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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5화 (15/211)
  • 세컨드 라이프(5)

    -작전을 시작하는 시간은 새벽 4시다. 군용 엘리베이터는 굉장히 크고 속도도 빨라서 지상까지 편도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우리같은 밀수자들은 초병 교대에 맞춰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로 얘기가 되어 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차도식이 보낸 문자를 천천히 훑었다. 지금같은 시국에는 굉장히 민감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작전 개요라고 해봐야 별 것 없다. 대기조와 정찰조, 그리고 운반조가 함께 지상으로 올라간다음 정찰조가 주변 지역을 탐색한다. 안전한 루트와 물자 탐색이 정찰조의 주 목적이지. 대기조는 운반조와 함께 대기하는 경계팀이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상대적으로 무장이 취약한 운반조를 보호하는 거지. 운반조는 문자 그대로 물자와 인력을 운반한다. 산업용 엑소스켈레톤과 보급 상자를 짊어지고 다니는 놈들이라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움직일 일이 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해라.

    -동생은 자금을 융통해준 것도 있고, 무기와 장비를 거래할 때도 큰 도움을 줬다고 하니 특별히 선발 정찰조에 넣어주지. 선발 정찰조는 자신이 발견한 물자 중에서 우선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우선 소유권은 작전 1회마다 1회 지급, 적립도 되는 건 물론이고 아무리 비싸고 귀한 물건이라도 우선 소유권을 주장하면 반드시 가질 수 있다고 보증해주지. 물론 그것도 선발 정찰조 내에서 순서가 갈리겠지만.

    -중요한 건 비밀 유지야. 이미 우리처럼 작전을 준비하는 놈들이 많아. 군에서는 상층부에 뇌물로 갖다바칠 물건이 필요하고, 우린 생계 유지를 위해서 물건이 필요한 상황이지. 그런데 이게 높으신 분들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어? 분명 민간인들이 난리칠테니 당연히 엘리베이터 경계 강화 및 밀수 금지를 때리겠지. 그러니까 높으신 분들이 이 일을 암묵적으로 계속 허용해주게끔 외부에 들키면 안 된다는 거야. 그 점에선 똑똑한 동생이니까 이해할 거라고 믿어.

    -새벽 4시에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타고, 외부에서 12시간 동안 탐색 및 운반 작업을 한다. 그리고 저녁 교대 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거지. 가장 조용한 시간에 나가서, 가장 시끌시끌한 시간에 들어오는 거야. 서로 조심만 하면 절대 들킬 일 없으니 안심하라고.

    그 내용을 끝으로 차도식의 문자 세례는 끊어졌다.

    바깥에서 물장사라도 했는지 사업 파트너 상대로 입 터는 솜씨 하난 그럴싸 했다. 이런 사람들이 좀 더 똑똑하고 막 나가면 억대 규모의 사기꾼으로 거듭나는 거다.

    '밀수도 따지고보면 억대 규모 사기꾼이긴 하지.'

    바깥에서 구해온 천 원짜리 과자를 지하에선 만 포인트에 팔 수도 있다. 밀수라는 건 원래 물건을 떼오는 놈들이 엿장사처럼 가격을 조정하는 법이니까.

    나는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생각을 정리했다.

    지저 도시에서 HR 직급의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이나 정부가 내려주는 하청(노역)노릇을 해야 포인트를 벌 수 있는 특이한 구조를 자랑한다. 쉽게 말하면 반강제 노예다.

    가장 밑바닥으로 책정된 인간들인 만큼, 그들의 노동력이 쓸데없이 소모되는 일 없게끔 자신들이 꽉 잡고 있겠다는 거다.

    때문에 HR 직급은 정부나 기업의 입김이 들어간 일터에 취직할 수도 없고 개인 장사나 노역만 해야 하니, 결국 계좌의 포인트가 다 떨어지면 싫어도 노역을 해야 한다. 장사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니까.

    물론 노역이 완전히 강제되는 건 아닌 만큼, 어떻게든 먹고 살 거리를 만들면 그만이다. 가령 지금 우리가 준비하는 밀수처럼.

    '군이 협력해주는 이상 서로 주둥이 간수만 잘하면 밀수가 들킬 일은 없겠지. 설령 정부나 기업들이 밀수를 눈치챘다고 해도 민간인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면 묵인해줄 가능성이 높아.'

    정부는 지저 도시에 만성적으로 부족한 물자를 원할 테고, 기업들은 외부 환경 데이터나 자재, 원료 같은 걸 원할 것이다. 작전의 성공 여부에 따라 죄다 한통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다.

    '진짜 문제는 작전을 하는 우리들이야.'

    대한민국 20대 이상 남성 중에 현역 비율이 굉장히 높은 탓에 무기를 다루거나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자체는 큰 문제 없다. 당장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전차 몰 줄 아시는 분!' 하고 외치면 여기저기서 손 든다는 말이 나돌 정도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외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나마 바깥이 춥다는 얘기를 들어서 미리 방한 용품을 준비하긴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대비에 불과하다.

    '남극처럼 장시간 활동하기 어려울 만큼 더럽게 춥다면? 지상에 남겨진 인간들이 매우 호전적인 폭도무리로 변했다면?'

    그 외에도 걱정할 거리가 한 두개가 아니다.

    물론 걱정만 한다고 해결책이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다.

    똑똑.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 내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온 건 여동생이었다.

    "오빠, 우리 가족이 필요한 물품 다 적었어. 그런데 이건 왜 갑자기 적으라는 거야?"

    "나 내일부터 북부 지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든. 오늘 일 끝나고 북부 지구에 가보니까 여기랑은 완전히 딴판이더라고. 벌써 내수시장이 형성됐더라고."

    "거기서 우리 가족이 필요한 걸 사오겠다고?"

    "당장 사람이 부족해서 아르바이트 비용이 짭짤해. 나처럼 젊은 놈들은 대부분 군대로 빠졌잖아? 그래서 HR 직급으로 노역이나 하는 것보단 북부 지구에서 알바 뛰고 필요한 물건 떼오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그럼 그냥 우리 가족 생활비로 사오면 되잖아. 엄마한테 말하면 줄텐데?"

    "아니. 난 외부인이라 아무리 포인트를 많이 들고 가도 거기서 살 수 있는 품목과 가짓수가 한정적이야. 똑똑하게 판매 제한을 걸어뒀더라고. 그리고 남부 거주민인 내가 포인트 두둑하게 들고 가서 물건 잔뜩 사겠다고 말해봐라, 거기서 쫓겨나고 출입금지 당하겠지."

    내 설명에 여동생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건네준 종이를 살펴보자 역시나 생필품이 리스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면도기, 생리대, 세안제, 비누, 세제, 쌀, 생수, 간식거리, 커피or차, 손전등, 배터리, 기타 잡화나 식료품. 딱 이 도시에 필요한 것들 뿐이네.'

    이 리스트에 적힌 것들을 원하는 건 비단 우리 가족만이 아닐 것이다. VIP들이 거주하는 남부 지구에서도 만성적으로 부족한 필수 생필품과 사치품들이다.

    아마 북부 지구의 시장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녀도 이것들을 전부 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공급은 제한적이고 수요는 폭발적인 것들 투성이니까.

    "그래. 이정도면 거기서 일하다가 몇개 떼올 수 있을 것 같다. 상황 봐서 리스트에 적힌대로 구해다줄게."

    "그럼 다행이긴 한데, 엄마는 오빠가 위험한 일 하려는 것 아니냐고 걱정이셔. 오빠가 좀...단순무식한 경향이 있잖아?"

    "그님대?"

    그래서 님 대학 어디갔냐는 뜻이다.

    아니나다를까, 수능만 치면 인서울 확정이었던 여동생이 눈에 띄게 발끈했다.

    "나 아직 수능도 안 쳤다고!"

    "네다음 지구 멸망으로 까방권 얻으신 분~."

    "아 지랄! 수능만 쳤으면 내가 너보다 더 좋은 대학 갈 수 있었거든?!"

    "하지만 못 갔죠? 사실상 고졸이죠? 어 나는 인서울이야~."

    "박한성 존나 짜증나!!"

    저 밑에서 어머니가 '오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하고 소리치는 게 들리자 우리는 다시 임시 휴전에 돌입했다.

    "야, 내가 엄마 눈치 보여서 리스트에 따로 적지는 않았는데...그 혹시 BB크림이나 립밤 같은 것도 구할 수 있어?"

    "...말이 짧다?"

    "오라버니. 실례가 안 된다면 소녀가 최소한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겠사옵니까?"

    "허나 불허한다."

    "아 왜!!"

    "구라지 이 년아. 그것도 알아봐줄테니까 썩 네 방으로 꺼져. 나 새벽 일찍 나가봐야해서 지금 자야돼."

    "소녀는 이만 물러가보겠사옵니다."

    "오냐."

    여동생을 방으로 돌려보낸 나는 타이머를 맞춰두고 방 안의 조명을 은은한 1단계로 맞췄다. 난 어릴 때부터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자는 걸 좋아한다.

    방 안을 새카만 어둠으로 물들이고 자는 건 술취해서 정신 없을 때나 저지르는 바보같은 경우 뿐이었다.

    *  *  *

    "일찍 나왔네 동생.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사회 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다 이새끼들아."

    새벽 3시 30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눈을 비비고 연신 하품을 해대는 일행과 합류했다. 차도식은 첫 작전인 만큼 잔뜩 기대되는지 부하들을 더욱 타박했다.

    이게 다 사회생활의 병폐이자 악습이라 나는 상황을 이용해 차도식의 말을 끊었다.

    "그런데 사장님도 같이 가십니까?"

    "어, 아니. 난 안가. 정확히는 못 가지. 여기 남아서 고객들 상대해야 하거든. 이미 우리한테 물건 받겠답시고 줄 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야. 이번 작전만 성공하면 우린 돈방석에 앉는 거라고! 기대되지 않아 동생?"

    "당연히 기대되죠. 당첨이 확실한 로또 긁기나 다름 없잖습니까."

    "역시 동생이 뭘좀 안다니까. 그에 비해 내 비전을 몰라주는 머저리같은 놈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전기 절약을 위해 새벽의 지저 도시는 길거리를 비추는 가로등과 일부 건물들의 불빛을 제외하면 굉장히 어두웠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움직여도 눈에 띌 일은 없었다.

    우리는 차도식의 시시콜콜한 혼잣말을 적당히 흘려들으면서 군 부대가 통제중인 북부 지구 엘리베이터 입구로 향했다. 차도식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인간들이 몰려들었다.

    "어이, 차 사장. 사람 구하느라 애좀 먹었다면서 얼추 틀은 맞췄네?"

    "도 사장 안목도 한물 갔구만. 내가 머릿수 채우는 게 어려웠겠어? 인재 구하는 게 힘들었던 것 뿐이지. 이런 인재 말이야."

    오는 길에 마주친 또 하나의 작전팀 대장인 '도 사장'의 비아냥에 차도식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내가 인재가 맞긴 하지.

    "허이구~ 우리 차 사장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인재 운운 하실까? 밑에 데리고 있는 애들 다 고만고만한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거야 어제까지고. 도 사장도 모르는 인재가 오늘부터 우리 팀에 합류했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믿기 힘들면 애써 믿을 필요없어~."

    "오오~ 자신 있나봐?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우리 팀은 특전사 출신도 뽑았는데. 거긴 애들이 풀죽도 못 먹었는지 좀 비리비리해 보이네."

    도 사장이 특전사 출신을 뽑았다는 말에 차도식의 기세가 살짝 꺾인 느낌이 들었다. 아직 이 양반에게서 뽕도 못 뽑아냈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지.

    "요즘 특전사는 놀이터 아닙니까?"

    내가 한 발 나서자 저쪽에서도 눈썹이 꿈틀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확실히 특전사 출신 특전병답게 두터운 방한용구 너머로도 보이는 다부진 근육과 체격이 인상적이다. 헬스장에서 펌핑한 근육이 아니라 실전용 근육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꿇릴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러는 그쪽은 어디 출신이길래? 뭐 해외 파병이라도 다녀왔나보지?"

    "중장갑수색대."

    "!"

    그가 못 믿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중장갑수색대 대원으로 참여했던 작전을 하나 말했다. 특수작전사령부와 비밀작전사령부 소속 군인들만 알고 있는 그 작전. 민간인이 되고나면 절대로 입밖에 꺼내지 않는 금기중의 금기였다.

    "...대단하신 분이셨네."

    멋쩍게 웃은 그가 대뜸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기에 그냥 받아주었다. 좋은 분위기에 초를 치더라도 찬물까지 끼얹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도 사장이나 차도식이나 서로 당황한 듯 했지만, 곧 서로 자존심이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걸 알고 깔끔하게 끝냈다.

    우리처럼 각지에서 모인 작전팀(밀수집단)은 곧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부대 뒷문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군용 엘리베이터는 이미 가동 준비를 끝마친 듯,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엘리베이터 내부 자리를 배정하고 있었다.

    차도식은 그제야 자기 할 일이 끝났다며 나를 포함한 팀원들의 어깨를 한 번씩 두들겨주면서 '최대한 비싼거 가져와!' 라고 연신 떠들어댔다.

    차례를 기다리던 우리도 곧 거대 엘리베이터의 고정 좌석에 착석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왔던 우리가, 다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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