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9화 (9/211)

지저 도시(5)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둠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이는 불이 없었던 생태계 최약체 원시인들이 지닌 생존본능에서 기반한 두려움이라고들 한다. 불이 없으면 따뜻할 수도,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심지어 침입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으니까.

초기 신앙에서 압도적으로 밝고 따스한 햇빛을 내리쬐는 태양이 생명의 근원이자 신적인 존재처럼 떠받들려진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런 인간에게 불이란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여겨져왔고, 이는 DNA에 철저하게 각인되었다. 때문에 인간은 불이 없으면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고, 불이 있어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친화(火)적 동물이 된 것이다.

"전등은...가족들이 껐을리가 없지."

내가 일부러 은은한 등으로 맞추고 잠들었는데 우리 가족이 그걸 굳이 건들 이유가 없다. 아버지는 애초에 내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게다가 바깥에서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소음은 이 상황이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증했다.

-탕! 타아앙!

일반인에겐 한없이 낯설지만 군인들은 질리도록 들었던 총성. 그것도 일반 소총이 아니라 중장갑보병이 사용하는 대구경 라이플의 총성이다. 단발로 끊어서 쏘는 묵직한 총성만으로도 구분할 수 있었다.

아직 암순응이 덜 된 탓에 문을 찾는 건 어려웠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방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엉금엉금 기듯 빠르게 움직여 현관으로 향했다. 다행히 현관에는 내가 내려둔 배낭이 그대로 있었다. 내 물건이라 가족들이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곧바로 예비 손전등을 꺼내자 환한 빛이 어둠을 떨쳐냈다. 강렬한 빛에 눈이 따끔거렸지만 그보다도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가서 똑똑, 하고 노크해보니 곧 어머니가 고급스러운 촛대에 불을 붙인 채 나오셨다.

"너도 일어났니?"

"신축 건물인데 손전등이 아니라 촛대가 있었나 보네요."

급하게 찾아서 불을 붙이셨는지 촛농이 얼마 생기지도 않았다. 아마 이상한 낌새를 느끼자마자 곧장 안방의 촛대부터 찾으신 듯 했다.

"아버지는요?"

"네 아버지는 몇 시간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회사에 출근하셨단다. 그보다 하나는......"

"자기 방에 있겠죠. 걔가 왈가닥이긴 해도 이 시국에 무턱대고 밖에 나가서 놀 애는 아니잖아요."

"누가 왈가닥이라고?"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여동생이 등뒤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등을 비추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말투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다행히 지저 도시에서도 내부 통신망을 깔아둬서 와이파이는 터지길래 같이 입주한 친구랑 떠들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정전이 일어나더라."

역시 정전이었다.

"정전 일어나기 전에 이상한 낌새는 없었어?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거나, 경고 사이렌이 울렸다거나."

"그런 거 없었어. 그냥 갑자기 정전 일어나고 총성이 들리더라고. 오빠는 군대 나왔잖아. 뭐 아는 거 없어?"

"지금은 군 소속이 아니잖아.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 일단 내가 알아볼테니까 어머니랑 너는 거실에 모여 있어. 괜히 어디 가지말고."

벗어둔 외투를 도로 입으려던 내 팔을 갑자기 어머니가 붙잡으셨다.

"밖이 위험한 것 같은데 아들도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될까?"

"걱정마세요. 저도 겁없이 아파트 밖에 나가려는 건 아니니까요. 정전이 일어났다는 건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데, 최소한 배전반이나 전선에 문제가 없는지 정도는 살펴봐야죠."

"그래...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최대한 조심하고, 빨리 돌아오렴. 알았지?"

"그럴게요."

아버지와 달리 나는 가족과의 약속은 절대로 어기지 않으니까.

두 사람을 안으로 보낸 나는 이미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복도로 나왔다.

말이 좋아 아파트지, 이 건물은 온갖 편의시설은 다 때려박은 복합상가에 '주거지'만 덤 형태로 끼워넣은 초고급 빌딩에 가까웠다.

그렇게나 대단한 건물에 사는 VIP나 그 가족들은 얼마나 큰 대우를 받고 있겠는가? 군인들이 사설 경비원처럼 건물 내외부에서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이요, 다른 일반 피난민들과는 달리 이곳은 배급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원하는 물건-존재한다면-을 받을 수 있고, 또 가능한 모든 특혜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 건물에 대규모 정전이 일어난다?

'배전반이나 전선 문제일리가 없지.'

설령 산업단지의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겨서 도시의 전력 공급이 끝장났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비상발전기가 있으니까.

"대체 뭐하자는 거야! 책임자 어딨어?!"

"진정해주십시오. 현재 저희도 사태 파악중입니다."

'아 책임자 부르라고! 책임자!"

"우리가 이런 대접 받으려고 비싼 돈 내서 입주권을 산 것 같아?!"

"왜 통화를 막은 건데? 집사람이랑 연락이 안 되잖아!!"

아무래도 시민들사이에서 혼란이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저 도시 통신시설 측에서 일시적으로 통신 연결을 막은 모양이다.

"신도시 경비업체 세이프원의 팀장 이철곤입니다! 여러분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아파트 내에서 중앙 광장이라 불리는 상가의 중심지에서 한 중년 사내가 분수대 위에 올라섰다.

드디어 뭔가 설명해줄만한 인간이 나섰다는 사실에 진상으로 흑화하려던 상류층 인간들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현재 대규모 정전 사태에 대해 저희 경비업체 직원들이 정비공과 함께 내부 점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대규모 정전 사태에 대해 원인이 규명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전력을 복구할 것이라고 지금 약속드리겠습니다!"

"좋아요! 정전은 그렇다 칩시다! 그럼 대체 바깥에서 들려오는 총성은 뭡니까?! 또 시설 입구는 왜 봉쇄한 겁니까!!"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현재 외부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난 탓에 군이 진압중입니다. 사후처리가 모두 끝나면 봉쇄 절차는 자연스럽게 해제될 것이고, 여러분들이 겪은 불편에 대해 다시 한 번 공식적으로 사과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조치가 여러분들의 소중한 재산과 가족의 안위를 지키기 위함임을 부디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팀장이라고 했던가. 경비업체 직원이라 단순무식하게 힘만 쓰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말을 조리있게 잘 했다.

원래 자신들이 상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물질적 보상따위 바라지 않는다. 물질적 보상만 받고 땡하면 자신들또한 서민과 다를 바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류층 인간들은 권위있는 자들의 공식적이고 정석적인 사과를 원한다. 몇푼 안되는 물질적인 보상보다 당장 자신들의 위신과 자존감을 챙겨줄 정신적 보상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상류층 인간들만큼 속여먹기 쉬운 인간들도 없다.

서민들이 항상 무언가에 필사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간절히 원하는 부분을 쿡쿡 찌르면 쉽게 약점을 드러내지만, 반대로 상류층 인간들은 '사소한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저들은 경비업체 직원이 최대한 성의껏 사과하고 상황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자, 바깥의 혼란과 대규모 정전 사태를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고 멋대로 수긍해버렸다.

자신들이 낸 비싼 돈을 받고 일하는 아랫것들이 어련히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을 품는 거다.

당연히 나는 그들과 같은 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비상구로 향했다. 주민들을 통제중인 경비업체 직원들은 멍청하게도 중심 상가의 계단과 엘리베이터 사용만 막아둔 상태였다.

상류층 인간들중 누구도 좁고 오르내리기 힘든 비상구를 사용할 거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건 99% 짜리 정답이었다.

별도의 배터리 덕분에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EXIT] 등의 초록불빛에 반사된 비상계단은 어쩐지 음산한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다.

현재 내가 위치한 곳은 30층짜리 복합아파트의 실질적 중심지에 해당하는 10층. 그리고 이런 아파트의 비상발전기가 존재하는 기계실, 혹은 동력관리실은 지하 2~3층 정도에 존재한다.

입김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외투를 입고 나오지 않았으면 쌀쌀했을 법한 기온이 느껴졌다.

대규모 정전때문에 내부 온도 관리 시스템이 꺼지고, 특히 난방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비상계단의 기온이 가장 먼저 떨어진 까닭이다.

바깥의 경비업체 직원들에게 들킬까봐 우다다다다다, 하는 소리를 내지않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철제 계단이라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렸다.

계단을 내려가는 게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발끝에 신경을 집중하고 조심스럽게 10층 이상의 계단을 내려가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1층에 도달한 나는 1층 현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싶어 1층의 비상구를 조금 열었다.

여전히 정전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는 지 어두컴컴한 1층 현관에는 주민들보다 현장 인력들이 더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그게...건물 내부에선 원인을 파악할 수가 없답니다. 분명 외부에 연결된 전선이나 송전탑도 문제가 없고 내부에서 갑작스러운 누전이나 단선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기계실! 기계실에 비상발전기 있잖아! 그거 확인하러 간 놈들은?!"

"시설관리인이랑 저희 직원 두 명이 같이 확인하러 갔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굼벵이 새끼들은 내려보낸지가 언젠데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있어! 지금 위에서 주민들이 아주 성화......!"

나는 총기를 든채 셔터가 내려간 현관 앞에 서있는 다수의 경비업체 직원들의 말을 딱 거기까지만 듣고 도로 문을 닫았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원인모를 소요 사태보다 내부 정전 사태를 더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저들 역시 들은 게 없는 모양이었다.

'내부 관리인력에게도 바깥 상황에 대한 정보가 통제되고 있다라......"

주민들에게 정보가 통제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VIP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결국 민간인은 민간인이니까. 정부와 군 입장에서 보면 상류층 인간들이나 서민들이나 크게 다를 것 없다.

하지만 그들을 지키고 중요 시설을 관리해야 하는 경비업체 직원들에게도 정보가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조금 놀랐다.

보통은 이런 상황일수록 서로 물샐 틈 없는 정보교류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게 정석 아닌가? 실제로 경비업체 직원들도 일단은 총기와 방탄복으로 무장했으니까 일반 보병에 준하는 도움을 줄 순 있다.

그런데도 굳이 정보를 통제하고 시설내에 가뒀다는 것은, 정부와 군 외에 알려지면 안 되는 사실이 바깥에 존재한다는 걸 의미했다.

'우선 정전 사태부터 파악하고 보자.'

이미 기계실에 경비업체 직원 둘과 시설관리인이 파견됐다고 하니, 그들이 나누는 대화만 엿들어도 사태를 파악하는 게 어렵진 않을 거다.

거기서 얻은 정보를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알려주면 내가 할 일은 끝난다.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변변찮은 무장도, 특별한 일을 행사할 권리(자격)도 없는 HR 등급 인간이니까.

절그럭.

"......?"

기계실이라고 쓰여있는 지하 1층의 비상구를 열고 나오자마자 발 아래에 무언가 밟혔다.

슬쩍 시선만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것은 투명한 유리조각과 깨진 전구 부품 따위가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런 잔해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내 손에 쥐여진 물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누가 시키기도 전에 재빨리 손전등 불빛으로 주변을 훑어 내부 구조만 눈대중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뇌리에 새겨진 지하 1층의 구조를 계속 떠올리며 손전등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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