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33화 (33/211)
  • 나이트 시티(2)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왜 혼자서만 오신 겁니까?"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내게 일행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다행히 일행중 사고를 당하거나 낙오된 자들은 없었다.

    "혼자 온 건 병원에서 일이 좀 있어서 그런 거고, 이상학 병장님과 김한솔 상병님은 살아있으니까 염려할 것 없어요. 그보다 밖에서 벌어진 난동말인데......"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말을 이었다.

    "어떤 개미친 또라이 새끼가 버스터콜을 갈겼어요."

    "...예?"

    "내가 그렇게 쏘지말라고 했던 신호탄을 쐈다고요."

    "아."

    그래. 나는 차도식에게 신호탄발사기 지급을 자발적으로 거절한 것도 모자라 다른 조직에도 어지간하면 신호탄은 쏘지말라고 충고했었다.

    조금 과한 오지랖에 심하면 웬 참견이냐고 시비가 붙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나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마다 직접 붙잡고 지상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었다.

    우리중 누군가가 지상에서 신호탄을 쏘는 것은 흰 도화지 위에 뚜껑 열린 페인트 통을 집어던지는 것과 같다고.

    분명 신호탄의 소음 효과와 더불어 하늘을 밝힐 만큼 밝은 빛은 여러 위험 요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다. 문제는 그게 독인지 득인지 구분도 못하고 쏠 경우다.

    모든 조직들이 작전을 끝내고 대대적으로 철수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아직 작전이 한창 진행중이라 인원이 사방팔방으로 넓게 퍼져있는 마당에 냅다 신호탄을 갈겼다.

    미친놈이 쏘아올린 작은 신호탄 하나가 작전을 위해 지상에 기어나온 밀수조직 전원을 위험에 몰아넣은 것이다.

    "여러분도 위험을 감지하고 여기에 숨어들었겠죠. 예상대로 바깥은 위험 요소로 가득해요. 잠잠해지려면 최소한 몇 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문제는 밀수조직들이 너무 넓게 퍼져 있다는 거죠."

    "우리처럼 뭔가 낌새를 느끼고 다들 피하지 않았겠습니까?"

    김명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필 탁 트인 거리에서 이동중이었다면? 작전 인원 모두 몸을 숨길만큼 큰 건물을 확보하지 못 했다면? 혹은 이미 포착당해서 표적이 됐다면? 어느 쪽이든......"

    타다다다다다! 탕! 탕!

    타캉! 타캉! 타캉......!

    "...저렇게 되는 겁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이 꽤 요란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총성은 점차 잦아들었고, 곧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조각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총성이 시원하게 끊어진 게 아니라 무언가에 집어삼켜지다시피 사라졌다. 위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기 전에 역으로 당했다는 의미다.

    "저희가 브리핑 받을 때 이런 내용은 없었지 말입니다!"

    "아니, 우린 그냥 형님들만 잘 따라다니면 된다고 해서 지상 작전 지원한 건데......"

    "하아......"

    "돌겠네."

    군인 4명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는지 저마다 한소리씩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당장 타개할 방법은 없었다. 이미 누가 바다에 대량의 미끼를 풀었고 물고기떼가 그걸 포착했는데 어쩌란 말인가.

    "일단 조금 지켜보다가 움직이죠. 여기에 죽치고 있어봐야 우리도 좋을 거 없어요."

    "철수합니까?"

    "아뇨. 작전은 계속 해야죠. 아파트 단지 물자도 다 확인했죠?"

    "예. 말하신대로 일반인들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비축된 구호물자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대부분 멀쩡하게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럼 6시간 지나기 전에 격벽으로 복귀해서 대기조와 운반조 데려와야겠네요."

    "잠깐! 잠깐만 기다려주십쇼!"

    나와 김명호가 태연하게 작전 내용을 얘기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김지승 병장이 급하게 우리의 대화를 끊었다.

    "우린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는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그냥 지상은 좀 많이 춥고 어둡다는 얘기만 들었지!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작전을 속행하겠다는 겁니까?!"

    "해야죠. 우리가 먹고살 길이 이것 뿐인데. 밀수는 3일에 1회가 원칙이라는 건 김지승 병장님도 아실 텐데요?"

    "알죠! 알긴 아는데...그래도 돌발사태가 벌어지면 그냥 철수하는 게 맞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늦기 전에 격벽으로 돌아가야죠. 철수하고싶은 여러분들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우리만 다시 나오는 거죠."

    "아니, 그게...하! 참!"

    나도 그가 왜 답답해하는지 안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작전을 속행하자니 두렵고,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가자니 병장 짬밥에 내리갈굼 당할 것 같고.

    우리도 함께 철수한다면 철수를 하게 된 이유를 이쪽에 떠넘길 수 있겠지만, 정작 우리는 철수하지 않고 작전을 속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니 애간장이 타는 거다.

    그래서 나는 확실하게 못박아두기로 했다.

    "우리 일은 어디까지나 지상 정찰과 물자 확보입니다. 그쪽은 군 상층부에서 지상 데이터를 원해서 겸사겸사 따라나온 것 아닙니까? 그럼 임무 자체는 이미 성공한 것이니 그대로 복귀해도 문제 없을 텐데요."

    "......"

    "아니면 혹시 지상 데이터를 확보하는 김에 뭐라도 좀 챙겨갈 생각이었나요? 그럼 우리와 함께 하시죠. 좀 위험하긴 하겠지만 그만큼 보수가 짭짤할 걸요."

    "...젠장."

    내 재촉에 버티다못한 김지승 병장은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빠지겠습니다. 지상에서 이러이러한 사태가 벌어졌고, 실제로 인명피해도 있었기 때문에 본대로 복귀하는 겁니다. 우리가 증인이면서 동시에 여러분들도 증인이 되는 겁니다. 그 점만 좀 신경써주십시오."

    "그거야 어렵지 않죠."

    "그리고 이상학 병장과 김한솔 상병은 정말로 무사합니까?"

    "정확히는 이상학 병장이 부상을 입은 상태고 김한솔 상병은 멀쩡해요. 한전병원의 의료진들에게 맡겨두고 왔으니 특별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죽을 일은 없겠죠."

    오히려 대형 병원의 전문의들과 대량의 의약품이 있는 병원에서 죽기도 힘들겠다.

    "좋습니다. 그럼 저흰 격벽 안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본대복귀를 하더라도 최소한 분대원 전원이 함께 복귀해야 체면이 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들 하세요."

    군인들이 작전을 중도 포기하겠다는 건 아파트 단지에서 찾은 대량의 구호물자에 대한 권리도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아무렴 목숨보다 물자가 중요할까.

    "후우, 그럼 슬슬 격벽으로 복귀하죠. 제가 선행할테니 다들 잘 따라와주세요. 섣불리 총을 쏘거나 소리 내지는 마시고."

    어느정도 휴식을 취한 나는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김명호와 똘마니들도 드럼통에 피워두었던 불을 껐다.

    바리게이트를 치워내고 다시 바깥으로 나오자 살갗을 벅벅 긁어대는 듯한 맹추위가 힘겹게 올린 체온을 다시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영하 25도의 환경에서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억지로 움직여서 체온을 올리고 꾸준히 체력을 길러야 한다. 물론 적절한 수분과 칼로리 보충도 잊으면 안 된다.

    가볍게 물과 칼로리 바를 씹어삼킨 나는 일행을 이끌고 북진했다. 다행히 우리가 위치한 방학 3동은 북한산과 굉장히 가까웠다. 시간내에 충분히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사고만 없다면.

    "으아아아아아아아!!"

    대충 건물 몇 채를 사이에 두고 울려퍼지는 처절한 비명 소리.

    굳어있던 다리를 풀면서 신속하게 복귀하려던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듯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전원 소등하고 야투경 해제."

    "전원 소등."

    김명호가 먼저 손전등을 끄자 똘마니들도 알아서 손전등을 껐다.

    하지만 군인들은 아니었다.

    "잠깐, 이런 상황에서 야투경을 왜 해제하라는......!"

    "안전하게 복귀하고 싶으시면 그냥 하세요."

    내가 한 번 더 야투경 해제를 강요하자 군인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야투경을 해제했다. 다들 암순응은 진즉에 됐을테니 거리에 산재한 장애물이나 건물의 외곽 정도는 분간할 수 있을 터.

    "지금부터 불필요한 잡담이나 과도한 반응은 최대한 자제고, 수시로 앞사람과 뒷사람을 확인하면서 대화는 수신호로만 하세요."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기 직전, 나는 야투경을 쓴 채 주변 거리를 살폈다. 비명이 울려퍼진 장소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인간의 육편과 물건이 흘러나온 배낭이 떨어져 있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끽해야 100m 정도?

    광적으로 눈을 깜빡이면서 수시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차하면 눈을 완전히 감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주변에는 이질적인 것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따끔거리는데......'

    고글을 착용하고 있으니 흙먼지나 바람이 안구를 자극할 일은 없다.

    나는 서둘러 야투경을 해제하고 고개를 숙인 채 도로를 건넜다. 오는 길에 내가 힘 좀 써서 방해가 되는 차량 몇대를 옆으로 치워낸 상태였기 때문에 철수하는 것 자체는 문제 없었다.

    하지만 눈의 따끔거림이 멈추지 않아 결국 눈을 질끈 감아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러나오면서 안구를 촉촉하게 적셨다.

    야투경으로 주변을 살필 때 놓친 게 있었나?

    '아니, 제대로 봤던 거야.'

    내 눈썰미가 놓친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주먹을 들어 뒤따라오던 일행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야광봉을 손으로 열심히 만져서 발광시켰다. 초록색의 은은한 불빛이 눈꺼풀 너머로 느껴진다.

    남은 것은 우리가 되돌아 가야할 길을 향해 야광봉을 힘껏 던지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눈을 떴다. 따끔거리는 감각은 이미 많이 사라졌다.

    타닥! 타닥!

    도로 옆에 붉게 칠한 경고 표지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야광봉의 흔적을 따라 열심히 움직였다. 나는 그것의 등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탕! 탕!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표지판의 붉은 페인트가 튀어오르면서 몸을 들썩였다. 곧 그것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축 늘어졌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비정상적인 크기의 머리를 가진, 앙상한 뼈와 흰 피부를 자랑하는 기괴한 놈이었다. 놈의 뻥 뚫린 안구를 제외하면 마치 누군가의 시체에 얼굴을 처박았던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옆으로 치워요."

    "...예."

    내 뒤를 따라오던 김명호가 그제야 그것의 시체를 발견하곤, 똘마니들과 함께 발로 걷어차서 옆으로 치워버렸다.

    더이상 눈이 따끔거리지 않았다.

    "바, 방금 건 대체 뭐였습니까?"

    갑작스러운 총성과 뭔가 이상한 생김새의 시체.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나서 10일만에 처음으로 지상에 나온 군인들은 반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하자니 시간이 촉박하고, 설명을 생략하자니 뒤가 귀찮아질 것 같아서 최대한 간결하게 요약했다.

    "새로운 환경에 새롭게 적응한 놈들이죠."

    나도 저것들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사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니 전에는 사람이었던 것인가 싶다가도, 자세히 살펴보면 또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외계인인지, 돌연변이인지, 아니면 그냥 판타지적 요소로 가득한 괴물인지 감도 안 잡힌다는 얘기다.

    확실한 건 놈들은 빛과 소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인간에게 매우 호전적이며, 유일한 약점은 머리 뿐이라는 것이다.

    매우 강한 빛을 집중시켜서 쐬면 피부가 타오르면서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기름을 부어서 불태우면 결국 죽기야 죽는다지만, 적어도 나는 일반인의 상식 선에서 그런 부류의 '생명체'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이 암흑천지 도심 속에서 또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