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5화 (5/211)
  • 지저 도시(1)

    그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당장 치워! 치우라고! 내 말 안들려 이 새끼야?! 너희 책임자 누구야? 책임자 불러!!"

    채혈을 해야 하니 모피코트를 벗어달라고 했던 게 불만일까, 아니면 중장갑보병이 들고 있던 무시무시한 총기가 불만이었던 걸까.

    그녀는 부스 너머로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퍼질 만큼 돼지 멱따는 소리를 자아냈다. 그것만으론 모자랐는지 검사관의 멱살까지 잡았다.

    검사관도 그대로 당해줄 생각은 없었는지 책상 아래에 부착되어 있던 버튼을 재빨리 눌렀다. 그러자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려퍼지며 중장갑보병들이 위생 부스로 몰려들었다.

    수많은 중장갑보병들이 몰려들면서 그들이 착용한 엑소스켈레톤의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이 위생 부스에 집중되었다. 그러자 진상 아줌마는 한층 더 격렬한 몸부림으로 악을 썼다.

    "뭣들 하고 있어! 이거 당장 처리해!!"

    "하지만 너무 가까이 붙어있습니다!"

    "그럼 진압부터 해!"

    검사관과 착 달라붙은 진상 아줌마에게 딱봐도 위력이 세보이는 총을 쏘느냐마느냐로 잠시 실랑이가 오가고, 곧 중장갑보병 서넛이 좁은 위생 부스에서 진상 아줌마에게 달려들었다.

    옆을 돌아보니 출구를 지키고 있는 중장갑보병도 긴장했는지 출구 개방 버튼에 반쯤 손을 올려둔 상태였다.

    "떨어져! 떨어지라고 씨발!"

    "무슨 힘이 이렇게......!"

    "악 씨발! 이 미친 년이 손을 물었어!!"

    "쏴! 그냥 쏴버려!!"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누군가가 총구를 들어올리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리지만 선명하게 보였다.

    군에서 전역한지 얼마 안 된 나는 중장갑보병이 사용하는 총기가 일반 보병이 사용하는 총기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본능'이 내 몸을 지면으로 밀어던졌다.

    투타타타타!

    연발로 쏴갈긴 대구경 탄환이 두꺼운 모피코트를 껴입은 진상 아줌마와 검사관을 함께 꿰뚫었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선홍색의 붉은 피와 역겨운 내장이 유리벽을 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온 것은 검은 연기였다.

    인간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은 연기는 밀폐된 위생 부스 내부를 가득 메우더니, 곧 대구경 탄환이 만든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스멀스멀 새어나갔다.

    "움직이십쇼!!"

    "?!"

    총성과 함께 반사적으로 지면에 엎드린 나를 한 손으로 번쩍 잡아올린 중장갑보병이 대기 부스의 출구를 개방했다. 건너편의 대기 부스도 이미 출구를 개방해서 사람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뛰십쇼! 뒤돌아보지 말고!!"

    군인들이 우리를 화물용 엘리베이터 입구로 등떠밀면서 외쳤다. 그들의 손에는 이미 세이프티가 풀린 총기가 들려 있었다.

    -코드 블랙! 코드 블랙!

    -모든 군인들은 지저 도시로 긴급 복귀하십시오. 반복합니다. 모든 군인들은 지저 도시로 긴급 복귀 하십시오.

    -격벽 폐쇄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반복합니다. 격벽 폐쇄까지 30분 남았습니다.

    지저 도시로 이어지는 입구 터널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똑같은 대사가 저 멀리서도 울려퍼지는 걸 보니 북한산국립공원 전역에 방송이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많은 군인들이 이 좁은 입구 하나로 30분 안에 전부 복귀할 수 있을리가 없어. 다른 입구도 있는 거야!'

    그보다는 인간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터져나온 것을 더 신경써야겠지만, 나는 등 뒤에서 고막을 때리는 총성을 애써 무시했다. 저건 내가 관여되면 안 되는 문제다.

    가까스로 터널 끝자락에 위치한 대형 화물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대기중이던 군인이 엘리베이터를 조작했다.

    1차적으로 철창이 닫히고, 그 다음 접이식 금속 격벽이 닫혔다. 공기정화 시스템이 탑재된 엘리베이터는 사실상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아...하아...씨발 방금 그거 뭐였어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련님은 다치신 곳 없습니까?"

    "응 없어~"

    미니 스커트에 겨울용 부츠를 신은 탓에 가장 늦게 출발한 나보다 느렸던 여대생이 숨을 헐떡이며 욕지기를 했다. 꼬마를 안고 뛰었던 중년 보디가드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는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러자 일행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를 조작한 젊은 군인에게 돌아갔다.

    "이봐요. 혹시 우리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거 없어요?"

    "죄송하지만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상층부에서 내려온 명령만 따르고 있는 거라......"

    "아니 여기서 근무하는 군인 아니에요? 그것도 모르면서 근무를 해요?!"

    "모르는 걸 어떡합니까! 저도 총성이 들려서 당황했단 말입니다!!"

    "아이씨......!"

    여대생의 히스테리에 군인도 지지않고 맞받아치자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능 수치가 남달라보이는 안경남이 끼어들었다.

    "실례지만 혹시 현역 군인들도 우리처럼 혈액 검사를 했습니까?"

    "어, 그건...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처럼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한 명씩 혈액 검사를 하진 않았습니다. 아! 최근에 우리 부대에서 단체 헌혈을 하긴 했습니다."

    "소속이?"

    "수방사 예하에 신설된 제1 지저 도시 경비단입니다. 저희 말고도 공병대나 의료팀으로 선발된 군 부대가 더 있긴 합니다."

    지능캐답게 차근차근 말로 풀어나가자 군인도 시원하게 대답해주었다. 간혹 안경남이 민감한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그건 '모른다'나 '군 기밀'이라서 안 된다며 대답을 거부했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조금 전처럼 사람 몸에서 검은 연기가 튀어나오는 게 정상입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 지경이 되자마자 수방사 예하 군대를 죄다 북한산으로 긁어모은 건 이유가 있겠죠. 예를 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라 예상했다던가. ...제 말 틀립니까?"

    "전 정말 모릅니다. 혹시 궁금하시면 지저 도시에서 직접 알아보십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화가 잘 풀리던 병사가 이번에는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자 안경남도 두 손 들고 물러섰다.

    지친 일행들은 저마다 엘리베이터 벽에 자리잡고 기대거나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따끔거리는 상처를 다시 붕대로 감으면서 드문드문 들려오는 거친 금속음에 귀를 기울였다.

    철컹! 철컹! 철컹!

    '1분 간격으로 들려오고 있다.'

    스마트폰 전원을 껐기 때문에 타이머로 재보진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1분 정도의 텀을 두고 엘리베이터 위에서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일직선인지 대각선인지는 모르겠지만 12km 아래의 지저 도시까지 이어지는 엘리베이터 통로를 멍청하게 그냥 열어둘리가 없다.

    군인이 따로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엘리베이터가 특정 구간을 지날 때마다 통로의 외벽에서 튀어나온 천장 같은 격벽이 닫히고 있음을 직감했다.

    천문학적인 돈과 인력을 투자해서 만들어둔 지저 도시의 출입구에 뭔가가 떨어지거나 하면 큰일이겠지. 허가받지 않은 불청객은 덤이고.

    12km를 내려가는 만큼 엘리베이터가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내려가는데만 몇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한숨 돌릴 겸,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엘리베이터 보관함에 들어있는 생수와 휴대용 식량으로 각자 끼니를 때웠다. 화장실이 급한 사람은 엘리베이터 구석에 위치한 1인용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봤다.

    나는 다시 길고 지루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심신의 압박감은 대부분 명상을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다만 내 명상은 남들과는 달리 자아성찰보단 상황정리를 하는 느낌이었다.

    '어제 내가 대학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신 건 저녁 7시 30분쯤이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고.'

    형식적으로만 사귄 친구들이긴 했지만, 어쨌든 친구들은 아직 내게 짬내가 빠지지 않았다며 다짜고짜 고깃집에 끌고 들어가 소맥부터 말아주었다.

    군을 전역한지 얼마 안 된 나는 사회의 쓴맛에 대한 내성이 적었던 탓에 연거푸 소맥을 마시느라 진땀을 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친구들과의 시시콜콜한 잡담이 이어졌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먹으며 나름 괜찮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고깃집 TV에서 나온 인류의 화성 이주 프로젝트에 대한 주제로 꽤나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학물 먹은 놈들 아니랄까봐 서로 엉성한 지식과 그럴듯한 이론을 내세우며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나는 인류가 비록 2025년에 달 탐사에 성공한데다 우주정거장의 규모를 늘리는데에 성공했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화성까지 왕복할 수 있는 우주항행 기술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인류는 이제 막 달의 정복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이저 탐사선은 벌써 한참 전에 태양계를 벗어나긴 했지만 인간을 행성 간격만큼 떨어진 거리를 여행시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그래서 서로 된다 안 된다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다가 고깃집 주인에게 구박을 받기도 했고, 다시 술을 마시고, 또 떠들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면서 계산을 끝마친 기억까지 있다.

    '가게를 나오기 전에 들은 뉴스 내용이 뭐였지?"

    야간 할증이 붙은 콜택시를 타면서 필름이 끊어졌지만 그 언저리의 기억이 흐릿했다.

    그리고 개꿀잠을 자고 일어난 뒤에 벌어진 상황이 지금에 이르렀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나는 파릇파릇한 예비역인 만큼 군 인력이 부족하면 자동적으로 징집될 가능성이 높다. 혹은 지저 도시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에 반강제적으로 투입될 것이다.

    젊은 인력이라는 점, 특출나게 내세울 만한 경력이나 능력이 없는 점 때문에 고급 인력보단 단순 노동력으로 취급받을 테니까.

    아버지가 디그러쉬에서 나름 중책에 있다고는 해도, 오히려 그 계산적인 아버지가 나를 먼저 노동력으로 투입시키려 할 것이다.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자취 생활을 시작한 자식놈을 재벌 2, 3세들처럼 띵가띵가 놀게 놔둘리가 없다.

    문제는 내가 그런 취급을 받더라도 뭐라 할 말이 없다는 거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아버지 덕분에 지저 도시 가족 동반 입주 특혜를 받은 몸이니까. 원치도 않았던 빚이 생긴 거다. 아마 아버지는 지금쯤 어머니와 여동생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넌지시 어필하고 있겠지.

    가족을 자신의 자존감 충족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작자다. 안 봐도 뻔했다.

    그렇게 대충 명상 아닌 명상을 하면서 반쯤 잠이 든 찰나, 엘리베이터가 덜컹 하고 멈추면서 일행 모두 정신을 차렸다.

    "도착했습니다. 모두 내려주십시오."

    군인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반대쪽으로 개방된 엘리베이터 출구를 통해 천천히 걸어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몇몇 중장갑보병들이 말끔한 정장 차림의 직원들과 함께 서서 우리를 환대해주었다. 특히 정장 차림의 직원들에게는 디그러쉬 소속임을 상징하는 'DR' 이니셜이 새겨진 명찰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꽤나 직급이 낮았는지 명찰에 DR-5 라는 직급 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의 직급 코드는 DR-2였다.

    "지저도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서 간단한 본인 확인 절차후 ID 카드를 받아가시길 바랍니다. ID 카드는 본인의 은행 계좌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체크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으니 분실하시면 안 됩니다. 혹 분실하신다면 즉시 관리과 직원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순서대로 지저 도시의 새로운 신분증인 ID 카드를 받아들었다.

    우리의 ID 카드에도 직원들의 명찰처럼 디그러쉬 직원들과 비슷한 직급 코드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내게 새겨진 것은 코드는 HR-05 였다. 이게 무슨 뜻인가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는 단순명쾌한 대답을 해주었다.

    "박한성씨는 인적자원(human resources)으로 분류된 겁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업무에 동원되는 지저 도시의 평범한 입주민을 뜻합니다."

    "......"

    그래, 대충 예상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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