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2)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만큼 많은 일 말입니다."
갑자기 손을 덜덜 떨기 시작한 그는 불안한 눈치로 연신 주변을 살폈다. 취조실은 사방이 꽉 막혀있었기 때문에 누가 엿볼 수 없는 공간임에도 그는 시선을 두려워하는 듯 했다.
"처음 정전이 터지고, 저와 관리팀장님이 급하게 관제실로 뛰어가서 상황 확인부터 했습니다. 정전이 우리 구역에만 터진 건지, 아니면 지저 도시 전역에 터진 건지 알아야 적절한 대처를 취할 수 있으니까요."
"적절한 선택이었다. 매뉴얼대로 잘 따랐군."
"사실 정전의 규모가 얼마나 크건, 정전 자체는 딱히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엘리트 기술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깟 정전 하나 해결을 못 하겠습니까? 그렇게 믿고 무전기로 인원 점검하고 순차적으로 보고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보냈던 애들을 포함해서 바깥에 있던 애들이 하나둘씩 연락이 안 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느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었나?"
"대규모 정전 때문에 각 시설과 사람의 안전도가 낮아질수록 경비업체의 보고 간격도 짧아집니다. 특히 시국이 시국이었고, 장소가 장소였던 만큼 거의 분 단위로 보고를 계속 받았습니다."
"그러다 연락이 끊어진 인원들이 점점 늘어났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제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그렇게 느꼈을 겁니다. 상식적으로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잘만 보고하던 애들이 갑자기 침묵하는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관제실에 있던 애들중에 몇 명 뽑아서 같이 장비 챙기고 나갔습니다. 동부 지구는 비싼 기업들의 자산이 넘쳐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훼손되거나 절도 당하면 큰일나기 때문에......"
"이해한다. 계속하도록."
방호복을 입은 남자의 재촉에 그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그래서...그래서...저를 포함해서 총 다섯 명이 나갔습니다. 최소한 군 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저희들끼리 뭐라도 해놓지 않으면 윗분들에게 갈굼당할 수도 있으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다같이 손전등 불빛 비추면서 담당 구역을 살폈습니다. 연락이 끊어진 애들 위치도 직접 가서 소재 파악도 해야하고...어쨌든 그러다보니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구역에서 우리쪽 애를 한 명 발견했습니다. 원래 2인 1조로 다니는데 한 명은 어디갔는지 없고, 그 놈만 혼자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서있었습니다."
"바로 확보했나?"
"처음엔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불빛을 비췄는데 하필 그 자리에 혼자 서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름도 불러보다가 반응을 안 하니까 직접 가서 살폈는데...그게...그러니까......"
그는 갑자기 말끝을 흐리면서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오른쪽 끝과 왼쪽 끝을 초 단위로 오가고 있었다.
"이게...뭐라고 설명을 해야...아니, 그게 진짜...하."
"천천히 얘기해도 된다. 시간은 많으니까."
"시간이 많든 적든 그건 제 입으로 쉽사리 설명할 수 없는 겁니다!"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철제 책상을 쾅 내려쳤다. 그러더니 래퍼가 속사포로 가사를 읊는 것처럼 미친듯이 중얼거렸다.
"그, 그건 제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눈! 코! 입! 이렇게 정상적으로 달려 있어야 할 얼굴에 뭔가가 빠져있었다고요! 빌어먹을! 그게 정확히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그건 우리가 알던 놈이 아니었어요! 그 녀석을 가장 먼저 확인하러 갔던 제 후배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머리통이 뚫렸어요! 혓바닥인지 촉수인지 알 수도 없는 것에게 머리통이 시원스럽게 뚫리더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뒤로 넘어진 시체에 달려들어 마치 음료수를 마시는 것처럼 얼굴을 처박고 뭔가를 쪽쪽 빨아내는데 그때 들린 소음은 마치...으으으으으으으!!!"
급기야 발작을 일으킨 그가 방호복을 입은 남자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직후, 취조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또다른 방호복의 남자들에게 붙잡혀 제압당했다.
"나, 난 그렇게 되고싶지 않아! 나는! 나느으으으으으으으은!!!"
"진정제 투여해!"
"조금 전에 투여했는데 또 투여합니까?!"
"달리 방법 있어?!"
"진정제 투여 합니다!"
츗!
스마트 주사기가 그의 팔뚝이 꽂히고 진정제를 투여하자 곧 그의 발작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방호복을 입은 남자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가죽으로 된 구속구로 그의 사지를 결박한 다음 들것에 실어 옮겼다.
그 광경을 취조실 블랙미러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던 두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정체불명의 적성체와 교전했던 몇몇 군 부대의 증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충격적인데요. 저 말이 사실이라면 사람이 사람을 단번에 죽일 수 있을 만큼 기괴한 괴물로 변했다는 뜻 아닙니까?"
"하필 정전이었던 틈을 노리고 침투한 것도 치명적입니다. 동작감지센서 로그는 남아있지만 가장 중요한 CCTV 자료는 하나도 확보를 못 했습니다."
"아니죠. 정확히는 정전이 되기 직전에 침투했던 것 아닌가요? 증언에 따르면 동작감지센서는 정전 전부터 말썽이었다고 했으니까요."
"그건 우연의 일치 아니겠습니까? 설마 그 괴물들이 정전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침투했다던가, 반대로 직접 정전이 일어나게끔 유도했다던가, 그런 일이 가능할리 없잖습니까."
"사람의 형태를 한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건 상식이었던 모양이군요. 저도 모르는 걸 하나 배운 것 같네요."
중년 남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다소 건방진 어조로 말하고 있는 젊은 청년을 바라보았다.
본인을 대통령에게 직접 명령을 하달받고 파견나온 국정원 요원이라고 소개한 이 청년은 최연호(필시 가명이다)라는 이름이었다.
최연호는 난데없이 이 생물학적재해 임시 연구소로 찾아오더니, 이쪽에서 확보한 '감염 우려' 후보군들의 취조를 직접 확인하게 해달라고 나섰다.
모든 공무원의 최고 상관인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나온 인물인데 당연히 거절할 수 없어서 지금껏 여러 명의 감염 우려 후보군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조금 전에 취조실에서 끌려나간 사람이 마지막 후보군이었다.
"모두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지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하기야 그만한 일을 겪었으니 멀쩡한 것도 말이 안 되겠지마는."
"솔직히 저희 입장에서도 난감하긴 합니다. 아무리 최신예 의료기기로 검사를 해봐도 저들의 몸에서 어떠한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 심리학이 주전공인 의사들을 몇몇 초빙해서 살펴보게 했는데......"
"살펴보게 했는데?"
"자신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을 만큼 정신이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라고 합니다. 보통 저정도까지 정신이 내몰리려면 단기간에 극심한 수준의 고문을 받거나, 수십 년에 걸쳐 정신적 학대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인데."
"꾸준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한다고 해도 가망이 없겠다고 하던가요?"
"저도 같은 질문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뭐라는 줄 아십니까? 칼날에 손가락이 살짝 베인 것과 이가 듬성듬성 빠진 칼날로 손의 신경을 미친듯이 헤집어 놓은 것 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상 재기불능이군요."
의학 기술이 꾸준히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오늘 본 모든 취조 대상들은 하나같이 비참한 인생을 살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솔직히 오늘은 취조 대상들에게 미리 진정제를 투여하고,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에서 꾸준히 요양을 시켜뒀기 때문에 '몇분' 정도는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했던 겁니다. 저 사람들은 제 발로 연구소나 요양원을 나가면 1분도 못 버틸겁니다."
"저들에 대한 처우는 보건복지부 쪽에서 잘 처리해주겠죠. 그보다 정말로 감염 확산 요소는 단 하나도 없나요?"
"단언컨대 없습니다. 정신질환도 감염 확산이 된다면 또 모를까, 저 사람들은 그냥...운 나쁘게 미쳐버린 불쌍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중년 남성이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하자 최연호는 최종 확인을 끝마쳤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 가방을 챙긴 그는 임시 연구소를 떠났다. 요양시설과 연결되어있는 이 임시 연구소는 무려 수백 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맡아두고 있는 상태였다.
"아아아아아! 아아아아!"
"눈이 가려워! 눈이 가렵다고!!!"
"그게 날 봤어! 난 보고싶지 않았는데! 날 봐버렸다고!!"
이게 정신병동인지 요양시설인지.
"쯧."
지금은 너무나도 귀해진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문 최연호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국정원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너무 오랫동안 험한 일을 하다보면 종종 저런식으로 정신이 피폐해져서 안 좋은 여생을 보내게 된다고 들은 적은 있었다.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신분을 위장해서 테러리스트 조직에 침투하고, 죄없는 민간인을 같이 쏴죽이고, 불법적으로 마약이나 무기를 밀거래하고,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 위해 현지 정보원을 배신하고, 갈아치운 이름과 직업이 몇 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직업.
그게 국가정보원에 소속된 이름없는 요원의 업이었다. 특히 현장 요원치고 정신 멀쩡한 친구들 찾기 힘든 게 이 바닥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꽁초 끝까지 태운 그는 이윽고 발로 비벼서 불을 끈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생물학적재해 임시 연구소 허탕. 미지의 바이러스에 의한 판데믹 우려 없음.
잠시 후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답장이 돌아왔다.
-조사 대상 변경 : 생물학적재해 임시 연구소 > 박한성(프로필 첨부)
"이것봐라?"
변경된 조사 대상의 프로필을 확인한 최연호는 찡그렸던 얼굴을 도로 폈다.
조사 대상이 특급 기밀에 해당하는 비전사 소속 전직 중장갑수색대 대원이었다. 이건 대통령이 직접 인가를 내리고, 오직 국가를 위해서만 움직였던 독립 부대가 아니었던가?
공식적으로 특수부대는 아니었지만 그 성질은 너무나도 특수부대와 닮아있었던 특이한 부대였다.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최전방 부대와 다를 것 없으면서, 대통령의 인가가 떨어지면 그 즉시 몇몇 관계자들과 함께 움직이곤 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비밀스러웠는지, 국외에서 활동할 때는 무조건 잠수함에 실어 보낼 정도였다.
국정원이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대통령의 긴급 작전 승인으로 그들이 북한에 가서 뭔가를 했다는 것 뿐이었다. 정확히 뭘 봤는지, 뭘 했는지, 또 부대원들이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최고 상관인 대통령이 그들에 대한 모든 정보 열람권한을 최고 권한으로 설정하면서, 사실상 모든 이들의 정보접근을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박한성이라는 인물에 대한 프로필은 전직 중장갑수색대 대원이었다는 점만 빼면, 모두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들 뿐이었다.
그 유명한 디그러쉬에 재직중인 박한화의 아들이자 인서울 대학 졸업, 미래그룹 산하 경비업체에 취직하기 위해 취업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각종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자격증은 엑소스켈레톤 면허증이었다. 일단 전산기록상으로는 군에 입대한지 얼마 안되어 취득한 것으로 보였다.
'싹수가 있는 놈들만 뽑아서 엑소스켈레톤 면허증을 따게 한다음 중장갑수색대로 굴려먹었다는 건가? 하여간 그 동네는 참......'
자기들도 남의 뒤가 구리다느니 냄새난다느니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비밀작전사령부 소속도 만만치 않았다.
특수부대를 굴리고 싶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특수작전사령부 산하에서 편제를 하든가. 괜히 이상한 사령부를 하나 더 만든 것도 모자라 대통령의 명령만 받는 독립 부대를 만들어서 운용하다니. 명백하게 이상했다.
최연호는 얼마 되지도 않는 프로필과 사진을 쓱쓱 훑어내리다가, 왜 팀장이 그를 조사하라고 시켰는지 알게 되었다.
-조사 목적 : 박한성이 보유한 지상 데이터 및 북한 땅굴 정보 획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