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3)
꽈아아아앙!
안 그래도 헐거웠던 문이 폭음과 함께 튕겨나왔다.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와중에도 나는 침착하게 한바퀴 더 옆으로 굴러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솔직히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항상 내 본능은 이성보다 앞서고 있었다. 내 이성이 현실에선 좆도 안 먹히는 그럴싸한 계획만 구상한다면 본능은 그때그때 필요한 임기응변을 만들어줬으니까.
다시 손전등 불빛을 켠 나는 문을 박차고 나온 네발짐승을 똑똑이 시야에 담았다.
헝클어진 단발머리에 귀여운 캐릭터 잠옷을 입고 있고, 새하얀 피부에 아직 젖살이 덜빠진 얼굴. 잘 보면 귀염상이라는 말이 절로나와야 할 그 얼굴에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눈이 없어.'
문자 그대로 눈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벌레나 쥐새끼한테 파먹힌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
양팔과 양다리로 바퀴벌레처럼 기어나온 그것은 뻥 뚫린 눈구멍으로 정확히 광원(손전등)을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가족을 내버려두고 혼자 집을 나오는 것 다음으로 가장 심각한 고민을 했다.
'죽여야 하나? 아니면 살려서 뭔가 알아내야 하나?'
내 선택지에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는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서 '발포! 발포! 오직 발포!'만을 외치고 있는 검지 손가락을 필사적으로 억누를 뿐이었다.
확신이 없다. 저것을 죽여서 얻을 이득과 살려서 얻을 이득중 어떤 것이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인지.
빠드드드득! 까드드드득!
검은 눈구멍처럼 검게 물든 치아를 미친듯이 갈기 시작한 그것은 귀염상이 매력적인 인상을 찡그리며 천천히 물러났다. 근거리에서 비추는 손전등 불빛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눈이 없는데도 불빛을 인식하고, 이상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이 한걸음 물러설 때마다 나는 도리어 한걸음 다가갔다. 그럴수록 이를 바득바득 가는 소리가 더 거세졌다. 저러다 이가 몽땅 뽑혀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될 만큼.
지금 거리에서 변화가 생기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것을 따라간 결과, 나는 복도 끝으로 그것을 몰아붙일 수 있었다. 커다란 창문 하나가 전부인 복도 끝. 다행스럽게도 창문은 굳게 닫혀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그것도 눈치챈듯, 사라지지 않는 불빛에 무한한 악의를 담아 저주하는 것처럼 열성적으로 이를 갈았다.
빠득빠득! 까드드득!
이렇게 빛으로 억누르다보면 결국 약체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총을 사용하지 않아도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생각이 매우 병신같은 착각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이 고작 중학생의 왜소한 체구를 가진 것치곤 엄청난 각력으로 지면을 박차면서 삽시간에 달려들었다. 쩍 벌린 입에서 전광석화처럼 뻗어나온 것은 검은색의 길쭉한 채찍같은 것이었다.
파각!
"큭!"
사흘 전에 싱크홀 앞에서 이미 맛본 적 있는 낯익은 공격.
검은 채찍은 정확히 내 손전등을 두들겨 박살낸다음 타겟을 바꿔 내 목을 노렸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죽겠다 싶어 팔을 들어 막는 것과 동시에 아래로 겨눈 권총을 냅다 쏴갈겼다.
탕! 탕! 탕!
양쪽 허벅지에 두 발, 복부에 한 발. 힘과 기동력을 동시에 뺏기 위한 사격술이었지만 그것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검은 채찍같은 것으로 내 팔을 단단히 붙잡더니, 스스로 줄자를 감는 것처럼 접근해왔다. 몸으로 달려든 게 아니라, 검은 채찍이 몸을 딸려오게 만든 거다.
끈적한 검은 체액을 뚝뚝 흘리면서 내 팔에 들러붙은 그것은 아무렇게나 갈려나간 이빨로 팔을 씹으려 했다. 겨울용 패딩이 제법 두꺼운데다 겉은 매끄러운 바람막이 섬유로 덮여 있어서 이빨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이야아아아아아!!"
나는 팔에 그것을 단채로 단숨에 밀어붙였다. 그것을 복도 코너에 들이박고 다시 한 번 권총으로 복부를 쏴갈겼다.
바로 미간을 쏴서 끝장낼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정보를 얻고 싶었다.
복부에 틀어박힌 9mm 권총탄은 중요 장기 손상으로 인한 쇼크, 과다출혈로 인한 움직임 둔화, 신경 손상으로 인한 신체 마비 등 여러 피해를 낳을 수 있다.
나는 복부에 몇 발이나 탄이 박히면서도 내 팔을 씹기 위해 악관절을 열심히 움직이는 그것을 노려보았다.
약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사지 멀쩡하게 움직이며 내가 만든 코너링 구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바닥에 흘린 검은 체액만 해도 벌써 한 양동이는 될 텐데 움직임이 둔해질 기미도 없었다.
그제야 나는 그것의 미간에 총구를 겨눈 뒤, 딱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미간이 꿰뚫린 그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힘없이 축 늘어졌다. 뻥 뚫린 눈구멍에선 붉은 피눈물 대신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후욱...후욱...후욱!"
극도로 긴장한 탓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머리에 피가 올라 좀처럼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닫혀있던 복도 끝 창문을 열어젖힌 나는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면서 빠르게 열을 식혔다. 그리고 냉정하게 내가 지금 얼마나 큰 똥을 싸질렀는지 자각했다.
'이 고요하고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장소에서, 위험 요소가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무턱대고 총을 쏴갈겼다.'
위험했으니까 자기방어를 위해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총을 쏠 상황을 만들면 안 됐던 거다.
그 증거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요하고 정적이었던 이 건물이 점차 진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매우 작은 진동이었지만, 그것이 하나둘 겹쳐 크고 소란스러운 진동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게 뭔지 안다. 이 상황에서 그걸 모른다면 병신만도 못한 놈이지.
"씨발......"
나는 그것에게서 흘러나온 검은 체액이 차가운 바깥 공기와 닿자마자 검은 연기로 기화하는 것을 보고, 미련없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창밖으로 몸을 던질때, 한발 늦게 창문을 깨고 나온 무수한 검은 채찍들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헤집었다. 그것은 채찍처럼 보였지만 가시처럼 끝이 날카로웠다.
"크흡!"
그나마 2층 높이라 낙법으로 어찌어찌 부상없이 착지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본래는 일행들과 합류부터 하는 게 맞겠지만, 이건 내가 싸지른 똥이다.
고작 정보 하나 더 캐보겠다고 불필요하게 몇 번이나 더 총질을 해댄 내 책임이다.
우리 눈엔 더이상 구름이라는 이름의 대류 현상도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지 모르겠다.
새벽 공기인지 밤 공기인지 구분도 안 되는 얼음장같은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내 폐를 식혀주었다.
나는 선발 마라토너라도 된양 배낭을 짊어진 몸으로 죽어라 달렸다. 이 고요한 학교, 아니. 도심에서 가장 먼저 총성을 터뜨린 건 나다.
우리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작업하는 사람들도, 혹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는 지상의 어둠 속에 숨어있는 것들에게도, 최초의 총성은 모두에게 유의미한 자극이 되었을 거다.
'다들 대피한 게 아니었어!'
구태여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배후에 따라붙은 것들의 수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지저 도시라는 안전지대에 숨어든 사람들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는 장소까지 피난한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가 잘 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준비된 사람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언제나 그렇듯이.
쨍그랑!
본관 1층 창문을 깨고 들어간 나는 이곳이 보건실이란 걸 깨닫고 곧장 침대를 들어 창문을 막았다. 추가로 보건교사가 쓰는 개인용 책상이나 캐비닛도 죄다 끌어와서 임시 바리게이트를 쳤다.
가로로 좁지만 세로로 넓은 특이한 구조의 보건실에는 침대가 3개나 있었고, 창문은 당연히 좁았다. 침대를 차례대로 하나씩 들어 겹겹이 쌓자 그것들도 쉽게 바리게이트를 뚫진 못 했다.
검은 촉수로 꿰뚫기 위해 푹푹 박아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꺼운 매트리스와 철제 구조물 3개를 한꺼번에 뚫을 만큼 강력하진 않았다.
"후우...후우...이쯤되면 일행들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지."
총성이 울려퍼졌고,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본관에서 무언가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가 평범한 생존자 신세라면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 접근하겠지만, 생존을 위해 물자를 찾아나선 밀수범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대가리에 똥만 찬 멍청한 새끼도 지금쯤 열심히 짱구를 굴리고 있을 터.
나는 한동안 바리게이트 뒤편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바깥의 추세를 살폈다. 몇몇 놈들이 스스스스 하고 움직이더니 양옆으로 빠졌다. 다른 출입구를 찾을 생각인 듯 했다.
거기서 나는 놈들에게도 합리적인 생각을 할 줄 아는 '지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의도치않게 얻은 귀중한 정보였다.
'하지만 놈들은 대체 어떻게 날 찾는 거지? 손전등은 이미 박살나서 더이상 광원이 없는데?'
예비 손전등이 있긴 하지만 당장 쓸 생각은 없었다. 이미 암순응이 됐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어찌어찌 사물 분간이 가능했으니까.
그런데도 놈들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집요하게 달려들고 있다. 실제로 일부는 다른 길을 찾아서 우회했고.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대충 상황을 파악한 나는 빠르게 보건실 내부를 훑었다. 그리고 약품 보관용 캐비닛을 열어서 쓸만한 약품들을 챙겼다.
학교 보건실은 병원이나 약국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의약품은 없었지만 기본적인 소독제나 연고, 거즈나 붕대 같은 것들은 충분히 챙길 가치가 있었다.
"...혹시 모르지."
나는 때마침 찾아낸 대용량 소독제 뚜껑을 따서 검은 피가 잔뜩 묻은 옷에 거침없이 뿌렸다. 대부분은 바깥 공기와 닿으면서 거의 기화했지만, 섬유속에 스며든 것들은 흉한 얼룩으로 남아있었다.
알싸한 알콜향이 코끝을 찔렀지만 꾹꾹 참으면서 아직 헐거운 배낭을 마저 채웠다. 식량보다 이런 단순한 의료용품이 더 비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마지막으로 권총은 더이상 의미없겠다 싶어 배낭에 메어둔 소총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기세 좋게 보건실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순간, 바깥에서 먼저 누군가가 보건실 문을 열었다.
"꺄아아악!"
"으악 씨발!"
"뭐, 뭐야!!"
내가 다짜고짜 들이민 총구에 문앞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뭡니까?"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보건실 앞에 선 세 명의 남녀에게 물었다.
그들은 척봐도 이 학교 관계자들인 것 같았는데, 가장 선두에 서서 끝을 부러뜨린 대걸레 자루를 들이밀고 있는 건 수위 복장의 남자였다.
"그, 그쪽이야말로 뭡니까? 여긴 학교예요!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은 들어오지 못 하는 거 모릅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건 저보다 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허세부리듯 윽박지르는 수위의 말을 맞받아치자 양옆의 남녀가 인상을 찡그리는 게 보였다. 불빛 한점 없었지만 나는 그들도 뭔가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왜냐하면 불빛이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