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6화 (6/211)
  • 지저 도시(2)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비교적 젊은 남자의 말에 회의용 테이블 앞에 앉아있던 고위 관료들이 벌떡 일어섰다.

    유사시에 대통령을 모시게 될 지하 방공호와 완전히 똑같은, 하지만 더 세련되고 보안이 철저한 이 지저 도시의 지하 방공호에 대통령 김창호가 입실했다.

    그는 무려 어젯밤 11시 경에 누구보다 먼저 이 지저 도시에 피난한 상태였으나, 지저 도시 입주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입주하기 전까지 제2 청와대에서 머물고 있었다.

    본래 기존 계획대로였다면 대한민국 역시 타 국가와 다르지 않게 지하 12km에 존재하는 대공동에 자리잡아 도시를 건설하고, 준비가 되는대로 이주민과 투자 기업들을 들여보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지질학회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지하 12km에 위치한 대공동은 태초의 지구처럼 모든 지면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특이하게도 마그마 대신 지하수가 흐르고, 지상에서 12km나 아래에 위치해있음에도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지만.

    어쨌든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었다. 각 나라들이 지하로 파고들어 자신들만의 지저 도시를 건설하고, 영역을 넓혀나가면 그것이 곧 새로운 지저 세계의 국가 영토가 된다.

    당연히 지상의 청와대와 국회를 똑같이 본떠서 지저 도시에 옮겨놔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무엇보다 지하 12km이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이 매력적은 공간은 사실상 무궁무진 영토 확장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저 세계에는 고대 문명이 존재했다!

    고대 생명체의 흔적은 일절 발견되지 않았지만, 명백하게 문명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다수 남아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개발 및 연구욕을 불러 일으켰다.

    고대 문명이 있었다는 건, 인류가 이곳에 새로운 문명을 번영시켜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대통령이 고위 관료와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논의할 것은 그런 복잡한 주제가 아니었다. 아마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겐 좀 더 머리아프고 좆같은 문제가 따로 있었다.

    "설명해보십시오."

    상석에 앉은 김창호는 거두절미하고 환경부 장관을 지목했다.

    환경부 장관은 기상청 소속 기후 전문가들을 대동한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기상청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에게 병신 취급을 받지만 그래도 명문대 출신의 전문가들을 꽉꽉 채워둔 기관이다.

    허나 전문가라고 해서 모든 이상사태나 현상을 파악할 수는 없는 법. 이미 기상청의 상급기관장인 그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만 봐도 어떤 대화가 오갔을지는 뻔했다.

    "현재로서는 무엇 하나 확답을 드릴 수 없다고밖에......"

    "확답? 확답 말입니까?!"

    쾅!

    평소에는 친서민과 친기업 사이에서 느슨한 줄다리기를 잘 하며 좋은 이미지를 쌓아온 김창호 대통령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확답이 없다면 가설이든 추측이든 뭐라도 내보세요! 그러라고 환경부 장관 자리에 앉힌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많은 전문가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저 바깥의 상황에 대해 무엇 하나 말할 수 없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일단 몇 가지 가설을 낸 것은 있습니다만......"

    "그럼 어서 말해보세요. 이 비상시국에 가설이 진실인지 아닌지가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가설이란 가설이기 때문에 들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류가 실제로 블랙홀을 관측하기 전까지만 해도 블랙홀의 존재는 이론과 가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것이었으니까. 가설로 시작해서 증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면 뭐라도 건져봐야 한다.

    "첫 번째 가설은 당연히 예상하셨겠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구는 급격한 기후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점점 늘어만 가는 쓰레기와 탄소 배출량 때문에 멀쩡하던 지구가 병들기 시작했다고 곧잘 학계에서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저희 환경부 소속 기상청 전문가들은 심각한 환경 오염에 따른 급격한 기후 변화를 가설로 세웠지만 솔직히 말해서 현실성이 없는 가설이라고 내부적으로 얘기가 끝났습니다."

    "이유는요?"

    "고작 반나절도 안 되서 지구 전역의 하늘이 시커멓게 변할 이유가 고작 환경 오염 때문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고작 반나절만에 이렇게 급격한 변화를 보일 만큼 지구라는 생태계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다음 가설은 뭡니까?"

    "다음 가설은 인류가 예측하지 못한 자연의 대재앙입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초대형 화산이나 마그마 저장고가 폭발해서 그 영향으로 지구 전역을 뒤덮을 만큼 화산재 구름이 형성된 겁니다. 그거라면 햇빛까지도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이론상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내부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듣고 있습니다."

    "크흠! 그러니까...만약 정말로 화산재가 터졌다면 화산재가 눈처럼 쏟아져내려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구 어딘가에서 대규모 핵실험이나 핵전쟁이 발발해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 또한 같은 이유로 말이 안 됩니다. 무엇보다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핵이 터졌다면 이미 어느 나라든 간에 먼저 정보를 입수했을 겁니다. 혹은 그런 사고가 일어나기도 전에 강대국들이 눈치챘겠죠. 따라서 두 번째 가설도...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김창호는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으면서 열심히 설명하는 환경부 장관을 지그시 바라보며, 앞에 준비된 생수를 한모금 들이켰다.

    "혹시 다른 가설이 더 있습니까? 뭐라도 좋습니다. 바깥의 저 미쳐돌아가는 이상 현상을 설명해줄 만한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상관없어요."

    "...있습니다."

    김창호가 턱짓으로 계속 해보라는 제스쳐를 취하자 환경부 장관은 참다못해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왜 그렇게 긴장했는지 이해가 되는 말이 튀어나왔다.

    "외계인의 침공설까지도 염두해두고 있습니다."

    "...이 판국에 뭘 더 따지겠습니까. 계속 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우선 생소하시겠지만 에너지학에서 꿈의 기술로 불리는 기술이 하나 있습니다. 다이슨 스피어(Dyson Sphere)라는 가상의 기술인데, 행성이나 항성 하나를 통째로 거대한 구체의 구조물로 뒤덮어 필요한 자원이나 에너지를 뽑아먹는 겁니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지구의 인류보다 더 대단한 문명의 외계 세력이 고작 반나절만에 지구를 대기권과 함께 통째로 가둬버렸다면 가능합니다. 햇빛 한점 들지 않는 칠흑같은 하늘, 급속도로 떨어지는 기온 말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해하시겠지만 이건 정말...터무니없이 허무맹랑한 가설입니다. 너무 진지하게 들으시면 안 됩니다, 각하."

    "그럼 그건 넘어갑시다. 이미 유인 달 탐사도 끝마치고 달에 거주구역 개발까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미국이란 나라가 그런 이상사태를 감지하지 못 했을리가 없으니. 좀 더 현실적인 가설은 없습니까?"

    외계인 침공 같은 헛소리 말고 좀 더 그럴싸한 것 없느냐고 타박하는 듯한 대통령의 어조에 잠자코 있던 한 전문가가 나섰다.

    "실례지만 각하, 아직 내부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은 가설이 하나 더 있지만 여기서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내 권한으로 허가합니다. 말해보세요."

    기상청 소속 기후전문가는 PR-2 코드가 부착된 명찰을 달고 있었다. 지저 도시에서 '박사' 학위를 가진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PR(professional) 코드를 부여받았다.

    "대기 성분에 전혀 다른 무언가가 섞여있습니다. 검출되지는 않았지만 관측은 됐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주면 좋겠습니다."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과의 교신이 끊어졌기 때문에 저 물질이 구름인지 화산재인지는 판명할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태양 빛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차단한다는 암흑물질이라는 점입니다.

    "잠깐, 지구의 하늘을 뒤덮은 게 '물질' 이라는 건 확실합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대답인 것 같은데...당연히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저것은 우리가 알고있는 일반적인 우주의 암흑물질이 아닙니다. 그건 관측도 불가능하니 그저 '검은 것이 지구를 뒤덮었다'고 해서 우주의 암흑물질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다만 편의상 그런 표현을 빌려왔을 뿐, 실제로는 지구 외부에서 발생한 문제라기보다, 지구 대기권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구 외부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그럼 역시 이상기후 같은 거란 얘기입니까?"

    그는 대답 대신 커다란 스마트탭을 펼쳐서 지저 도시 입구가 폐쇄되기 전까지 외부에서 모은 자료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지구 외부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고 추측한 이유는 이 상황을 설명해줄 어떤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지질학적으로 매우 기이하면서도, 이 가설을 어느정도 밑받침해주는 단서 말입니다."

    기상학을 다루는 인간이 왜 지질학 얘기를 꺼내는가 싶어 사람들이 의문을 표하려던 찰나, 그는 누군가가 Younoob에 찍어 올린 개인 촬영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스마트폰 카메라 시점이 흔들리는 탓에 제대로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갑작스럽게 쿠구구구구! 하고 무너져 내린 지반이 싱크홀을 형성했고, 그곳에서부터 검은 연기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촬영중인 남자는 주변 동료와 함께 땅에서 독가스가 배출되는 거 아니냐고 반쯤 우스갯소리로 농을 주고받더니 곧 영상이 종료됐다. 영상 업로드 시간은 정확히 새벽 1시였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땅이 좁은데다 산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싱크홀 현상이 적었을 겁니다. 혹은 싱크홀 현상이 생겼다고 해도 주요 도시에만 인구가 밀집된 탓에 미리 발견된 것들이 적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면...싱크홀을 통해 빠져나온 대량의 검은색 연기가 뭉쳐 지구의 하늘을 뒤덮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굳이 암흑물질이라고 명명한 이유도 그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을 찾지 못해서 입니다."

    "...그럴듯 하군요.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크고 작은 싱크홀에서 대량의 검은 연기 형태의 물질이 대량 배출되었고. 밤이었던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낮이었던 국가들의 보고를 받은 뒤에야 이상 현상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 얘깁니까?"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전후사정을 따져보면 용감하게 나선 저 전문가의 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지도 않았다.

    실제로 대한민국을 비롯해 '밤'이었던 국가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한창 '낮'이었던 국가들로부터 이상 현상에 대한 경고를 받고 부랴부랴 지저 도시 입주를 준비했으니까.

    김창호가 새벽 1시에 철통 경호를 받으며 가장 먼저 지저 도시에 입주한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비록 가설놀음이긴 하나 어느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었다고 치자,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모른다.

    대체 왜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싱크홀 현상이 터지고, 원인도, 정체도 모를 검은 연기가 퍼져나간 걸까?

    "싱크홀 현상에 대해선 나도 국토교통부를 통해서 좀 들은 게 있는데, 주로 지하수가 고여 있던 지반 아래의 공동이 텅 비게 되거나, 심하게 물렁해진 지반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푹 가라앉는 것이 주 원인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각하."

    "그럼 대규모 싱크홀 현상의 원인이 따로 있다는 건데...다들 짐작가는 바가 있으리라 봅니다."

    이 상황에서 누가 그걸 모를까.

    10년 전을 기점으로 전 세계가 너나할 것 없이 지저 탐사에 뛰어들었는데. 무리하게 땅을 파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착굴 설비와 안전 설비 마련을 위해 대량의 자재가 투입되었다.

    거기서 그쳤다면 다행이겠지만 전세계적으로 지저 도시 프로젝트 붐이 일었기 때문에 금속과 시멘트 소모량이 인류 역사상 전례없을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금속 제련을 위한 광물 및 시멘트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작업들이 정말로 세계의 지반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수많은 국가들이 마의 12km를 뚫기 위해 밑도끝도 없이 파낸 대량의 땅굴들은?

    "싱크홀에 대해선 대충 짐작이 간다 칩시다. 문제는 하늘을 검게 물들인 놈인데...우선은 북한산 정상에 세워둔 기상관측시설을 통해서 꾸준히 관측 자료를 확보하세요. 그리고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서 내부 검증을 마친 뒤 보고하고. 마지막으로 확실한 근거에 기반한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저 도시내에 민감한 정보가 새지 않도록 내부 단속에 철저해야 할 겁니다."

    기득권층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변화보단 유지를, 혼란보단 평화를, 급진적인 발전보단 신중한 발전을 원한다.

    수방사에 소속된 모든 군인들과 그들의 일가족들이 기본적으로 지저 도시의 대대수를 구성하는 평범한 블루 칼라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들은 곧 기득권층의 노동력이자 안전을 책임지는 고기 방패다.

    그 외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 즉 연구직이나 기술직, 혹은 사무직을 담당하게 될 소수의 엘리트층이 화이트 칼라를 맡게 될 거다. 그들은 기득권층의 수족이자 충실한 개다.

    마지막으로 디그러쉬를 비롯한 여러 대기업의 일원들,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료, 그리고 지저 도시 운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특출난 극소수의 인재들이 그들을 부리는 기득권층에 해당한다.

    "군대의 철수 작업은 모두 끝났습니까?"

    "예, 각하. 불가피했던 사고 때문에 복귀하지 못한 극소수의 군인들을 제외하면 모든 인원이 북한산 동서남북에 위치한 게이트를 통해 철수했습니다. 또한 입주 자격을 갖췄음에도 제때 도착하지 못한 인원이 제법 있었기에 현장의 판단에 따라 일부 민간인을 수용했습니다."

    "

    자신에게 화두가 돌아오자 조금 당황한 국방부 장관이 서둘러 대답했다.

    "입주 자격을 가지지 못한 수용 인원들은 지저 도시에 배치하기 전에 철저하게 검사를 한 뒤에 배치하도록 하고...그 불가피한 사고는 뭡니까?"

    "VIP 전용 엘리베이터 앞 검사장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현장 보고를 받았습니다. 현장 CCTV 자료가 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한 번 봅시다."

    국방부장관이 눈치껏 신호를 주자 미리 준비중이던 내부 오퍼레이터 인원들이 분주히 움직여 커다란 스마트글라스 화면을 준비했다.

    국내에서 디스플레이 기술에 한해 전세계 원탑으로 찍은 모 대기업이 개발한 회의용 접이식 대형 스마트글라스였다. 평소에는 접어두었다가 필요하면 커튼처럼 내려서 언제든지 화면을 송출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재생된 검사장 녹화 기록은 적잖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여대생, 꼬마, 보디가드, 노신사, 그리고 평범한 청년까지 포함해서 5명은 큰 문제없이 검사를 받고 대기 부스로 보내졌다. 그와중에 청년이 남들과는 다른 대기부스로 보내진 게 조금 걸렸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잠시 후 대기 부스에 들어온 모피코트 차림의 중년 여성이 자신의 얼굴에 펜 라이트를 들이댄 검사관을 향해 격한 반응을 보이더니, 급기야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거기서 끝났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사태는 점점 더 안 좋게 흘러갔다. 비상벨이 울려퍼지면서 붉은 경고등이 번쩍번쩍 거렸고, 대기중이던 몇몇 중장갑보병이 위생 부스에 들어가 그녀를 제압하려 했다.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중장갑보병들이 여럿 달라붙었음에도 그녀는 좀처럼 제압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한 병사가 먼저 그녀의 등에 총을 겨눴다.

    그리고 쐈다.

    "......"

    대통령의 무거운 침묵에 이번에는 국방부장관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민간인이 행패좀 부렸기로서니 군인이 무턱대고 민간인에게 총질을 해버린 것이다.

    통제선을 뚫기 위해 차량을 가지고 돌진하는 미친놈들이라면 모를까, 고작 민간인 하나 제압하지 못해 총을 쏜 것은 명백한 군의 실책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회의장 내부의 인원들에겐 '사소한' 일이었다.

    "저거 편집된 장면 아닌 게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각하."

    대통령은 몇 분이 지난 뒤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금 즉시 질병관리청 생물학적재해 연구인원 호출하세요."

    김창호의 굳은 시선은 총격과 함께 피와 내장 대신 검은 연기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위생 부스의 정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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