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2화 (2/211)
  • 흑야(2)

    "저리 꺼져 씨발!"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다 떨어져! 이거 건드리는 새끼는 손모가지 나갈 줄 알아!!"

    한적한 원룸촌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나는 번화가에서 인간의 본성을 보게 되었다.

    '고작 반나절만에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나?'

    작게는 편의점부터, 크게는 대형 마트나 백화점까지. 엄청난 수의 인파가 몰려들어 자신의 차량이나 가방에 생필품을 쑤셔박고 있었다. 물론 전부 무차별적으로 약탈한 것들이었다.

    해가 떠야할 시간에 해가 뜨지 않았고,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의 아침을 맞이한 순간 대다수의 인간들은 반쯤 정신을 놔버린 것이다.

    마침 인터넷이나 아침 뉴스에서 긴급속보로 지구멸망이니 뭐니 떠들어대고 있으니 다들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 혼란스러운 사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는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도 무력하게 무전기에 대고 지원요청만 외치고 있을 정도였다.

    마음 같아선 나도 저 혼란속에 끼어들어 필요한 물품을 좀 챙겨가고 싶었지만, 본능적으로 그래선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불과 반나절만에 이렇게 변한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뭐 '누가 우리 머릿속에 독을 풀었다!' 같은 음모론을 믿는 병신인 건 아니고.

    그때 내 앞을 쏜살같이 지나가려던 쇼핑 카트의 방향이 살짝 틀어져서 애먼 가드레일을 박았다.

    "이런 썅! 똑바로 보고 안 걸어?! 하마터면 엎을 뻔 했잖아!"

    "그쪽은 훔친 물건이 너무 많아서 앞이 잘 안 보이나봐요?"

    "뭐?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아마 아침부터 수염도 밀지 않고 아내의 등쌀에 못이겨 허겁지겁 뛰쳐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중년이 인상을 썼다. 여느 진상들처럼 쇼핑 카트에 생필품을 가득 담아서 가져가려 한 걸 보면 꽤나 급했던 모양이다.

    "그보다 빨리 안 가봐도 괜찮겠어요? 여기 더 있다간 지금 그것도 뺏길 것 같은데?"

    "이이...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

    걸쭉하게 욕을 내뱉은 그는 다시 무거운 카트를 밀고 전속력으로 움직였다. 도로는 이미 꽉 막힌 차량들때문에 고작 카트를 끌고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편한 인도로 움직이자니 패닉에 빠진 다른 사람들에게 물건을 뺏길까봐 두려운 것이겠지.

    나는 편하게 차량들 사이를 걸어 혼란의 중심지에서 벗어났다.

    정말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재난 상황에선 무분별하게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곳이 항상 위험하다. 정체모를 전염병도, 갑작스럽게 터진 전쟁도 언제나 가장 많은 사람을 최대 목표로 삼으니까.

    '그보다 군대는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거지? 지금이라면 계엄령 선포하고 도로 통제부터 들어가는 게 정상인데?'

    그러고보니 인터넷을 검색했을 때도 계엄령 선포 얘기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당장 현장에 투입된 통제 인원이 소수의 경찰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군인들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아니지.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당초 목적이었던 바이크 정비 센터를 찾았다. 차량 정비 센터와 달리 바이크 정비 센터는 의외로 적었는데, 마침 내가 사는 곳 근처에 바이크 정비 센터가 딱 하나 있었던 것이다.

    고작 반나절만에 도심의 교통이 꽉 막혀버린데다, 지금 상황에서 지하철은 운송보단 피난민용 쉘터 목적으로 쓰이고 있을터. 평소처럼 여유롭게 콜택시를 잡아 탈 수도 없었다.

    '예상대로야.'

    바이크 정비 센터에도 몇몇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당장 바이크를 약탈하러 온 사람들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생필품이지 바이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이성적인 생각을 할리가 없다.

    혼란스러운 외부와는 달리 바이크 정비 센터 직원은 따뜻한 건물 안에서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아마 누구보다 먼저 바이크를 몰고나가서 생필품을 잔뜩 챙겨온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한 대 빌립시다."

    최전방 수색대 출신이었던 나는 전역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아직 폼이 죽지 않았다.

    시도때도없는 산악 구보와 차단 작전 때문에 남몰래 빠르게 움직이는 건 도가 텄다. 특전사처럼 대단한 기술 같은 걸 배운 건 아니지만, 수색대 짬밥이 어딜 가진 않는다.

    슬금슬금 정비 센터 안으로 들어온 나는 바이크 모델명이 새겨진 명찰과 함께 벽에 걸려있는 예비 키를 찾았다. 정비 센터에서 바이크의 시운전(작동 검사)도 해봐야 하기 때문에 손님들이 예비 키를 맡겨두고 가는 것이다.

    '그리 대단한 바이크는 필요없다. 너무 커도 안 되고, 너무 소란스러워도 안 돼.'

    너무 크면 십년 묵은 변비처럼 꽉 막힌 도로를 헤쳐나가기 어렵고, 너무 소란스러우면 연비가 고약한 놈일 가능성이 높다.

    소란스러운 차량일수록 연료를 제물삼아 엔진을 갈궈댄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연비가 나쁠 수밖에.

    '어차피 마포구에서 북한산국립공원까지만 가면 되니까 연비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또 모르니까.'

    다행히 대학을 다니면서 바이크에 미쳐 사는 과 동기와 어울려지냈기 때문에 바이크에 대해 아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나 또한 고등학생 시절에 아르바이트 하려고 원동기 면허를 따기도 했고.

    '원동기와 바이크는 엄연히 다른 거라고 정색하던 놈 생각나네.'

    다른 게 맞긴 하다. 125cc 이하의 허약한 놈들과 엄청난 배기음을 내뿜으며 광란의 질주를 벌이는 바이크는 태생이 같아도 질적으로는 수준이 다르니까.

    그렇게 내가 골라잡은 125cc 스쿠터는 마침 정비 센터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여 있었다. 다른 고급형 바이크에 비하면 급이 낮은 놈이라 가장 바깥쪽에 놔둔 듯 했다.

    한가하게 한겨울속 따스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정비 센터 직원에게 들키지 않도록 슬금슬금 빠져나와, 스쿠터를 잡고 바깥으로 끌고나갔다.

    그리고 인도에서 누가 볼새라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연료는 있군.'

    나는 정비센터 직원이 뛰쳐나오기 전에 서둘러 스쿠터 전면 스마트 글라스에 내장된 네비게이션 어플을 작동시켰다.

    2030년에 들면서 배달부들을 위한 사소한 기술적 특혜가 세상에 보급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차량이나 원동기에 탑재된 스마트글라스였다.

    더이상 불편하게 스마트폰이나 별도의 네비게이션 장치를 보지 않아도 스마트글라스가 자동으로 반투명한 지도를 보여준다. 이 실시간 네비게이션 어플이 탑재된 스마트글라스 덕분에 구식 네비게이션 장치 산업이 망했다는 얘기가 있다.

    "더럽게 춥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가을과 겨울은 배달부들에게 지옥이다. 달리면서 칼바람을 정면에서 맞게 되는데, 두꺼운 옷에 장갑과 헬멧까지 착용해도 몸이 덜덜 떨린다.

    혹시 눈이나 비라도 내린다? 그 날은 진짜 죽는 거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기 시작한 나는 스마트글라스가 보여주는 현 위치와 경로를 확인하면서 조심스럽게 전방을 주시했다.

    도로는 이미 꽉 막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짐을 잔뜩 챙겨서 피난 가는 사람, 혹은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사람,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길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사람.

    2030년의 서울은 고작 10년 전인 2020년의 서울과도 천지차이라고 하지만, 설마 이정도로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고작 반나절만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종말! 종말이 왔습니다! 주님께서 죄인들을 심판하시고 어린양들을 굽어살피시어 천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회개합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어디서나 보이는 기독교 신자들중 유독 극렬한 성향을 지닌 목사가 직접 거리에 나와 피켓을 들고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햇빛과 별빛이 완전히 사라진 어두컴컴한 하늘을 마주한다면 누구라도 세상의 종말이 도래했다고 생각하겠지. 그 증거로 목사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목사님! 저는 지난날 살아오면서 많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 저의 죄도 주님께선 용서해주실까요?!"

    "물론입니다! 주님께선 진실로 회개하는 자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거짓으로 변명하는 자를 무겁게 처벌하십니다! 그대는 주님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십시오! 당신의 믿음을 증명해보이십시오!!"

    "아아, 할렐루야......!"

    사람들이 워낙 몰린 탓에 속도를 조금 줄이며 지나가고 있었는데, 저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회개하고 기도하면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나는 타인의 종교를 존중하기는 했으나 나 자신은 무신론자였기에 그냥 지나쳤다. 지나치려 했다.

    "잠깐! 거기 지나가는 청년! 당신은 어찌하여 주님의 심판이 머지 않은 이 순간에도 죄를 범하고 있는 겁니까?!"

    그때 목사가 배낭을 멘 채 스쿠터를 천천히 몰고 있던 나를 지목하며 소리쳤다.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그 거짓된 배낭 속에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물건들이 들어있습니까?! 당신이 훔쳐타고 있는 그 스쿠터는 또 누구의 것입니까?! 당신이야말로 이 심판의 시대에 도래할 죄악의 기수(騎手) 아닙니까!!"

    '염병.'

    내가 이래서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

    심신의 안정을 얻기 위해, 혹은 정신 수양을 위해,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내면의 공포나 죄악감을 흘려버리기 위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응당 존중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저런식으로 심신이 불안정한 사람들을 선동하고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놈들이 꼭 하나씩 존재한다. 저런 놈처럼.

    나는 재빨리 스쿠터의 속도를 높였다. 125cc 스쿠터는 바이크에 비할 바는 아닐 지라도 나름 무게도 있다. 속도가 조금만 붙어도 사람이 부딪치면 대형 사고가 터지는 놈이다.

    불길한 표정으로 내 앞을 슬금슬금 막으려던 광신자들을 향해 나는 막무가내로 돌진했다. 여기서 붙들리면 피난이고 뭐고 정말 다 끝난다. 하물며 저 미치광이 종교쟁이 새끼가 나를 멀쩡하게 놔둘리도 없다.

    "뒤지기 싫으면 다 비켜!!"

    내가 일부러 배기음을 요란하게 내뿜으며 속도를 높이자 지레 겁먹은 사람들이 물러섰다. 누군가 나를 붙잡으려고 용감하게 튀어나오려고 했으나, 옆을 지나가면서 냅다 걷어차버렸다.

    대학에서도 필요에 의해서만 친구를 사귀었고, 군대에서도 특출나게 누군가와 깊이 전우애를 다진 적이 없었다. 그런 내게 생판 모르는 타인이 달려들면 앞뒤 안가리고 걷어찰 의향은 충분했다.

    "저, 저저 죄인이!!"

    "아아, 참담합니다! 정말로 참담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저 자와 같은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기도하십시오!!"

    요란하게 날뛴 나를 술안주처럼 씹고 뜯는 종교쟁이를 뒤로하고 그저 달리기만 했다.

    이대로 서대문구와 종로구를 거쳐 곧장 지저 도시 입구가 존재하는 북한산국립공원까지 달릴 생각이다. 서대문구에서 은평구를 거쳐가기에는 주거구역이 너무 밀집되어 있어서 리스크가 컸다. 사람들이 존나게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종로구는 기껏해야 서대문구 인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이니, 당연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나마 서울이라서 이정도지, 지방 도시였다면 진짜 얄짤없었겠는데.'

    나는 몇몇 동네를 빠르게 지나치면서도 불빛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했다. 절대로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라는 호칭답게 이 지경이 되어도 서울은 여전히 밝았다.

    다만 대다수의 인간들이 패닉에 빠지면서 애꿎은 가게나 공공기물을 파손하거나, 몇몇 의도치않은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전력이 끊기는 대규모 정전 사태도 벌어졌다.

    때문에 불빛 한점 없는 거리에 들어섰을 때는 여기가 정말로 서울인가 싶었다.

    차라리 지금이 정상적인 밤이었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 것이다. 최소한 달빛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완전히 칠흑이 도시를 집어삼킨 지금은 손전등 불빛조차 귀중한 이정표가 되었다. 스쿠터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며 길을 헤맸을 것이다.

    여전히 아무렇게나 정차되어 있는 차들로 꽉 막혀있는 터널을 막 지나려던 찰나, 갑자기 저 앞에서 머리가 산발이 된 여성이 튀어나왔다.

    "뭐야 씨발!"

    "비, 빛! 빛이다!"

    내가 깜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말거나 그녀는 빛을 보지 못해 안달이 난 나방처럼 스쿠터에 엉겨붙었다.

    이 여자도 대충 쳐내고 그냥 달려야 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저 터널로 들어가실 생각이세요?"

    "그런데요. 여기가 최단 루트라서."

    "그러지 마세요! 저기로 들어가시면 안 돼요! 저긴 빛이 없어요!!"

    그야 당연히 빛이 없지. 햇빛은커녕 별빛도 안 보이는 세상이 됐는데.

    그렇게 말하려던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스쿠터의 헤드라이트가 비추고 있는 불빛은 터널 입구를 일부 비추고 있었고, 차량들이 꽉 차있는 광경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왜 불이 켜진 차량이 하나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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