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53화 (53/211)
  • 사업 확장(1)

    연막신호탄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놈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치며, 운 나쁘게 권총탄에 맞아 쓰러진 놈들에게서 소총을 빼앗아들었다.

    연막신호탄은 확 퍼져나간 연막 속에서 신호탄이 강하게 발광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바깥에서 보면 매우 기이한 형태로 산란된 빛을 볼 수 있다. 커다란 구름이 통째로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본래 저것은 전투용으로 사용되는 가젯이 아닌데, 이런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우선 주변이 어둡고, 적이 뭉쳐있으며,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빛과 연막으로 적들의 시야를 완전차단하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이끌어냈다.

    덕분에 연막을 뚫고 나온 내 눈에는 밝은 연막 속에서 허우적대는 적들이 훤히 보였다. 연막 속에서 인간형의 그림자가 보이면 그게 적이니까.

    탕! 타앙!

    이번에는 판매대를 엄폐물 삼아 신중하게 한 발씩 조준사격을 가했다. 방아쇠를 한 번 당길 때마다 총구 끝에 있던 적이 픽픽 쓰러졌다.

    대한민국 남성들 대부분이 자랑스러운 현역 출신이겠지만 갑작스러운 기습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설령 잘 훈련받은 군인이라고 해도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확히 나 한 명만 노리는 건 힘들겠지.

    "젠장! 놈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어디서 총을 쏘고 있어! 일단 숨어!!"

    "어디로?!"

    "콜록콜록! 시발 처음부터 떠돌이가 아니라 군인이었던 거야 그 새끼!!"

    "아악! 내 다리!!"

    적극적으로 발광 연막 속에서 도망치려는 놈들은 최우선으로 다리나 팔을 쏴서 행동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그 놈들이 고통 속에서 절규하며 온몸을 비틀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있던 놈들까지 패닉 상태로 몰아가는 법이니까.

    군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아군의 패닉이다. 적의 기습이고 나발이고 아군이 패닉을 일으켜서 아무것도 못 하거나, 반대로 오인사격을 해버리면 정말 좆된다.

    "히이이익! 나, 난 빠지겠어!"

    "잠깐! 대모님을 지켜야지!!"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대모는 얼어뒤질 대모!"

    진동하는 피비린내와 부상자들의 절규, 그리고 발에 채이는 시체. 결국 멘탈이 터진 몇몇 이들은 총까지 내던지며 무작정 연막 밖으로 내달렸다.

    '저런 놈들은 그냥 보내줘야지.'

    멘탈이 터져서 도주하는 놈들까지 싹 잡아죽이면 반대로 적들에게 배수진을 강요하게 된다. 궁지에 몰린 쥐도 고양이를 깨무는 법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래서 무장을 해제하고 도주하는 놈들은 살려보내주었다. 최준석이 내 계획에 동참하기만 해주었다면 도주자들의 뒷처리는 알아서 해줄 테니까. 설령 그가 계획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땐 나 혼자 빠져나가서 적당한 곳에 숨어있다가 다시 차도식파와 합류하면 돼.'

    그리고 차도식파와 함께 노원역에 있을 검은 무리 동조파를 전부 제거한다음 노원역을 꿀꺽하면 된다. 최준석을 포함해서.

    순조롭게 적들을 쓰러뜨린 나는 곧 연막 속에 누구도 서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죄다 쓰러져 신음하고 있거나, 영면에 든지 오래였다.

    연막신호탄도 서서히 제 기능을 다했는지 빛이 잦아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놈들에게 접근한 나는 소총에 호환되는 탄창 몇 개를 빼앗은 다음 에스컬레이터 위쪽으로 향했다. 남아있던 검은 무리와 대모라는 년을 확실하게 조져야 한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쯧......!"

    내가 다시 찾은 끔찍한 홀의 중앙에는 놈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총격전이 벌어지자마자 일찌감치 몸을 뺀 게 분명했다. 비상계단을 사용했겠지. 지금 추격해도 따라잡기는 글렀다.

    대신이라고 할까, 나는 혓바닥이 뽑힌 채 기괴한 신음을 흘리고 있는 인간형의 무언가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이 놈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는데, 시험삼아 적에게서 빼앗은 손전등 불빛을 놈의 안면에 들이대자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었다.

    역시 빛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빛이 밝고, 광량이 집중될 수록 괴로워하는군. 그래서 먼 곳에서 포착한 빛을 보고 자연스럽게 달려들지만, 정작 가까운 곳에서 자신에게 집중된 빛에는 견디지 못하고 후퇴하는 거야.'

    빛의 밝기가 그렇게 세지 않은 야광봉을 하나씩 툭툭 던질 때마다 놈들이 개뼈다귀를 발견한 대형견처럼 뛰어가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인간인 우리에게 있어서 빛은 검과 방패가 될 수도 있으나, 동시에 놈들을 끌어들이는 미끼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작정 소등하고 다니는 것도 답은 아니라는 얘기겠지.'

    놈들이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맞지만, 냄새나 소음으로도 추적을 한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먼저 놈들을 발견하고 제거할지, 아니면 처음부터 놈들을 피해 숨어 다닐지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할 것이다.

    혀가 뽑히고, 지속적으로 검은 체액을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놈의 신체적 내구도에 대한 정보도 확인했겠다. 더이상 쓸모가 없어진 놈의 머리통을 소총으로 쏴갈겨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이건...귀중한 샘플이니 챙겨야겠지."

    튜브가 연결되어 있던 유리병에서 튜브를 뽑아내고 재빨리 뚜껑을 닫았다.

    약 500ml 정도 담겨있는 검은 체액은 걸쭉하게 찰랑거렸다. 흡사 인간의 혈액을 보는 듯 했다. 이번 지상 작전에서 얻은 최고의 데이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목숨을 걸 가치가 있었다.

    유리병을 품 속에 갈무리한 나는 다시 소총을 들고 백화점 1층으로 향했다.

    최준석이 내 계획에 동참했다면 지금쯤 군인들을 설득해 노원역을 무력 점거 했을 것이고, 반대로 동참하지 않았거나, 역으로 나를 내부고발 했다면 군인들또한 내 적으로 돌아섰을 것이다.

    "자, 잠깐! 같은 편끼리 왜 그러는 거야?!"

    "우리가 아니라 그 새끼가 범인이라고! 어제 들어온 그 수상한 새끼!!"

    "그래! 대모님께서 하마터면 총을 맞을 뻔...억!!"

    다행스럽게도 내 걱정은 기우였다.

    최준석을 필두로 한 군인들이 백화점 앞에서 도주자 및 검은 무리 동조자들을 모조리 포박해서 무릎 꿇려놓았다.

    준비 시간도 얼마 없었고 굉장히 위험한 작전이었음에도 내 작전에 따라준데다 보기좋게 성공까지 했다. 역시 노원역 내에서 검은 무리에게 가장 큰 반발심을 가진 사람다웠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검은 무리를 생포하지 못 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놈들은 다른 출구로 도망쳤겠지.

    "역시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니까요."

    휘파람을 불며 나서자 최준석과 군인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놈들, 사이비 종교로 사람의 영혼까지 더럽히는 놈들, 그것을 제지하기는커녕 동조하고 소소한 이득을 챙겼던 부역자들. 여러분같은 사람들 덕분에 노원역의 암덩어리를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네 진짜 정체는 뭐야?"

    다짜고짜 의표를 찌르는 질문을 던지는 최준석에게 나는 손가락을 튕겨주었다.

    "비밀리에 지상 복구 작전을 진행중인 비밀작전사령부 소속 군인입니다. 중장갑수색대라고 하시면 아실까 모르겠네요."

    "엇! 최전방 부대에서 난다긴다 하는 그 부대 아닙니까?"

    군인들 중 한 명이 아는 체를 했다. 중장갑수색대는 기본적으로 최전방 주둔 부대였기 때문에 인근 부대와 훈련을 같이 하곤 했다.

    훈련의 경우 주로 산악 차단 작전과 침투 작전이었는데, 중장갑수색대가 항상 침투하는 쪽이었다.

    게다가 부대 내부 정보는 외부에 일절 공개되지 않지만, 엑소스켈레톤 슈트를 착용하고 돌아다니는 비전사 소속 최전방 수색대는 우리가 유일했으니 꽤 유명인사이긴 했으리라.

    중장갑수색대 외에도 중장갑타격대가 있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른 부대였기 때문에 지금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하, 그러니까 결국 처음부터 노원역을 노리고 들어왔다는 거 아냐."

    "그렇죠. 일정 규모 이상의 생존자 그룹이 존재하며, 거점이 비교적 안전하고 일정 수준의 생활권이 마련되어 있을 경우 해당 거점을 '복구 가능 거점'으로 판단합니다. 지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더 늦기 전에 사람들도 살리고 망가진 인프라도 보수하면서 생활을 안정화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그걸 위해서 너같은...비밀 요원 나부랭이가 돌아다니는 거고?"

    "비밀 요원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정찰 대원이라고 해두죠. 어느 거점에 어느 정도의 생존자 그룹이 존재하며, 또 복구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그럼 네게 명령을 내린 놈들은 지금 어디 있는 건데? 딱봐도 군이나 정부의 높은 분들이 명령을 내려서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거 아냐?"

    "그건 기밀인데 당연히 못 알려드리죠. 하지만 노원역의 모든 선량한 생존자들을 위해서 한 가지 좋은 제안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가 잠시 뜸을 들이자 최준석이 말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이유야 어찌됐건 내가 노원역 탈환의 방아쇠였고,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니 일단 들어보겠다는 의도였다.

    "이 쓰레기같은 놈들을 모두 정리하고나면 노원역은 인력이 조금 부족해지겠지만, 어찌됐든 내부의 불화는 정리될 겁니다. 여러분들은 노원역을 기준으로 주변 인프라를 복구하면서 생활권을 안정화시키려고 하겠죠. 그만한 식량이나 무기도 갖추고 있으니까요. 인력도 다른 곳에서 온 생존자를 받아들이거나 하면 나중에 어떻게든 해결 될 겁니다. 거기서 제가 약간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저와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이곳을 들리는 거죠."

    "이유는?"

    "안전한 노원역은 중간 거점으로 딱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마치 고속도로 한복판에 위치한 모텔처럼. 우리같은 사람들은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물자와 정보를 수집하고, 바깥의 괴물들을 처리하면서 지상 복구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힘들고 지치는 법이죠. 그런데 잠시 쉬어갈 곳이 있다? 거기서 여러분들은 소소한 대가를 챙기는 겁니다. 숙박업자처럼. 혹은 상업지구의 장사꾼들처럼."

    노원역은 규모가 크다. 사람따라 입맛따라 상업지구든 숙박지든 원하는대로 개조할 수 있다.

    게다가 선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다른 역으로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지고 개발될 가능성이 높은 안전지역이다.

    방해가 되는 검은 무리도 제거했겠다, 거기에 동조하던 쓰레기들까지 제거하면 안전한 노원역이 통째로 저들 손에 들어오게 된다.

    이런 흉흉한 시대에 소소한 수익이 들어오는 안전한 거점. 상상만 해도 아랫도리가 불끈거리지 않는가?

    이곳이 하나의 거대한 교역지로 성장하면 원년맴버나 다름없는 저들의 입지는 자연스럽게 높아질테고, 지저 도시에서 살아가는 상류층 못지 않게 잘 먹고 잘 살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저들에게 노원역을 꿀꺽한 걸 도와줬으니, 노원역을 중간 거점으로써 우리에게 제공하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지상 복구가 목적이면 맞는 말이긴 해."

    "최소한 누구에게 명령받을 일 없이 우리가 다수결 원칙대로 공평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보단 훨씬 더 나아질 겁니다."

    "저 사람 같은 사람들이 지상을 돌아다니면서 노원역에 대해 알리면 자연스럽게 사람도 모일 겁니다."

    최준석을 비롯한 군인들은 대체적으로 긍정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수상한 놈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내 제안 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인데다 저들이 손해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내가 흑심을 품고 노원역을 먹어치울 생각이었다면 저들을 돕지 않고 내부 싸움만 부추긴 채 조직을 끌고와 소탕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 검은 무리 소탕에 도움을 준 시점에서 나는 이미 신뢰를 얻은 셈이다.

    "좋아. 네 말대로 하는 게 괜찮을 것 같다. 최소한 이 더러운 새끼들 밑에서 의미도, 대가도 없는 노동이나 하며 사는 것보단 낫겠지."

    "자, 잠깐! 왜들 그래! 우린 그냥......!"

    "아가리 닥쳐! 네놈들은 총알도 아까우니까 나중에 따로 처리할 거다."

    내심 바깥에서 부주의하게 총이라도 쏴갈기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최준석은 놈들을 따로 처리할 생각인 듯 했다.

    한시름 놓은 나는 최준석에게 다가가 악수를 했다.

    만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된 놈들이 이 어처구니 없는 쿠데타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데다, 보기좋게 성공까지 해버렸으니 웃으며 악수를 하는 건 당연했다.

    이제 노원역은 밀수조직의 훌륭한 중간 거점이 되어줄 것이다.

    이곳을 전초기지 삼아 외부에서 더 오랫동안 작전을 진행할 수 있으며, 물자나 정보를 거래하거나 중요한 물품, 화물을 임시로 보관해둘 수 있는 창고 역할도 할 수 있겠지.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이런 거점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군.'

    최준석과 악수를 하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