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65화 (65/211)
  • 화이트아웃(1)

    6번째 지상 작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 말은 우리가 지저 도시에 입주한지 정확히 19일이 되었다는 의미다. 시간으로 치면 약 3주다.

    그 사이에 우리는 꽤 많은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바닥보다 더한 바닥에 떨어지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가혹하고 위험했다는 점 등등.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실로 이기적인 집단의 광기가 빚어낸 비열한 생명활동의 연장선 뿐이다.

    범죄를 정당방위라 우기고, 범죄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 공범자를 늘리고, 공범자가 공범자를 서로 감시하면서도 각자의 이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마굴.

    나는 여느때처럼 북부 지구의 엘리베이터 앞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인간의 본성은 지상에 있을 때나 지하에 있을 때나 무엇 하나 바뀐 것이 없다는 생각을 품었다.

    "새벽부터 왜 그렇게 죽상이야?"

    "오셨어요?"

    평소라면 '엘리베이터 정비병들이 꼴받게 하잖아요 시발' 하고 받아줬을 텐데.

    나는 저 거북이처럼 느린데다 깐깐하기 짝이 없는 엘리베이터 정비병들을 까는 대신 차도식에게 맥없는 인사를 건넸다.

    차도식파는 내가 미래그룹과 거래를 한 덕분에 조직원들 중 일부는 굉장히 세련된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고 있었다.

    나는 신소재로 만든 프레임과 장갑판에 전고체 배터리, 자동 온도 조절 장치까지 달려있는 저 획기적인 물건을 무려 5개나 받아냈다. 그것도 모자라 운반조가 따로 들고다닐 필요도 없는 무인 화물 운송 차량도 3대나 받아냈다.

    다른 조직들에 비하면 최소 수십 걸음은 앞서나가는 입장이라 자신감을 좀 가져도 될 법 하건만, 막상 받고보니 어린애마냥 들뜨는 일은 없었다.

    "좋은 날이잖아. 웃으라고 동생!"

    "지상 작전을 나갈 때 웃는 게 아니라 돌아올 때 웃어야죠."

    "흐흐, 그것도 그래. 아무튼 동생이 받아온 최신예 엑소스켈레톤은 동생이 말한대로 명호한테 하나, 그리고 타격조 애들중 4명에게 분배했어."

    "잘 됐네요. 명호 씨는 애들을 직접 데리고 인솔하는 입장이라 반드시 필요할 거고, 나이트워커와 직접 싸워야하는 타격조는 말할 것도 없죠."

    "그래서 더 이상하단 말이지. 그 대단한 물건들을 미래그룹에서 뜯어낸 것도 동생이고, 그 물건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도 동생이고, 그 물건이 꼭 필요해보이는 사람도 동생인데, 어째서 동생은 엑소스켈레톤을 안 받은 건데?"

    "엑소스켈레톤의 최대 단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차도식의 질문을 역으로 돌려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선선히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노출도겠지.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채 움직이면 아무래도 눈에 좀 띄는데다...시끄럽지?"

    "반은 맞는 말입니다. 거기서 하나 더 추가해야죠. 엑소스켈레톤은 에어백이 없는 자동차입니다."

    "에어백이 없는 자동차라...의미심장한데?"

    담배를 하나 꺼내든 차도식은 부하에게서 불을 받아 진하게 연기를 들이마셨다.

    지저 도시는 새벽이든 낮이든 딱히 공기의 질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새벽이라는 시간대에 담배를 피는 걸 즐긴다고 한다. 내가 알던 놈들 중에서도 꼭 새벽에 일어나서 담배를 피던 놈이 있었던 것 같다.

    "엑소스켈레톤의 프레임과 추가 장갑판은 분명 튼튼합니다. 차량에 정면으로 치여도 탑승자를 어느정도 보호해줄 수 있을 만큼 튼튼하죠."

    "그렇지. 그래서 산업용이나 군용으로 많이 쓰이잖아. 안전하니까."

    "그만큼 위험한 일에 쓰이는 시점에서 안전한 게 아니에요. 따라서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다는 건 언제나 그에 준하는 위험을 동반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래서 나를 보호해주는 차량에 탑승했을지언정, 차량이 망가지면 에어백이 없어서 죽을 확률도 높다는 거죠."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나?"

    그래. 없는 것보단 낫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채 지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 답답한 금속덩어리에서 벗어나, 순수한 살덩어리 육체로 바깥과 접촉하고 싶다.

    그래도 힘이 부족한 건 조금 곤란하니까 하는 수 없이 외골격 파츠를 장착했지만.

    철컥! 철컥!

    양팔에 착용한 외골격 파츠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짐을 챙겨들고 일어섰다.

    대규모 정전이 일어났을 때 북부 지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침입 흔적도, 누군가가 살해당한 흔적도, 심지어 무언가가 파괴된 흔적도.

    그저 정전을 틈타 도둑질이나 하려던 좀도둑 몇 명이 붙잡혔을 뿐이라는 말만 들었다.

    애초에 북부 지구는 민간과 군이 서로 작당모의를 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24시간 감시 체제를 벌인다고 해도 밀수에 지장은 없었다.

    외부에서 감찰이 들어온다는 사실조차 사전에 보고받고 조치를 취하는 마당에, 누가 우리의 비밀스러운 움직임을 막을 수 있겠나?

    "엘리베이터 정비 작업 끝났습니다!"

    "전원 탑승!"

    "전원 탑승!!"

    혼란스러운 시국에도 범죄자들은 범죄를 저지른다. 대부분은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나같은 일부는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각자의 이상과 헛된 꿈을 품고 우리는 12km의 기나긴 통로를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을 방문한 연어떼처럼 북한산 북부 격벽 앞에 도착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급하게 브리핑에 들어갔다.

    사실 브리핑은 지저 도시에 있을 때 이미 끝냈어야 하는 건데, 좀처럼 가닥이 잡히질 않아서 결국 현장 담당자인 나와 김명호가 격벽 앞까지 와서 담판을 짓게 되었다.

    "위로 갈지 아래로 갈지, 참 고민이 많이 됩니다."

    "어느쪽이든 이득이 크니까요."

    넓은 도화지 크기의 스마트 글라스를 펼쳐놓은 우리는 지도 어플에 표시된 두 지역에 각각 핑을 찍어두고 고민에 빠졌다.

    첫번쨰 핑은 북한산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곧장 이어지는 의정부다.

    북한산 북부 격벽에서 출발한다면 몇시간만에 금방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짧은 거리인데다, 서울이 아니면서도 학교와 지하철역이 굉장히 많아서 거주권이 크게 활성화되어 있는 특이한 도시다.

    사실상 의정부도 서울의 '구' 하나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옛날부터 자주 오갔지만, 결과적으로 의정부는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권에 포함된 하나의 도시에 그쳤다.

    '그래도 지하철 노선이 잘 깔려있고 학교도 많아서 서울과 곧장 이어지는데다 인구도 제법 많지. 솔직히 서울의 구로 편입되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도시이긴 해. 하지만......'

    의정부에 지하철역도 많고 주거권도 넓게 활성화되어 있어서 먹을 것도 많다. 많긴 하지만...교통로가 너무 좁다.

    북한산과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작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둔 도로가 서울과 의정부 사이를 잇고 있는데, 이 길목이 모종의 이유로 막힌다거나, 그곳에서 습격을 받기라도 하면 굉장히 위험해진다.

    특히 양옆으로 산이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도전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나이트워커들은 어디든 숨어있을 수 있으니까.

    "의정부로 곧장 가려면 일반 도로와 지하철역 선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직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도봉역에서 출발해 1호선을 타고 회룡역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봉산역과 망월산역을 거치면 곧장 회룡역에 다다를 수 있다. 외부에서의 습격을 최소화하고, 쭉 이어진 길만 따라서 움직이면 되기 때문에 이론상 가장 안전한 길이 맞다.

    "회룡역에서 나와 주변 아파트단지와 편의점, 마트를 털면 충분한 물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약국과 병원이 없어요. 자그마한 의원 규모라면 몇 개인가 있겠지만, 그정도로는 지저 도시에 의약품을 공급하기엔 턱없이 부족해요. 게다가 꼭 소규모 의원이나 약국이 안 털려있을 거란 보장도 없죠."

    "으음......"

    우리가 5회째 작전을 거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털린 건물이 많다는 거다.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서울의 풍족한 자원들을 믿으면서 털어왔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만큼 지상에 남아있는 생존자들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우린 매일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3일마다 한 번씩 움직인다.

    영하 20도의 추위와 어둠, 그리고 정체불명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지상의 생존자들은 얼마나 더 독한 마음을 먹고 움직이고 있을까?

    장담컨대 내가 노원역에서 만났던 생존자 그룹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의정부는 당장 개척해야 할 메리트가 없다.'

    의정부의 지하철역에서 운좋게 생존자 그룹을 만나고, 그들과 친분을 다지고, 의정부시를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들 수 있게 되면 뭘 하나. 의정부 주변이 워낙 휑한 탓에 먹거리가 적은데.

    나는 그 점을 이유로 의정부 대신 노원구 남부를 짚었다.

    "의정부는 차라리 다른 조직들에게 선심쓰듯이 넘기고, 우린 노원구 남부를 개척하죠. 먹을 것도 많고, 우리가 친분을 다져야 할 잠재적 동맹(생존자 그룹)도 훨씬 더 많을 걸요. 무엇보다 노원구 주변에는 금싸라기 땅이 많아요."

    당장 노원구 아래쪽만 해도 중량구가 있다. 그리고 중랑구의 최대 번화가인 망우역 인근에는 코스트코와 홈플러스까지 있다. 노원구에도 물자는 차고 넘치지만, 향후 개척하게 될 중랑구의 물자도 상상이상으로 많을 것이다.

    내가 노원구와 중랑구에 찍은 핑을 서로 연결하는 선을 긋자 김명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기적으로 보면 당장 가까운 의정부로 진출해서 물자를 싸그리 털고올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노원구를 꾸준히 개척해서 중랑구에 도달하고, 이후 서울 중심부나 경기도권으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쪽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럼 의정부 쪽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건......?"

    "다른 조직들은 대부분 도봉구를 거쳐서 강북구와 성북구로 진출할 텐데, 거기에 끼지 못하는 조직 몇 개가 의정부를 노리겠죠. 그 조직들에게 하청을 주는 건 어때요?"

    "우리 대신 지형지물이나 생존자 그룹, 위험 요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달라고 부탁하자는 겁니까?"

    "대략적인 정보만 있으면 새로운 지상 작전용 지도를 그릴 때 참고는 할 수 있으니까요. 그 조직들도 의정부를 가는 김에 정보만 몇 개 물어다주면 되는 거니까 소소하게 이득 보는 거잖아요?"

    차도식파에서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은 한계가 있다.

    일이 일인 만큼 무턱대고 타 조직원이나 신입을 받는 건 너무 위험하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보의 우위에 서기 힘들다.

    "정보에 대한 대가는 푼돈좀 쥐여주면 될 테니 큰 문제는 없을 테고, 진짜 신경써야할 건 타 조직들의 협조보다는 견제죠."

    비교적 약소 조직들은 우리에게 반강제적으로 협조해주겠지만, 우리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아옹다옹하고 있는 조직들은 우리가 눈엣가시처럼 보일 것이다.

    빵빵한 물자와 장비, 그리고 단합력과 실력까지 뛰어난 조직원들. 갖출 건 다 갖춘 엘리트 밀수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가 미운털 박힐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1위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법이다.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있던 놈들도 슬슬 뒤통수 때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오늘 우리가 준비해 온 최신예 엑소스켈레톤과 무인 화물 수송 차량을 본 시점에서 더더욱 그럴 마음이 들었겠지.

    나는 격벽 앞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타 조직을 곁눈질로 살피면서 김명호에게 말했다.

    "작전이 시작되면 명호 씨가 조직원들 데리고 빠르게 노원역으로 가서 그쪽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고, 노원역을 임시 거점 삼아서 움직이세요. 거기서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가도 주변에 널린 게 아파트단지니까 털어먹을 건 많을 거에요."

    거기에 나는 백병원까지 가리켰다. 백병원 정도면 전문의약품을 한가득 쌓아뒀을 것이고, 일전의 병원처럼 의사나 간호사같은 전문 의료인 생존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의료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확보한 모든 물자를 당일에 전부 가지고 돌아간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을 필요 없어요. 너무 많이 챙겼다면 노원역이라는 전초 기지에 쌓아두고 다음에 와서 또 가져가면 그만이니까요. 오히려 아무리 많이 챙겨도 부족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움직이세요."

    "한성 씨는 어떡할 겁니까?"

    "저는 다른 조직원들의 동태를 좀 살피려고요."

    김명호도 지상에서 물장사를 하던 시절, 조직들간의 불화나 비열한 견제를 겪어본 적 있었기 때문인지 내 의도를 바로 이해했다.

    "랑데뷰 포인트는 노원역. 노원역에서 어느 한쪽이 시간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먼저 복귀하기로 하죠."

    "이해했습니다."

    브리핑을 끝낸 우리는 조직원들에게 대략적인 작전 개요를 설명해주었다. 그 사이에 준비를 끝마친 격벽 초병들이 격벽 개방을 알렸다.

    "격벽 개방합니다!!"

    "전원 고글 착용!"

    "고글 착용!!"

    차도식파는 고글을 착용한 다음 목도리 대신 산업용 마스크를 착용했다. 다행히 지저 도시에는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산업용 마스크 재고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후우...후우......"

    어지간한 유해물질과 유독가스는 모두 걸러준다는 산업용 마스크 필터를 믿고서, 호흡이 곤란하지 않도록 목도리를 살짝 아래로 내렸다.

    이윽고 격벽이 열렸을 때, 우리는 차가운 칼바람과 함께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작은 덩어리들과 마주했다.

    "...눈?"

    지저 도시 입주 19일째.

    6회째 지상 작전.

    기온 영하 25도.

    11월 어느 날.

    하늘에서 흰 똥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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