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51화 (51/211)
  • 동화하라(3)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장소는 어디일까?

    축사? 하수도? 쓰레기 매립지?

    그런 장소들은 들어서기도 전에 코를 싸쥐고 인상을 찡그리겠지.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니까.

    하지만 세상에서 진정으로 가장 더러운 곳은 코를 틀어쥐고 인상을 찡그리게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혼까지 더러워지는 느낌을 주는 장소다.

    그곳에 단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고작 숨을 한 번 들이쉰 것 만으로도 나라는 존재가 끝을 알 수 없는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 인간성을 상실할 뿐이라면 차라리 괜찮다.

    하지만 순백의 영혼을 검게 물들이는 듯한 지독한 악의로 점칠된 장소라면, 분명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장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지.

    "형제님. 저를 똑바로 따라오셔야 합니다."

    "......"

    나는 악의가 무엇인지 안다.

    영혼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인간이 자신의 추악한 면모를 감추지 않고 타인에게 향하는 것.

    순수하게 상식을 파괴하고, 윤리와 도덕에 침을 뱉고, 법과 질서를 조롱하며, 인간성을 능욕하고, 끝내 영혼을 타락시키는 부정의 결정체와도 같다.

    악의의 시작은 타인과의 교감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끊임없이 다른 인간과 교감하고 소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 자신에게 없는 것,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 혹은 타인에게 없는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그 얄팍한 흑백논리에 의해 탄생한 순수한 악의는 잘 감추지 않으면 금세 주머니를 뚫고 튀어나오는 송곳이 된다.

    신체폭력, 언어폭력,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중상모략, 마녀사냥. 가짓수를 모두 늘어놓자면 한도끝도 없이 늘어날 그것은 모두 최초의 순수한 악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들이다.

    그것이 입맛따라 상황따라 사람따라 조금씩 변화하면서 형태가 잡히고, 곧 불쌍한 희생양의 배를 가르게 될 단검으로 승화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양을 만들어냈는가? 혹은 희생양이 되었던가?

    "이쪽은 바닥이 조금 미끄럽습니다."

    "......"

    주변을 둘러보라. 온통 희생양 천지다. 이를 무시하고, 방관하는 것은 결국 공범이나 다름 없다.

    그렇다면 나또한 타인에게 악의를 들이민 악인인가? 악의로 점칠된 이 장소를 거닐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도 이들과 같은 부류로 전락한 것일까?

    "......"

    아침이랍시고 건네받은 통조림은 꼭꼭 씹어삼켰지만,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곧장 역류할 것처럼 위를 들쑤시고 있다.

    처참하게 배가 갈린 어린 희생양이 보이는가? 축하한다. 너는 악의를 목도했다.

    집요하게 살갗이 벗겨진 희생양이 보이는가? 축하한다. 너는 악의를 이해했다.

    천장에 샹들리에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어느 불쌍한 희생양의 머리 다발이 보이는가?

    축하한다.

    악의가 네게 완전히 각인되었으니.

    너는 이제 영원히 그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수 없으리라.

    "저또한 감히 반신반의 하였습니다만, 이렇게 지켜보니 대모님의 선구안이 틀리지 않았음에 다시 한 번 감탄을 금치 못 하겠습니다."

    "......"

    "대모님께서 준비하신 예단은 저나 형제님처럼 신성한 흑연(黑煙)의 축복을 받지 못한 자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역입니다."

    "......"

    "저는 아직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모님께서는 거의 10년에 다다르고 계십니다. 이미 수행의 경지가 능히 하늘에 다다를 지경입니다. 형제님께서 조금만 더 빨리 저희와 함께 하셨다면 좋았을 것을."

    "......"

    작동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를 사뿐사뿐 걸어올라간 안내자는 그렇게 한참을 떠들어대며 나를 4층으로 안내했다.

    입구에서부터 3층까지, 내가 본 것은 악의의 집합체, 정수라고 부를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어째서 검은 무리들이 그토록 지독한 냄새를 달고 다니는지 이해가 됐다.

    머플러를 한껏 동여메서 최대한 냄새를 가리려 했지만, 피부를 날카로운 면도날로 저미는 듯한 차가운 공기와 악취가 인정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여긴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모양입니다. 시설은 이렇게나 큰데.

    -그냥 태워.

    그럼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겠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멍하니 서있다보면 몸을 굳게 만드는 지독한 냉기도, 코가 아려오는 악취도, 영혼을 더럽히는 악의도 잊을 수 있다.

    그럼 눈앞에서 걷고 있는 이놈부터 기름을 콸콸 부은다음 태워죽여야 하지 않을까? 원한다면 콘크리트 십자가에 드릴로 나사를 박고, 기꺼이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악취로 가득한 피를 빼내줄 수 있다.

    이런 놈들은 몸속에 얼마나 많은 악의를 담고 있지? 5L? 10L? 장담컨대 내가 들이부을 기름보단 적을 것이다.

    "대모님. 명하신대로 후보자를 데려왔습니다."

    어느덧 나는 잡다한 물건이 모두 정리된 넓은 홀의 한복판에 서있었다.

    이곳에는 마음 편히 찾아온 손님이 아이쇼핑을 한껏 즐기다 마침내 자신의 지갑사정과 욕구를 적당히 타협하여 집어드는 상품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상품이 있긴 했다. 일단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다면 그또한 상품이니까.

    그것이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라고 해도.

    "수고하셨어요 사제님. 저도 지금 막 세례성사 준비를 끝낸 참이랍니다."

    "오오...흑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흑수(黑水) 세례라니...새로운 후보자들 중에서는 최초 아닙니까?"

    "맞아요. 안타깝게도 위대하신 분의 뜻에 따라 흑연은 더이상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버렸으니, 이렇게 힘들지만 정수를 모아서라도 세례성사를 진행해야겠죠."

    이 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눈구멍이 뻥 뚫려있는 인간형의 무언가를 기둥에 못 박아두고 피부에 투명한 관을 꼽아둔 거지? 어째서 피처럼 흘러나오는 검은 액체를 유리병에 모으고 있는 거지?

    왜.

    유리병 속의.

    검은 액체를.

    주사기로.

    뽑아 올려서.

    나를.

    바라보는 거지?

    "교주님께서도 늘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고. 젊고, 활기차고, 진취적이며, 진보적 사고방식을 갖춘 차세대 인재가 필요하다고."

    대모라 불린 여성이 주사기를 든 채 양팔로 호를 그리며 말하자, 어느새 홀을 넓게 둘러싼 검은 무리들이 검은 옷자락을 흩날리며, 검은 면사포 속에 감춰진 검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의 밝기를 최소한으로 낮추기 위해 은은하게 빛나는 촛불을 듬성듬성 설치해두고, 그마저도 색이 있는 유리병 따위로 막아서 광원을 최소화한 이 불쾌한 공간에서.

    나는 그저 홀로 서있었다.

    사냥당하기를 기다리는 사냥감처럼.

    "하."

    재미있지 않은가?

    서로를 물과 기름처럼 여기는 나와 아버지조차 이런 시국에는 어쩔 수 없이 지저 도시에서 함께 생활하는데.

    하물며 혹한이 불어닥치고 희망의 빛 한점 찾을 수 없는 가혹한 지상에서 명줄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돕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스스로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장점을 포기할 거라고 감히 누가 예상했겠는가?

    서로를 싫어하는 남녀도 눈폭풍이 휘몰아치는 산장에 고립되면 서로의 체온으로 버티기 위해 들러붙는 법이건만.

    이것들은 아예 인간과 교감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갑작스럽지만 김명호 형제님. 세례를 받을 준비가 됐나요?"

    하기야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니 처음부터 교감이니 소통이나 논하는 의미도 없었겠지.

    왜 안내자가 최준석의 말을 듣지 못 했는지 알 것 같다.

    애초에 그건 듣지 못한 게 아니라 그냥 이해를 못한 것이었다.

    우리가 동물의 울음소리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것처럼.

    '교감과 소통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저들과 같아져야 한다.'

    동화(同化).

    저 역겹고 불쾌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액체를 이 몸에 직접 받아들이고, 저들처럼 빛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며, 언제나 빛을 막아주는 검은 옷과 면사포를 착용한 채, 어둠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나는 저들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으리라.

    "제가 세례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더이상 어둠 속에서 떨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세례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둠 속에서 영영 오지 않을 빛을 갈구하다 죽겠지요."

    나는 어둠에 익숙한 인간인가?

    그렇다. 나는 어둠에 익숙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둠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어린 나를 곧잘 숨겨주었던 벽장의 어둠, 언제나 내 희망의 빛을 가리던 아버지의 그늘, 의무관이 내 팔뚝에 주사를 놓을 때마다 생겨나는 기억 속의 음영.

    그렇다면 나도 사실은 이들과 같은 부류 아닐까?

    "재밌네."

    철컥.

    "미안한데 탄환이 12발 밖에 없어. 그러니까 사이좋게 나눠맞자."

    "무장은 모두 해제한 게 아니었던......!"

    탕! 12.

    "막아! 대모님께서 위험하시다!!"

    타앙! 11.

    "아아아아악! 내 손!"

    바짓단을 들어 단숨에 뽑아든 단검으로 등 뒤에서 덮쳐든 놈의 손목을 잘라냈다. 툭 떨어져나간 손목의 단면에서 검은 연기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그 양이 워낙 미미했기에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봐야 할 정도였다.

    "탕탕! 씨팔 새끼야!!"

    10, 9.

    이미 얼어붙은 바닥의 핏물이나 돌덩어리처럼 단단하게 굳은 뼛조각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나를 제압하기 위해, 대모라는 년을 지키기 위해 너도나도 몸 바쳐 달려드는 놈들의 미간에 상냥한 납탄을 박아주는 것에만 집중했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품 속에서 야광봉을 다발로 꺼내들어 힘껏 주물럭거렸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생성된 연녹색의 밝은 빛이 음침한 장소를 훤히 밝혔다.

    허리를 숙여 몽둥이를 들고 뛰어든 놈의 헛스윙을 흘려넘기고, 놈의 면사포를 강제로 까뒤집은 다음 야광봉을 들이밀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눈을 보호해주는 면사포 없이 온전하게 불빛을 쬐자 놈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비명을 질러댔다. 내게 달려들려던 놈들도 야광봉의 광량을 보더니 주춤거렸다.

    빠직! 탕! 8.

    대검의 손잡이로 놈의 정수리를 내려친 다음 권총으로 확실하게 머리통을 날렸다. 검은 연기가 아니라 피와 뇌수가 튀어올랐다.

    아무래도 이 놈은 그리 오래 묵은 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5년짜리 너. 이 씨발놈아."

    "히익!"

    나를 이곳까지 안내했던 놈을 발견하자마자 총구를 겨눴으나 놈은 다급히 기둥 뒤로 숨었다. 앞장서서 걸을 때는 존나 느릿느릿하더니만.

    하지만 노릴 놈은 여전히 많았다.

    탕! 탕! 탕!

    연달아 세 발을 갈기자 탄피가 그만큼 떨어져나가고, 동시에 저 아래에서 다급한 외침과 소음이 울려퍼졌다.

    "놈이 총을 들고 들어갔다!"

    "잡아!"

    "그분께 해를 끼치게 하면 안 된다!!"

    "처음 봤을 때부터 수상했었어!!"

    바깥의 버스를 지키고 있던 놈들이 이 사이비 새끼들과 붙어먹는 동료들을 긁어모아 올라오고 있는 소리였다.

    남은 탄환 4발.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광신도 10명. 그리고 눈앞에서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자들이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모 하나.

    "그래 씨발 까짓거 특공좀 하지 뭐."

    연막신호탄을 꺼내들어 앞뒤로 하나씩 던졌다.

    마침 3층까지 올라온 놈들 앞에 하나,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놈들 앞에 하나.

    화학반응에 의해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불빛이 터져나오면서 한계까지 압축되어 있던 연막이 삽시간에 주변을 잠식해나갔다.

    탕! 탕! 탕! 탕!

    에스컬레이터 아래에서 기침을 해대며 우왕좌왕 하고 있던 놈들에게 적당히 탄환을 퍼부은 다음, 에스컬레이터의 매끄러운 손잡이에 엉덩이를 싣고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내 손에 쥐여진 것은 군용 대검 두 자루.

    놈들에게 목에 걸리는 것은 참격 목걸이.

    라임 오졌다리 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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