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57화 (57/211)
  • 지하에서(1)

    도시는 특별하지 않다. 특별해보이기 위해 모든 것을 갖다 박은, 잘 포장된 쓰레기 매립지일 뿐이다.

    냄새가 난다고 하여 씻지 않고 독한 향수만 반복적으로 뿌려대는 부나방들의 천국.

    그것을 우리는 도시라고 부른다.

    무인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집을 가는 길에 내가 본 지저 도시의 풍경은 여전히 삭막하기 짝이 없었다.

    서울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것 치곤 지저 도시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뼈대가 훤히 드러난 미완성 접대 로봇이 끼익끼익 거리는 기계음으로 손님 접대를 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허술하지?'

    그래. 허술하다.

    나같은 사람이 남부 지구와 북부 지구를 오가며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도, 입주 첫날부터 이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것도, 실질적인 치안 조직이나 다름없는 군대의 활동량이 생각보다 적은 것도.

    모두 이 도시가 허술하기 때문이 아닐까?

    거리마다 부족한 CCTV와 가로등, 보안 초소. 정말 많은 것들이 부족하고 체계가 허술하다. 10년이라는 시간과 천문학적인 자금, 그리고 사람을 갈아넣은 도시가 맞나 싶을 만큼.

    "......"

    어느새 무인셔틀버스가 거대한 주상복합아파트 근처 정류장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환경과 높게 들어선 마천루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산책을 하는 사람들, 햇빛 대신 인공 조명 아래에서 우아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 주기적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거리의 흙먼지를 청소하고 있는 자동로봇청소기.

    이곳에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애완견, 그리고 인공 조명보다 훨씬 더 밝고 따스한 햇빛이 존재했다면 나는 무심코 미소지었을지도 모른다.

    '허술해.'

    3일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은 내가 갑자기 나타나 직급 카드를 제출하자 쉽게 들여보내주는 경비업체 직원들도.

    아파트 1층 홀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것도.

    전부 이상하리만치 허술해보였다.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현관문을 닫은 순간 모든 긴장이 탁 풀린 것처럼 전신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문득, '본능'적으로 내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급하게 가슴을 쥐어짜냈다.

    "커흐! 허어...허어......!"

    현관 앞에 웅크려 한동안 미친듯이 부족한 산소를 받아들이고 있으려니, 안쪽에서 나온 여동생이 나를 발견하고 표정을 굳혔다.

    "야! 괜찮아?!"

    "후우...후우...괜찮아."

    "식은땀 장난 아닌데?! 아니, 그보다 지난 3일간 어디서 뭐하고 있었던 거야?!"

    "일이 좀...후우...있었어."

    그렇게 현관 앞에 털썩 주저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데에만 몇 분을 썼다.

    그동안 나는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집을 비웠으며, 여동생만이 주 6일 근무제를 잘 지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여동생은 오늘이 쉬는 날이었던 거다.

    다시 몸에 힘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나는 즉시 화장실로 달려들어가 외출복을 벗고 전신을 박박 문질러 씻었다. 바깥에서 여동생이 괜찮느냐고 연신 물었지만 지금은 씻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샴푸 거품이 잔뜩 묻어있던 머리에 차가운 물을 들이붓자 머리 끝에서부터 나를 뒤덮고 있던 더러움이 씻겨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로 복귀할 때 소독용 스프레이와 젤까지 사용해서 더러움은 전부 닦아냈을 텐데.'

    모든 밀수조직은 지저 도시 복귀전에 반드시 1차 소독을 거치고, 엘리베이터를 관리하는 군 부대에서 한 번 더 간단한 소독을 한다음 해산한다.

    평소처럼 소독도 잘 했고, 지상 작전에서 쓴 장비는 모두 차도식파 아지트에 맡겨두고 나왔다.

    그런데도 전신에 끈적하게 뭔가가 끈적하게 들러붙은 느낌이라, 머리에 물이 쏟아진 순간 환희를 느낄 지경이었다.

    그렇게 뽀송뽀송한 상태로 화장실의 말끔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당연하게도 내가 있었다.

    "존나 양심없게 잘 생겼네."

    커다란 수건으로 상남자식 몸닦기를 시전하고 여동생이 가져다 준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외출복에서 빼낸 체액 샘플 병과 스마트폰만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검은 체액은 혹시라도 변질되는 일이 없게끔 물자 보관용 상자에 넣기로 했다.

    배터리만 충전시켜주면 상시 냉기를 유지해주는 이동식 냉장고 같은 물건이라 식료품을 보관하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검은 체액도 식료품과 비슷한 보관방법이면 될 것 같아 종이에 잘 싸서 넣었다.

    마침내 나 자신을 옭아메고 있던 모든 문제가 말끔히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드디어 여동생과 대화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여동생이 먼저 조심스럽게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괜찮냐? 엄마한테 전화할까?"

    "아냐, 괜히 걱정끼칠 필요없어. 어차피 저녁 전에 돌아오시잖아. 그보다 너 잠깐 와서 앉아봐."

    나는 여동생을 침대에 앉힌 뒤 상담을 진행하는 의사처럼 마주보았다.

    여동생은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순순히 내 말에 따라주었다.

    "나 없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어?"

    "그건 오히려 내가 물어야 할 것 같은데? 3일동안 대체 어디서 뭘 했길래 그런 모습으로 집에 들어와?"

    "시치미 떼지말고. 너 정도면 내가 무슨 일 하고 있는지 이미 다 알 거 아냐."

    "......"

    같은 핏줄에서 태어난 남매인데 당연히 모를리가 없지.

    내게 조기 교육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아버지가 한층 더 유연하면서도 교활한 방식으로 교육 시켰기 때문에 여동생은 이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

    "정확히는 몰라. 그냥 불법적인 일 하면서 비싼 물건 긁어모아서 남부 지구에서 풀고 있다는 것만 알지."

    "내가 그 물건들을 어디서 구해왔는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나오잖아. 내가 구해오는 물건들은 지금 대통령도 못 구하는 물건인데."

    "...거기까지 생각하면 진짜 위험하니까 일부러 생각 안 하고 있었던 거라고."

    "알고있으니 됐어. 그래서 뭐 있었냐?"

    "아빠가 널 찾긴 했는데 내가 일 하러 갔다고 하니까 신경끄시더라. 그리고 너 없는 동안 내가 부녀회 통해서 1일치 물건 전달했어."

    "잘 했어. 그것외엔?"

    여동생은 대답 대신 스마트폰으로 내게 정리한 자료 파일을 전송해주었다.

    "디그러쉬에서 일하면서 눈치껏 내부 조사를 하긴 했는데 진짜 토나오는 곳이야."

    "역겨워서?"

    "답답해서. 뭐라도 확 쏟아내고 싶은 기분인데 그러질 못하는 곳이라 토할 것 같더라. 더 웃긴 게 뭔줄 알아? 다들 내가 박한화 딸이니까 낙하산으로 입사했다고 생각하질 않더라. 전부 날 견제하고 감시하고 있었어."

    "널 경쟁자로 봤다?"

    "경쟁자라기보단...잠재적 사냥감? 내가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짓밟고 올라서는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잡아먹으려고 하는 눈치였어."

    디그러쉬의 사내 분위기가 어떤지 대충 이해가 된다.

    남들보다 잠시 뒤쳐지는 건 언제든지 치고 올라올 기회가 있다는 뜻이니 허용되지만, 반대로 꼴사납게 패배하는 건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고독(蠱毒) 항아리 같은 곳이겠지.

    그런 곳에서 아직 20도 안 된 내 여동생이 인턴으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도 웃기지만, 그 이전에 3일 동안 별 일이 없었다는 점이 계속 신경쓰였다.

    3일은 언뜻 짧게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여기선 아니다.

    모든 것이 급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지저 도시의 특성상 3일은 굉장히 긴 시간이다. 정부 고위 관료들 사이에선 중요한 안건이 수십 개가 오갔을 거다.

    그들의 의중과 최고명령권자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아랫사람들만 몇 명일 것 같은가? 최소로 잡아도 수천 명이고, 하청에 하청까지 더하면 가볍게 10만 명 단위를 넘는다.

    다소 폐쇄적이고 편협한 시야를 가진 북부 지구의 서민층은 파악할 수 없지만, 남부 지구 출신의 엘리트층 집안 자식이자 실제로 엘리트인 여동생의 시야에선 명확하게 바뀐 것들이 있을 것이다.

    "아, 최근 방호복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몇 번 본 것 같아."

    "...어디서?"

    "남부 지구랑 동부 지구."

    그들이 뭘 했느냐고 시선으로 되묻자 여동생은 팔짱을 낀채 인상을 찡그렸다.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자신이 특별히 신경쓰고 있지 않던 기억을 갑자기 꺼내야 할 때 으레 보이는 여동생의 버릇이었다.

    아버지가 여동생을 한창 교육하고 있을 때 허를 찌르듯 갑작스럽게 온갖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곤 했는데, 그때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구박을 받았었다.

    그래서 여동생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기억을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저렇게 인상을 찡그리곤 했다.

    "그냥 건물들마다 돌아다니면서 사람 붙잡고 뭔가 물어보거나, 자기들끼리 얘기하면서 기록을 했던 것 같아. 최소한 방역 작업하러 온 사람들 같지는 않았어. 엄밀하게 말하면 역학조사관처럼 보였다고 해야 하나?"

    "역학조사관이라......"

    지저 도시에서 갑작스럽게 유행병이라도 터졌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여동생이 내게 질문했다.

    "그래서 넌 3일간 뭐했는데? 이제 슬슬 나한테 말해줄 때도 됐잖아."

    "진짜 듣고싶냐?"

    "아니면 지난번처럼 또 나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내버려두려고?"

    "......"

    "솔직히 너 지금 하는 거 보면 아빠한테서 독립하기 전이랑 똑같아."

    그 말에 가슴 한켠이 욱신거렸다. 그렇기에 감히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군 부대랑 작당해서 격벽 열고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어. 정보랑 물자 모으려고."

    "그건 나도 알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

    나는 한동안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말을 골라야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그건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 해방시켜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아버지에게 빚진 목숨값을 갚을 준비도 이미 끝마쳤으며, 아울러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여러 계획을 구상하고 착착 진행중이다. 이대로만 한다면 머지않아 그 아버지도 뛰어넘어 내가 그토록 원했던 진정한 자유를 쟁취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그 원대한 포부와 희망을 행동원리로 내세우는 대신, 나는 적절한 대답을 골랐다.

    "그게 우리가 지하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  *  *

    "저도 그날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냥 센서가 반응했고, 그래서 절차대로 우리 업체 직원을 보내서 확인시켰던 건데, 일이 그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 남자가 책상을 사이에 두고서 방호복을 입은 사람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그날은 다들 지저 도시에 입주하고 자신들의 거주지를 찾아간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잖습니까.  군 부대도 어수선해서 배치도 제대로 안 된 상황이었고, 하는 수 없이 상층부에 명령에 따라 근무부터 들어갔습니다. 군 부대가 각 지구 치안을 담당하기 전까진 경비업체가 치안을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급한대로 장비 챙겨서 근무 들어갔죠.

    그렇게 덧붙인 남자는 잠시 목이 타는지 앞에 놓인 물을 들이켰다.

    "저는 모니터링 담당이었습니다. 지저 도시 전역에 전력 공급한지 얼마 안 됐으니 우선 CCTV보단 간단한 동작감지센서부터 약식으로 점검해서 가동시키고, 그다음 순차적으로 보안 시스템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CCTV부터 비상호출, 긴급방송, 신경써야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지저 도시 외부 센서가 반응했다?"

    "그렇죠. 바깥에서 들어올 게 없는데 바깥 센서가 반응한 게 이상해서 급하게 무전 때렸습니다. 지금 XX 구역 센서 반응했는데 혹시 호기심으로 지저 도시 바깥에 나갔다 들어온 사람 있는지 확인해보라고요. 다들 알다시피 여기가 좀 많이 신기한 곳이잖습니까."

    방호복을 입은 사람은 계속 해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래서 사고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혹시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사람 있으면 따끔하게 주의주고 거주지로 돌려보내라는 말도 해뒀습니다.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경비업체 현장 직원들이 원래 좀 거친 면이 있어서 그런 쪽으로는 프리하게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사내 규정 같은 건 굳이 말할 필요 없다."

    "어쨌든 그러고 10분 정도 지났는데 갑자기 센서가 미친듯이 반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현장에 보냈던 애들한테 다시 무전 때려봤는데 대답은 없지, 센서만 미친 듯이 울리고 있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일단 현장 책임자님께 보고부터 했습니다. 혹시 설치한지 너무 오래된 지하 설비라서 기계 오작동이 일어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던 참에 갑자기 정전이 일어났습니다."

    남자는 연신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부터 일이 터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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