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39화 (39/211)
  • 경쟁(1)

    대한민국 군대는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밀만큼 형편없는 군대다.

    전세계에서 몇 안 되는 징병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정작 징병제로 끌려온 병사들에 대한 대우는 박하다. 그런 군대에 매년마다 국방예산을 조 단위로 퍼붓지만, 특별히 개선되는 점은 없다. 그냥 새로운 장비에 새로운 시설이 본보기용으로 추가되는 것 정도?

    하지만 그런 대한민국 군대라도 잘 하는 게 딱 하나 있다. 전세계 그 어떤 군대를 데려와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압도적인 능력.

    그것은 바로 군내 사건사고 은폐 능력이다.

    "사상자 보고."

    "행방불명이지만 사실상 사망으로 간주하는 인원이 17명입니다. 그리고 부상자는 8명입니다."

    "60명을 올려보냈는데 그중 17명이 죽고 8명이 다쳤다라...사실상 반타작이 났군."

    후욱, 하고 짙은 담배 연기를 내뱉은 이철진 중령은 생각만큼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부관의 절망적인 보고에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며 작은 USB 하나를 손에 쥐고 돌릴 뿐이었다.

    "이게 지상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김한솔 상병의 헤드캠 녹화본이란 말이지.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자네 뿐인가?"

    "그렇습니다."

    "다행이군. 사망처리된 군인들의 유가족들은 전원 북부 지구에 거주하는 서민들이고, 현재 생활이 어렵다, 이것도 맞나?"

    "그렇습니다."

    당연히 그럴수밖에.

    밀수조직들을 상대로는 '날랜 놈들만 뽑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철진이 60명의 인원을 선정한 기준은 그들의 인적사항이었다.

    주로 힘없고 목소리 낮은 불우한 가정의 군인들만 선별했다는 얘기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작전에 VIP와 연관된 군인을 내보내거나, 좀 있는 집안의 자식을 보냈더라면 어땠겠는가? 밀수가 금방 들통난다.

    물론 17명의 사망 사실을 온전하게 감추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군대가 어디 보통 군대인가? 정신병자의 총기난사도 단순한 사고로 바꿀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집단이다. 대한민국 군대는 적당히 변명하고 숨기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잘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거나, 혹은 한국인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부상자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들에겐 적당한 이유를 붙여주면 되니까. 문제는 사망자다.

    1개 대대에서 17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건 명백하게 문제가 있다. 그걸 들키지 않으려면 시나리오를 잘 써야 한다. 총기오발 사고? 엑소스켈레톤 사고? 폭발 사고? 그런 것들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좀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현재 지저 도시의 상황을 고려해서 양념을 좀 치면 꽤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당장이라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그런 시나리오.

    상층부에 보고할 수는 없지만, 사망자의 유가족들에게는 적당히 둘러댈 수 있는 변명거리.

    "그래서 자네가 보기엔 어떤 시나리오가 더 괜찮을 것 같나? 17명으로 구성된 팀이 비밀스러운 지상 작전을 수행하다가 무장한 폭도무리와 조우해서 격전중 전멸? 아니면 복귀 일자가 정확하지 않은 타 지역 파견 임무를 수행중인 것으로 위장?"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전자가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

    "유가족들의 반발이 크지 않겠나?"

    "대대장님께서 선별한 군인들중 사망한 자들의 유가족은 전원 힘없고 목소리 낮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처절함이 남아있습니다. 설령 자신이 굶어죽든 얼어죽든 1인 시위를 펼치며 어떻게든 군의 은폐사실을 파헤치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겁니다. 그러니 차라리 저들의 미련을 사망 통보로 완전히 꺾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시신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게 발버둥칠 가능성이 있잖나."

    "사망자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주면 됩니다."

    이철진이 재떨이에 대고 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톡톡 두들겼다.

    "그렇게하는 것으로 군이 얻는 이익과 예상되는 리스크 감소 효과는?"

    "사망자들 전원을 영웅화하는 것과 동시에 매달마다 그들에게 연금 형태의 입막음 비용을 주면 됩니다. 그러면 유가족들은 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 군이 사망자들을 진심으로 추대하고 있다며 멋대로 착각할 겁니다. 물론 시신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고, 또다른 누군가는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상과 지저 도시의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정도는 그냥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습니다."

    "우리 대신 더러운 일을 해줄 조직들이 있다는 얘기군."

    지저 도시 북부 지구는 고작 11일만에 오로지 이해관계로만 돌아가는 마굴로 변했다.

    서민들은 밀수조직으로부터 물자를 구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미개발구역으로 가서 포인트를 벌고 있으며, 밀수조직은 3일마다 목숨을 걸고 바깥에 나가서 대량의 물자를 조달해온다. 그리고 군 부대는 밀수조직을 몰래 지상에 내보내주는 대신 약간의 뇌물과 우선 구매권을 보장받는다.

    서로가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선을 넘는 일 없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정의를 위해 불법인 밀수를 고발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북부 지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다.

    부관의 말대로 이철진의 해명과 사과, 그리고 조의를 받은 유가족들중 일부는 군에 크게 반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처절하게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출될 것이다. 왜냐하면 밀수는 계속 돼야 하니까.

    이 기괴한 체제는 더이상 개인적인 감정이나 법적근거를 이유로 중지될 수 없다. 모두의 목숨이 걸려있는 마당에 누군가가 초를 치려한다면 당연히 그 자부터 배제되지 않겠는가?

    입 하나 줄고, 현재의 체제에 불만있는 사람도 하나 사라지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럼 첫 번째 시나리오대로 가자고. 반발하는 유가족이 나오면 조직들을 시켜서 적당히 짓밟거나 아예 제거해버리고."

    "이런 시국입니다. 아무리 군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고 해도 무작정 반발하기보단 이해부터 하려들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연금 형태의 보상도 해주는 마당에 유가족들이 그걸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이철진이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하고 선별한 군인들이었으니까.

    "그럼 그 부분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그리고 부대에서 누락된 인원들은 적당히 때를 봐서 사고 처리, 혹은 무단 탈영 처리하는 것도 잊지말고."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경례를 끝마친 부관이 개인실을 빠져나가자 이철진은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 상쾌한 바람이라도 쐴 겸 창문을 열었다.

    "'무명'께서 원하시는 지상 데이터 입니다. 그리고 군 상층부에서 이번 일을 의심할 수도 있으니 그쪽에서 조금 약을 쳐주셨으면 합니다. 민간인들이야 북부 지구가 알아서 잘 통제할 수 있지만, 군과 정부기관은...일개 중령이 감당하기에는 많이 힘듭니다. 제 목을 걸고 이렇게 임무를 완수했으니, 일개 중령이라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창문 앞에 둥둥 떠있는 감시 드론의 작은 수납함에 USB를 넣으며 이철진은 렌즈 너머로 지켜보고 있을 상대에게 부탁했다.

    드론의 상부 장갑에는 'DR' 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   *   *

    "북부 지구 분위기가 좀 경직되어 있네요."

    "이번 작전으로 사람이 꽤 죽거나 다쳤으니까."

    나와 차도식은 한창 병원으로 개조하고 있는 상가 건물 옥상에서 떠들썩한 북부 지구 시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다른 조직들도 어느정도 물자를 확보했으니 3일 정도는 무난하게 버틸 거야. 우리 조직은 의료진과 의약품, 그리고 의료기기까지 확보했으니 앞으로도 문제없을 거고."

    맛깔나게 담배를 피고 있는 차도식은 자기 이름으로 된 병원 간판을 올릴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저 도시의 참담한 현실을 파악한 의료진들이 흔쾌히 차도식파와 협력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린 그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무력을 써서라도 병원에 처박아둘 생각이었다. 똑똑한 양반들이라 그런지 눈치 하난 빨랐다.

    불법체류자인 그들의 존재를 정부가 알면 격벽의 보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엘리베이터와 격벽을 관리하는 군 부대의 위법 행위도 알려지는 꼴인데, 누구 좋으라고 그들을 풀어준단 말인가?

    해서, 그들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당장 먹고 살려면 이 바닥에서 명성이 자자한 차도식파의 도움이 필요했고, 마침 차도식파도 병원을 만들고자 하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졌다.

    뭐 어쩌겠나, 죽기 싫으면 우리랑 같이 일 해야지.

    어쨌든 지저 도시는 환경 특성상 환자가 없을 수가 없다.

    일단 호흡기에 안 좋은 지하 환경이고, 식량 배급이 원활하지 않아 잘 먹고 잘 쉬기만 해도 나을 수 있는 잔병치레를 하는 사람이 꽤 늘었다.

    물과 전력 공급도 만족스럽지 않은데다 생필품도 제한적이라 위생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솔직히 감염성이 강한 질병이 창궐하지 않은 게 기적일 정도다.

    "군에서 연락이 왔어. 대대장 그 양반이 작정을 한 모양이더라고."

    피다만 담배를 휙 집어던진 차도식이 대뜸 입을 열었다. 나는 차도식이 어떤 얘기를 들었을지 이미 짐작한 바였다.

    "민간인들 중에 불순분자가 튀어나오면 뒷말 나오지 않게 적당히 손봐주라고 했나보죠?"

    "크으, 역시 동생은 다르다니까. 그냥 밀수하지말고 돗자리 깔아! 덧붙여서 군을 대신해 불순분자를 처리해주면 소정의 보상도 해주겠대."

    "그런 건 우리처럼 깨끗한 척 해야 하는 조직이 아니라, 우리보다 못나고 더러운 놈들한테나 맡겨야죠."

    "그건 그래. 그래서 우리 애들한텐 불순분자를 발견해도 웬만하면 건드리지 말라고 일러뒀어. 이미지 메이킹은 중요하잖아?"

    "어차피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북부 지구 사람들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있어요. 다들 한푼이라도 더 싸게, 하나라도 더 물자를 사려고 혈안이 되어 있죠. 원래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데 거리낌없는 게 인간이거든요."

    북부 지구는 민간인들과 범죄자, 그리고 군대가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 초법적 집단이다. 거기서 '나는 이런 방식은 용납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순간 자살 버튼을 누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넌 소수잖아! 우린 다수야! 다수결 원칙! 민주주의 몰라?! 다수가 까라면 소수는 그냥 까야하는 거야!

    그런 미명하에 북부 지구의 어둠 속에 생매장 당한 인간들이 제법 될 거다.

    현재 정부가 제대로 된 기능을 못 하고 있는데다, 경찰이라는 치안조직을 부패한 군대가 대신하고 있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다.

    "동부 지구가 각 기업 사옥과 공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죠? 도시가 안정화되고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결국 도시의 파워는 동부 지구가 가져갈 거예요. 그리고 동부 지구를 사실상 지배하는 정부기관과 VIP의 가족들이 머무르고 있는 남부 지구가 그들을 지지하겠죠. 결국 북부 지구는 지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양극화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또 다시 돈 한푼에 울고 웃는 약자로 전락할 거예요."

    "그래서 병원을 만들자고 했구만. 높으신 분들이나 다른 지구의 인간들이 북부 지구를 신경 못 쓰고 있는 틈에 우리들끼리 독자적으로 이 구역부터 개발시키자는 거지?"

    "그렇죠. 우리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완벽한 내수 시장을 만드는 순간, 우리는 더이상 누군가의 지시를 받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흐흐...미쳤어. 디그러쉬에선 직원 교육을 그렇게 하나?"

    "디그러쉬에서 유명한 인간의 자식 교육 방침이 이것과 비슷하긴 해요."

    무언가 원하는 게 있다면 먼저 힘을 길러라. 힘을 길렀다면 다음은 방해가 되는 자를 차례차례 꺾어라. 서열 정리가 끝났다면 약자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해라. 그리하면 독보적인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적어도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 배웠다.

    "어차피 누구도 우리 방식에 뭐라고 못 해요. 목숨걸고 바깥에 나가서 물자를 가져오는 것도 우리, 북부 지구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프라를 준비하는 것도 우리, 나중에는 구질구질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 물주(사장)들도 우리인데요."

    "도중에 들키고 방해받는다면?"

    "그래서 세력이 약한 지금은 철저하게 비밀로 부치고 있는 거잖아요? 이건 도중에 들켜도 방해할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성장하느냐 못 하느냐의 싸움이에요."

    그걸 위해서 나는 지속적으로 남부 지구에 거주하는 VIP의 가족들을 상대로 약을 팔고 있는 거다.

    똑똑하고 현실적인 VIP들은 절대로 포섭되지 않을테니, 비교적 멍청하고 평범한 그들의 가족을 공략하면 된다.

    자기만 잘난줄 알고 유독 기가 세보이는 부녀회장도 결국 상황의 흐름에 따라 내게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 지저 도시는 최후의 대한민국 같은 게 아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이지.

    "동생. 우리같은 놈들은 후대에 어떻게 평가될까?"

    "역사는 언제나 승자가 쓰는 법이니까요. 우리가 패배한다면 천하의 죽일 놈들이라고 평가받겠죠."

    승리한다면 지하 12km 지저 도시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 선구자들로 추앙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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