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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251화 (251/265)

칼리스토(1)

* * *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외관과는 달리, 오두막의 내부는 멀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피테르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테세라의 경고가 있었기에.

―마스터. 배신자들을 이끄는 건 엑시였어. 나보다는 마스터가 잘 알 테니까 긴말은 안 할게. 조심해.

우우웅!

유피테르는 마나를 사방에 흩뿌렸다.

케팔로스는 더 넓은 숲도 한 번에 훑었었다. 작디작은 오두막 정도야 눈 깜빡하기 전에도 끝내버렸다.

‘함정은… 없군.’

오두막이 안전하다는 걸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유피테르의 시선이 앞을 향했다.

오두막의 정 중앙에는 칼리스토들이 당당하게 앉아있었다.

말이 칼리스토들이지 사실 배신자들이었다. 트리아 일행과 같은 비교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실례였다.

트리아 일행은 느릴지언정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는 자들이었으니까.

세 사람 중 가운데에 앉아있었던 엑시가 다리를 꼬며 유피테르를 도발했다.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

유피테르는 그 말에 딱히 대답하지를 않았다. 그럴 가치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놀랍네. 엑시가 이들을 이끄는 게 사실이었나.’

배신한 칼리스토들을 이끄는 건 디오일 줄 알았다.

그녀의 활기찬 성격은 리더로서 걸맞았으니까. 누구와도 척지지 않고 두루두루 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배신자들의 리더는 엑시였다.

마도 공학에 몰두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달라진 엑시의 모습은 어색했다.

유피테르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자, 엑시가 한 번 더 유피테르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랜만에 봤으면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 우린 가.족.이잖아.”

“가족이라….”

유피테르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테이블로 다가왔다.

움찔.

마스터의 미소를 본 엑시 일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피테르는 웃을 때 더욱 무서운 사람이었기에.

얼마 전까지 같은 편이었다. 심지어 칼리스토의 리더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끼이이이익!

유피테르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의자를 빼낸 후, 가볍게 앉았다.

푹신하긴커녕 딱딱한 촉감이 그대로 피부에 느껴졌다.

오두막 속 하나하나가 기분이 나빠지도록 세심하게 설계된 것만 같았다.

“뒤통수가 아직도 얼얼한데. 이런 관계를 가족이라고 하나? 아카데미에서 배우기론 가족은 늘 함께라고 하던데.”

“유피테르 씨가 그런 말을 하니 어울리지 않는걸. 누가 보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줄 알겠어?”

숨도 쉬지 못했던 엑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 어떤 것보다 공격하기 쉬운 소재였다.

유피테르가 음울한 유년기를 보냈다는 건 칼리스토의 상식이었다. 바실리 님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으니까.

“그런 말을 서슴없이 꺼내는 게 엑시의 무서운 점이라니까.”

“하아. 다들 유치하게 왜 이래요.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분들이신데.”

양옆에 앉은 디오와 에냐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유피테르라는 거대한 산을 혼자 상대하는 건 두려웠다. 하지만, 여러 명이 힘을 합치면 조금이나마 괜찮아졌다.

무거운 짐을 여러 명이 나눠서 드는 것처럼.

기대와는 달리 유피테르는 끄떡없었다. 오히려 세 명의 면면을 한 번씩 보더니 입을 열었다.

“잡소리는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날 왜 불렀나? 4번째 열쇠를 갖고 싶기라도 했나.”

“말을 돌리는 건 선수네. 그런 식으로 바실리 님의 마음을 꼬신 거야?”

끝을 모르던 엑시는 여전히 유피테르를 톡톡 쳤다.

“장난하러 온 건가. 이런 거라면 더 할 말은 없겠군.”

유피테르가 작게 으르렁거렸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푸른 마나가 여기저기서 일렁였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야.”

“엑시 언니. 이건 이야기가 다르잖아.”

유피테르의 마나를 본 디오와 에냐는 엑시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어느 정도 도발을 이어나가기로 사전에 입을 맞추기는 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대로 전투에 돌입하기라도 하면 유피테르에게 처참하게 패배할 게 뻔했다.

설령, 도망가더라도 에키드나와 싸워야만 했다.

봉인을 풀 수 없는 상황에서 굳이 에키드나와 싸우고 싶진 않았다.

타르타로스 안의 마나들은 마족들에게만 웃어주었으니까.

“치잇. 알았어. 알았다고.”

엑시는 한 번 혀를 찬 뒤 유피테르에게 말을 걸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우린 4번째 열쇠를 원해.”

“우리라니. 에키드나를 잘못 말한 거 아닌가? 너희들에게 의지란 게 있어?”

“….”

비웃음이 잔뜩 담긴 말에도 엑시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미스릴 동아줄을 잡은 줄 알았는데, 썩은 동아줄이었다. 계획의 주도권은 그들에게 없었다.

오로지 에키드나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었을 뿐.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끌었다.

“조건을 이야기해줘.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같잖아.”

“목적이 같다니?”

“바실리 님을 구하고 싶은 건 당신뿐만이 아니라고. 그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지지 않아.”

“에키드나의 손을 잡은 건 왜지?”

“당신이 가는 길이 너무 험난했으니까. 그렇게 느려서 언제 마스터를 다시 만날 수 있겠어.”

한이 맺힌 듯한 엑시의 대답에 유피테르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답답하군.’

그들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돌이켜봐도 속도가 너무 느렸으니까. 장난치고 있냐고 물어보아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바실리가 원하던 길이었다.

그녀는 유피테르와 칼리스토들이 힘을 남용하는 걸 늘 걱정했다. 한 명 한 명이 대륙을 뒤엎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당부했었다.

유피테르의 시선이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해있자 엑시가 양손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쳤다.

쾅!

엄청난 진동과 함께 테이블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마도 공학자라고 해도 칼리스토는 칼리스토였다.

꽤 큰 소리에 유피테르의 시선이 다시 엑시에게 고정되었다.

“힘이 넘치나 봐?”

“하아?”

“내 조건은 단 하나다. 너희 말고 에키드나가 직접 자리에 나오라고 해.”

엑시 일행이 배신자라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유피테르는 에키드나의 생각이 궁금했다. 열쇠 중 하나를 파괴했으니까.

이대로라면 4개의 열쇠가 모이는 건 불가능했다. 즉, 신이 되겠다는 꿈은 꿈으로만 남을 거였다.

‘에키드나가 그럴 리 없지’

유피테르는 에키드나를 믿었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였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꼼꼼히 세우거나,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에키드나의 집착을 신뢰할 뿐이었다.

한 번 목표로 하면 절대로 놔주지 않는 마족이었으니까.

“꼭 그래야만 해?”

“다른 조건 따위 필요 없다. 배신할 때 전면전이 될 거라는 생각은 했겠지. 안 그래?”

유피테르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엑시의 선택지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미리 계획했던 것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쓸모없게 되었다.

‘여차하면 들이박겠다? 그래. 그게 당신의 본성이지. 상냥한 척하지 말라고. 역겨우니까.’

어차피 이 문제는 그녀 혼자 결정할 수 없었다. 리더라고 해도 거기까지 힘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잠깐 생각할 시간을 줘.”

“좋다.”

유피테르의 말에 엑시는 두 사람을 이끌고 구석으로 향했다.

* * *

엑시, 디오 그리고 에냐는 오두막 한쪽 구석으로 모였다.

엑시가 눈짓하자 디오가 마법으로 결계를 쳤다. 혹시라도 유피테르가 듣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언니들 이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구도잖아.”

에냐가 불편한 적막을 깨버리자 다른 이들도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엑시. 테세라의 상태로 협박을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 그치만. 저 태도를 봐.”

엑시는 턱짓으로 유피테르를 가리켰다.

“저렇게 나오는데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어?”

“하긴. 저 상태의 마스터는 무섭…. 아 미안. 내가 실언했네.”

마스터라는 말에 디오와 엑시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걸 본 에냐는 기겁하며 말을 정정했다.

엑시는 에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에게 있어 마스터는 바실리 님 한 명뿐이다. 그 점 명심해.”

“나도 알고 있다고!”

“알고 있으면 됐어.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할지 생각해보자고.”

엑시의 말에 디오가 바로 의견을 냈다.

“지금이라도 테세라를 인질로 잡는 게 어때? 먹힐지도 모르잖아.”

“그건 너무 도박 같은데…. 저번에 보니까 테세라 언니는 완전히 유피테르의 편이었잖아.”

“하긴.”

엑시가 신들린 작전을 완성한 이후, 그들은 테세라를 만나러 갔다.

에키드나의 도움이 있었기에 테세라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설득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어찌어찌 협상 테이블로는 끌고 온 게 전부였다.

한숨만 푹푹 나오는 상황이 되자 에냐가 마지못해 의견을 내놓았다.

“그냥 힘으로 뺏어버리자.”

“너 미쳤어? 나도 저 사람이 싫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어안이 벙벙해진 엑시가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에냐가 말을 이었다.

“여긴 타르타로스야. 신의 섭리가 유일하게 빗나가는 곳이지. 별빛 마나를 지녔다고 해도 별수 있겠어? 거기다 수도 우리가 많잖아.”

“그, 그러고보니….”

“아니. 저 사람은 우리와는 달라.”

엑시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자 디오가 나서서 제지했다. 평소의 털털함과는 다르게 진지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말투였다.

‘저 괴물을 이기겠다고?’

에냐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가정부터 잘못되었다. 칼리스토 전원이 달려들어도 유피테르는 이길 수 없었다.

마족이 몇천 마리가 달려들어도 칼리스토 자매들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그 이후로도 에냐는 몇 가지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럴 때마다 디오와 엑시에게 번번히 부정당했다.

이렇게 되어버리니 상식을 담당하던 에냐는 결국 삐져버렸다.

“언니들 마음대로 해! 난 이제 모르겠으니까.”

디오는 저런 꼴을 놔두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자매의 사이가 갑갑한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디오는 머리를 굴렸다. 마침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 자리에 에키드나를 부르는 거야.”

“에키드나를?”

“그럼 유피테르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동시에 에키드나의 요구도 채워주는 거잖아.”

디오의 말에 이때다 싶은 엑시가 참여했다. 두 언니는 은근슬쩍 심통이 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에냐가 천천히 대답하자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에키드나를 부를 수단이야 많았다. 나름 협력자인데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 * *

이야기가 끝났는지 세 사람은 결계를 해제하고선 위풍당당하게 걸어왔다.

“좋아. 에키드나를 이곳으로 불러줄게.”

“너희에게 그럴 자유가 있었나? 에키드나의 인형에 불과하지 않나.”

“이, 이….”

명백한 비웃음이 담긴 말에 에냐가 뭐라 화를 내려 했지만, 디오가 막았다. 그녀는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단.”

“뭐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마족을 부르는 것뿐이야. 그 뒤의 일은 책임져줄 수 없어.”

유피테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당장 에키드나를 부르기나 해.”

“후회하지 마.”

“글쎄. 마지막에 웃는 자는 과연 누굴까.”

디오는 눈을 질끈 감고서 돌아섰다. 그 후, 아공간을 열어 에키드나가 준 선물을 꺼내 마나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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