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아웃(3)
출신이 출신인지라 자연스럽게 도구봉파의 실질적 에이스로 거듭난 한 사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정원석이다.
군필자가 대부분인 밀수조직 내에서도 해병대나 수색대 출신이라는 사람은 몇몇 있었지만, 특전사 출신이라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남자는 오직 그 한 명이었다.
"형님 곧 목적지입니다."
"어, 그래. 다들 장비 한 번씩 더 점검해. 군대랑 마주쳐도 우리가 꿇리는 일 없게 하란 말이야."
"예!"
실적이 가장 대단한 차도식파를 제외하면 도구봉파는 밀수조직들 사이에서도 최상위권의 위치를 자랑한다. 도구봉이 장비에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 큰손인데다 쓸만한 인재는 닥치는대로 긁어모으는 야심가였기 때문이다.
차도식파의 수장인 차도식과 도구봉은 지상에 있을 때 서로 구면인 사이였는데, 당시 조직의 규모나 자금력은 서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도구봉은 필요하다면 정치권에 줄을 대는 것도, 더러운 일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저 도시에 입주하면서 역전됐다. 차도식파의 승승장구가 이어지고 도구봉파는 투자 대비 순이익이 '비교적' 적은 탓에 차도식파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차도식파의 일인독주 상태가 이어지면 머지않아 북부 지구의 이권은 모조리 그쪽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도구봉의 냉정한 평가도 한몫 거들었다.
때문에 도구봉은 조직원들에게 지상에서 역전의 발판이 될만한 것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필요하다면 들키지 않는 선에서 뭘 해도 좋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그의 각오가 어느정도였는지 반증해준다.
"그런데 형님, 저쪽이랑은 이제 2번째 만남인데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지난 번에도 말했잖아. 저쪽이랑 관계를 터야 지상에서 움직이는 게 좀 더 편해질 거라고."
"그래도 저쪽 장비가 살벌하던데요. 장갑차에 기관총에 박격포까지......"
"지금 같은 상황에선 사람 상대로 쓰기 아까운 것들이지. 애초에 저쪽에서도 우리한테 원하는 게 있다니까? 그걸 적당히 맞춰주면서 우리도 뽑아낼 것만 뽑아내면 돼."
본래 전방의 모 부대에 있어야 할 대대장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게 된 건 정원석 입장에서도 굉장한 우연의 일치였다.
차도식파가 노원구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노원점을 목표로 삼았을 때, 도구봉파는 소거법으로 롯데백화점 미아점을 털러갔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버스를 끌고 나온 도구봉파와 장갑차를 끌고나온 저쪽 부대원들이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딱 마주쳤고, 서로 통성명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거래하며 비지니스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그렇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각자 적재할 수 있는 만큼의 물자만 챙기고, 도구봉파는 해당 부대가 머무르고 있는 지상 거점에 방문했다. 이유는 그 부대의 정확한 규모와 지휘관의 성향을 알고 싶어서였다.
결과만 놓고보면 그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대대장이라는 양반이 대대 전체를 챙길 수 없어 고작 2개 중대만 끌고 부랴부랴 서울로 내려왔는데, 그들이 두돈반 트럭과 장갑차에 가득 실어온 군수물자에 비해 군인들의 수는 조금 적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지상은 지저 도시와 다르게 주의하고 경계해야할 것이 넘쳐났는데, 혹한때문에 가만히 버티기만 해도 지속적으로 물자가 소모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물자를 얻고 거점을 안정화시키려면 강행 정찰, 물자 탐색, 물자 운반, 운반 호위, 24시간 경계 근무, 주변의 위험 요소 제거까지 전부 도맡아야 하는데, 그걸 고작 2개 중대로 해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해서, 정원석은 그러한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저들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에 한손 보태주고, 그 대가로 지상의 정보와 군수물자를 얻자고.
엑소스켈레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도구봉파라면 아무리 힘든 노동이라도 어렵지 않게 해결해줄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꾸준한 밀수 경험 덕분에 강행 정찰이나 물자 탐색, 운반, 호위 같은 건 이미 다들 숙달된 상태다.
그렇게 지상의 군대와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우호적인 거점과 동맹이 생길 여지가 있다. 필요할 때 지상에 거점을 둔 군대의 화력이나 정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메리트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그 대단한 차도식파라고 해도 지상에서 도구봉파를 따라올 수는 없으리라.
'그쪽의 에이스가 중장갑수색대 출신이라고 해서 좀 놀라긴 했지만, 결국 그 사람도 내 선구안을 따라잡지는 못한 모양이지.'
차도식파는 도구봉파와 다르게 안전제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항상 모든 인원의 배낭과 박스에 물자를 가득 채워오는 수완은 인정해주겠지만, 절대로 도박을 하지 않는 정직한 타입이라 무식하게 지상을 누비며 물자만 찾아나설 것이다.
지상 곳곳에 숨어지내고 있을 생존자 그룹과 만나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거점을 확보하고, 아군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를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게 뻔했다.
머지않아 밀수조직의 넘버원 자리는 도구봉파가 차지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차도식파의 에이스 박한성이 아니라 도구봉파의 에이스인 자신의 입지가 더 커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가 된다면 우직하게 일만 잘하는 그를 역으로 영입해서 오른팔로 부려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도중, 버스가 도로 한복판에서 정차했다.
눈발이 너무 거센 탓에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 했던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그들 앞에 우뚝 서있었다.
"최소 대기 인원만 빼고 전원 하차!"
"전원 하차!"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조직원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대형 버스의 좌석은 모두 뜯어낸 상태였다. 운전 기사를 제외하면 누구나 공평하게 서서 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공간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화물 적재량도 증가했다.
안전을 위해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조직원들부터 먼저 내리고, 정원석의 가르침대로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뒷사람을 차례차례 내리게 했다.
도구봉이 정원석을 영입한 또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중구난방에 제멋대로인 양아치 놈들을 훈련시켜서 정예 조직원으로 길러내는 것.
정원석의 피땀어린 노력 덕분에 도구봉파 조직원들은 그럴듯한 정예 군인의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린 정원석은 바람을 타고 정면에서 불어닥치는 눈발을 팔로 가리면서 아파트단지 입구에 접근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장갑차의 문이 열리고, 방한복을 껴입은 군인들이 다수 나왔다.
"이야! 진짜 다시 왔구나 원석이! 근 일주일 만인가?!"
"제가 선배님을 좀 더 빨리 찾아뵈려고 했는데 상황이 워낙 거지같아져서 말입니다! 저희도 준비하느라 애좀 먹었습니다!!"
대뜸 정원석을 상대로 말을 놓으며 거칠게 손을 맞잡고 흔드는 남자가 바로 고객이었다.
거친 사나이들답게 격한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눈폭풍이 휘몰아치는 거리 한복판에서 서로의 신변잡기에 나섰다.
다들 군인은 정치에서 가장 먼 존재라고들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누구보다 정치질을 열심히 해야 하고, 정치질에 실패하면 나락만 기다리고 있는 게 바로 군인이라는 족속이다.
정치에 도가 텄다는 국회의원들조차 군대처럼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상하관계가 크게 작용하는 특이한 정치에는 못 견딜 것이다.
먼 옛날처럼 FM대로 똑부러지고 강단있게 행동하는 군인들이 출세하던 시대는 다 갔다.
군대 내에서도 학연, 지연, 흡연이 출세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군인으로서 스스로 단련하는 것보다 같은 군인들끼리 인맥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눈앞에서 넉살좋게 웃고있는 장년 남성도 정원석이 보기엔 그런 케이스였다.
자신이 특전사 출신이며,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다수의 무장 조직원들을 이끄는 행동대장이라는 점을 어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렇게 친근한 인사를 나누는 것도 힘들 상대였다.
"이 엄동설한에 애들 세워놓기도 뭣하니까 일단 들어와! 자세한 얘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자고!"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같은 출신도 아니면서 꼬박꼬박 선배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냥 상대가 군에서 더 오래 머무른 것 같으니까, 정치 군인의 비위에 맞추려고 아부를 해대는 것 뿐이다.
대대장의 지시에 장갑차가 움직여 길을 터주자 도구봉파는 무사히 아파트단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사면이 거대한 아파트로 막혀있기 때문에 안뜰은 상대적으로 바람과 눈발의 영향을 덜 받았다. 추위가 한층 약해지니 자연스럽게 안전지대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입구만 잘 지키면 답답한 지하철역보다 훨씬 더 괜찮은 천혜의 요새군. 근처에 규모가 큰 롯데마트와 편의점도 많아서 물자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지도 않고.'
일전에 롯데백화점 미아점까지 군인들을 보냈던 건 반 정도는 정찰을 겸한 물자 탐색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2개 중대와 민간인으로 구성된 생존자 집단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물자 확보는 필수였을 테니까.
"그런데 선배님, 지난 번에는 광원이나 소음을 최소화하고 있으셨던 것 같은데, 오늘은 꽤 소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아파트단지 정중앙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조직원들을 잠시 쉬게해둔 정원석은 옷에 묻은 눈을 탁탁 털어내며 물었다.
"아, 그거? 그땐 눈이 안 내렸잖냐. 그런데 지금은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으니까 발전기를 좀 빡세게 돌려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 소음이나 빛이 어느정도는 묻히니까."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물자를 사용하시는 그 선구안은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흐흐, 내가 육사 동기들 사이에서도 서바이벌에 미친 놈이라고 불렸거든. 재난 상황에서 무조건 물자를 아끼기만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란 것쯤은 알아. 집단이 오래오래 살아남으려면 물자를 쌓아두는 것도 정답이지만 그만큼 사기도 잘 유지해줘야 해. 이렇게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날까지 발전기를 꺼두면 안 되지."
집단의 사기를 유지하는 것도 순전히 더 잘 부려먹기 위한 목적일 테지만, 정원석은 굳이 그 부분을 걸고 넘어지지 않았다. 대신 빠르게 본론부터 꺼냈다.
"그런데 선배님, 지난 번에 제가 제안드렸던 건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해보셨습니까? 오늘 좋은 대답을 듣고싶어서 짱짱한 애들만 골라서 데려왔습니다."
"아, 좋지. 그렇게 많은 엑소스켈레톤을 동원해서 우리가 할 일 대신 해주겠다는데 그걸 거절할 놈이 어디 있어? 다만 보상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더라고."
"보상이랄 게 별 거 있습니까? 그냥 소소하게 챙겨주시면 됩니다. 후배인 제가 어떻게 선배님의 지갑을 털어먹겠습니까?"
"그럼 내가 좀 미안하잖냐. 일단 남는 탄약이나 소총, 폭약은 좀 챙겨줄 수 있는데 너무 많이는 못 줘. 우리가 좀 불안하거든."
"아까도 말했지만 많이는 안 바랍니다. 소소하게만 챙겨주시고, 대신 다른 군 부대와 물자가 가득 쌓여있을 있을만한 장소의 정보를 알려주시면 됩니다. 지금도 다른 부대와 꾸준히 연락중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서울로 기어들어온 부대가 우리 말고도 제법 되는 것 같더라고. 특히 전방에서 발이 묶인 부대는 의정부에 있는 제5군수지원여단이 이래저래 지원해주고 있다던데 이쪽도 소식이 좀 드문드문하네."
간단한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벌써 괜찮은 정보를 얻었다. 의정부에 있는 5군수지원여단이 멀쩡하다는 점, 전방에도 꽤 많은 군부대가 아직 기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등등.
"일단 저희는 필요한 일 대신 해드리고, 약간의 보수랑 정보만 받아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저희가 이리저리 떠도는 집단이라서 발이 좀 넓으니 주변 정찰이나 물자 탐색도 어렵지 않습니다."
"크으! 이 시국에 이런 후배를 만나다니. 나도 참 복받은 놈이야! 안 그래도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고민이었거든. 여기 주민들한테 협조를 받아도 일이 워낙 많으니 좀 빡세더라고~."
협조가 아니라 강제 징집과 노동이었겠지만, 어쨌든 이만한 장비를 갖추고서도 일처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지상에서의 삶이 가혹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는 스마트 글라스로 만든 작전용 지도를 펼쳐서 현재 거점의 위치와 주변 지형지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주었다.
어디는 이미 물자가 다 털렸다, 어디는 너무 위험하다, 어디는 어느 정도 규모의 생존자 그룹이 있다 등등. 하나하나만 놓고보면 시시콜콜한 정보였지만 종합적으로 놓고보면 상당히 유의미한 정보였다.
'부동산은 무적이고 서울은 신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이런 시국에도 서울에서 알박기를 하는 생존자들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후배한테 맡길 일은 여기서 조금만 남쪽으로 이동하면 나오는 삼각산동 대규모 아파트단지 수색이야. 우리가 해보려고 했는데 구역 전체가 아파트 천지라서 이 인원으로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더라고."
"삼각산동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아파트만 해도 가볍게 수십 채는 될테니...그럼 저희가 여길 정찰하고 겸사겸사 물자좀 챙겨도 문제 없겠습니까?"
"그럼. 본인들 몫 챙기겠다는데 그걸로 우리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 대신 그쪽이 안전한지, 생존자는 얼마나 있는지 확실하게 파악좀 해달라고. 솔직히 거긴 아파트단지로 구성된 거대한 미로 같아서 우리 애들로는 불안해. 그러니까 후배를 믿고 맡겨도 되겠지?"
"맡겨만 주십시오. 여기서 정비가 끝나는대로 움직이겠습니다."
호언장담하며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나간 정원석의 뒤를 그가 유심히 바라보았다.
정원석이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새로운 인물이 관리사무소에 들어왔다. 그는 주변 환경에 걸맞게 하얀색 위장복을 껴입고 있는 남자였다. 몸 위에 쌓인 눈을 다 털지도 않아 언뜻 눈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떤 것 같나?"
"예상하신대로 저들은 지저 도시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번 만남 이후 뒤를 밟아서 북한산의 북쪽 격벽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고, 이후 저를 포함한 정찰 인원들을 길목마다 배치해서 저들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오늘까지 총 3번 격벽에서 나왔으니, 3일 간격으로 1번씩 나오는 게 맞습니다."
"어쩐지 지상에서 돌아다니는 놈들치고 너무 멀쩡해보인다 싶었지."
지상에서 저만한 규모의 엑소스켈레톤 무장 인원이 돌아다니면 그건 그것대로 눈에 띌 뿐더러, 어둠속을 돌아다니는 그 잡것들과 시도때도 없이 교전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정원석이라는 놈이 이끄는 저 기괴한 무리는 지상에 머무르는 것치곤 너무나도 멀쩡했다. 장비가 낡거나 파손된 흔적도 없었고, 정신적 압박감과 피로에 찌들어 눈이 퀭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들처럼 짙은 화약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집단도 아니었다. 분명 이곳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쾌적한 장소에서 머무르다가 때 되면 물자를 찾으러 나서는 집단인 게 분명했다. 실제로 그 예상은 적중했고.
"저 놈들이 삼각산동으로 진입하면 근처에 애들 매복시켜서 복귀 못하게 해.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버리란 말이야."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고말고. 저 놈들이 가진 엑소스켈레톤만 몇 대냐? 무려 20대야 20대. 거기에 놈들이 가진 무기나 탄약, 물자도 확보할 수 있지. 겉보기엔 군대처럼 행동하지만 딱 보기만 해도 알아. 저것들은 정규군이 아니야. 아마 지저 도시 내부에 있는 군대랑 작당해서 몰래몰래 지상으로 기어나오는 것 같은데, 그깟 놈들 없애버린다고 해서 문제될 거 없어. 목격자를 남겨두지만 않으면 된다고."
그러니까 똑바로 해.
그렇게 말한 대대장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저들이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는대로 1개 중대가 움직여 삼각산동 인근에 매복할 것이다.
사실 그 무시무시한 마경(魔境) 삼각산동에 들여보내는 것 만으로도 저들을 전멸시키는 건 손 쉽겠지만, 피라미 몇 마리가 운 좋게 살아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놈들이 그곳에서 흘린 장비는 장갑차를 보내서 회수시키면 돼.'
사태가 터지자마자 급하게 서울로 내려오느라 고작 2개 중대만 데리고 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장갑차와 군수물자를 그렇게나 많이 가져왔는데 고작 2개 중대만 데리고 왔겠는가?
그는 일주일 전쯤, 삼각산동의 거대 아파트단지에 터를 잡으려다 엄청난 전력 손실을 맛봤던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우리 대신 조금이라도 놈들의 숫자를 줄여주면 그것대로 좋지."
유능하게 전멸하든 무능하게 전멸하든, 저 멍청한 집단의 장비는 결국 자신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