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7화 (7/211)
  • 지저 도시(3)

    "때깔 죽이는 거 보소."

    광이 번쩍번쩍 난다고 표현해야 할까?

    모든 건물이 신축인 지저 도시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우선 태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공동의 천장을 올려다 보면 온통 검은색이다. 바깥의 하늘과 차이점이 있다면 드문드문 도시의 불빛에 반사된 거친 흙벽이 보인다는 현실적인 부분 정도?

    어쨌거나 이 신도시는 도저히 지하 12km 대공동에서 벽돌 하나부터 시작했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퀄리티를 자랑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왔던 일행들은 서로 가야 할 길이 달랐기에 지저 도시 중앙 광장에서 헤어졌다. 중앙 광장은 우리가 타고 내려온 중앙 엘리베이터와 바로 이어져 있었다.

    "친절하게 도시 안내 표지판도 만들어뒀네."

    일단 지저 도시에 성공적으로 입주했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은 나는 안내 표지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약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지저 도시는 현재 크게 4개의 단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선 지저 도시 동부는 현대 공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산업 단지였다.

    이름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는 거물급 대기업의 사옥과 연구소,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주거지가 대부분이었다. 이 지저 도시에서 똑똑한 척척박사들을 긁어 모아서 동부 단지에 처박은 것이다.

    '공학 기술 발전의 높은 효율은 쉴틈없는 공밀레가 원천이라는 말이 있었지.'

    평생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이것저것 개발하고, 서로 브레인스토밍을 위해 참새처럼 떠들어대는 인간들을 한 곳에 몰아넣은 다음 밤이고 낮이고 굴려대면 그게 곧 효율의 극치다.

    순진한 똑똑이들이 원하는대로 최고의 환경을 조성해주는 대신, 그들의 뇌를 마른 걸레보다 더 심하게 쥐어짜내겠다는 심산이다.

    보통 대학생이 되고, 교수의 눈에 들기 시작해서 은근슬쩍 대학원 권유까지 받아보면 눈치없는 놈이라도 대충 안다. 자신은 평생 골수까지 남에게 쪽쪽 빨릴 상인지 아닌지. 저기에 배치되는 인간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릴 상이었던 거다.

    서쪽은 지저 세계에서 자급자족을 위한 식량 생산과 가축 사육이 주를 이루는 식량 생산 단지였다. 좋게 말하면 이 지저 도시에 없어선 안 될 곳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식량 창고다.

    다만 지저 도시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는지 완전히 개발이 끝난 농지와 목축지, 그리고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인공 조명 영역이 기존에 구상해둔 토지의 3분의 1정도에 그쳤다는 부가 설명이 뒤따랐다.

    내 예상대로 지저 도시는 아직 대규모 입주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됐던 거다.

    북부 단지는 일반인 거주구 및 대규모 상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동부가 완벽한 보안과 고급 인프라가 뒷받침 해준다면, 북부는 딱 사람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인프라가 준비된 상태였다.

    집에서 나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편의시설과 유흥시설 존재하는 정도. 서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아마 저곳의 주 고객들은 지난 10년간 이 지저 도시를 열심히 만들고 있던 현장 인부들과 관리직 인원들이었겠지.

    그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식당,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한 상점은 필수적이었을 테니까. 어느 시대든 개척지에 가장 먼저 형성되는 인프라는 항상 현장 노동자들을 위한 인프라가 우선이다.

    미개한 과거에는 창녀촌과 술집을 겸하는 여관이 그랬고, 현대 사회에는 앞서 말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을 따라온다. 그들이 곧 돈이니까.

    마지막으로 남부는 이 지저 도시의 실질적인 지배자, 특별한 이들을 위한 특별 거주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지저 도시의 중심부에 주요 정부 기관과 군 부대가 존재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소위 돈 많고 빽도 있는 인간들, 힘 있는 자에게 아부 떠는 걸 숨 쉬는 것보다 잘하는 기회주의자들. 세간에선 그들을 가리켜 기득권층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난 북부 단지로 가야 할까, 남부 단지로 가야 할까?

    내 마음의 고향은 이미 친숙한 싼티와 다정다감한 이웃들간의 고성방가가 기대되는 북부에 있었지만, 내 몸은 신분상 남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 우리 아버지가 남부에 살 수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어째서 동부가 아니라 남부냐고? 동부는 똑똑이들 묶어두고 일 시키는 곳이지, 똑똑이들의 목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니니까.

    마침 중앙 광장을 순회하는 셔틀 버스중 하나를 골라타자 말끔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남부로 향했다.

    버스 내부는 더럽게 상쾌하고 청결했다. 그리고 숙련된 버스 기사가 아닌, 자동 운전 AI가 핸들의 방향을 조정했다.

    아무래도 지저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부와 대기업들은 이곳을 처음부터 별천지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서울보다 더 세련되고, 서울보다 더 살기 좋고, 서울보다 더 신기한 것이 넘치는 촌놈 유발 지역으로.

    아마 5년 정도 시간이 더 있었다면 정말로 그런 도시로 세간에 공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의 우린 여전히 인류가 2035년에 화성에 이주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싸우고 있었겠지.

    나는 탑승객이 하나도 없는 셔틀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신축, 신축, 신축. 평화, 평화, 평화.

    바깥의 낡고 혼란스러운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 말끔한 풍경에 넋이 나가버렸다.

    과연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빈부격차와 계급차가 뻔해보이는 엉성한 신도시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급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사람들끼리 제대로 부대끼며 살 수 있을까?

    이 신도시에 정확히 몇 명이나 입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깥에 놔두고 온 사람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 만 명이다.

    혹자는 말하겠지.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도 그 말에는 적극 동의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치광이 종교쟁이를 발로 걷어찰 일도, 산발로 터널에서 뛰쳐나온 여자에게 손전등 하나만 쥐여주고 여기까지 홀로 올 일은 없었을 테니까.

    내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인간의 양심이나 도덕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보다, 당장 눈앞의 엉성한 신도시가 우리의 수명을 얼마나 더 늘려줄 수 있느냐였다.

    -내리실 곳은 남부 특별 거주구역 1동 1번 정류장입니다.

    HR-05가 새겨진 명찰을 교통카드 대신 갖다대자 계산이 되었다. 신분증과 체크카드를 겸한다더니 꽤 다양한 기능이 있는 모양이다.

    "신분증 뒷면에 기재된 주소는...여기가 맞는데."

    남부 특별 거주구역 1동 다운스카이 A단지 1001호.

    내 앞에는 척 봐도 높아보이는 건물이 떡하니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혓바닥이 긴 놈들은 이걸 복합주거단지라 부르고, 나같은 놈은 그냥 존나 큰 아파트라고 부른다. 아니면 초고도비만 아파트라던가.

    서울에서 유명한 모 타워펠리스만큼 높지는 않았지만 대신 더 뚱뚱한 체격을 자랑했다. 아마 내부에 상가를 비롯한 온갖 편의시설을 다 때려박았기 때문이겠지. 유통 차량이 드나드는 통로와 주차장 규모만 봐도 답이 나온다.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것은 내 또래나 다름없는 현역 군인들이었다. 하기야 높으시고 귀하신 분들이 사는 곳이니 당연히 군인들의 보살핌을 받으셔야겠지.

    입구에서 신분증 제시와 지문 인증 절차, 그리고 홍채 등록 절차까지 끝마친 나는 어렵사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 들어섰다.

    외벽이 뻥 뚫린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까지 올라왔지만, 막상 벨을 누르는 게 망설여졌다.

    그런 나를 기다리는 게 싫증났던 것일까,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안쪽에서 철컥 하고 자동적으로 문의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내가 건물 앞에 당도한 걸 지켜보고 있었을 아버지가 원격으로 현관문의 잠금을 해제한 것이리라.

    '새집증후군으로 뒤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나 SSS급 새집이오 하고 현관에서부터 티를 팍팍 내는 집에 들어서자 곧 어머니가 마중을 나오셨다.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걸으실 때 항상 양손을 앞에 두고 걸으신다. 아버지에게 바깥 시선도 신경쓰라는 경고 아닌 경고에 절도있는 예의범절을 무리하게 익히신 것이다.

    이런 꼴을 보기 싫어서 집을 나왔던 거다.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구나. 걱정 많이 했단다."

    "...엄마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이전까지는 조금도 무겁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군용 배낭을 신발장 옆에 대충 내려두고 패딩부터 벗었다.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옷을 받아주려 했지만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할게요."

    결벽증이라도 있는 건지, 항상 청결에 신경쓰는 아버지는 외출하고나면 꼭 더러워진 옷을 별도의 빨래 바구니에 담아둘 것을 강조했다. 말이 좋아 강조지 사실상 명령이었다.

    결국 죽어도 기어들어오기 싫었던 집구석에 다시 기어들어왔다.

    어머니처럼 반강제적인 예의범절이 몸에 뱄지만 나처럼 타고난 반골의 상을 지니고 있는 여동생, 그리고 겉보기엔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지만 속은 뱀이나 다름없는 아버지가 거실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오빠도 왔네. 전화 안 받아서 걱정했어."

    점잖게 걱정은 무슨. 나 자취할 때 제발 데려가 달라고 떼쓰던 것이.

    "어서 오거라. 다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넌 시국이 시국인데 대체 뭘 했길래 연락도 안 받았던 거냐? 다른 건 몰라도 가족 연락은 무시하지 말라고 누누히 말했건만."

    "늦지않게 왔으면 됐죠. 솔직히 저나 아버지나 누구도 반나절만에 세상이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 못 했잖아요."

    "착각하지마라. 적어도 난 가장으로서 항상 준비는 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이 제때 지저 도시에 입주할 수 있었을 것 같으냐? 지금쯤 바깥 세상에서 벌벌 떨고 있었겠지."

    마치 나 아니었으면 너희들 어쩔 뻔 했냐? 하고 대놓고 묻는 듯한 말투였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럼요. 아버지 선구안은 항상 대단하셨죠. 3시간 가까이 연락없던 아들의 지저 도시 입주권을 파기하지 않은 게 어디에요?"

    "...자리에 앉기나 해라. 서있으면 정신사납다."

    나도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어질 귀찮은 설교나 앞으로의 거창한 가족 계획 같은 걸 몇 시간이고 강제 경청해야겠지만,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걸 보는 것보단 낫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아버지는 전혀 다른 얘기로 내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넌 지저 도시에 입주하면서 아마 HR 코드를 부여받았을 거다. 원래는 나와 같은 DR 직급 코드를 부여하고 직장에서 직접 사회생활을 가르칠 예정이었지만, 네 정신머리가 쉽게 바뀌질 않는다는 걸 오늘 아침에 알았다. 그래서 도시에 입주하자마자 네 코드를 바꿔달라고 직접 건의했다. HR 코드는 앞으로 이 도시의 부흥을 위해, 그리고 유지를 위해 여러 노동에 차출될 일반 노동자 코드다. 넌 앞으로 일절 특혜를 받는 일 없이 주어진 직급에 따라 일하며 가장 힘들고 먼 길로 사회 생활을 배우게 될 거다. 언제까지 어리광부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말라는 뜻에서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니 불만은 받지 않겠다."

    "......"

    참 재주도 좋은 양반이라니까.

    사람 빡치게 하는 재주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