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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화 (1/211)
  • 흑야(1)

    어느 날 인류는 2035년까지 화성에 도달하여 거주 및 연구 목적 기지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모 유명한 대기업의 CEO와 미국의 NASA가 2025년에 유인 달 탐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이후 본격적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선언한 것이다.

    당연히 이는 전세계의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었고, 별 쓰잘데기 없는 논제로 갑론을박을 펼치기 좋아하는 자칭 전문가들이 대다수의 일반인들이 가진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나섰다.

    -인류는 이미 달에 도달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자재를 실어날라서 달에 기지를 건설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그러기 위한 '문 프로젝트'도 가동중이고요. 하지만 인류는 더 먼 곳을 봐야 합니다. 단순히 자원 채굴이나 연구 목적으로 지구 근처를 돌기만하는 위성 정복에 그칠 게 아니라,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례지만 지금의 인류가 가진 기술력으로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말씀하셨던대로 달이라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 정복하는 게 가능할 겁니다. 사람도 보내봤는데 건설자재와 건설용 로봇을 보내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을 테니까요. 단가가 좀 안 맞더라도 꾸준히 우주왕복선과 로켓을 쏘아올린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화성 정복? 하하, 농담이 너무 지나치시군요. 우선 화성을 정복하기전에 전제되어야 할 부분을 깜빡하신 것 같습니다. 바로 테라포밍이죠. 테라포밍도 안 된 화성에 소수의 기술자와 건설자재, 건설로봇을 보낸다고 한들 제대로된 작업이 이루어질리가 만무합니다. 애초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그런 나약한 마음가짐이 인류의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겁니다. 과거에 닐 암스트롱이 달에 인류의 첫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습니까? 전세계에 인터넷이 보급되고 컴퓨터가 손바닥만한 크기로 작아지는 건요? 고성능 AI가 탑재된 로봇이나 인간의 나약한 육체를 강인하게 만들어주는 엑소스켈레톤(외골격 장비)의 등장은요? 누구도 그런 걸 예상한 적 없습니다! 다만 끈덕지게 노력하고, 실패하면서 결국 발전의 성과를 낸 것이죠.

    -그건 너무 이상적인 관점 아닙니까? 우리 인류는 아직 지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습니다. 당장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류외의 다른 종에 대해 얼마나 파악했습니까? 게다가 우리는 이미 지하 12km에 달하는 지저 탐사 및 새로운 거주구역 건설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전세계적으로요! 때문에 달이라면 모를까, 화성에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자하는 건 어렵다는 겁니다.

    -달 탐사로 이미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인류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 합니다!

    -지구에서 고작 384,400km 떨어진 위성과 56,000,000km 떨어진 행성의 정복 난이도가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진심으로?! 그럴바에야 우선 지구에서의 일을 확실하게 끝낸 뒤에 화성을 목표로 하는 게 낫죠!

    자칭 전문가랍시고 TV에 출연한 양반들이 처음에는 서로 선비처럼 점잔 빼다가, 나중엔 시장통 아저씨 아줌마마냥 윽박질러대는 꼴을 보게 된다. 이게 나같은 일반인들의 몇 안 되는 유흥이기도 하다.

    인류는 이미 달에 확실히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됐으니까, 어쩌면 화성에도 도달할 수 있겠지. 그게 몇년이 걸리든,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사실 그리 중요하진 않다.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게 지구멸망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 정말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어우씹...물."

    머리가 띵하고 눈꺼풀이 무겁다. 전신의 근육은 당기듯이 아프고 메마른 황야처럼 수분기 하나 없는 목이 물을 원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원룸에서 간신히 손을 휘저어 바닥에 놔둔 물병을 찾았다. 어제 친구와 함께 고깃집에서 '인류가 정말 화성에 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주제로 엄청 떠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염병할 화성.'

    꿀꺽꿀꺽.

    미지근한 물을 쉼없이 들이킨 나는 겨우 해결된 갈증에 만족하면서 스마트폰을 찾았다.

    방구석에 제대로 기어들어온 걸 보면 스마트폰도 적당히 구석에 처박아놨을 것 같아서 엉금엉금 좁은 방을 기어다녔다.

    그러다 벽에 머리를 들이박고서야 전등부터 켜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이렇게 멍청했던가?

    "쓰으으읍......"

    이마를 문지르면서 전등을 켜자 환한 불빛이 좁은 방을 밝혀주었다.

    방의 풍경은 딱 홀애비 냄새가 풍기기 좋은 수준으로 푹 삭아보였다.

    대충 벗어던진 재킷과 바지, 빨래를 말리기 위해 산 소형 건조대, 방 한구석에 떡하니 놓여있는 쌀 포대와 미니냉장고, 그리고 공부용 책상과 의자.

    군을 전역하고 복학을 앞둔 돈 없는 대학생의 전형적이고 평균적인 자취방 풍경이었다.

    이 좁은 방보다 4배는 더 좁은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나니 숙취가 싹 가셨다. 쌀쌀한 가을이라 그런지 찬물이 얼굴에 닿기만 해도 전신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밥은...나중에 먹자."

    싱크대와 가스레인지에 눈길을 줬지만 벌써부터 라면 같은 걸 끓여먹고 싶진 않았다. 해장라면이라도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사실 숙취에 시달린 빈속에 라면을 때려박는 건 굉장히 미련한 짓이다.

    역시나 방 구석까지 밀려난 스마트폰을 집어들자 배터리가 아슬아슬하게 20% 정도 남아있었다. 취한 상태로 바지와 재킷까지 벗어던질 힘은 있었으면서 스마트폰 배터리를 충전할 기운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어제 술값을 누가 냈...뭐야 씨발."

    스마트폰은 정확히 아침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PM이 아니라 AM이라고 쓰여있었으니 내 눈이 틀린 건 아니었다.

    사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금이 왜 밤이 아니라 아침 9시 30분이냐는 사실보다 긴급재난경보 문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온 전화나 메시지도 수십 건이 넘는다. 혹시 몰라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보니 통화량이 폭주해서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재빨리 인터넷을 확인해보니 모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부터 대환장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1. 흑야 현상

    2. 태양 행방불명

    3. 지저 거주 구역

    4. 지구멸망

    5. 방한 대책

    당장 상위 5개의 핫 키워드만 뽑아봐도 이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정말로 바깥은 어두웠다. 내가 사는 원룸은 바로 앞에 위치한 건물 때문에 햇빛이 잘 안 들기는 했지만, 밤과 낮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창문너머로 새카만 어둠이 내리깔린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무심코 창문을 열어보니 가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추위가 불어닥쳤다. 깜짝 놀라 창문을 닫자 얼굴이 시큰거렸다. 방 내부는 난방 덕분에 뜨뜻미지근 했지만, 바깥은 이미 한겨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추웠다.

    "흑야...흑야...설마 빛이 계속 내리쬐지 않아서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진 건가?"

    그래도 꼴에 대학물좀 먹어본 놈이라고 그런 가설을 내놨지만, 이렇다할만한 대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불과 반나절만에 햇빛이 사라진 것, 가을이 순식간에 겨울로 바뀐 것, 그리고 지금 전세계가 패닉 상태라는 것 말고는 달리 정보가 없었으니까.

    "일단 나가자."

    밖은 굉장히 추웠으니 적어도 영하 5도 정도는 될 것이다. 가을용 멋부리기 재킷이 아니라 겨울용 패딩과 두꺼운 후드티, 안감이 두꺼운 청바지를 껴입고나서야 외출 준비가 끝났다.

    원룸을 나오자 건물 복도에서부터 강렬한 냉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아직 겨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내 몸은 두꺼운 옷과 패딩을 껴입었음에도 부들부들 떨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바깥에 나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혼돈이었다.

    "......"

    건물 주변에는 쓰레기 더미나 박살난 유리조각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고, 차량들끼리 서로 좁은 길을 빠져나가려다 충돌했는지 본네트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건물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의외로 방음 효과가 좋았던 탓일까, 방 안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외부의 소음이 여과없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굉장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무언가가 펑 터지는 폭발음, 누군가의 비명, 무언가가 깨지고 박살나는 소음.

    불행중 다행인지 내가 사는 원룸 근처는 이미 혼돈의 도가니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덕분에 조용했다.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을 켜서 잔뜩 쌓여있는 문자 메시지들을 읽어보았다.

    가족들로부터 온것을 먼저 읽어보니, 아버지가 근무하던 외국계 대기업 '디그러쉬'로부터 우리 가족에 한해서 대한민국 지저 도시에 입주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가족들은 모두 짐 싸들고 대한민국 지저 도시로 향할테니, 나도 빨리 짐과 신분증을 챙겨서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고보니 미국에서 지저 세계가 발견된 이후로 수많은 국가들이 지저 탐사를 시작했었지.'

    한국도 정부가 투자 협력한 외국계 대기업 '디그러쉬' 덕분에 비교적 늦지 않게 한반도 아래의 지저 세계를 탐사할 수 있었다. '디그러쉬'에서 제공한 새로운 굴착기술과 장비는 굉장했다고 뉴스에서 공공연하게 떠들어대곤 했다.

    지저 세계가 발견되고, 여러 나라들이 일제히 땅을 파고들어가기 시작한 게 얼추 10년 전이다. 달 탐사보다 지저 탐사가 먼저였다는 얘기다. 그렇게 대략 10년을 투자해서 지저 세계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면, 대규모 피난 쉘터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나는 정확히 2030년 10월 20일 오전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는 지금을 기억하면서, 스마트폰 전원을 껐다. 친구들에게 온 문자따윈 읽지 않았다. 대학에서 필요에 의해 사귀고 있던 친구들일 뿐이었으니까.

    한반도 지저 세계의 입구는 '디그러쉬'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듯이 서울 북한산국립공원이다. 정부의 허가와 지원을 받으며 서울내에서 마음껏 땅을 팔 수 있는 곳이 북한산국립공원 뿐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마포구라서 조금 많이 올라가야 한다.

    나는 다시 집으로 뛰어올라가 전역하면서 기념으로 PX에서 사온 군용 배낭에 식수와 휴대가 간편한 식량, 그리고 손전등이나 잡다한 물건들을 때려박았다. 무거운 쌀포대나 냉장고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반찬 같은 것들은 아쉽게도 버리고 가야 했다.

    "시발시발. 술취해서 자고 있는 사이에서 세상이 망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것도 고작 반나절만에!

    정말로 태양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지구에만 태양빛이 들지 않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까 하늘을 올려다봤을 땐 정말로 먹물을 칠한 것처럼 온통 시커먼 색이었으니까. 별빛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태양이 정말로 사라졌다면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이 공전 주기를 잃고 병신이 됐겠지. 그러니 꼭 태양이 사라졌다고 볼수는 없어.'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냥 빛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외부에서 빛 한점 들지 않는 지구는 지열만으로 기온을 끌어올리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점점 추워지기 시작한거고.

    피난 준비를 끝마친 나는 어두운 길거리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손전등을 들었다.

    아직 도심에선 전력을 이용한 불빛과 누군가의 소동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 때문에 그렇게까지 어둡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좋아. 가자."

    이런 상황에서도 딱 하나 확실한 건, 내 복학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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