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6화 (16/211)
  • 어둠 속에서(1)

    흑야 사태가 벌어진 당일, 정부가 지저 도시로 피난하면서 북한산국립공원을 방위하고 있던 군대를 어떻게 빠르게 철수시켰는지 궁금했었다.

    그 비결은 다름아닌 초거대 엘리베이터에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부품 하나하나마다 담긴 발전된 공업기술의 정수와 원자력 발전소에서 끌어오는 막대한 양의 전기 에너지, 엄청난 중량을 싣고도 12km나 되는 상하수직 통로를 오르내리는 이 엘리베이터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내가 사용했던 북한산 정상의 VIP용 엘리베이터가 탑승자들의 편안함을 추구했다면, 이 군용 엘리베이터는 오로지 극단적인 효율만을 추구했다.

    많은 것을 싣고 빠르게 오르내리는 것. 그 목적 하나만을 반영구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위해 얼마나 많은 공돌이들이 갈려나갔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인류가 유인 달탐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뒤에 세계 각지에선 우주까지 뻗어나가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느니마니 같은 루머가 돌았다. 나는 이 지하 엘리베이터가 궤도 엘리베이터의 시초격이라고 생각했다.

    '자이드롭만큼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면서 확 치고 오르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속도를 느낄만큼 빠르게 올라가는군.'

    각자 배정받은 지정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안전벨트로 자신들의 몸을 확실히 고정했다.

    엄청난 규모의 엘리베이터인 만큼 공학자들이 안전을 1순위로 삼아 설계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각 좌석의 시트 아래에 탑재된 긴급 에어백 시스템이나 안전벨트가 그 증거였다.

    '12km 아래로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 에어백이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펜대만 굴리는 공학자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흉악한 작품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설치해두는 것으로 일말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적어도 자신들은 도덕과 윤리를 준수했다고 필사적으로 항변하듯.

    아무튼 엘리베이터는 서로 어색하기만한 수백 명의 밀수범들을 태운 채 지상으로 향했다. 선택받은 자들이 지상에서 지하로 숨어든지 고작 3일째 되는 날에 벌어진 대담한 범죄 행위였다.

    나는 옆에서 잔뜩 긴장해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는 형태를 바라보았다. 성씨가 '변'이라서 동료들 사이에선 종종 변형이나 변태라고 놀림당하는 사람이었다.

    일단은 사업 파트너 관계인 차도식의 말에 의하면 살짝 어리숙한 놈이긴 하나, 그래도 조직내에서 밥값은 하는 놈이라 데리고 있다는 모양이다. 당연하지만 그는 운반조였다.

    정찰조, 그중에서도 선발 정찰조를 맡은 건 나를 비롯한 차도식의 믿음직한 직속 부하들이었다.

    선발 정찰조는 조직이 밀수해온 물품들 중에 반드시 1개를 1회에 한하여 우선적으로 입찰, 공짜로 가져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더불어 조직원들중 가장 앞에 서는 입장인 만큼 개인이 운반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직접 제몫을 챙길 수 있는 권한도 있었다.

    하기야 그정도 권한도 없다면 누가 멸망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를 지상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역할을 맡고 싶겠는가.

    이윽고 우리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쿵! 하고 거친 소음을 자아내더니, 외부 지상 입구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초병들의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초병들은 거대한 격벽으로 굳게 닫힌 넓은 공터에 임시 초소를 세워두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밀수범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부랴부랴 격벽을 열어주었다.

    핵 방공호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격벽이 드드드드드! 하고 열린 순간, 두 번 다시 지상의 공기를 들이마실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밀수범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젠장! 공기가 너무 차가워!"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까지 얼어붙는 느낌이야. 지금 기온이 몇 도야?"

    "영하 15도. 시기로 치면 이제 늦가을에 불과한데 벌써 한겨울이나 다름없는 기온이야. 지금이 이른 새벽이라는 걸 감안해도 더럽게 추운 거라고."

    "갑작스럽게 이런 한파가 닥쳤다면 아무리 서울이라도 사람이 살아남긴 힘들었겠는데?"

    "주변을 둘러봐. 도시에 불빛이라곤 한점도 보이지 않아......!"

    "불빛만 없겠냐. 소음도 없어. 여긴 북한산국립공원인데 짐승들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고."

    "여전히 빌어먹게도 어둡군. 정말로 태양이 사라진 건가?"

    이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영하 기온을 자랑하는 칼바람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고요한 도시를 거닐어야 할 정찰조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반면 언제까지고 이렇게 추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지 않았던 초병들이 머뭇거리는 정찰조들을 닦달했다.

    "거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겁니까? 나갔다 올 거면 얼른 나갔다 오쇼! 안 그래도 새벽 근무라 피곤해 죽겠구만!"

    "격벽을 닫고 여는데도 상당한 동력을 소모합니다. 정해진 시간대로 지금 열었다 닫은 다음, 6시간 뒤에 다시 열고 닫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6시간 뒤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렇게 할겁니다. 이미 얘기 끝난 사항이니 알아서 잘 지켜주십시오. 우리도 높으신 분들한테 걸려서 좆되고 싶진 않으니까."

    노련한 군인들, 특히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짬중사나 짬중위가 얼타는 병사들을 대신해서 성토하자 밀수범들도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처음 격벽이 열리는 이유는 정찰조들을 우선적으로 내보내기 위한 것이고, 2번째로 격벽이 열리는 이유는 정찰조의 보고를 전해들은 운반조와 대기조를 내보내는 것이다.

    이러면 자동적으로 3번째 격벽이 열릴 때는 밖으로 나가서 물자를 조달해온 모든 인원들을 한꺼번에 들여보낼 때다.

    각 밀수조직들의 정찰조는 자신들이 미리 루트를 짜둔대로 북한산의 여러 방위로 흩어져 내려간다음, 가장 가까운 지역부터 탐색하고 털기 시작할 것이다.

    그 전까지 운반조와 대기조는 격벽 내부에 남아 상대적으로 편한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정찰조가 대량의 물자를 발견한다면 그들도 움직이게 될 것이고, 발견하지 못한다면 빈손으로 돌아갈테니 얻는 게 없을 것이다.

    즉 일하는 자는 더 많이 얻을 것이고, 일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완벽한 체제였다.

    '밀수에 체제고 나발이고 있을까 싶다만.'

    아무튼 서로 합의본 상황이니 구태여 잡소리를 하는 인간들은 없었다.

    위험 부담에 대해선 이미 질리도록 들은 양반들이니까 엑소스켈레톤과 방한용품, 그리고 개인 무기나 장비를 챙겨온 것 아니겠나.

    나 역시 그런 이들중 한 명이었다.

    "저 먼저 갑니다."

    나는 칼바람으로부터 효과적으로 안면을 보호해줄 고글과 두터운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 위에 바람막이용 후드를 고정시켜서 쉽게 체온을 잃지 않도록 했다.

    이미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지라 나만의 개인 엑소스켈레톤까지 준비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다양한 지형에서 구보 활동이 편한 군화와 장갑, 그리고 효율과 편의를 모두 챙긴 고급 방한 용품을 몸에 둘렀다.

    등 뒤에는 내가 처음 챙겨왔던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진짜배기 군용 배낭을 짊어졌고, 최소한의 생명 유지를 위해 소량의 식량과 생수, 그리고 탄약이 들어있었다.

    허리춤에는 즉시 뽑아들 수 있는 권총과 군용 단검이 홀스터에 보관되어 있었고, 군대에서 질릴 만큼 가지고 다녔던 K2C1 라이플이 내 손에 쥐여진 상태다.

    이정도면 한낱 밀수범치곤 나쁘지 않다. 다시 수색대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 살짝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곧 내 뒤를 따라 각 조직에서 차출된 정찰조들이 떼지어 격벽을 빠져나왔다.

    모든 정찰조가 나간 것을 확인한 군인들은 지체없이 격벽을 닫아버렸고, 우린 내부와 완전히 단절된 외부에 남겨졌다.

    "날도 추운데 꾸물대지말고 얼른 움직입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도중에 자신을 차도식의 오른팔이라고 주장한 남자 김명호가 일행을 재촉했다.

    나와 그를 포함한 차도식팀(가칭) 정찰조 인원은 총 다섯 명이다. 즉 고작 1개 분대도 안 되는 인원이 최소 6시간 내에 북한산을 내려가서 물자를 찾고, 제시간에 맞춰서 산을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본래 소수정예로 운용하는 게 맞는 정찰조라 적절한 인원 구성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이들이 혹한기의 산악구보에 적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다행히 북한산 전체에 도로가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는 정도지만, 그래도 일반인에겐 꽤 빡세지.'

    나는 말없이 앞서나가면서 정찰조 구성원들의 개인 능력을 검토해보았다. 우선 나와 함께 선발 정찰조로 임명된 김명호는 큰 걱정이 없었다.

    어디 헬스라도 다녔는지 제법 튼실한 체격을 갖춘데다, 차도식 밑에서 험한 일을 많이 한 탓에 정신력도 강해보였다.

    일반 정찰조인 나머지 세 명은 차도식이 그나마 고른다고 고른 놈들이었지만,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 했다. 사실 그들도 평상시였다면 이정도 일정은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주변 환경이 엉망이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데다 더럽게 춥고, 거기에 어떤 변수가 더 튀어나올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

    거기에 우리는 움직임이 다소 불편한 방한 용품을 두른 채 하산 중이다. 익숙치 않은 이들에겐 고작 하산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체력 소모로 이어질 터.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지.'

    난 그저 차도식을 이용해 내가 원하는 기회를 잡았을 뿐이고, 최소한의 의리만 지킨다면 굳이 저들에게 헌신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제한시간이 빠듯하다. 6시간 내에 복귀해서 운반조와 대기조를 이끌고 대량의 물자를 취하든가, 아니면 12시간 내에 복귀해서 빈손으로 돌아가든가.

    다만 최악의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아예 일행 모두를 이끌고 매우 공격적인 외부 작전을 벌여서 물자를 확보하고, 외부에서 자력으로 24시간을 버텨서 다음 격벽이 열릴 때 돌아가는 거다.

    '이론상 가장 효율적인 작전이지만 대부분 반대하겠지.'

    누구도 이 지옥같은 환경에서 24시간을 버티고 싶지 않을 거다. 설령 그게 가장 효율이 좋다고 해도.

    하지만 언젠가는 다들 알게 되겠지. 자꾸 안전만 따지다가는 고작 12시간만으로 지저 도시에 공급할 물자를 충분히 확보하기 힘들다는 걸.

    "정지."

    잘 훈련받은 수색대원이라면 기본적으로 구두 신호가 아니라 손을 치켜드는 수신호로 정보를 전달하겠지만, 여긴 군대가 아니었다.

    추위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헥헥대던 일행이 지금쯤 내게 무슨 일이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겠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일행의 자세를 낮추게 했다.

    산에서 거의 다 내려온 우리는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의 초입을 마주하고 있었다. 눈이 조금 좋은 사람이라면 큰 건물과 넓은 운동장을 자랑하는 통합방학중학교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신방학중학교와 기존의 방학중학교가 상호합의하에 뭉치면서 새롭게 탄생한 통합방학중학교. 이름 참 이상한 학교같지만, 세간에선 차세대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변혁적인 교육기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자식 교육에 극성인 서울의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꽤 좋은 평가를 받는 곳인 만큼, 리모델링하거나 추가 증설한 건물들이 '최신예' 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내가 일행에게 정지 신호를 내린 건 고작 학교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엄청난 실력의 저격수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병신들처럼 편의점이나 뒤지지말고 학교로 갑시다."

    소규모 편의점을 털 바에야 저렇게 거대한 학교로 가는 게 백 번 낫다. 무엇보다 저긴 중학교임에도 기숙사를 운용하는 도봉구 최대 규모의 중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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