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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56화 (56/211)
  • 사업 확장(4)

    이례적으로 6시간만에 귀환한 것이 상당히 의외였던 것일까.

    엘리베이터의 유압폐쇄 격벽이 열리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 부대가 우리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차도식파다! 차도식파가 또 한 건 했다!!"

    그래, 우리가 또 한 건 올리긴 했지.

    이번이 고작 5회째 작전이긴 하지만, 차도식파는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대량의 물자를 들여왔기 때문에 저들이 환호하는 것도 이해한다.

    하물며 남들은 12시간 걸려서 구해오는 물자를 우린 고작 6시간만에 구해왔으니 화들짝 놀랄만도 하지.

    나는 평소처럼 김명호에게 내 몫의 물자는 개인 창고에 보관해줄 것을 부탁하고, 한창 점심 때인 군 부대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나는 물자 판매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내가 왜 지금까지 물자 판매에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어째서 물자를 저장해두기만 하고, 그중 일부는 남부 지구에서 헐값에 넘기고 있었겠는가?

    '날 주시하고 있는 놈들이 있어.'

    3일만에 돌아온 지저 도시라서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도 있었지만, 나는 정부가 북부 지구를 신경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누군가의 감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꽤 높은 확률로 기업이 먼저 북부 지구를 감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특정 정부기관의 사람이거나. 최악의 경우엔 양쪽 모두일 수도 있다.

    '지금 나를 붙잡아서 턴다고 해도 나는 북부 지구에서 어찌어찌 물건만 떼서 남부 지구에 헐값으로 넘기고 있는 호구 등신일 뿐이야. 왜냐하면 거래 기록이 그게 전부니까.'

    감시 드론은 군 기밀 유출 방지 프로그램 때문에 군 부대가 거주하는 곳 일대를 촬영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다.

    때문에 아무리 드론을 돌려봤자 우리가 군 부대 내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을 테고, 반대로 사람을 돌리자니 북부 지구의 비밀을 캐내기 쉽지 않을 터. 현재 북부 지구 거주민들의 단합력은 국공합작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만약 친 북부 지구 성향의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면 북부 지구 거주민이 몰표를 줄 정도다.

    '지난 3일간 내가 보이지 않았으니 초조했겠지.'

    감시 대상이 갑자기 3일동안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구미가 당기지 않고는 못 배길 터.

    하지만 모든 감시를 내가 일일이 떨궈낼 수도 없는 법이고, 그렇다고 확 튀는 행동을 하자니 더욱 수상쩍게 보일 것 같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우선 차도식파 아지트에 들러서 소총이나 외골격 파츠를 비롯한 개인 장비를 보관소에 맡겨두고, 차도식이 있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나를 3일만에 본 조직원들은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상 작전을 나가지 않는 조직원들은 대부분 내가 바깥에서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문 열려있으니까 그냥 들어와!"

    내가 노크를 가볍게 두어번 하자마자 안쪽에서 차도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차도식은 업무용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폭 두목이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다니. 이보다 더 웃긴 광경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직 애들 작전 나간지 6시간밖에 안 됐잖아. 뭐 다른 일이라도 있어?"

    "작전 끝났는데요."

    "그게 무슨...억!!"

    눈이 빠져라 서류를 들여다 보고있던 차도식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튕겨나왔다.

    "너, 너...우리 동생! 살아있었구나!!"

    "당연히 살아있죠. 차도식파 최고 에이스 아닙니까?"

    "동생이 진짜 죽었으면 무식하게 벌려놓은 이 판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다행이야! 진짜로!!"

    차도식은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들겨주며 죽상이었던 얼굴을 활짝 폈다.

    조직 보스의 겉치레보단 일쪽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한 장 집어들며 되물었다.

    "일이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어, 그래. 좀 많이 바쁘지. 우리 조직이 다른 조직보다 물자 수확량이 워낙 많잖냐. 아직까지 조직원 피해도 전무하고. 그래서 그런지 신경써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더라고. 안 그래도 명호랑 동생이랑 같이 의논하려 했는데 잘 됐네."

    "제가 한 번 맞춰볼까요? 다른 밀수조직을 탈퇴하고 차도식파에 들어오려는 조직원들 문제, 최근 정부가 북부 지구를 감시한다는 소문 때문에 급하게 은폐해야하는 차도식 병원 문제, 쌓아둔 물자의 시세 조정과 판매 수량 문제, 그리고 몇몇 기업이나 VIP들이 개인적으로 알게모르게 접선해오고 있는 문제."

    "......"

    차도식은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푼수끼가 좀 있는 양반이지만 이번에는 진지하게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동생은 위험한 밀수가 아니라 그냥 돗자리를 깔아야겠는데?"

    "차도식파가 지금까지 해온 일과 지저 도시의 내부사정을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떠올릴 수 있는 문제들이에요. 그리고 몇몇 문제들은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나는 몇 장의 서류를 모아서 손으로 탁탁 두들겨 각을 맞췄다.

    "다른 조직을 탈퇴하고 차도식파로 들어오려는 놈들은 막으세요. 타 조직과 격차를 벌리는 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척을 지면 안 되죠. 지금은 우리가 압도적인 1위지만 언제 그 신세가 바뀔지 누가 알겠어요? 대신 숙련된 우리 조직원 몇 명을 용병 형태로 타 조직에 파견해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보죠. 숙련된 용병이 타 조직에서 활약할수록 타 조직의 물자 수확량이 높아지고, 조직들간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겁니다. 1위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아니라 믿고 따르게끔 인식을 바꾸는 게 중요해요."

    "일리가 있네. 안 그래도 자기 조직을 버리고 박쥐처럼 갈아타려는 놈들은 우리 조직에서도 거절하려고 했거든. 역으로 우리 애들을 빌려주면서 소소하게 용돈도 벌어오고, 조직간의 관계 개선도 하잔 말이지?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차도식 병원은 포인트 거래를 전면 중단하고 무료 진료 및 치료로 바꾸세요. 차도식 병원의 간판은 아직 안 달았죠? 병원 간판 대신 그냥 '건강증진관리소' 같은 적당히 야매 느낌 나는 간판을 달죠. 병원이라는 느낌이 안 들게끔."

    "간판은 이해하겠는데 무료 진료와 치료를 하라는 건 이해가 안 되네. 그럼 우리 손해 아니야 동생?"

    "당장은 손해를 보겠죠. 하지만 정부가 북부 지구를 훑어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불법체류자 의료진을 데리고, 어디서 구해왔는지도 모를 대량의 의약품과 의료설비까지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오......"

    "예, 좆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료 진료와 무료 치료로 북부 거주민들의 암묵적인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내야죠. 우린 지금 장사꾼이 아니라 정치인 행세를 해야 합니다. 대외적이든 내부적이든 아군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요. 장사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아요."

    "좋아좋아, 며칠째 고민하던 문제가 벌써 2개나 해결됐네. 다음은? 다음도 있지?!"

    어느샌가 조직 보스인 차도식이 직접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나는 다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꺼내들었다.

    "차도식파가 쌓아둔 물자가 제법 많죠?"

    "타 조직들에 비하면 압도적이지. 부동산 거래도 포인트로 하면 흔적이 남는다고 하길래 물자로 거래해서 창고를 2개나 더 구했어."

    "이건 제가 직접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에요. 모든 밀수조직과 상인조합, 그리고 군 부대 관계자들을 모아서 정해야 할 사안이죠. 보스가 먼저 얘기를 꺼내면 다들 일정을 맞춰보려고 노력할테니 적당한 날과 장소를 잡아서 회의를 해보세요. 이미 그것때문에 몸이 달아오른 사람들이 알아서 얘기를 진행시켜줄 겁니다."

    "담합을 하라는 건가?"

    내 몫의 커피를 먼저 건네준 차도식이 그렇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상이라면 모를까, 지저 도시에서 상품의 공급 수량과 시세를 조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죠. 지금은 북부 지구가 바짝 엎드려야 하는 상황이니 모두에게 협조해달라고 부탁하면 이해해줄 겁니다."

    "만약 시세를 낮추고 공급만 늘리라고 한다면 밀수조직들의 반발이 심할 텐데? 군 부대나 상인조합은 좋아라 하겠지만."

    "밀수조직들이 당장 희생하는 만큼 북부 지구의 이권을 더 챙겨오는 쪽으로 합의를 봐야겠죠. 그리고 정부의 감시가 사라지거나, 감시망을 피할 방법이 생길 때까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못박아두면 다들 싫어도 따라주지 않겠어요?"

    "그것도 그래. 목에 칼이 들어오기 직전인 상황인데 마냥 강짜만 부리다간 다 죽는 거니까."

    그래, 밀수조직들은 당장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바짝 엎드리자는 차도식파의 협조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북부 지구의 단결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지저 도시 인구의 태반을 차지하는 서민층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서로 상부상조하는 분위기를 더욱 강화하자는 거다. 물론 우리들끼리만.

    "그리고 마지막 문제 말인데...VIP나 특정 기업들의 비밀스러운 접선. 이건 제가 지난 3일 동안 자리를 비워서 잘 모르겠는데, 정확히 어떤 형태의 접선이 있었습니까?"

    "감시 드론으로 암호화 메시지 파일이 담긴 USB를 전달하거나, 딱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사람을 보내서 구두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이었지. 횟수로치면 대충 5번쯤?"

    "상대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었습니까?"

    "특정할 수 있는 상대는 3개였어. 미래그룹, 디그러쉬, 그리고...국회의원?"

    "디그러쉬는 일단 무시하기로 하고, 미래그룹은 저 때문에 접선한 것 같으니까 제가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제가 그쪽에 떡밥을 좀 뿌려뒀었거든요. 그리고 가장 골치아픈 쪽이 정치인인데......"

    사실 밀수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북부 지구의 시장경제가 활성화될수록 정치권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돈 냄새를 가장 잘 맡는 건 천생 장사치인 기업인도 아니고, 주식 투자 전문가도 아니다. 바로 정치인이다.

    서로가 풍겨대는 지독한 악취는 맡지 못하는 주제에 돈 냄새는 어찌나 잘 맡는지. 돈 냄새를 기억시킨 경찰견과 대결시켜도 지지 않을 족속들이다.

    "정치권이랑은 웬만하면 안 어울리는 게 맞긴 한데...그건 지상에서의 이야기죠."

    "맞아. 내가 지상에서 알고 지내던 몇몇 조직들도 정치권에 줄 대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끝이 안 좋더라고."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나는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열심히 짱구를 굴렸다.

    여긴 지상이 아니라 지저 도시다. 하지만 여기에도 뇌물에 굶주린 VIP들이 잔뜩 있다. 그들은 지금쯤 VIP 전용 거주 구역에서 지저 도시를 어떻게 자기들 입맛대로 바꿔갈지 열심히 논의중이겠지.

    약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이 서로 뜻만 합일시킨다면 정치인 입맛에 맞는 법안을 발의하고 개정시키는 건 일도 아닐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당연하게도 뇌물을 원한다.

    구체적으로는 당장 쓸 곳이 마땅치 않은 포인트보다 현물을.

    우리가 공급부터 유통, 판매까지 모두 책임지고 있는 밀수품을.

    "줄을 대죠."

    "푸흡!"

    커피를 후르륵 마시고 있던 차도식이 갑자기 커피를 뿜었다.

    지상에서 조직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항상 눈치껏 행동하는 안전지향주의자였다는 얘기를 김명호에게서 들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진심이야 동생? 정치인이랑 엮이면 좋을 게 없다는 건 알잖아."

    "어쩔 수 없어요. 우린 정치인이랑 엮여야 합니다. 정치인들에게 뒷돈을 찔러주는 한이 있더라도 북부 지구를 어떻게든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만들어야 해요."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있어?"

    "당장은 없죠. 그러니까 보스가 먼저 접선해온 VIP에게 뇌물을 조금씩 찔러주면서 정치권 분위기를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지, 또 얼마나 애타게 뇌물을 원하고 있는지."

    "우리에 대해 알고 있으며, 뇌물을 원하는 정치인 비율이 높다는 걸 확인하면 본격적으로 줄을 대서 도움을 받자?"

    "그렇죠. 천운이 따라준다면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발 벗고 나서서 밀수를 정식허가제로 만들어줄수도 있어요. 설령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임기가 얼마 안 남은 대통령도 얼마 못 버티겠죠."

    그래. 지금 대통령은 임기가 2년도 채 안 남았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단체로 반발하면 레임덕 확정에 서민층의 지지까지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미친 척 하고 계엄을 선포한다고 해도 국회의원 과반수가 계엄 해제에 찬성하면 계엄은 해제될 수밖에 없지.'

    정치인들을 잘 구워삶기만 하면, 그들에게 안정적인 뇌물 공급을 약속하고 신뢰를 얻을 수만 있다면, 북부 지구는 다른 지구를 제치고 최대 상업 지구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니까 밑작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다행히 내 말을 이해한 차도식은 굳은 표정으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결국 내 의견에 동조해주었다.

    "좋아. 그럼 더러운 돼지놈들에게 줄 한 번 대보자고. 대신 실패하면 끝이 안 좋다는 건 알지? 이건 조직의 명운이 걸린 일인 만큼 명호도 불러서 따로 얘기해볼 거야. 필요하다면 다른 조직들과 연계도 할 생각이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책임과 부담은 분산한다라...나쁘지 않네요."

    역시 수완이 좋은 양반이라 그런지 가이드라인을 알려준 것 만으로도 알아서 답을 도출해냈다.

    차도식과의 논의를 끝낸 나는 이번에야말로 셔틀 버스에 몸을 싣고 조금도 그립지 않은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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