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3화 (3/211)
  • 흑야(3)

    이렇게나 많은 차량들중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은 단 한 대도 없었다.

    아무리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기로서니 차량 배터리가 방전될 이유도 없다. 모든 차량의 주인들이 차 시동을 끄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고하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으나, 터널의 야간등까지 꺼져 있다는 건 이상하다.

    '부모님이 보낸 첫 문자 시각이 아침 6시 26분이었어. 지저 도시의 입구가 개방된지 적어도 3시간은 지났다는 건데......'

    지금 여기서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여자를 떼어놓고 되돌아가서 우회한다면 쓸데없이 시간만 더 소모될 것이다.

    게다가 이런 비상 시국에 지저 도시의 입구가 계속 열려있을 거란 보장도 없다. 당장 서울 인구만 해도 천 만명을 가볍게 넘는데, 10년간 준비한 지저 도시라고 해도 천 만명을 모두 수용할 순 없을 것이다.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혹은 높으신 분들의 손짓 한 번에 유일한 피난처의 입구가 영영 닫힐 수도 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건 똑똑한 척척박사들이 알아서 해명해줄테니 나같은 일반인들은 그냥 지시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가면 된다. 늦지 않게.

    "미안한데 여기서 시간 낭비하긴 싫거든요? 여기 손전등 줄테니까 그쪽은 알아서 갈 길 가세요. 여기서 뒤쪽으로 한 200m쯤에 주유소 있으니까 거기서 추위 피하시고."

    초등학생들이 가지고 놀법한 미니 손전등 하나를 꺼내서 여자 손에 쥐여줬다. 실제로 캐릭터 로고가 박힌 놀이용 미니 손전등이었다.

    쇼핑 카트에 온갖 잡다한 물품을 싣고가던 양반과 시비가 붙었을 때 하나 슬쩍한 거다.

    "빛......!"

    그녀는 의외로 쉽게 미니 손전등에 빠져들었다. 놀이용이라 빛이 그렇게 세진 않지만 지금처럼 칠흑같은 어둠이 내리깔린 거리라면 시야 확보 정돈 가능할 거다.

    미니 손전등 불빛에 푹 빠진 여자를 자연스럽게 지나친 나는 천천히 스쿠터를 몰았다.

    솔직히 이런 상황이라 재난 영화처럼 차량들이 지그재그로 복잡하게 얽혀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들 약간의 에티켓을 지킬 이성 정도는 남아있었는지 주차 상태가 깔끔했다.

    나는 혹시 몰라 손전등으로 차량 내부를 비추며 사람이 남아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가지런하게 정돈한 것처럼 모든 차량의 문이 닫혀있었기 때문에 혹시 차량 내부에서 난방으로 버티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데?'

    그럼 저 여자는 대체 뭐하다 이제서야 혼자 튀어나온 걸까? 보통 사람들이 자기 차에서 우르르 빠져나오면 자기도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나는 차량 안에 숨어있다가 불빛에 반응해 튀어나올 사람이 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속도를 높였다. 이 금화터널만 빠져나가면 영천동을 곧바로 통과해서 서대문구를 빠져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인왕산로를 따라 쭉 북상하면 북한산국립공원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도로 사정이 쾌적하다면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겠지만, 차량들이 하나같이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곳은 서울이니까.

    "아까처럼 종말론자 새끼들만 안 만나면 더 바랄 것도 없겠...씨발!!"

    슬슬 금화터널의 끝이 보였기에 한층 더 속도를 높인 나는 간발의 차로 바퀴를 꺾었다. 덩치가 큰 화물트럭 때문에 터널 바깥 도로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트럭 바로 뒤편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긴 상태였다.

    만약 속편하게 질주했다면 그대로 구멍에 처박았을 것이다.

    "오늘 일진 더럽게 사납네 진짜."

    조심스럽게 도로 외곽으로 스쿠터를 몰아 싱크홀을 피해간 나는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싱크홀이란 건 대체 얼마나 깊은 걸까? 10m? 20m? 어쩌면 빛이 닿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깊을 수도 있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고, 나또한 인간이기에 상반신만 기울인 채 손전등을 들어 싱크홀 아래를 비췄다. 큰 의미는 없었다. 그냥 순수하게 궁금했던 것 뿐이다. 싱크홀을 실제로 구경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싱크홀의 까칠한 흙더미 외벽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 손전등 불빛은 이윽고 싱크홀의 정중앙을 향했다.

    동시에 어둠 속을 꿰뚫고 날아든 무언가가 정확히 내 손전등을 잡아챘다.

    퍼석!

    "!"

    순식간에 빛이 사라졌다. 손에 쥐고 있던 손전등을 거칠게 뺏기면서 쓸려나간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장갑채로 손바닥 피부가 벗겨진 느낌이었다.

    번화가에서 패닉에 빠진 시민들을 보며 느꼈던 '본능'이 다시 한 번 꿈틀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당장 스로틀을 한계까지 감으라는 소리였다.

    부아아아아아앙!

    손바닥의 아픔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으로 치고 나가자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내가 있던 자리가 퍼벅! 하고 쪼개졌다.

    더이상 뒤를 돌아볼 수 없어 억지로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내 정신은 여전히 싱크홀 앞에서 멈춘 것만 같았다.

    중요한 광원인 손전등이 박살났다는 사실보다, 무언가가 정확히 손전등만 박살냈다는 사실이 더 소름끼쳤다. 만약 내가 헤드라이트가 달린 헬멧을 쓰고 싱크홀을 들여다봤다면......

    '좆같은 생각 하지말자.'

    찬바람을 맞으면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싱크홀이 사실은 매직홀인지 애스홀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순수하게 공식 집계된 인구만 천 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이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지저 도시 입주권을 가진 내가 제때 도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했다.

    지저 도시에 대한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미국이 처음 지저 세계 탐사에 성공한 뒤, 여러 나라들이 자신들만의 새로운 지저 세계를 탐사해보겠답시고 미친듯이 땅굴을 파댔으니까.

    마의 12km 벽을 뚫고 지저 세계에 도달한 인류는 '그럭저럭 살만한데?' 라는 생각을 품고 지저 세계부터 테라포밍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온 게 지저 도시 프로젝트다.

    도시의 기둥이 될 주 동력원은 당연히 원자력 발전소로 채택됐고, 실제로 가장 먼저 시공에 착수한 것도 아스팔트 도로가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였다고 들었다. 왠지 모르게 인간이 살 수 있는 특이한 환경이라 지열 발전소는 오히려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각자의 이념과 계획, 투자 방식으로 지저 도시를 건설하기 시자했고, 서울도 10년이면 충분히 그 결실을 맺었을 터.

    최소한 나 한 명 더 들어간다고 해서 비좁지는 않겠지.

    손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도, 살갗을 찢어발기는 듯한 칼바람의 맹추위도 잊고 그저 미친듯이 스로틀을 감아 인왕산로를 질주했다.

    그렇게 중간중간 여전히 패닉에 빠진 사람들로 붐비는 몇몇 번화가를 지나쳐, 북한산국립공원 남쪽에 위치한 참샘골공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평창동 북부에 위치한 참샘골공원 앞에는 북한산국립공원 출입을 통제중인 다수의 군인과 군용차량들이 보였다. 군대가 다 어디갔나 싶었는데, 북한산 출입 통제에 죄다 투입됐던 모양이다.

    근방에는 교회와 절이 쌍으로 붙어있었기 때문에 피난민들중 종교인 비율도 적지 않았다. 그 증거로 누군가는 종말을 열심히 외치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북한산 출입을 통제중인 군인들을 저주하거나 죄인 취급하고 있었다.

    어차피 다시 쓸 일도 없을 것 같아서 스쿠터를 대충 길가에 세워둔 나는 엄청난 수의 인파에 뛰어들었다. 이 인간벽을 통과해야 안전한-아마도-지저 도시로 들어갈 수 있다.

    "야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우리가 낸 세금이 얼만데 왜 우린 안 들여보내줘!!"

    "온갖 명목으로 세금이란 세금은 다 뜯어가면서 왜 정작 우린 혜택을 못 받냐고!"

    "길 막지마 씨발!"

    "좆같은 새끼들아! 네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우리 아이...우리 아이만이라도 들여보내주세요!!"

    "비켜봐 씨발! 너 이 새끼들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 내가 XX구 의원이랑 골프도 치고 사우나도 같이 하는 사람이야! 알아들어?!"

    만약 지옥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곳이 지옥일 것이다. 인세의 지옥.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중장갑보병이 군용 차량과 함께 벽을 만들어 서있으니, 아무리 막나가는 인간들이라고 해도 힘으로 통제선을 넘어갈 수는 없었다.

    통제선에서 일정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임시 초소에는 지저 도시 입주권을 확인하는 검사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기본적인 신분증 검사 및 본인확인절차를 거치고, 지문 인식까지 마친 후에야 통과시켜주었다.

    하지만 어딜 가나 관료주의와 타협하기 싫어하는 놈들이 있는 법. 당당하게 검사관을 속여먹으려다 걸려서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군인들에게 붙잡혀 쫓겨난 이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무식하게도 공업용 중장비나 차량을 타고 와서 냅다 들이박으려는 정신병자도 있었다. 혹은 그만큼 간절했던 사람이거나.

    그들은 모두 정차 경고를 받은 후 예외없이 군용 차량에서 발포된 기관포를 맞고 강제로 정차되었다.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군중은 한층 더 큰 혼란에 빠졌지만, 그래도 군대가 만든 통제선을 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좀 지나갑시다!"

    나는 사람 여럿을 밀쳐내면서 간신히 인파속에서 빠져나와 검사관 앞에 설 수 있었다.

    검사관 옆에 선 중장갑보병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미 깽판 친 놈들이 많으니 걸리기만 하면 한 손으로 번쩍 들어서 내동댕이 쳐주겠다는 사심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신분증 제시 및 본인 확인 절차에 응해주시길 바랍니다."

    특이하게도 전신 방호복을 착용한 검사관은 살짝 짜증섞인 어조로 말했다.

    나는 서둘러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제시했고, 지문검사기에 엄지 손가락을 꾹 눌렀다.

    검사관은 노트북을 몇 번 두들겨보더니 마지막 절차로 추정되는 가족 관계 확인용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 이름이?"

    "박한화입니다."

    "...박한성씨 본인이 맞군요. 통과."

    유일하게 내세울 거라곤 아버지가 디그러쉬 관리직이라는 것과 수색대 출신 예비군이라는 것말곤 없는 나 박한성은,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 한채 군인의 안내를 받아 수송 차량에 탑승했다.

    이미 나말고도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귀티가 흐르는 상류층 인간들처럼 보였다.

    추운 날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숭고한 패션감각만은 지키고 싶으셨던 모피코트 차림의 아줌마.

    안경 한 번 고쳐쓸때마다 지능 포인트가 1씩 상승할 것 같은 올빽머리 안경남.

    이 추운 날에도 미니스커트에 패딩 하나만 걸치고 손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내 또래 여자.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저 혼자 중얼대고 있는 꼬마와 그 옆에 바짝 붙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중년 보디가드.

    멋들어진 회색 코트에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뒤늦게 손바닥이 까진 고통을 느끼며 차량에 비치된 구급 상자를 찾고 있는 머저리 같은 나.

    우리를 태운 수송 차량이 지저 도시 프로젝트와 함께 개통된 특수 도로를 타고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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