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34화 (34/211)
  • 나이트 시티(3)

    가까스로 낙오자 없이 격벽에 도달한 우리가 가장 먼저 본 광경은 실로 참흑했다.

    이 엄동설한에 큰 부상을 입어 과다출혈과 급격한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눈과 귀를 막고 헛소리를 떠들어대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어떻게든 구하기 위해 드럼통에 기름과 장작을 들이부어 희망의 불꽃을 피워올리는 사람들.

    "......"

    사실 신호탄이 강북구 수유동 하늘에서 터졌을때부터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신호탄이 도봉구에서 터진 게 아니라 강북구에서 터졌기 때문에 이정도에서 피해가 그쳤다는 점이다.

    만약 도봉구 한복판에서 신호탄이 터졌다면 지상의 모든 위험 요소들이 도봉구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때는 탈출이고 뭐고 없었겠지.

    "동생 왔는가?"

    드럼통 앞에서 불을 쬐고 있던 전직 뱃사람, 아니 해상밀수범 한상도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안 물어봐도 대충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물어봐야겠습니다. 피해가 어느정도입니까?"

    "휘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볼 줄 알았더니 피해 수치를 묻는구만. 역시 동생은 우리같은 놈들이랑은 눈이 달라 눈이."

    "지금은 잡담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려, 나도 중국 떼놈들이랑 붙어먹으면서 온갖 못 볼 꼴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더라고. 피해가 어느정도냐고 물었지? 정찰조 3개가 전멸하고 2개가 겨우 숨만 붙어서 살아돌아왔어. 나머지는 다행히 북한산이랑 가까워서 별 피해없이 복귀했고."

    그렇다는 건 사실상 5개 조직이 귀중한 정찰 자산을 잃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들과 함께 따라나선 군 장병들도.

    "후우......"

    내가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자 상도 아재가 킬킬 대며 웃었다.

    "좆같지? 나도 마찬가지야 동생. 일이 좀 안 풀리면 차라리 그러려니 하는데, 아예 일을 못할 정도로 죄다 박살이 나면 화를 내야할지 주저앉아 울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더라고."

    "그것도 그렇지만 밀수조직들간의 협조성이 이렇게나 부족하다는 사실에 더 참담합니다. 제가 분명 돌아다니면서 신호탄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고 주의까지 줬는데......"

    "동생. 원래 못난 놈들은 잘난 놈들 말을 안 들어. 자기가 못난 걸 인정하는 놈들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모르는 무식한 놈들일수록 반발만 더 심해지는 법이거든."

    "저도 비슷한 부류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엔 목숨이 걸린 일이라서 다들 협조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습니다."

    "안일했다기보단 부주의했던 거지. 애 손이 닿는 장소에 권총을 놔둔 거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

    통렬하고도 묵직한 팩트였기에 나는 침음만 흘렸다.

    차라리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전 조직의 신호탄발사기 지급만큼은 막아야 했을까? 아니면 신호탄발사기의 사용 매뉴얼까지 다 정해둬야 했을까?

    자기 목숨 걸린 일인데 이정도는 다들 협조해주겠지, 하고 말았던 건 상도 아재의 말대로 안일했다기보단 부주의한 행동이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는 말어. 이미 일은 터졌고 뒤진 놈들만 해도 수십 명이야. 저기 팔다리 잘려서 온 놈들 보이지? 저것들도 전문적인 치료를 못 받으면 얼마 못 가. 그거랑은 좀 다르지만 구석에 처박혀서 덜덜 떨고 있는 놈들도 얼마 못 갈 거고."

    "상도 아재도 봤어요?"

    내가 말투를 바꾸자 상도 아재는 나를 힐끗 흘겨보니 피식 웃었다.

    "난 동생이 알려준대로 했어. 아랫 것들이 왜 그래야 하냐고 반발을 좀 하긴 했는데 몇 대 쥐어패니까 말을 듣더라고. 그래서 불끄고 어둠 속에서 길을 더듬으면서 간신히 복귀했지."

    "최소한 제 말을 진지하게 들은 사람이 한 명은 있어서 다행이네요."

    "불빛과 소음에 '그것'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건 두 번째 작전으로 이미 다들 알았을 텐데, 패닉에 빠져서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불을 켜고 돌아다녔던 거지. 그러다 맞딱뜨리면 다짜고짜 총부터 쐈던거고. 그렇게 만든 불빛이랑 소음이 또 '그것'들을 불러모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거야."

    "사람이 패닉에 빠지면 앞뒤 분간도 못 한다는 건 저도 겪어봐서 알지만,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네요."

    도봉구 일대로 퍼진 밀수조직 정찰조 인원만 해도 약 150명에 달한다. 그들과 함께 했던 군 장병들은 10개 분대였으니 60명이고. 수십 명이 죽었다는 건 거짓이 아니었다.

    '어쩌면 더 죽을 수도 있고.'

    뭐에 당했는지 짐작이 가는 부상자들은 아마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정말 운이 좋아 살아남더라도 평생 장애와 후유증을 달고 살겠지. 뭐든 부족한 지저 도시에서 평생 장애와 후유증을 가진다는 건 곧 도태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동생, 이제 나도 질문 하나 해도 될랑가?"

    "안 될 거 없죠."

    "작전은 어쩔 거야? 계속 할 건가? 아니면 오늘은 공 쳤으니 다함께 빈손으로 시마이?"

    "상도 아재는요?"

    "에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우린 따라나온 군인들만 철수시키고 작전 속행할 거라서요."

    내 대답에 크게 놀랐는지 상도 아재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동생 미쳤어? 지금 이 상황에서 작전을 속행한다고? 내가 동생 실력은 인정하는데 그래도 그건 좀 에바참치야."

    "요즘 애들은 에바참치라는 말 안 써요."

    "그럼 뭐, 에바꽁치라고 할까? 어쨌든 동생이 무슨 이유로 객기부리는지 모르겠는데 웬만하면 그만두는 게 좋아. 날이 진짜 안 좋을 때 객기부린 놈들은 꼭 끝이 안 좋았거든. 경험담이니까 새겨들어."

    "객기가 아니라 확신이라면요? 그럼 저한테 판돈 좀 걸어주실 건가요?"

    내가 은근한 말투로 운을 띄우자 그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좋은 계획 있어?"

    "할 거면 콜, 안 할 거면 다이. 선택부터 하셔야죠. 그게 예의잖아요?"

    "아이씨......!"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상도 아재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머리숱도 적은 양반이 두피는 기깔나게 잘 긁는다.

    "동생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진짜 뭐가 있다는 건데...씨발."

    "골라요 골라. 이게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니까요?"

    "사실 허세 부리는 거지? 그냥 우리쪽 인원이 필요해서 땡겨 쓰려는 거잖아. 맞지?"

    "상도 아재 팀이 빠져도 우린 작전 속행할 건데요. 의심되시면 지금 우리팀 불러서 확인해보시든가요."

    그 말에 상도 아재는 정말로 김명호의 똘마니중 한 명을 불러서 교차검증을 했다.

    이미 아파트 단지에서 조직원들과 작전을 속행할 거라고 얘기를 끝내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아니! 근데! 시발! 진짜!"

    "하실 말 있으시면 그냥 말 하세요."

    "진짜? 진짜 이 상황에서 작전을 속행한다고? 그쪽 팀은 뭐 단체로 이상한 약이라도 주워먹었어?"

    "비트코인 아시죠? 철저한 분석과 정보를 바탕으로 뛰어드는 주식판이랑 다르게 그건 그냥 운빨 믿고 들어가는 거예요. 지금 상황이 딱 그런 상황이고."

    "그러니까 지금 우리더러 동생 운빨 믿고 들어가라는 거잖아. 떡상인지 떡락일지도 모르는 그 판에."

    "그렇죠."

    "허 참......"

    상도 아재는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급기야 손톱을 질근질근 깨물기 시작했다. 다큰 어른이 저러면 좀 추해보이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어려운 선택일 테니까.

    장고 끝에 결정을 내린 상도 아재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확실하게 말했다.

    "좋아. 우리도 탑승한다."

    "그럼 격벽 열릴 때 철수하지 말고 인원 다 빼서 마지막까지 우리랑 같이 붙어 있어요. 격벽 다시 닫히면 그때 계획 설명해드릴 테니까요."

    "동생. 이번 작전은 좆된 거 보이지? 빈손으로 돌아가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면 탈없이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좆된 작전이야. 그런데도 굳이 꼴아박고 상황 더 좆되게 만들면 진짜 모가지 날아갈 수도 있어."

    "중국 떼놈들이랑 붙어먹으셨다는 분이 왜 이리 겁이 많으실까?"

    "그거랑은 차원이 다르니까 그렇지!"

    "아무튼 붙기로 했으니 약속은 지키세요. 그럼 저도 약속은 지킬테니까."

    상도 아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2번째로 격벽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 돌아왔다.

    "겨, 격벽이 열린다!"

    "우린 이제 살았어!"

    "시발 다 비켜! 나부터 먼저 들어갈 거야!"

    "다신 안 나온다 씨발!!"

    예상대로 부상자들, 혹은 패닉에 빠져있던 자들이 아직 다 열리지도 않은 격벽 틈새로 좀비처럼 몰려들었다.

    마치 작전 첫날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에 격벽 내부에서 정찰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인상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정찰조가 고작 6시간 만에 부상을 입거나 제정신이 아니게 된 것은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한 이유가 있을 때는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대기조와 운반조는 더더욱 밖에 나가기 싫어진다.

    "야! 씨발 밖에서 무슨 일이......"

    "저리 비켜! 집에 돌아갈 거야!

    "너 이 새끼 미쳤어? 형님이 오늘 작전은 꼭 성공시키라고 했잖아!"

    "그럼 지가 나와서 정찰 하라고 해 씨발! 지는 겪어보지도 않았으면 지랄이야!"

    "거 밀지좀 맙시다!"

    "차례를 지키십쇼! 그리고 너희 분대는 왜 복귀 인원이 그것밖에 안 돼?!"

    "......"

    "말을 해 이 답답한 새끼들아!"

    밀수조직과 군인들이 서로 뒤엉켜서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예상대로 대다수의 조직들은 오늘 작전을 포기하기로 했는지 일찌감치 철수 준비를 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있는 몇몇 조직은 바깥에서 뭐좀 건져가는 게 낫지 않겠냐며 격한 언쟁을 벌였다.

    나가고 싶으면 너희나 나가라, 너희 대체 왜 그러냐, 이번 작전은 글렀다, 이번 작전은 성공시켜야 한다, 도떼기 시장도 아니고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팽팽하게 대립했다.

    급기야 격벽 경계 임무를 지휘하고 있는 대위가 권총을 뽑아 하늘에 대고 몇 방 쐈다.

    탕! 탕!

    갑작스러운 총성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낮췄다.

    "지금 뭣들 하자는 겁니까! 당신들 물자 확보하려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애새끼들 소풍도 아니고 다큰 어른들이 질서 하나 못 지킵니까?!"

    대위의 고함에 모두가 침묵했다.

    그러자 철수를 결심한 조직의 대표들이 몇 명 앞으로 나와 대위에게 현재 상황을 전달한 것이다.

    바깥 상황을 전달받은 대위는 사색이 되어 손을 덜덜 떨었다. 그가 속으로 '씨발좆!'을 외치고 있는 이유는 너무나도 뻔했다.

    최소 수십 명의 군 장병 사망+두 번째 작전에서 알려진 정체불명의 위험 요소가 신호탄 때문에 대거 폭주.

    당연히 격벽을 관리할 뿐인 대위에게 직접적인 잘못은 없지만 원래 군대라는 게 꼭 자신의 잘못이 아니어도 괜히 좆되는 경우가 많다.

    대대장은 대대원들 중 일부를 차출해서 지상에 내보내자는 안건을 낸 놈과 그들을 내보내기 위해 격벽을 열어준 놈, 둘중 누구를 먼저 고기방패로 삼을까?

    일반인들이라면 당연히 그런 안건을 낸 미친 놈을 고기방패로 삼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대한민국 군대는 항상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어메이징한 집단이다.

    -격벽을 지키던 대위가 대대원들과 작당해서 몰래 격벽을 열어주고 지상에서 물자를 가져오게끔 했다.

    대대장과 가까운 사람을 고기방패로 쓰는 것보다, 그냥 격벽이나 지키고 있던 말년 대위 하나 보내버리는 게 훨씬 더 쉽고 깔끔하다.

    그럼 군 전체의 소행이 아니라 간부 하나의 일탈과 월권 행위 때문에 벌어진 사건으로 축소되니까. 그래서 지금 대위가 수전증 환자처럼 손을 덜덜 떨고 있는 거다.

    잘못했다간 밀수 체계가 근간부터 좆될 우려가 있으니 과를 덮기 위해 그만한 공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수십 명의 밀수범과 불쌍한 군 장병들이 사망한 사실을 아슬아슬하게 덮어줄 수 있을만큼 대단하고 귀한 '인적자원' 같은 거.

    공교롭게도 내가 떠내려가는 대위의 구명줄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차도식파는 나와라! 작전 속행한다!"

    "공구리파도 나와! 꾸물대지말고 얼른 움직여 잡것들아!"

    이런 상황에서 나와 상도 아재가 먼저 인원을 꾸려 바깥으로 나서려 하자, 대위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모두들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마당에 우리만 나가겠다고 하니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호, 혹시 바깥에 나가려는 겁니까?"

    "예."

    "그럼 그...낙오된 우리 애들도 좀 찾아봐주실 수......"

    "안타깝지만 그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뭔가 툭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 것은 내 착각일까. 대위가 힘없이 내 앞에 주저앉았다. 무너진 거다.

    하지만 여기서 밀수 체계를 망칠 수는 없으니 그에게 구명줄을 내밀었다.

    "희생된 사람들을 대신해서 바깥의 생존자들을 좀 데려올 생각입니다. 딱 수십 명 정도 되죠."

    "이제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흐흐. 난 이제 좆됐네."

    "그들이 전문 의료인들이라면요?"

    그 말에 대위가 고개를 처들었다.

    "한전 병원에서 생존중이던 수십 명의 의사와 간호사들과 만나고 온 참입니다. 대기조와 운반조를 데리고 가서 대량의 의약품들과 함께 데려올 생각이죠. 그정도라면 아슬아슬하게 이번 사건은 무마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이 사람의 목숨에 대한 가치를 논한다. 물건처럼. 이 얼마나 악하고 그릇된 발상인가?

    하지만 세상이 이 지경이 된 마당에 사람이라고 바뀌지 말란 법이 없다. 오히려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가,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그럼 꼭좀......!"

    "대신 저한테 빚지시는 겁니다."

    "......"

    대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고 좋아서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군 내부 인맥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마침 상황이 따라주기도 했고.

    "그럼 갈 사람은 가고, 빠질 사람은 빠집시다."

    한바탕 소동이 일었던 격벽은 다시 소수의 인원만 내보낸 채 굳게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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