챘다.

    나는 악취가 진동하는 군복을 뒤져, 피해자가 미처 안전핀을 뽑지 못 했던 수류탄을 찾아냈다. 수류탄을 뽑아들기도 전에 기습을 받았겠지.

    조금만 상상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아파트 창문에서, 어두컴컴한 담벼락 사이에서, 왠지 모르게 열려있는 맨홀 뚜껑 속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길쭉한 팔과 다리. 그것에 붙들린 군인들은 저항할 새도 없이 무력화되었을 것이다.

    맹수 앞에 놓인 나약한 피식자가 아무것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것처럼.

    사방천지에서 사냥꾼들이 수확을 시작했으니 그들 입장에선 지옥이나 다름없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개인화기로도 제압할 수 있는 적에게 큰 피해를 입고 인근 아파트 단지까지 도망쳐서 자리를 잡았을 거다. 또한 이미 자신들이 겪어봤으니 도구봉파를 밀어넣어서 몰살시키는 것도 간단하다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나는 말없이 고치가 쌓여있는 방에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던져넣고 집을 빠져나왔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드는 결과가 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콰아아아앙!

    좁은 방안에서 수류탄의 폭압에 견디지 못한 파편과 흙먼지가 복도까지 터져나왔다. 나는 이미 계단을 타고 아파트 옥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파트 옥상 문은 너무나도 싱겁게 열렸다.

    이곳에도 발이 푹푹 패일만큼 많은 눈이 쌓여있었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손자국과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걸어가 옥상 난간에 저격총을 거치했다. 삼각산동 바깥에서 멍청하게 함정에 빠진 인간들이 어서 빨리 죽어주길 바라는 군인들을 조준하진 않았다.

    저들에겐 장갑차도 있고, 여차하면 버스를 그대로 탈취해서 도망칠 수도 있다. 기껏해야 한 두명 잡겠답시고 저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는 없지.

    그래. 총부리는 겨누지 않으마.

    "하지만 지저 도시 밀수 조직 하나를 몰살시키려 했으니, 너희도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단 받아두긴 했지만,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불길한 붉은색의 권총을 손에 쥐었다.

    이 단발 권총에 장전된 물건은 빛과 소음이 사라진 세계에서 가장 금기시 되어야 할 재앙 덩어리 그 자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삼각산동 한복판에서, 나는 아파트 옥상에 홀로 서서 신호탄발사기를 머리 위로 처들었다.

    주변에 도구봉파를 제외한 다른 조직은 아마도 없다. 도구봉파는 지금 갑작스러운 적들의 기습에 놀라 당황한 상태다. 적절하게 대응하려면 우선 주변을 환하게 밝혀줄 빛이 필요하겠지.

    그러는 김에 순진한 밀수 조직 하나 속여먹고 사람을 제물로 바쳐 이익을 취하려 한 저 괘씸한 집단에게도 벌이 필요하다.

    "항상 이런 빛을 원했지."

    달칵.

    피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퍼어어어엉!!

    신호탄발사기를 떠난 붉은색의 신호탄이 높은 상공까지 치솟은 다음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소음과 광량을 흩뿌렸다. 그날처럼.

    덕분에 나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와중에도 아파트 외벽을 기어다니는 놈들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놈들을 인식하고도 광증이 도지지 않는 것은 '얼굴'처럼 생각되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만 않으면 된다. 가령 눈을 게슴츠레 떠서 시야를 일부러 흐릿하게 만든다거나, 얼굴이 아닌 다른 신체 부위만 바라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렇게 저격총의 스코프에 담은 첫 표적을 향해 어림짐작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저격총을 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스코프에 정조준만 해서 쏴도 맞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했다.

    우선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고 있었고, 내가 조준한 표적은 나와 최소 2~300m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고지대에 있기 때문에 탄을 내리꽂는 형태라서 탄의 궤적이 심각하게 뒤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표적을 명중시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달리, 주변이 환해지자 도구봉파의 반격도 이어졌다.

    엑소스켈레톤의 무자비한 출력으로 '그것'을 역으로 끌어당겨 머리통을 박살내거나, 아직 멀쩡한 사람들이 집중포화를 퍼부어 광증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도 했다.

    장비와 인재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도구봉파답다고 할까, 만약 차도식파가 저런 상황에 놓였다면 5분이 지나기도 전에 절반은 당했을 거다.

    나는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대략적인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상정해서 다음 목표를 조준했다.

    저격에 도움을 줄 관측병이 없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야 하지만, 반강제적인 스파르타 교육 덕분에 저격총 다루는 법을 비교적 빨리 배울 수 있었다.

    무려 탄창을 2개나 쓴 뒤에야 나는 처음으로 표적을 맞출 수 있었다.

    긴 팔과 다리, 자그마한 몸뚱이에 대조되는 커다란 머리통을 흔들거리며 아파트 속으로 숨어들려던 놈의 뒤통수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눈발이 더욱 거세졌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저격을 할 수 없겠다 싶어 미련없이 저격총을 회수했다.

    상공에서 붉은 빛을 내뿜고 있던 신호탄도 빠르게 사그라들어, 다시금 길고 질척거리는 백색 어둠이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거센 눈발과 함께 어둠 속에서 빛과 소음을 쫓아온 것들이 삼각산동을 덮칠 것이다.

    나는 늦기 전에 도구봉파와 합류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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